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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우리 작은 손녀 세리에게 붙여준 별명은 (할아버지 껌딱지)다.
더하여 할아버지가 세리에게 붙여준 별명은 (잠들면 천사)다. 그럼 잠들지 않았을 때 세리는 어떠냐? 해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잠들지 않은 세리는 악마구리)라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애초부터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아침에 깨서부터 저녁에 잠들 때까지 온종일 죽어라 뛰어다니는 세리는 정말로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슈퍼 에너자이저다. 세상 모든 것이 온통 궁금한 호기심 덩어리에다가 무조건 직접 해보겠다고 나서는 겁대가리(?)를 상실해버린 당돌한 꼬맹이다. 물속이던, 벼랑이던, 수풀 속이던, 위험한 도로이던 가리지 않고 제 눈에 띄었다 하면 벌써 온몸 내던지기를 순식간에 해버린다.
동물원에서 가출한 꽃사슴을 다짜고짜 쫓아가서 꼬리를 잡아당기면서 이쁘다고 하질 않나? 꽃밭에 나온 도마뱀을 귀엽다고 다짜고짜 덮쳤는데 꼬리를 자르고 도망을 치자 몹시 아쉬워하던 표정이랑, 계곡에서 튜브가 떠내려오자 구출해 준다면서 다짜고짜 바위에서 제법 물살이 거센 웅덩이로 뛰어들지를 않나,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는 녀석이다.
이러다 보니 ‘세리는 할아버지 껌딱지’ 이지만, 어쩔 수없이 ‘할아버지는 세리의 눈딱지’가 되고 말았다.
세리가 무슨 놀이를 하고 무엇에 열중하던 할아버지나 우리 가족은 일절 관여를 하지 않는 편이다. 제가 궁금해 질문을 해오면 대답해 주고, 같이 놀아달라 하면 잠시 놀아주는 정도가 거의 전부다. 하지만, 녀석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온 순간부터 엄마 아빠에게 돌아가는 순간까지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무조건 지켜보기는 해야만 한다.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오로지 안전에 관해서만 간접 관여를 하는 편인데, 그 지켜보는 맛이 생각보다 솔솔하게 재미있다. 그렇게 지켜보는 시간들을 파노라마처럼 가만히 되돌려 보다 보면, 그제와 다른 어제, 어제와 다른 오늘, 그리고 오늘과 또 무엇인가가 내일부터 다르게 변할 녀석이 성장해 가는 모습이 저절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하자면 이제 큰손녀 태리는 모든 면에서 그새 급성장한 (안심 덩어리)라고 해야겠다. 태어나서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가 녀석을 부르는 별명은 (순둥이)였다. 낯도 많이 가리고, 지극히 내성적인 소심한 아이였다. 그랬는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변했다. 자기주장도 강해졌고 친구들과의 교류도 적극적을 넘어서 매사에 중심적 역할을 하려고 고심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성적 순둥이에 대한 모든 걱정을 털어내 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천성이 내성적이라 여전히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혼자만의 영역을 만들고 싶어하는 녀석을 따스하게 보듬어 주는 역할은 이제 완전히 할머니 몫이 되어 버렸다. 서서히 사춘기가 시작되는 것으로 보이고, 점차 예쁜 숙녀로 자라날 잠재적 여성이기에 할아버지는 슬쩍 한발쯤 물러날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소녀가 숙녀로 변해가는 모습은 과연 어떨까? 딸을 키워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할머니와 태리 사이에 핫라인이 설치되어 있고, 둘만의 비밀 이야기는 한참 진행중이다. 할아버지에겐 금역의 공간이 어느날부터 생겨 버렸다.
언젠가 부모가 된 아들이 그랬다. ‘자신은 좋은 엄마를 가질 수 있어서 성장하는 동안에 참으로 다행이었고 항상 감사했다.’ 말해서 엄마를 눈물 흘리게 만든 적이 있었다. 그랬던 그 좋은 엄마가 지금은 온통 좋은 할머니가 되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있으니 아들과 겡구(며느리)가 느끼는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런 할머니 옆에서 이 할아버지가 나름 일조를하고 있다는 것을 녀석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별 반응이 없다.
그러면서 툭하면 '엄마 아빠 어디 안가요? 애들이 기다리는 눈치던데? 그리고 이젠 아무때고 말만 하세요. 오실 필요 없이 내가 충주까지 데려갈께요..' 라고 묻는다. '아들. 어째 이제는 아예 병아리들을 우리에게 떠 맡기려는 심뽀가 엿보인다?' 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꺼내진 못했다.
대신 껌딱지 세리가 요즘 불쑥 한마디씩 따지고 든다. “할아버지. 제발 살 좀 빼요. 그래야 오래오래 사신대요.”
'할아버지가 오래 살면 뭐가 좋은데?'
한번은 우리 손녀들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캠핑을 떠나면 병아리들은 아침이던, 한낮이던, 아니면 깊은 밤이던 화장실에 용무가 생기면 어김없이 항상 할아버지를부터 찾는다. 낯선 환경에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또 시설물이 멀리 떨어진 숲 근처일 때도 많으니 할아버지랑 가는 게 좀 더 안심이 되나 보다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에겐 따라 갈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언제나 여자화장실 앞에 저만치 떨어져 걸터앉아 마냥 기다려야만 했다. 그런데 한 번은 안쪽에서 세리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 문이 안열려요. 문 좀 열어주세요.’
당황스러웠다. 당장 뛰어 들어가야 하겠는데, 혹시나 화장실에 다른 여성 이용객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 아니겠는가? 대.략.난.감.
‘알았어. 세리야. 금방 열어줄게. 조금만 앉아서 기다려줘.’
일단은 할아버지가 들었다고 안심을 시켜주고는 혹시 안에 누구 안 계시냐고 소리를 외쳐 본다. 다른 사람이 있으면 도움을 요청하고, 없는 게 확실해지면 그때 할아버지가 들어가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어떤 젊은 아가씨가 용무가 있어 다가오다가 우리 대화를 듣고는 이내 상황을 눈치챘나 보다. 안으로 들어간 아가씨가 세리 손을 잡고 밖에까지 데려다주었다. 문고리가 고장이 났었다고 한다.
‘야. 이거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인데도 남녀가 구분되어야 하는 상황이 있기는 있구나.’ 새삼 느껴보았는데, 지금도 여전히 녀석들은 화장실 볼 일이 생기면 ‘할아버지. 화장실 가고 싶어요.’를 연발한다.
‘할머니야. 이거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하는 거니?’
‘시집가기 전까지는 아마도 해야 할걸? 세상이 얼마나 험난해 졌는지 뉴스에 맨날 나오잖아. 그러려면 살부터 빼라고 세리가 자주 그러잖아. 왜 그러겠어? 오래오래 할아버지가 해줄 일이 있어서 아니겠어? 축하해.’
아무리 그렇기로, 그래도 그 맛에 할아버지는 기쁘게 지금을 살아간다.
아무렴, 그 맛에 할아버지는 오늘도 할머니에게 또 핀잔을 듣고 꾸지람의 경고를 받을 것을 알면서도, 기어코 잔머리를 열심히 굴려 가며 또 사고 칠 궁리를 한다.
(흘림골 트래킹)도 해야겠고, (무릉계곡 베틀바위)도 보여주고 싶다. 할머니 무릎 수술 후유증 때문에 마냥 미루는 대신에 (검마산 자연휴양림 캐빈)을 이미 몰래 예약해 두었는데 (신선 계곡)으로 텀벙텀벙 빠지면서 계곡을 걸어 내려오는 물놀이 트래킹을 이번에 꼭 해주고 싶다. (소선암 캠핑장)이나 (용하 야영장)에 텐트를 치고 계곡에서 낚시와 어항으로 피라미 물고기를 잡아서 진짜로 튀김을 함께 만들고 싶다. 어디 그뿐인 줄 아니? 여름방학 극성수기에 캠핑하려고 여기저기 추첨제 응모를 숱하게 해두었는데, 신청자가 너무 많아서 8군데를 모두 탈락하고 말았다. 그래도 굳세게 재도전해서 대기 순번에 신청을해 두었는데, 방학 중에 (운장산 자연휴양림 캐빈)을 대기 순번 1번으로 두 개를 요청하고 대기중이다. 제발 두 개 중에 하나만이라도 당첨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태리야. 세리야. 또 캠핑 가야지?'
밤이 깊어지면 언제나처럼 세리는 애착이불을 챙겨서 할아버지 옆으로 다가온다. 잠잘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멋쩍은 웃음과 함께 떡하니 할아버지 옆에 슬며시 다가와 둥지를 틀고 드러눕는다.(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유독 우리 병아리들 잠자는 모습을 사진으로 많이 찍는 편이다.)
언니 태리는 밤 9시 이전엔 늘 스스로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문제는 동생인 요녀석이다. 할아버지는 뭐하나, 할머니는 뭐하나 쫓아다니면서 여전히 남아있는 호기심을 마저 충족시킨다. 혼자 그림도 그리고, 아이패드를 가지고 놀고, 제 스스로 자고 싶어질 때까진 여전히 씩씩하게 놀이 삼매경이다. 어른들끼리 소맥 파티라도 벌일라치면 안주 메뉴에 과일을 추가로 요청하고는 제가 싸그리 쓱싹해 버린다. 가끔은 자정이 가까워서야 이미 확보해 놓은 자리로 가서 슬며시 잠에 빠져든다. 언니는 아침 6시가 넘으면 스스로 일어나는데 동생은 7시쯤에 거의 깨워야 일어난다.
병아리는 달랑 두 마리뿐인데 개성이며 습성이며 먹성까지도 너무도 판이하게 완전히 다르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그 밤이 지나갈 때까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쪽잠을 자면서 보초를 서야만 한다. 그나마 여름은 좀 편하겠지만, 겨울 캠핑에는 밤새도록 불침번을 제대로 서야만 한다. 겨울 텐트에는 난로를 비롯한 위험한 물건들이 훨씬 많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언니는 없는 날도 있지만 하루에 한 번쯤은 심하게 이불을 걷어차거나 잠자리 무단이탈을 한다. 그런데 동생은 하루에 두세 번은 무조건 무단이탈을 감행하는데 그 범위와 거리가 예측을 벗어나기 일쑤다. 어쩌면 넘치는 호기심 때문에 꿈속에서도 여전히 미지의 탐험을 다니는 것이 아닐까 싶어질 정도이다.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즉시 오분대기조를 출동시켜 본래의 잠자리로 구출해 모셔와야만 한다. 긴 겨울밤엔 여간 긴장되는 것이 아니다.
어른끼리 캠핑이나 여행이면 항상 새벽에 일어나 신선한 공기를 느끼면서 밖에서 이른 모닝커피를 마시고 나서 주변 산책을 주로 다니는데, 병아리들과 여행이나 캠핑이면 혹시나 소리에 놀라 잠을 깰까봐 이른 모닝커피를 생략하기 일쑤고, 산책은 혼자씩만 다녀올 수밖에 없게 된다. 누군가 한 명은 남아서 나머지 불침번을 서야하기 때문이다. 좀 더 자라나면 모를까, 아직은 병아리들이 잠에서 깨었을 때 곁에서 지켜주고 바라봐주는 보호자가 반듯이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요즘 2026 월드컵 축구 시청에 생체리듬이 맞워져 있는 이유로 새벽 2시 전후면 저절로 눈을 뜬다.
이때부턴 오로지 나만의, 그리고 내 방식의 최고로 행복한 시간이 된다.
(잠들면 천사)랑 할아버지의 교감의 시간이 허락되기 때문이다.
머리칼을 쓸어 내려보고, 볼을 꼬집는 흉내를 내어보고, 새끼손가락을 걸며 일방적인 할아버지의 요구와 약속이 성사된다. 손가락을 녀석의 코로 가져가 여린 숨결을 확인도 해보고, 손목에서 거의 느껴지지 않는 맥박을 재보기도 한다. 슬며시 다가가 애착이불과 녀석의 뺨을 교착하면서 녀석만의 체취를 찾아보는데 그건 영 잘 모르겠다. 그저 뛰어다니다가 할아버지 품에 덥썩 달려와 안겼을 때 느꼈던 옅은 땀 냄새와는 어딘가 모르게 다르다는 느낌뿐이다. 어느날인가는 엄마를 따라 머리를 싹뚝 자르고 단발로 나타나 할아버지를 놀래키더니, 이제는 죽어도 길게 기른다고 우겨댄다. 그럼 오늘은 또 어떤 머리를 할까? 꽁지머리 하나로? 양쪽으로 토끼처럼 말아 올리려나? 그런 것까지 사뭇 궁금해진다. 어디 잠시 슬쩍 깨워서 물어볼까?
‘애 좀 편하게 자게 가만 내버려 두지 자꾸 건드릴 거야? 심심하면 밖으로 나가던가? 왜 자는 애를 괴롭혀?’
헐!!!! 이게 할아버지 방식의 애정표현의 일부이건만, 또 마귀할망구가 태클을 걸어온다.
아니,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내가 이래도 병아리들에 대해서는 꼭 할머니만큼의 지분을 가진 당당한 할아버지라고? 할아버지가 내 손녀들에게 이 정도도 못 하니?’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후환이 두려워 그만 꼬리를 슬쩍 내리고 슬며시 텐트 밖으로 나가려고 자크를 올리는데, 그 소리에 그만 언니 태리가 잠에서 깨고 말았다.
‘무슨 일이예요. 할머니?’
억지로 일어난 표정이 역력하다. 일어나며 기지개는 켜는데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상태다.
‘아니야. 할아버지가 밖에 나가려다가 물건을 쓰러트렸어.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아니야. 어서 다시 누워.’
눈도 한 번 뜨지 않은 태리가 그대로 드러눕더니 순식간에 다시 잠에 빠져든다. 잔뜩 찌프린 할머니 표정이 ‘거봐. 그러게 내가 조심하랬지? 얼른 안 나가?’하고 다그치는 눈초리가 분명하다.
아!!!! 이 꼴두 새벽에 할아버지는 다리안 캠핑장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아니 말이 나왔으니까 말이지 ‘내가 뭘 잘못했어? 태리야. 세리야. 할아버진 정말 억울해!’
캠핑장을 벗어나 계곡 깊숙한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초등학생인 짱구(아들)를 앞세우고 연화봉을 이 길로 두 번 올랐었다. 야속하기만 했던 지난날의 아쉬운 상념들이 골짜기 안쪽에서 불어오더니 휑하니 폐부를 그대로 관통해버리고는 산자락 아래로 사라진다.
그 아들이 커서 어느새 당시의 내 나이가 되었다. 짱구가 앞서 걷던 그 자리에 지금 태리와 세리가 대신 서있다. 셋이었던 우리 가족이 지금은 여섯으로 불어났다. 더해서 어느 하나 부족하거나 그릇된 것이 하나도 없다. 더도 덜도 말고, 사는 날까지 이렇게만 거듭거듭 반복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텐트에서아직 잠자리에 들어 뒤척이고 있을 녀석들이 숙녀로 자라서 성인증(운전면허증)을 가지고 동네 호프집에 생맥주에 먹태를 함께 먹으러 갈 때까지만 나랑 할망구가 온전한 정신과 신체로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일곱 살인 작은 녀석이 성인이 될 때까지면........ 내 꿈이 너무 야무진건가? 늘 자칭타칭 아직은 당당한 현역인 할아버지라고 너스레를 떨고는 있지만, 솔직히는 자신감이 점점 떨어져 간다. 병아리들아. 대신 너희들이 얼른 자라주렴.)
숲을 지나 물소리가 거세진 곳에 다달으니 아주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페인트 칠은 심하게 벗겨지고 여기저기 녹이 슬었지만, 산골짜기 바위벼랑에 걸터앉은 옛 위용은 여전히 무척이나 멋스럽다.
아주 먼 옛날에 이 깊은 산중에라도 숨어야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바로 이 거센 계곡류가 굽이쳐 흐르는 바위벼랑 위에 박달나무에다 다래 줄기를 엮어서 구름다리(운교)를 설치해 놓고 세상 밖으로 몰래 드나들었었다. 그들에겐 다리 안쪽은 삶의 영역이었고, 다리 밖은 죽음의 세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리안)과 (다리 바깥)을 구분하게 되었고, 그 구름다리가 현재엔 이 철교로 바뀌어진 것이다.
그랬음에도 정작 이 다리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다. 이곳에선 모든 것이 (다리안)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캠핑장도 심지어 폭포까지도 그냥 (다리안)을 명칭에 넣고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럼 이 다리의 이름도 그냥 (다리안교)냐? 하긴 뭐 그렇게 부른다 해서 하나도 이상할 것은 없다. 오히려 더 잘 알아듣고 이해할 테니 말이다. 그래도 이 다리엔 정확한 이름이 따로 있다. 준공 기념식에서 철판에 주물로 이름을 새겨넣어 교각에 붙여 놓는 정식 이름말이다. 하여 이 구름다리 철교의 이름을 찾아보면 분명하게 (소백산교)라고 새겨져 있다.
옛 흔적은 여전히 남았지만 참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다듬어진 도로 사정도, 주변 환경과 잘 가꾸어진 숲도 먼 과거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가파른 저 깔딱고개 중간 어디쯤에서 동동주에 빈대떡을 구워 팔던 그 아주머니의 모습이 희미하게 떠오르긴 하는데, 지금 당장 거기까지 희망을 가지고 올라가기에는 작금의 내 처지와 여건이 허락지 않아서 이쯤에서 포기하고 돌아서기로 한다.
관광지로 활성화된 소백산은 이름에 악(岳)자가 들어가는 산이나, 지리산 덕유산에 비하자면 산세가 넓고 여유로운 만큼 비교적 완만한 편이어서 등산하기엔 난이도가 그리 어려운 편이 아닌 것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하지만 그래도 산은 산이다. 세상에 쉬운 산은 하나도 없더라는게 솔직한 그간의 내 경험에서 내린 최종 결론이다.
현재에 소백산은 허가되고 관리되고 있는 탐방로가 모두 21개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 3개 코스를 이용해 여섯 번 정도 소백산을 등산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한여름에 기차를 타고 희방사역에 내려서 절과 폭포를 구경하고 천문대 방향 코스로 처음 방문을 했는데, 깔딱고개 쯤에서 장맛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너무 늦은 출발로 코베아 가스렌턴에 의지해 폭우 속 야간 등반을 했던 흑역사를 썼다. 산 능선에서 영주 풍기 방향의 비바람이 너무 거세서 걷기도 힘들었다. 주목 군락지 숲에 숨어서 공포의 비박이란 것을 경험했다. 당시 큰 희망(?)을 가지고 4홉들이 유리병에 담긴 소주 2병을 내가 배낭에 담고 그 역경의 행군을 했었건만, 모내기하려고 삶아놓은 논바닥 같은 텐트에서 죽기살기로 라면을 겨우 끓였더니 거머리떼처럼 달려들어 허겁지겁 국물까지 빨 듯이 해치우고는 그만.......... 벌러덩 드러누워 기절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건빵에 소주 한 잔하고 나서 자자고 아무리 통사정을 해도 이미 혼절한 후였다. 결국 혼자서 4홉들이 병을 따고 한모금 병나발을 불었는데, 세상에 그렇게 쓰고 맛이 없는 쏘주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나 역시 그만 포기하고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날 눈을 뜨니 산 정상엔 벌써 해가 한참을 떠올라와 있었고, 다시 바리바리 짐을 꾸려 둘러메고 나니 우리가 머문 자리에 덩그란히 남은 건 쏘주 4홉들이 2병이 아닌가? 그런데 눈치들을 보니 지금 나보고 저걸 다시 메고 넘어가자고? 못해. 죽어도 또 그 짓은 못해. 그래서 결국....... 뒤에 오는 누군가를 위해서 소주를 눈에 잘 띄는 길옆에 이정표처럼 세워놓고 떠났는데, 후에 다시 찾아가 보았는데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누가 가져갔으려나? 아니면 어디 흙 속에 파뭍혀 먼 미래의 고귀한 유물이 되고 있으려나?
그때 하산은 비로사가 있는 삼가 야영장 코스 방향으로 하산을 했다. 당시의 비로사 코스는 완전 미개발 원시림과 마찬가지였다. 거의 등산로를 개척하는 듯한 완전 중노동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장 짧고 무난한 코스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코스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선배로부터 소개를 받은 새로운 등산로가 바로 다리안 계곡 코스였다. 희방사 코스에 질려서 그랬는지, 다리안 코스가 훨씬 난이도 면에서 수월했다. 코스 길이도 훨씬 짧다고 느겨졌다. 해서 그 후론 주로 이 코스를 통해 오르내렸다. 요즘의 평가로는 난이도는 비교적 낮은 편이나 거리가 다소 먼 편이고 약간은 지루한 코스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소백산(小白山)은 봄의 철쭉만큼이나 겨울 설경이 아름답기로 이미 널리 알려진 충분히 매력적인 산이라 하겠다.
하여 일찍이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울긋불긋한 것이 꼭 비단 장막 속을 거니는 것 같고 호사스러운 잔치 자리에 왕림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산.’이라고 소백산 철쭉의 아름다움을 묘사하였으며, 격암유록(格菴遺錄)의 저자인 남사고(南師古)는 소백산을 가리켜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 칭했다. 토질이 기름져서 과거 화전민들이 많이 살기도 했고, 나라에 전란이 발생하면 피난지 역할도 했다. 정감록에서 언급된 소위 십승지 가운데 첫 번째로 거론된 풍기 금계리가 바로 근처의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마을이다
산책은 내일 아침에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해 이쯤에서 물러나기로 하고 텐트로 돌아와 보니....... 어제 우리 병아리들이 한바탕 치룬 난리의 상흔이 여기저기 참상의 잔해로 너저분하게 남아있다.
그나저나 어제 오후에 도착해 반나절 남짓을 겨우 지냈을 뿐인데 텐트 뒤 철담장에 널리어 있는 우리 병아리들의 전투복(?) 수가 도대체 이게 몇 개여? 여기저기 널부러진 잔해만 보자면 한 2박3일쯤은 지낸 폼새가 아닌가 말이다. 오늘은 또 몇 벌을 갈아입을까? 어쩐지, 지덜 에미가 챙겨 보낸 옷가방이 무척 크더라니....... 열심히 물에서 놀고 열심히 갈아입으라는 뜻인가?
혹시나 몰라 물고기 통부터 살펴보니 전부 생존에 완전 쌩쌩하다. '너희들 운명은 세리에게 달렸어. 전부 방생되어서 살아 돌아갈 수도 있고, 모조리 끓는 기름에 들어가서 튀겨질 수도 있어. 함께 기도하자. 나도 너희들이 다시 무사하게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어. 너희들 생사여탈권은 오로지 윤세리 몫이야. 이쁘게 잘 보여.'
혹시 병아리들 잠을 깨울까봐 조심조심 타프로 가서 캠핑 테이블에 앉아 버너에 불을 붙인다. 아무래도 모닝커피부터 마셔야 할까 보다. 점화장치를 작동시키느라 딸깍 소리를 냈는데, 아니나 다를까 텐트속에서 세리의 목소리가 울려 나온다.
‘할아버지. 물고기들이 잘 있는지 확인해 주실래요? 모두 살아있을까요?’
‘방금 확인해 보았는데,전부 살아서 벌써부터 열심히 헤엄치고 있어. 걱정하지 마.’
‘모퉁이에 쌓아놓았던 코코볼은요?’
‘코코볼은 너희 잠들었을 때 할머니가 봉다리에 담아서 잘 갈무리해 두었어. 데크 옆에 잘 있어.’
‘그럼 됐어요. 금방 나가서 볼거에요.’
이젠 우리 병아리들이 모두 잠자리에서 빠져나왔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세리가 말하는 코코볼은 정확히는 황토볼을 가리킨다. 맨발로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알려 진 뒤에, 황토로 산책길을 조성하는 곳이 사방에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황토를 작은 구슬처럼 가공해서 바닥에 깔아놓고 그 위를 걸으면 지압 효과까지 있다고 알려지면서 요즘 새로운 건강 트랜드처럼 붐을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좋은 신발에만 익숙한 현대인들이 막상 황토볼 위를 걷는 것은 적지 않게 고통이 수반되는 고난의 수행 길이라 하기에 충분하다. 그 황토볼로 만든 맨발 산책길이 여기 다리안 캠핑장에는 운동장 옆에 길고 너른 숲길처럼 잘 조성되어 있다. 그 황토볼이 캠핑장 이용자나 설치 과정에서 흘러나와 봇도랑 물속에 아주 조금 흩어져 가라앉아 있는데, 이 작은 갈색의 둥근 황토볼 구슬들이 선명한 색깔로 흐르는 물속에서는 아주 예쁘게 느껴지기 때문에, 물놀이를 하는 어린이들이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찾아서 모으곤 한다. 어제 우리 병아리들도 각자 한웅큼씩 열심히 찾아다니며 건져내서 물기를 말리던 중이었다.
‘이따가 황토볼을 가지고 녀석들을 한 번 놀려줄까?’ 하면서 자크를 올려 굳게 닫혀있던 몽골텐트(브라이튼 12.3)을 활짝 개방하려는데.......... 아뿔싸!!!!!
지금은 (잠들면 천사가 숲속의 요물로) 변신하는 시간이 아닌가? 흐메!!!! 이 예쁜 애물단지가 시방 누구의 손녀여?
우리 세리는 지금 요물단지로 변신 중!
아침이면 할머니와 함께 늘 치루는 요정만의 성스러운 아침의식을 행하는 시간이다. ‘할머니 오늘은 한 갈래로 길게 해주세요.’ ‘오늘은 토끼처럼 감아올리고 싶어요.‘ '한 갈래로 해서 꽃무늬 리본을 매달아주세요.’ 라고 요청하는데, 그런데 오늘은 할아버지가 가장 귀여워하는 단순한 양쪽 꼬랑지 머리다.
채 아직 잠에서 덜 깨었는지 연실 하품을 하고 있지만, 장난끼 가득 연실 웃어주는 표정을 보니 오늘 아침 컨디션은 최상인듯 싶어보인다.
여자 어린이지만 옷은 대체적으로 무난한 편으로 선호도 없이 엄마가 꺼내주는 대로 아무런 불평 없이 입고 무난히 소화하는 타입이다. 그런 배경에는 스스로가 이미 제가 예쁘다는 것을 깨닫고 있고 무던히 소화해 내고 있다는 것을 저를 대하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과 관심으로부터 찾아내 자신감을 얻은 때문으로 보인다. 그만큼 당돌하고 저돌적이며 놀라울 만치 깜찍하고 영악한 녀석이다.
하지만 머리 스타일만은 여간 신경을 쓰는게 아니다. 오늘은 이렇게 하고 내일은 또 저렇게 하고 싶고를 미리 정해놓고 기다리는 녀석이다. 손질한 머리 스타일이 썩 마음에 드는 날은 거울에 가서 몇 번이고 확인하는가 하면, 고개를 확 재치며 털거나, 머리 꼬랑지를 손으로 툭 치는 등의 깜찍하고 놀라운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한다.
머리 손질을 아무리 정성스럽게 해보았자, 밖으로 나가서 10분만 뛰어다니면 어느새 헝클어지기 일쑤고 땀에 젖기가 십상이지만, 그래도 매일 아침 머리를 손질하는 이 시간만큼의 녀석 표정은 늘 진지하고 갖은 예쁜 짓을 다 하곤한다. 할아버지가 넋을 빼앗기고 작은 손녀에게 빠져드는 행복한 아침 시간이 바로 지금이다.
할아버지가 아침 인사로 포옹해 달라고 하면 기겁을 하면서 거절하거나 달아나는게 당연지사지만, 아주 가끔 제 기분이 좋으면 몰래 할아버지 등에 올라타고 매달리며 뽀뽀를 해주는가 하면 속삭이듯 애정표현까지 해주곤 한다.
그런 행운의 아침을 기대하고 혹시나 오늘이 또 그런 날이 아닐까 하고 기다리는 맛으로 이 할아버지는 살아간다.
그래서 오늘도 어김없이 머리 손질하는 세리의 앞에 마주하고 앉아서 윙크도 보내보고 손가락으로 하트도 보내보고 관심을 끌어보려고 죽기살기로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세리야. 할아버지는 살 빼는 것만 빼놓고 다 할수 있어. 물론 그것도 할 수 있기는한데...... 조금 시간이 걸릴거야.’ ㅎㅎㅎㅎㅎ(누가 왜 사느냐고 물으면......... 그냥 웃지요.)
지금 이렇게 지난 캠핑 여행기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일이 하나 벌어지고 말았다.
큰손녀 태리의 핸디폰 프로필 사진이 갑자기 빠뀌었는데........ 어이없게 한참 어릴때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초3인 태리가 6살 적 자신의 사진으로 갑자기 프로필 사진을 바꾼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도 할아버지에겐 없는 처음 보는 모습이 아닌가?
할머니는 그냥 ‘예쁜 옛날 사진을 어디서 다시 찾아냈네?’라고 넘겼지만, 병아리들에게서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이게 그냥 넘길 예삿일이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이걸 어쩌지? 태리가 할아버지에게 삐치는 것 아니야? 그럼 안되는데?’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할아버지는 항상 이렇게 말해주곤 했다. ‘소중한 우리 병아리들. 할아버지는 태리와 세리를 똑같이 사랑하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라고 말이다. 그리곤 항상 공정과 공평을 유지하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지 못하는 부분이 생겼다.
병아리들과의 많은 추억을 만들고 기억하기 위해서 여행하는 동안에 할아버지는 죽어라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사진부터 정리하고 편집도 하곤 한다. 왜냐하면, 여행에 함께하지 못한 엄마 아빠에게 우리의 즐겁고 행복한 모습을 정리되는 대로 우선적으로 보내주어야 하고, 이렇게 정리된 사진들을 모아서 1년에 한 권정도의 (가족여행 사진첩)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4권의 사진첩을 만들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언니의 사진은 팍 팍 줄어들었고, 동생의 사진은 팍 팍 늘어갔다. 사춘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언니는 언제부터인가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하고, 사진기를 들이대면 죽어라 외면하거나 피하기 때문에 찍히는 독사진이 거의 없을뿐더러 제대로 찍히지 않는 나름의 고충이 따른 결과라 하겠다.
그런데 동생의 경우는 할아버지가 찍어주는 사진이 제 마음에 쏙 들만큼 예쁘게 나온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오히려 만날 때마다 카메라를 가져왔느냐고 확인하고, 언제든 렌즈를 들이대면 변화무쌍한 표정과 포즈까지 스스로 연출해 준다. 여행을 마치고 엄마 아빠에게 보내주는 사진의 7할은 동생 사진이고, 1할 정도는 언니 사진이고, 2할 정도가 자매가 함께 찍힌 사진일 정도이다. 그런데 이게 전부 할아버지의 의도도 아니고, 바램도 아닐뿐더러, 알게 모르게 할아버지는 부단히 신경을 쓰고 있음에도 파생된 결과인 것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그렇게 사진을 보내주고 나면, 가족 카톡에 사진이 올라가고 엄마 아빠는 ‘사진이 너무 예쁘고 귀여워요.’라고 난리 아닌 난리를 피운다. 하긴 제 자식 사진이 너무나 예쁘게 나왔다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근자에 제가 이쁘게 나온 사진이 별로 없는 언니의 입장에선 약간 서운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한참 이쁨의 상종가를 치고 있는 동생과 같은 또래였을 때의 제 사진을 찾아 꺼내서 프로필에 띄운 것은 아닐까?
‘할아버지. 저도 그 때는 나름 이뻤다구요.’라는 시위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은 다 괜찮을지 몰라도 할아버진 태리 마음이 매우 궁금하고 뭔가가 미안해. 하지만 할아버지 마음은 그런게 결코 아니야. 태리야. 할아버지 마음 알지? 할아버지는 죽는날까지 너희를 똑같이 변함없이 사랑할테니까 마음 상하지 말고 시원하게 털어 놓으렴.
그래서 부랴부랴 여행 파일을 뒤져서 내가 좋아하는 큰손녀 태리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찾아내서, 정리를 해서 태리에게 카톡으로 보내주었는데......... ㅎㅎㅎㅎㅎ. 아직 아무런 답변이 없다.
태리야. 할아버진 많이 억울해. 그리고 미안해.
혹시, 태리 핸디폰 프로필 사진이 바뀌려나?
아무래도 다음 사진첩(피안재의 여행갤러리 5)를 좀 서둘러 만들어야 할까보다.
모든 사진은 할아버지방(서재) 컴퓨터에 파일로 보관되어 있고, 그간 만들었던 사진첩 중에서 일반본 1권과 여행갤러리 4권만 병아리들 집에 있다. 나머지는 내 책장에 꽂혀있다. 아예 미리 만들때마다 다 보내줄까? 어차피 언젠간 모두 아들에게 갈 것이라 그때마다 오로지 단행본으로 1권씩만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나갈 것이다.
나와 할머니야 병아리들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 컴퓨터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아쉽게도 아직 우리 아들네 집에는 컴퓨터가 없다.
아들과 겡구(며느리)는 컴퓨터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으면서도, 병아리들과 함께하는 제들 집에는 아직 컴퓨터가 없다. 노트북도 일절 집에는 가지고 가지 않는다.
예견하건데는, 언니 태리가 중학교에 갈 때쯤에는 집에 컴퓨터가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다시 4년이 지나야 두 번째 컴퓨터가 생길 것 같다.
핸디폰도 학교에 들어가야 생긴다. 그러니까 내년엔 동생 세리에게도 핸디폰이 생길 것이다. 그나마 그 핸디폰도 게임은 하루에 2시간만 허용되는 시간제한 옵션이 걸려 있다. 물론 할머니에게 올 때(가족여행)는 그 제한의 폭이 조금 달라지기는 한다. 할머니가 아빠에게 부탁을 어디까지 요청하느냐 정도에 따라서 말이다.
인성을 중시하고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위한 가정교육 방침은 오로지 엄마 아빠의 절대적 책임과 몫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런 성장 과정을 기도하는 심정으로 그저 지켜보고 어떤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투입될 수 있는 2선의 조력자일 뿐이다. 헐머니 할아버지는 어디까지나 엄마 아빠의 후견인일 뿐이고 병아리들의 영원한 팬일 뿐이다.
하루종일 물놀이 삼매경에 빠질게 틀림없는 녀석들이라 어떻게든 아침을 든든하게 먹게 해야겠다고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늘 그랬듯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녀석들에게 오늘 하루 일정에 대해서 상의를 했는데, ‘그냥 있을래요’가 되돌아온 답변의 전부였다.
‘카페산에 산책삼아 올라 가면 멋진 풍경에다가 맛있는 디저트가 있는 빵집이 있거든?’
‘패러글라이딩은 타고싶지 않다고 어제 말씀 드렸잖아요. 그냥 물놀이 하면서 여기 있고 싶어요.’
‘어제 들려본 전통 시장이 여기서 가까웠잖아? 저녁 먹을것과 주점부리 사러 안갈래? 할아버진 호떡이랑 닭강정이 맛있던데.’
‘매점에 먹는거 있을만큼 다 있어요. 꼭 필요한게 있으시면 할아버지가 다녀오시면 되잖아요. 저희는 할머니랑 여기서 그냥 물놀이 하고 싶어요.’
끝!!!!
오늘 일정 조율은 모두 끝났다.
모조리 무조건 땡!!!!
오늘은 이제 할아버지 운전할 일도 없어졌으니, 할망구야 우리 모처럼 낮술이나 한 번 때려볼까?
부지런히 어젯밤에 남겨놓은 설거지 꺼리를 챙겨서 개수대로 향한다. 먹은 것은 별로 기억에 없는데 뭔 설거지 꺼리가 이렇게나 많담? 다리안 캠핑장은 개수대에 온수가 나오지 않아서 기름끼 있는 그릇 설거지가 힘들다. 할망구가 설거지에 대해서 가장 잔소리가 심한 지적사항인 것을 알기에 미리 큰 코펠 가득 물을 끓여 오기는 했지만, 헹구기까지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기에 말끔한 설거지는 영 자신이 없다. 여전히 미끌거림이 남아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지금 상황에선 최선을 다한거나 마찬가지야. 아니꼬우면 할망구 보고 다시 하라고 하지 뭐.
설거지를 챙겨서 개수대를 나왔는데 저만치........ 아이고 우리 세리를 정말 어쩌면 좋아?
방금 머리 손질을 해서 내 보냈는데 그새 잠옷 바람으로 봇도랑에 그대로 들어가서 물고기 통을 들고 나와서 뚜껑을 열고 뭔가 열심히 하고 있다.
‘윤.세.리. 너. 지.금?’
근데 이녀석 정말로 영악한 요물이다. 그 찰라 같은 순간에 이미 할아버지가 왜 저를 불러 세웠는지를 벌써 알아채고 있었으니 말이다.
‘할아버지. 저 물놀이 한거 아니예요? 여기 봐요. 바지를 이렇게 걷어 올렸잖아요? 그냥 물고기들이 잘 있나 꺼내서 뚜껑을 열고 확인만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도 바지 아래가 벌써 살짝 젖었잖아?’
슬그머니 제 잠옷 바지 아랫단을 살펴보더니 멋쩍은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올려다 본다.('할아버지가 저 사랑한다고 하셨으니까 이정도는 이해해 주셔야 하는거 아니예요.' 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지금 들어가서 옷 갈아입고 나와서 다시 살펴볼께요.’하면서 텐트로 들어가며 할머니를 소리쳐 부른다.
영악한 녀석. 누굴 닮아서 저렇게 영악한건지?
타프에 설치된 간이 주방으로 들어가니 할머니가 아침꺼리를 챙기고 있다.
‘할아버지가 간장 계란밥 볶아주고, 내가 미역국을 끓일께. 오뎅탕 보다는 미역국이 나을 것 같아. 아침이지만 할아버지가 애들 먹이고 싶으면 삼겹살 바비큐도 해 주시던가. 애들이 남기면 우리가 먹으면 되니까. 아침 해장술을 한 잔 하시던가 하면 되지 않겠어?
해장술? 이건 선처를 뛰어넘어 엄청난 파격이다. 대자연 속에 나오니까 마귀 할망구가 온순해 진건가? 어차피 우리집은 병아리들 끼니 시간이 난리법석 전쟁통이나 마찬가지니까, 일단 아무거나 만들어 놓고 먹으면 다행이고 안 먹으면 그게 우리 차지 끼니가 되고, 아침부터 고기를 구웠는데 병아리가 안 먹는다고 하면......... 병아리들 봇도랑에 내놓고 뒤에 앉아서 지켜보면서 아침부터 해장술을????????? ㅋㅋㅋㅋㅋ. 그런 게 힐링이지.
잠시 뒤에 타프에서 소리와 냄새가 나자 불쑥 병아리들이 찾아들어 온다.
‘할머니. 오늘 아침은 뭔데요?’
‘간장 계란 볶음밥하고 미역국. 삼겹살 바비큐도 있고, 김에 싸먹어도 되고 김가루에 비벼먹어도 되고.’
‘할머니. 저는 뜨거운 라면이 먹고 싶은데 컵라면 먹어도 되나요?’
아이고 환장하겠당. 어찌어찌해서 상차리고 있는데 뜬금없이 아침부터 라면이라니? 진작 이야기 하지?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언니 뒤에서 고개를 삐쭉 내밀면서 작은 악마구리도 한 마디 툭 거든다.
‘할머니. 저는요. 어제 저녁에 남은 망고가 먹고 싶어요.’
순간 할머니 표정이 여간 심상치가 않다. 그 표정을 어떤 애절함이 가득 담긴 병아리 두 마리가 빤히 올려다보고 있다. 그 팽팽한 긴장감을 견디지 못하고 할아버지는 그만 고개를 돌려 외면해 버리고 만다. 사실은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솟아오르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어서지만, 자칫 웃다가 할망구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이후로 모든 화가 할아버지에게 쏟아질 것이 뻔하기에 터득한 나름의 생존책이기도 하다.
‘일단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아침 준비를 했으니까 먼저 먹어보기부터 해보고, 그러고 나서 정이 라면이 먹고 싶어지면 다시 해줄께. 할아버지가 금방 물을 새로 끓여주실거야. 그러니까 어서 들어와 앉아.’
‘아싸! 그럼 저도 망고 먹어도 되는 거지요?’
뭐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매 끼니때마다 늘 있는 일이거늘.........
어김없이 이날도 간장 계란 볶음밥에 미역국은 할머니 할아버지 차지가 되어 버렸다. 생일날도 못 먹어보는 미역국을 병아리들 때문에 시도때도 없이 얻어 먹는다. 거기다가 오늘 아침은 특별히 식전 댓바람부터 삼겹살 바비큐에다가 소맥 해장술까지 생겼다. 이거야말로 제대로 힐링이 되는 행복한 다리안 가족 캠핑이 아니겠는가?
‘태리야. 라면이 그렇게 좋아?’
‘세리야. 망고가 아침이 되니?’
‘짱구(아들)야. 겡구(며느리)야. 너희들 아침은 안녕하니? 우린 오늘도 어김없이 이러고 있다. 제발 얘네들 먹성(?) 좀 어떻게 해봐주지 않겠니?’
아침이라 아직 수온이 올라가지 않아서 풍덩풍덩 마음대로 물놀이를 하지 못하는 캠핑장을 찾은 아이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노는 것을 지켜보노라니, 봇도랑에서 찾아내 건진 코코볼(황토볼)의 가진 정도를 가지고 서로 자랑하는 것이 보였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자니 또다시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할아버지의 천부적 장난끼를 주체하기가 힘들어졌다. ‘산책 삼아서 우리 병아리들을 제대로 한 번 놀려줄까?’
가만히 좀 더 지켜보다가 물에 들어갈 때만을 기다리는 녀석들이 좀 지루해졌다 싶어보였을 때 살짝 불러본다.
‘태리 세리야. 그 코코볼이 많으면 좋은거야?’
‘네. 도랑에서 더 많이 찾아서 모을거예요. 모양도 색도 이쁘잖아요.’
‘그래? 그럼 할아버지에게 진작 이야길 하지? 할아버지가 얼마든지 구해줄 수 있는데........’
‘정말요? 할아버지. 저기 큰 물고기통을 가득 채울만큼도 주실 수 있어요?’ 순식간에 병아리 두 마리의 표정이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어 보인다.
‘그럼? 세리 물고기통쯤이야 얼마든지 채울 수 있지. 두배 세배도 구해줄 수 있어.’
‘어떻게요? 할아버지 그게 정말이세요? 그럼 구해 주세요. 지금요.’
‘코코볼이 여기 도랑에 있는 것은 근처에 코코볼이 나오는 광산이 있기 때문이야. 그게 비가 많이 왔을 때 조금씩 떠내려온 것이거든? 그 광산이 어디 있는지를 할아버지가 알고 있고, 또 할아버지가 잘 아는 사람들이라 우리 병아리들이 가지고 싶어 해서 함께 왔다고 하면, 아마도 너희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만큼은 언제든 그냥 내어주실거야. 아무 때고 가고 싶으면 말해. 할아버지가 같이 가서 좀 나누어 달라고 이야기해 줄게.’
‘우리 가요. 지금 가요. 할머니 우리 지금 다 같이 가요.’
‘얼만큼 얻어줄까?’
‘여기서 지금 우리가 제일 많은데도 작은 물고기통만큼 이거든요? 바로 이거예요. 그런데 할아버지. 정말로 큰 물고기통만큼도 얻어주실 수 있어요? 그만큼이면 좋겠어요.’
‘그 두 배라도 얻어줄 자신이 있어. 할아버지를 믿어 봐. 그럼 통을 챙겨서 가볼까? 여기서부터 걸어가야만 하고, 조금 언덕길을 올라가야 해.’
‘괜찮아요. 언니랑 너끈히 걸아갈 수 있어요. 얼른 가요. 할머니. 제 손을 잡고 걸어가셔야지요.’ 하면서 세리가 먼저 앞을 나선다.
계.획.성.공.
(다리안 캠핑장)은 정말로 잘 가꾸어진 드넓은 숲속 공원이다.
우거진 숲이 아름답고 시원한 숲길의 공기가 왜 사람들이 숲을 찾아야 하는지를 잘 깨닫게 해준다.
그 아름답고 청정한 숲속을 예쁜 병아리들을 몰고다니며 놀리는 재미란 이 할아버지에겐 그야말로 최고의 선물이나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모르는 병아리들은 재잘재잘 거리며 쫓아오고, 무서운 할머니는 지금 이게 뭔 짓이냐고, 어디까지 끌고 갈 거냐고 연실 사나운 눈초리로 따져 묻는다.
아하! 할망구의 재난이, 병아리들의 속아넘어감이 이리도 큰 기쁨과 재미남인지 왜 미처 몰랐을꼬?
그렇게 이리저리 다리안 캠핑장 숲길을 끌고다니다가, 슬슬 더워지는 느낌이 들었을 때, 갬핑장 운동장 옆에 일부러 조성해 놓은 (맨발 황토 산책길) 구역으로 안내를 했다.
계단을 올라가면 딱 트인 벌판처럼 코코볼(활토볼)이 쌓이고 널린 맨발길이 도로처럼 놓여있다.
짜~~~~~~잔!!!!!!!!
와!!!! 하는 탄성도 아주 잠시, 아니 지금 이게 뭐야???????? 그럼 코코볼이 광산에서 캐는게 아니잖아?
이건 순전히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이제껏 뻥(?)을 치신거잖아?
‘할아버지. 정말 어이없어요. 이게 지금..........’ 하는 반쯤 넋나간 표정이 병아리 두 마리 얼굴에 역력하다.
녀석들의 항의가 빗발치듯 쏟아지기 전에 할아버지는 멀리 달아나려고 신발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황토길 위를 달려들었는데, 아뿔싸. 두 걸음을 채 옮기지 못하고 나뒹굴고 말았다. 발바닥을 누군가가 뾰족한 망치로 사정없이 찌르는 것 같은 실로 엄청난 통증이 파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고소한 표정으로 바뀌던 녀석들이 저희도 신발을 벗고 뛰어들었는데 역시나 채 세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나뒹굴고 만다.
다리안 숲속 가득 우리 병아리들의 행복한 비명소리가 울려 펴졌다.
둘러 앉아서 흙장난도 하고, 코코볼(황토볼)의 정체와, 이런 공원 산책로를 만든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왜 두 세걸음 밖에 걷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텐트로 되돌아 갈 때 병아리들은 기어코 큰 물고기통 가득 코코볼을 채웠다. 그랬음에도 이대로 그냥 순순히 돌아설 우리 세리가 결코 아니다. 양손 가득 담아서 가는 것으로 부족하다 싶어지자 결국 바지 주머니에 가득 채워서 가기로 했는데, 제 작은 손으로 부족하다 싶어지자, 할머니 도움을 받아서 기어코 바지 주머니를 꽉꽉 채우고 말았다. 그제야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서너 걸음 걷다가 서고 또 서너 걸음 걷다 말고 또 선다.
‘할머니. 도와주세요. 바지가 자꾸 내려가서 못 가겠어요.’
멈춰 선 할머니 표정이 ‘윤세리. 너가 지금 얼마나 어이가 없는지 아니?’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대한민국 자연휴양림 예약 문화에 대한 유감(遺憾)>
대한민국에서 어디가 되었든 주말에 캠핑장(특히 자연휴양림) 구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더군다나 명당이랄 수 있는 깊은 산속 경치 좋은곳에 자리를 차지한 국립 또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자연 휴양림)을 예약하기란 요즘 흔하게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 한다.
여가선용(餘暇善用)의 대표적 사례로 캠핑이 대중화되면서부터 생겨난 기현상이라 할만하다.
산수좋고 경치좋은 명당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지, 산림청이나 지자체 차원에서 관리하지, 넉넉하고 여유로운 환경으로 조성되었지, 거기다가 사립에 비하자면 거의 공짜라고 해도 좋을만큼 비용이 저렴하니 어찌 천국이 거기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너도나도 먼저 차지해 가고 말리라 다짐에 다짐을 하고 나섰으니‘전생에 나라를 구했거나’‘조상님의 음덕이 있거나’ 어쨌든 ‘로또만큼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겠는가?
단양군에서 관리하는 (다리안 캠핑장)을 예약하고자 마음 먹었던 것이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아직 여름 성수기가 멀었는지 충분히 여분이 남아있었지만, 주말은 상당히 상황이 달랐다. 캠핑장마다에는 항간에 전해지는 소위 명당이라는 자리(사이트)가 분명하게 있었고, 그 명당의 선호도에 따라 무섭게 예약자들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며칠 고심을 하다가 (용하 야영장)을 포기하고 (다리안 캠핑장 C구역)을 예약하고자 하였을 때, 남은 자리가 4개에 불과했었기에 고르고 골라서 12번 사이트를 예약했다. 캠핑 출발 하루 전, 목요일 저녁에 확인하니 금.토.일.의 주말 예약은 만석으로 꽉 차 있었다. 이웃해 있는 D 구역도 80% 이상 만석이었다.
금요일 오후에 도착해 사이트를 구축하고 열심히 물놀이를 하고 저녁 식사후에 캠핑장을 한 바퀴 돌아보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인터넷 예약 창에는 분명히 남아있는 자리가 하나도 없었는데, C 구역의 사이트는 절반 가까이 비어 있었다. D 구역을 둘러보니 거기는 더해서 약 30% 정도만이 캠핑객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멀리 사는 사람들이라서 퇴근하고 출발하다 보니 아마도 늦어지는가 보다. 한밤중에 도착해서 사이트 구축하려면 많이 힘들텐데?’ 하고 걱정까지 하면서 밤을 맞이했다.
아침 새벽에 일어나 산책을 나서면서 둘러보니 어제 저녁에 파악했던 상황과 거의 변화가 없었음에 크게 놀랐다. 우리 앞쪽에 한 팀만이 밤에 체크인을 했었나 보다.
‘왜 이런일이 벌어지는 것이지?’
다음날인 토요일 저녁이 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C 구역에 데크 3개는 여전히 텅 비어있다. D 구역은 70% 정도가 찼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당장 (다리안 캠핑장)의 예약은 꼭 차 있었다.
주말에 대한민국 자연휴양림 야영장 사이트를 구하기란 정말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 지금 눈 앞에 펼쳐진 현실속에선 텅 비어있는 자리들이 버젓이 늘어서 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갑자기 어떤 다급한 상황들이 생겨서 못 온 것일까?’‘그럼 하루 전이라도 왜 해약을 하지 않았을까?’
물론 해약을 하자면 거기에 따른 페널티들이 적용되어 예약비용을 삭감 받는다. 예약일에 가까울수록 페널티 적용 퍼센트(%) 비율이 놓아져서, 별로 찾아갈 것이 없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본인의 선택에 따라 분명하게 금전적 손실의 크기가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전적 손실을 보면서까지 오지 않은 여행자(캠핑객)들의 숫자가 결코 적지많은 않아 보인다.
‘무슨 이유가 되었건, 내가 내 돈내고 못 갔다는데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요?’라고 한다면 내입장에서 딱히 더 해줄 말은 없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적용되고 있는 민주주의 공화국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당신은 당신 마음대로 약간의 금전적 손실을 그냥 포기했거나 내버린 것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날 그 시간에 이곳을 어쩌면 아주 간절하고 오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는 마시오. 당신에게 그런 정도의 배려를 기대하는 내가 잘못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요.’
(자연 휴양림) 사용 비용이 고급 사설 캠핑장 이용료 만큼 비쌌다면 그대로 묵과해 버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생각하기에 따라 거의 공짜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만큼, 경쟁률까지 높다고 하니까 무조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턱대고 ‘되면 좋고 아니어도 그만이고’ 하는 심정으로 일단 내질러보는 부류들이 상당하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하루보다는 2박3일이 예약 확률이 좋다고 하니 아예 주말을 통째로 내질러 버리듯 예약하는 경우들이 태반이라고 한다.
‘시간이 맞으면 가는 거고, 아니면 그깟 몇 푼 버리는 거고’하는 사람들이 이 소중해야 할 캠핑 문화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다. 정말 좋은 캠핑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계획성을 가지고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예약을 했을 것이다. 그런만큼 그 예약 이행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런 캠핑이 진정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여행일 테니 말이다. 그런 사람에게 부득이한 일이 생긴다면, 예약이라는 그 소중한 기회를 다른 지전한 캠핑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넘겨주려고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지극히 당연하고 아름다운 기회의 분배인 것이다.
‘내가 왜? 내가 내 돈을 들여 예약을 했던 것인데, 버리던 포기를 하던 그건 오로지 내 맘대로지.’하는 마음을 옆에서 들여다보기가 좀 안쓰럽다는 뜻이다. 그리고 더하여, 그런 것이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한 두사람의, 아니 어떤 소수의 사람들에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혹시나 여행이나 캠핑을 제대로 즐기려는 사람들 사이에 차차 익숙해져 가는, 당연시해도 무방한 그런 사회 풍조나 예약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에서 하는 말이다.
내 경우는 부지런히 검색창을 탐색을 꾸준히 한다. 왜냐하면 성수기 추첨제에서는 거의 대부분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럴 땐 차선책으로 어떤 간절함을 가지고 대기자 명단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기다린다. 그래서 7월에도 8월에도 행운의 선택을 하나씩 받아두고 있다. 두 곳의 캠핑장 예약이 이미 되어있다는 말이다. 이젠 우리 부부의 일정과 우리 병아리들의 일정을 맞추는 순서가 기다리고 있다. 어느 하나라도 맞지 않는다면 나는 즉시 예약을 취소하고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넘겨준다. 그리고 거듭거듭 다른 날짜의 다른 여행지를 또 골라보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는 일을 반복한다.
여행이나 캠핑중에 만나는 이웃들은 누구나 아름답고 소중하고 반갑다. 그 만남들에 대힌 기대가 여행이나 캠핑의 저변에 깔린 최고의 이유이자 근본 바탕이 된다. 그런 기회란 세상 사람들 누구나가 공평하고 보다 자유롭게 함께 누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주말이나 성수기에 좋은 여행지나 캠핑장 사이트가 비어있는 것을 보면 조금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애초부터 예약자가 없는 자리라면 모르겠지만, 예약해 놓고 못 오는 사람 중에는 좋은 일이 갑자기 생겨서 못 오는 사람보다 나쁜 일이 갑자기 생겨서 못 올 확률이 훨씬 높지 않을까?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마당에 느닷없이 ‘내돈 내고 내가 안간다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라는 소리를 혹시라도 듣는다면......... 많이 속상할 것 같다.
숲속 그늘 아래로 맑은 시냇물이 쫄쫄 흘러가는 작은 봇도랑이 하나 있을 뿐인데 어린이들에겐 그곳이 그야말로 지상낙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주말 오후가 되자 어린이 숫자가 급격히 늘어갔다. (다리안 캠핑장)의 C 구역이 나름 어린이를 둔 가족 캠핑 전용 특화구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교적 조용하던 캠핑장이 한바탕 난리법석 물놀이장으로 변해갔다.
코코볼(황토볼)을 목욕시킨다고 물에 담궜다가 말렸다가를 반복하고, 물장난으로 연실 옷을 갈아입기 일쑤고, 새로 찾아온 아이들이 물고기통에 관심을 보이자 또 한 마리씩 추가 분양을하고, 어지럽게 널부러진 캠핑 사이트 사이에서 숨박꼭질을 한다고 또 난리를 피운다.
‘넌 몇 살이야? 여덟살? 그럼 내가 일곱 살이니까 너가 언니야. 여기 우리 언니는 열한 살이니까 언니의 언니가 되는 거고. 너는 일곱 살이니까 나하고 친구고, 여섯 살은 나한테 동생이 되는거야.’
그럼 삽시간에 교통정리가 끝난다.
우리 세리에겐 어떤 경우이건 막힘이 없다. 낯선 친구들이 등장하면 앞장서서 삽시간에 모든 교통정리를 끝내 버린다. 어떤 장애도 차별도 멈칫거림도 있을 수가 없다. 그렇게 정리가 끝나면 모두 함께 본격적인 놀이에 돌입하게 되는데, 그때도 당연히 제 중심으로 돌아가게 만들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해 보인다. 당차고 용의주도한 남다른 개성을 가진 녀석이다. 거기다 한없이 예쁘기까지 하니 도대체 뭐가 되려고 저러지? 저런 당돌한 자신감과 용의주도함을 엄마 아빠가 상처받거나 꺾이지 않게 잘 돌봐주어 성장하면 우리 가문에서 제대로 된 여장부 하나 나오지 않을까 싶다. 모든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고 함께 나누며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앞장서서 일조를 할 수 있는 그런 여성 지도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속마음으론 녀석이 운동선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저 멈추지 않는 에너지를 소비하려면 농구나 테니스 선수가 좋지 않을까 싶다. 여자축구 선수도 좋겠다. 취미로 멋지게 드럼을 연주하면 참 이쁘겠고, 아니면 모여든 군중들 앞에 나서서 멋진 퓨전 스포츠 댄스를 한 판 추면 아마도 온 세상을 홀려놓지 않을까 싶다.
‘고런 녀석이 누구냐고? 할아버지가 오매불망 사랑하는 작은 손녀 윤세리라니까?’
6월이라 ‘혹시나 아이들이 물놀이 하기에 아직 물이 차면 어떻게하지?’라는 걱정을 가지고 왔었다.
그런데 ‘개뿔’ 걱정도 팔자지, 이게 어디 봄의 끝자락이냐? 한여름 삼복더위 코 밑이지?
덥다. 더워도 그냥 더운 것이 아니라 무지하게(지*나게) 덥다.
아이들은 수시로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늘 반복하니 더울 리가 없겠고, 젊은 사람들은 아예 옆 계곡으로 몰려갔으니 또 더울 리가 없겠지만, 또 아주 어린 유아를 둔 엄마 아빠는 어쩔 수 없이 물에 따라 들어가지만, 그 외의 우리 같은 가족들에겐 무척이나 덥다. 죽어라 덥다. 어른들까지 우르르 몰려 들어가면 어린이들 물놀이터를 빼앗는 꼴이 될 터이고, 무릎 아래를 겨우 담그는 것으로는 도저히 직성이 풀릴 것 같지가 않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들 있다. 솔직히는 담장을 삥 돌아서 계곡 물속까지 다녀오기가 좀 번거롭고 귀찮은 것이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러다보니 거의 모든 데크 풍경이 비슷비슷하다.
(다리안 캠핑장 C 구역) 풍경은 흡사 윔블던 테니스 경기장 풍경과 비슷해졌다.
모든집 꼬맹이들은 지금 경기장(봇도랑)에서 죽기살기로 물놀이 삼매경(테니스 경기)에 몰입해 있고, 어른 가족들은 관중석(텐트 사이트) 데크에 나란히들 앉아서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경기 관전에만 몰입해 있다.
그런데 오늘따라 매게임마다 듀스가 따라붙고, 타이브레이크가 매번 반복되면.......... 거기다가 기어코 5세트까지도 타이브레이크라면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뿐만이 아니라 관중석의 응원하는 사람들까지도 그야말로 미치고 팔딱 뛰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겠는가?(다들 집엔 안가?)
그런데 오늘이 바로 그랬다. 날은 덥지, 애들은 여전히 멀쩡하게 날뛰지, 도대체 해는 언제 질꺼여?
테크에 앉아있는 엄마 할머니들의 표정과 자세에서 서서히 지쳐감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아빠와 할아버지들은 저마다 손에 손에 캔맥주를 하나씩 들고 있다. 몇가족이 팀을 꾸려온 가족들은 대표 엄마가 보초를 서고 나머지 일행들은 아예 야외 소풍 술잔치를 벌어기 시작한다.
어떻게 경기를 하고 있는 선수들 보다, 관중석에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기만 하는 사람들이 더 힘들어 보이고 먼저 지쳐가는 거지?
그런데 그때......... 이 지루함과 나른함을 한 순간에 모두 불식 시켜줄 천사가 나타났다.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고 D 구역에서 건너왔다.
여기 다리안 숲속엔 어린이 전담 천사가 따로 살고 있었다.
캠핑장의 모든 어린이들이 우르르 천사 주위로 몰려들었고, 운동장엔 이제 새로운 경기가 다시 펼쳐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새로운 경기도 매번 듀스에 타이브레이크 투성이였지만, 어쨌거나 관중석에서 지켜보는 보호자들에게는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시원한 한줄기 가랑비 같은 청량감으로 다시 힘을 얻어서 그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어느샌가 엄마들 틈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 자신들의 아이를 걱정하는 소리가 아니고 상대인 천사를 걱정하는 소리였다.
‘흐메. 저 가여운 천사를 어쩌면 좋을꼬?’
‘아니, 시방 천사의 트레이너와 코치는 뭐하고 있는거여? 한 편인게 맞는거여?’
‘아무렴 어때? 그래도 천사잖아. 어쨌거나 천사님 파이팅!!!!!!’
문득 떠오르는 어처구니 없는 고사성어...........'타인의 불행이 우리의 행복이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라고 있는거여. 알간?'
-- 다음 이야기에서 이어가겠습니다.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피안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