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情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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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밥티스트 카미유 코로, <모르트퐁텐의 추억(1864, 루브르)>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1772-1834)는 ‘시정(詩情)’을 “고요함 속에서 채집된 감정의 한묶음”이라고 정의했다.
시는 초라한 현실 속에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찾는 하나의 예술적 방법이었으며, 그 아름다움을 통해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열망을 담아내는 예술이었다. 워즈워드가 정의한 시정은 이상적 세계에 대한 시인 내면의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시상(詩想)은 시작(詩作)을 위한 명상 속에서 시인의 마음 속으로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점점 구체적인 형태를 드러내게 된다. 하지만 시인의 이상이 시 한편 속에 완전하게 담기기는 어려운 법이다. 현실의 언어가 이상을 담아낼 수 있는 용량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루브르 미술관에 걸려있는 코로의 유명한 작품, <모르트퐁텐의 추억(1864)>을 보자. 안개가 짙은 호숫가에 커다란 나무가 서있다. 그 옆의 작은나무 곁에서는 여인 한 명과 어린아이 둘이 꽃을 따고 있으며, 나뭇잎과 가지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짙은 안개 속에 파묻힌 호수 풍경, 대기 속으로 윤곽이 녹아 들어가는 풍경은 고요한 정감으로 가득 차 있다.
코로는 이러한 정감을 포착하기 위해 붓을 매우 가볍게 놀린다. 미풍 속의 바람의 느낌은 가벼운 붓놀림 속에서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투명한 대기의 분위기, 흐르는 듯한 공기, 물 위에서 반사하는 빛, 안개 속에서 꿈처럼 흩어지는 빛의 결은 코로의 감수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코로는 강렬한 색채와 느낌보다는 풍경이 자아내는 아련한 뉘앙스나 대기 속에서 흩어지는 미묘한 색조의 변화를 좋아했다. “예술에 있어서 아름다움이란 자연에서 느껴지는 인상 속에 감싸여진 진실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작품 제목에 ‘추억’이라는 말이 붙어있는데, 이 ‘추억’은 그림의 이해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추억은 기억, 회상과 같은 행위와 연관되어 있다. 종종 우리는 과거의 어떤 순간을 떠올리며 깊은 상념에 잠기곤 한다. 그 상념 속에 스며들어있는 고요함은 그림처럼 떠오르는 기억 속의 풍경과 섞여 들어가며 시공간을 뛰어넘는 심상(心象)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그림 속에 스며든 시정의 얼굴이다.
코로의 기억 속의 모르트퐁텐의 풍경은 길이 기억하고픈 추억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 풍경을 기억하려는 욕구, 그리고 과거로부터 시간을 역추적하는 깊은 상념을 관조하려는 화가의 욕망이 이 그림을 낳았을 것이다. 미묘한 뉘앙스와 회색빛 색조 속에서 떠오른 모르트퐁텐에서의 추억은 화가의 붓놀림과 색채 속으로 스며들어가면서, 화가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그 때, 그 장소에 있었던 호숫가 풍경과 같은 것이 된다.
이렇듯 이 그림 속에는 추억에 대한 화사하면서도 쓸쓸한 화가의 감수성이 배어있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작품에서 과거의 시간과 기억 속에 남겨진 장소에 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우리가 안 지 오래 된 곳들은 단지 공간의 세계에 속하는 것만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편의상 공간의 세계에 배치할 따름이다. 그런 곳들은 그 당시의 우리의 삶을 구성하던 잇달린 인상 한가운데 있는 얇은 한 조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형상에 대한 회상이란, 어떤 한 순간에 대한 그리움에 지나지 않는다. 가옥들도, 길도, 큰 거리도, 덧없는 것, 아아! 세월처럼."
회환과 쓰라림에 뒤섞인 과거의 시간들을 추적하는 인간의 의식. 코로가 그의 붓놀림으로 포착하려했던 모르트퐁텐에서의 기억은, 시정 속에 숨쉬고 있던 잊혀진 시간이 안겨주는 아득한 느낌과 그것을 추억하는 화가의 의식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자연 속에서 채집된 인상 속에 감싸여진 진실, 즉 코로가 느끼는 아름다움이다.
- 2003년 7월 11일 금요일 씀.
첫댓글 언제나님 멋진 작품 덕분에 잘 감상합니다. 그림과 음악 글 모두가 완벽합니다. 몇번을 보아도 좋네요. 감사합니다.
지난 날을 떠올리게하는 음악,그림, 냄새 등등 여럿중에서도, 두가지가 합쳐서 더욱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하는 거 같습니다,,,그림과 또 동영상?까지 겸하니 벅차네요,,음악 구성도 역성을 듭니다,,,잘 감상하고갑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