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가시에 찔려죽은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낭만적(?)인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나 어디선가 한번 쯤 들은 일이 있을 줄 안다.
얼핏 듣기에 따라서는 그의 죽음이-
낭만적인 너무나도 낭만적인-
그의 죽음은 스위스의 소읍, Raron의 교회 묘지에 묻혀 있다.
릴케 가문의 문장이 양각된 아래에 다음과 같은
비문이 적혀 있다 한다.
Rose,
oh reiner Widerspruch, Lust
Niemandes Schlaf zu sein unter so viel Lidem.
장미, 오 순수한 모순, 그렇게
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잠도 되지 않는 기쁨
릴케는 죽기 1년전인 1925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듯이
유언장을 작성한다.
이 글은 그의 유언장에 그가 자신의 묘비를 위해 직접
지어놓은 비문 이라고 한다.
묘비명만이 아니고 릴케는 자신의 시에 수도 없을
만큼 장미를 등장시키고 있다.
장미는 그이 초기 시에도 등장하고 후기시에도
종종 등장한다.
또 그의 일기에도 등장하고 편지에도 빈번히등장한다.
1900년에 쓴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나는 새로운 애무를 고안해 냈다.
즉 장미 한송이를 감은 눈 위에 살포시 얹는다.
드디어 장미는 서늘한 느낌에 없어지고 꽃잎의
부드러움만이 영상위에 남는다.
그것은 일출 전의 잠과 같다.
이렇게 장미를 사랑하고 장미에 심취했던 그는,
실제로 장미를 심고
가꾸는데도 많은 기쁨을 느꼈다고 한다.
장미를 가꾸고,장미 향기에 취해 사색하고,
장미를 찬미하는 시를 쓰고, 그리고도 모자랐는지,
종국엔 장미가시에 찔려 죽었다......
파상풍, 아름다운 장미의 독
1921년 부터 릴케는 스위스 론강 계곡의 '뮈조트 성'
이라는 13세기에 지어진 조그만 고성에 작업실을
갖고 예의 장미를 가꾸며 시작에 몰두하곤 했다.
그는 이 뮈조트 성에서 '두에노 비가','오르페우스에의
소네트 '등, 그의 대표작들을 많이 완성하게 된다.
이 뮈조트 성에는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를 비롯하여
많은 릴케의 친구들이 방문하곤 했는데,1926년 9월,
친구인 한 프랑스 시인의 소개로 미모의 코카서스
출신의 이집트 여인 '니메 엘루이'가 그녀의 친구와
함께 이 뮈조트 성을 방문한다.
릴케는 이 여인들에게 주려고 뜰에 있는 손수 가꾼
장미꽃 몇 송이를 꺾었다.
그런데 이때 서두르다가 그만 가시에 두 손가락이
찔리고 만다.
이 상처가 곪아서 그는 곧 한 쪽 팔을 쓸 수 없게
되었고 이어서 다른 쪽 팔도 마비되는 불상사를 당한다.
릴케는 장미 가시에 찔리면서 장미 가시에 묻어 있던
파상풍균에 감염되었던 것이다.
파상풍 균의 특징은 턱이나 근육에 침범하기 때문에
감염이 되면 릴케처럼 근육을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린다고
한다. 병원체인 파상풍균은 흙속이나 동물, 사람의 분변속에
있으며 가시나 낡은 못에 찔리거나, 발치, 인공유산등의
상처로 침입하게 되는 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현대적인 위생관념이 보편화 되기 이전에,
주로 집에서들 분만을 하는 경우가 많았었다고 한다.
이때 장롱 깊숙히 꼭꼭 싸매서 고이 간직했던 '깨끗한'
가위로 탯줄을 자르는 바람에 산모와 아기가 모두 파상풍에
감염되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혐기성 병원균인 파상풍 균은 이렇게, 공기나 해빛에 장시간
노출되지 않은 가시,가위, 못, 칼등으로 생긴 상처를 통해
감염된다.
릴케의 사인은 백혈병?
26년 10월, 장미 가시에 찔리고 한달후, 릴케는 친지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장미가시에 깊이 찔려 생긴 상처가 내 왼손을 수 주일
동안 못 쓰도록 만들었고, 이어 심하고 아픈것이 감염되어
오른손을 쓰는것도 어렵게 되었다.
붕대를 매긴 했지만 두 손이 열흘 동안이나 쑤시고 아팠다.
이 재난이 채 극복 되기도 전에 시온에서 유행되던 열이
나는 장염을 옮아 와 또 2주일이나 아주 쇠약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릴케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의사의
진찰을 미루다가 11월 말에야 발몽에 있는 병원으로 갑니다.
진단 결과, 릴케의 병명은,
단순 파상풍이 아니라 백혈병이었다.
파상풍의 발병과 또 그 심각성은 생성된 독소의 양과
숙주의 저항력에 따라 결정 된다고 하는데, 백혈병으로
저향력이 약해져 있던 릴케였기에 아마도 장미가시에 찔린
정도의 상처로도 파상풍이 발병한 것 같다.
요즈음 같은 날씨의 야외 나들이에서 어린이들이 날카로운
풀잎에 베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저항력이 약한 어린이들은 이런 상처로 파상풍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루 살로메, 그녀라면 내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알 수 있을 텐데...
릴케의 백혈병은 그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었읍니다.
처음에는 장에, 말기에는 입과 코의 점막에 검은 농포가
나타나 이것이 터지면서 피가 나와 물도 한모금 마실 수
없었다고 한다
고통속에서 그는 그의 병을 옛 애인인 루 살로메에게
알리도록 한다.
릴케는 그를 잘 알고 있는 루 살로메가 자신의 육체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병을 그녀의 신비한 능력으로 고칠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루 살로메는 19세기를 살았던 여류작가이다.
후세에는 그녀의 작품보다는 그녀의 로맨스가 더
유명하게 남아 있다.
그녀는 바로 철학자 니체와, 시인 릴케와...
그리고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프로이트의
연인이기도하였다.
릴케와 그녀는, 그녀가 36세, 릴케가 22세였던
1897년에 남부의 예술도시 뮌헨에서 만났다.
당시 무명의 청년 시인이었던 릴케는 이 유명한
여류작가를 굉장히 만나고 싶어 했다한다.
문인 야콥 바서만의 티파티에서 이들은 서로
알게 된다.
거기에서 이 젊은 시인은 루의 마음에 들었고,
릴케는 루에게
매혹되었다고 한다.
장미가시에 찔려 그 후유증으로 죽음의 병상에
누워있던 릴케가 1926년 12월에 구술하여 루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는 '사랑하는 사람이여'로 시작하여,
역시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여'로 끝나 있다.
죽기 이틀전 릴케는 병상을 지키던 그의 후원자 분덜리
부인에게 '루 살로메 같으면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알 수 있을 텐데....'라고 말했다 한다.
인생은 멋진 것이다.
마지막 가는 길에도 장미는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
몇몇 지인들과 동료 문인들 만이 참석한 릴케의
장례식은 조촐했다고 전한다.
무덤앞 관에는 마치 눈속에서 피어나듯 꽃다발 속에
장미꽃들이 피어 있었다고
키펜바르그가 쓴 릴케의 전기는 전한다.
'인생은 멋진 것이다. Das Leben ist eine Herrlicbkeit'
그가 마지막 병상에서 남긴 말이다.
시인은 이렇게, 죽는 방법도, 그 죽음의 순간도,
그야말로 詩的! ..
이어야 하는 걸까...?
첫댓글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