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경』에서는 "보살은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라는 네 가지 상(相)에서 벗어나 있다"고 설합니다. 범부는 이 네 가지 상을 모두 지니고 있어 '정업(定業, 피할 수 없는 업보)'을 바꾸기 어렵지만, 마음을 정화하고 자아에 대한 집착을 타파함으로써만 업장(業障)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 범부의 모든 허물은 '자아'가 존재한다는 데서 비롯됩니다. 자아가 있으면 네 가지 상과 이기심, 그리고 명예·이익·오욕칠정(五欲七情)에 대한 탐욕이 생겨나며, 이 모든 것이 마장(魔障)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간절한 수행과 집착 없는 청정한 마음을 지닌다면, 그 어떤 마군이나 악귀도 우리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 진정한 수행자에게는 업보를 겪는 과정에서도 그 무게가 점차 가벼워지지만, 반대로 이기심과 명예, 이익,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힌 이들에게는 정업이 결코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게 됩니다.
◎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동을 알고 계십니다. 심지어 극락정토의 하품(下品)에 왕생하는 이들의 행동까지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심과 경외심을 가지고 간절히 수행해야 합니다. 그로 인해 일어나는 영적인 감응은 실로 헤아릴 수 없이 크기 때문입니다.
◎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은 업장의 발현입니다. 병고는 업장이 아직 소멸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므로, 진정한 수행을 통해 운명을 바꾸고 업장을 씻어내야 합니다. 수행에는 광대하고 고귀한 서원이 필요합니다. 『능엄경』에서 "이 몸과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 국토에 바친다"고 한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의 무한한 세계에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 불교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진심, 자비, 인내, 그리고 광대하고 포용적인 마음입니다. 타인을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은 수행의 토대가 되며, 이를 '마음의 법문'이라 합니다. 온 마음과 힘을 다해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겠다고 서원하는 것은 경전에 묘사된 '보살의 성품'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범부들은 이기심에 마음이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에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 불교를 배우고 실천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진실함을 배우는 것입니다. 유교의 '성의정심(誠意正心: 뜻을 진실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함)'이라는 개념은 불교에서 말하는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키는 것'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보리심은 완전한 깨달음의 마음입니다.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여 대중을 이롭게 하며, 모든 생각의 초점을 타인의 이익에 맞춥니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 굳이 꾸며낼 필요가 없으며, 온화함, 친절함, 존중, 신중함, 검소함, 예의 바름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게 됩니다.
◎ 오덕(五德), 육화경(六和敬), 삼복전(三福田)은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가르침을 이루는 근본입니다. 이러한 원칙에 수행의 토대를 두지 않으면 아무것도 진정으로 성취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일상생활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를 실제로 실천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수행이 됩니다. 이처럼 수행에는 진실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성취를 이루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 타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항상 품는 것은 공덕을 쌓는 일입니다. 타인의 필요를 지속적으로 배려하면, 정작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러 올 것입니다. 만약 온화하고 친절한 성품을 기르지 않고 부주의하게 행동한다면, 일상에서 공덕과 덕행을 쌓을 기회를 놓치기 쉽습니다. 게다가 타인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우리를 소홀히 대할 수도 있는데, 이러한 결과는 모두 인과법칙에 따른 당연한 이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