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은채움의시작이다
눅5;1-11
오늘 말씀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나고 있습니다.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베드로는 무엇을 비웠습니까?
본문은 너무 유명한 본문이지만 저는 50번 가량 읽었습니다.
베드로는 무엇을 비우고 출발하였나요?
첫째로;육적인 비움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는 가장 피곤할 때였습니다.
갈릴리 어부들은 저녁에 고기 잡이를 나갑니다.
그리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 옵니다.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피곤이 줄줄 흐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하니까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였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순간이었지만 육신적으로 어려움을 비웠습니다.
주님이 채워주셨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들 때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더 힘을 내십시오.
어느 사람은 암에 걸려 죽게 되자 관을 만들어 가지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유언장도 만들었습니다.
<내가 길거리에서 죽거든 이 관에 넣어 파묻어 주시오.>
다잊고 활기차에 걸었습니다.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고침받았습니다.
육신적으로 비우십시오.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감정적인 비움입니다.
본문을 상고하는 중에 베드로의 감정이 진하게 들어 있는 단어가 눈에 띄였습니다.
<그물을 씻는 지라.>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 하고 그물을 씻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베드로의 감정이 진하게 묻어 나왔습니다.
한 마리도 못 잡았다는 실망의 감정.
내가 고기잡는 실력이 없나하는 자학의 감정,
오늘 수입이 없으면 어떻게 먹고 사나하는 걱정의 감정.
못 해 먹겠다고 체념하는 푸념의 감정.
온갖 악감정들이 베드로를 사로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이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는 말씀에 순종하면서 마음을 비웠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두 배 가득 채우도록 주님이 채워주셨습니다.
비움은 채움의시작 입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 모든 악감정을 다 비우십시오.
다 포용하십시오.
다 사랑하십시오.
다 비우면 채워주십니다.
독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기독교인들만 사는 마을에 회교인 한 가정이 이사왔습니다.
그런데 회교 가정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이교도라고 기독교인 묘지에 묻히면 안 되다고 교회 묘지 울타리 밖에 묻게 하였습니다.
무덤 한 개만 울타리 밖에 덩그러니 놓여 있게 되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이상한 현상이 보였습니다.
어느 누가 묘지 담을 헐고 그 무덤을 안으로 넣고 담을 밖으로 다시 쌓았습니다.
그 무덤도 울타리 안에 들어 왔습니다.
회교도 가정이 감동을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온 마을이 다 구원받았습니다.
감정을 비우면 하나님이 채워주십니다.
강화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아차도가 있습니다.
그 옆에 보름도가 있습니다.
아차도 주변은 풍랑이 심한 곳입니다.
그래서
그 곳에서 들어가서 아차하면 못 나온다고 하여서 아차도입니다.
보름도는 한번들어 가서 풍랑이 일어나면 보름정도 못 나오기에 보름도입니다.
그런데
아차도에는 33명이 사는 데 32명이 예수를 믿습니다.
한 명이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무엇을 하든지 33개를 만들어 그 분에게 주고 있습니다.
밥도 꼭 33 그릇 하여 그 분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그 분이 드디어 반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헤어졌던 사람,
악감정이 있는 사람,
미운 사람,
아프게 하는 사람,
사기친 사람,
모든 감정을 비우고 그들을위해 기도하십시오.
반드시 돌아 오게 될 것입니다.
비움은 채움입니다.
내가 비우면 하나님이 채워주십니다.
셋째로;물질적인 비움입니다
대사도 베드로가 베드로 되기까지에는 물질적인 비움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유별나게 눈에 띄이는 단어가 있습니다.
드라마의 한 장면같습니다.
영화의 크라이막스같습니다.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배를 맡기고 예수님을 따라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옆에 동무들에게 배를 선물로 주고 예수님을 따라 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사용하려고 잘 매어 두고 예수님을 따라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
물질적인 비움이 있었습니다.
후에 베드로는 앉은 뱅이를 일으킬 때에 외쳤습니다.
<은과 금 나없어도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리. 곧 나사렛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은과 금은 없는 베드로였지만 하나님은 최선의 것으로 채워주셨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영적인 축복을 베드로에게 주셨습니다.
가난이 죄인가요?.
이 땅에서는 좀 가난하여도 좋습니다.
물질적으로 쪼달려도 괜찮아요.
너무 물질에 연연하여 살 필요가 없습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하다고 기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물질적으로 다 비우고 영적으로 당당하게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입니다.
넷째로;사명적으로 비움입니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평생 어부로 살았습니다.
한 순간에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사명이 바뀌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보람된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정치가들은 대통령과 함께 일하고 싶어 합니다.
청와대에서 부르면 가문의 영광이라고 하며 달려 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같이 일하자고 하면 얼마나 영광일가요?
베드로는 예수님이 같이 일하자고 할 때 영적 가치를 이미 알았습니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가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로 바꾸었습니다.
한 순간에 일을 비웠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볼 줄 아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가수들이나 연예인들의 최고 목표는 스타가 되는 것입니다.
군인의 최상의 영광은 별을 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의 최고 최후의 영예도 별과 같이 빛나는 것입니다.
유명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이 세상에 신비한 것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내 마음속에 양심이요
다른 하나는
저 하늘에 빛나는 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결론으로; 어떤 자가 별과 같이 빛나게 되는 것일가요?
다니엘은 이렇게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빛나리라>(단 12:2-3)
헌금많이 하는 사람이 천국의 VIP가 아닙니다.
기도많이 하는 사람이 천국의 VIP가 아닙니다.
봉사많이 한 이가 천국의 VIP가 아닙니다.
이들은 천국에서 면류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별과 같이 빛나는 이들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고 아끼시는 이는 전도많이 한 이들입니다.
영혼을 많이 구원한 이들입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를 알면 영혼구원이 급선무인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하루에도 25만명이 세계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만도 하루에 3천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 70%가 지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전도는 시급하여 집니다.
오늘헌신예배를드리는 여전도회 (남전도회) 는 전도해야 전도회일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