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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스스로 지혜로운 자/사 5:13-30
13.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
14.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
15. 천한 자는 굴복되고 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
16.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
17. 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먹을 것이요 살찐 자의 황무한 밭의 소산은 유리하는 자들이 먹으리라
18.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찐저
19.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그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로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그 도모를 속히 임하게 하여 우리로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
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21.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22.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빚기에 유력한 그들은 화 있을찐저
23. 그들은 뇌물로 인하여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의를 빼앗는도다 사5:20
24. 이로 인하여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 같이, 마른 풀이 불속에 떨어짐 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라 산들은 진동하며 그들의 시체는 거리 가운데 분토 같이 되었으나 그 노가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 손이 오히려 펴졌느니라
26. 기를 세우시고 먼 나라들을 불러 땅 끝에서부터 오게 하실 것이라 보라 그들이 빨리 달려 올 것이로되
27. 그 중에 곤핍하여 넘어지는 자도 없을 것이며 조는 자나 자는 자도 없을 것이며 그들의 허리띠는 풀리지 아니하며 그들의 신들메는 끊어지지 아니하며
28. 그들의 살은 날카롭고 모든 활은 당기어졌으며 그 말굽은 부싯돌 같고 차 바퀴는 회리바람 같을 것이며
29. 그 부르짖는 것은 암사자 같을 것이요 그 소리지름은 어린 사자들과 같을 것이라 그들이 부르짖으며 물건을 움키어 염려 없이 가져가도 건질 자가 없으리로다
30. 그 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 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은 구름에 가리워져서 어두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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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변영익목사
여러분 ! 오늘 본문도 유다에 대한 책망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은 유다 백성의 무지에 대하여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본문(13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 >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 이 말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 유다 백성의 무지는 스스로 지혜로운 자가 되어 하나님을 떠나게 될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므로 오히려 주림과 목마름이 그들에게 찾아오게 될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 (창12장)에 보면 가나안땅에 흉년이 들어 살기가 어려워 졌을 때 아브라함이 스스로 짜낸 지혜가 있었는데 무엇인지 아십니까 ?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애급으로 내려가는 길이 살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 아브라함은 그랄에서 아비멜렉 왕에게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다가 아내를 빼앗기는 부끄러움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 (욘1:1)에 보면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이로 가서 복음을 증거하라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니느웨이 성은 마치 소돔성과 같은 죄악의 도성 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요나가 생각하기를 내가 니느웨이로 가는 것은 죽음을 선택하는 길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요나가 짜낸 지혜가 있었습니다. 어떤 지혜 이였습니까 ? 니느웨이 보다는 다시스로 가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 엄청난 풍랑을 만나므로 바다에 던져지는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여려분 ! 사람들 중에는 자기 꾀에 넘어져서 다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즉 자신의 생각은 틀림없으며 완벽하다고 자신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 (고전3:19)에 있는 말씀을 보면 <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고전3:18) 말씀에서는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 고 했습니다.
여러분 ! 유다백성의 하나님께 대한 배신행위는 자신에 대한 과신과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유다 백성들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유다 백성은 ..............
1. 선악에 분별이 없는 자.
여러분 ! 오늘 말씀의 핵심 구절은 (20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본문(20절)의 말씀은 유다 백성들의 상태를 잘 설명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20절상)에서 유다백성은 < 악을 선하다하며 선을 악하다 한다 > 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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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 이 말씀에 대한 배경을 이렇습니다. 즉 타락한 유다 백성의 사회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유다백성의 사회는 뇌물 사회로 타락하여 재판관들이 뇌물에 눈이 어두워 뇌물을 받고 죄 없는 자를 죄 있다하고 죄 있는 자를 죄 있다고 정죄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 선악에 분별이 없다는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 이 질문에는 두 가지 대답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선과 악에 분별이 없다는 말씀은,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이 잘못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사람들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하나 같이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이 잘못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 사람들 중에는 자기에게 유익하거나 그 떡이 커 보이면 그것을 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이 잘못된 사람이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 (마19:17)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어떤 사람이 주님께 와서 < 내가 무슨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분이시라 > 고 대답을 했습니다.
여러분 !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선악에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에 두어야 합니다
그 떡이 아무리 커 보이고, 그 일이 내게 아무리 유익해 보이며, 그 곳으로 가는 것이 아무리 평탄해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으면 선한 것이나 선한 길이 아닌 줄 알고 거절 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 믿음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는 자기생각을 동원하지 말고 과감하게 아니요 ! 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 선악에 분별이 없다는 말씀에 두 번째 대답이 있습니다. 죄를 짓고도 회개 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죄가 없어서 회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기는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곧 선악에 분별이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 언젠가 미국에서 수십 명을 연쇄 살인한 살인범이 재판을 받는데 무죄를 주장한다는 기사가 큼직하게 났던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 ! 수십 명을 연쇄 적으로 살인한 사람이 어떻게 무죄일수가 있습니까 ? 얼마나 뻔뻔한 사람이며 얼마나 선과 악에 분별이 없는 사람입니까 ?
여러분 ! 어떤 면에서 우리는 이 연쇄 살인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지금까지 수없이 연쇄적으로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가 가장 의롭고 잘난 사람이라고 오해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본문에서 이사야는 유다 백성과 같이 (선악에 분별이 없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잘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 아주 작은 것이라도 선악을 잘 분별하는 믿음이요 항상 선과 악에 기준을 물질의 크기나 자기 유익에 두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준을 두는 사람이 잘 믿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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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이사야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 흑암에 분별이 없는 자.
여러분 ! 본문(20절중)에 보면 <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는 자 >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말씀입니까 ? 이 말씀은 유다 백성들이 물질로 눈이 어두워져서 어두움과 빛을 구별하지 못하는 자들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 (막8:18)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앞에서 보면서도 떡이 없음을 인하여 걱정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
어도 듣지 못하는 도다 > 라고 책망을 했습니다.
여러분 !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가지지 않은 또 하나의 눈을 가졌습니다. 무슨 눈인지 아십니까 ? 신령한 눈입니다. 즉 거듭난 자에게 주어지는 신령한 눈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 이 신령한 눈을 가지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며, 세상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미래적 천국이 믿음 눈으로 환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 하나님이 안 계셔서 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우리에게 있는 이 신령이 눈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며 하나님을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 이 신령한 눈이 없는 사람들은 흑암과 광명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흑암 중에 살면서도 어두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언젠가 우리 집에 맹인 목사님이신 김선태 목사님이 오셔서 함께 지냈는데 어느날밤에 밤새도록 불을 켜놓고 계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제가 물어보았습니다. 지난 밤에는 왜 밤새도록 불을 켜 놓고 주무셨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무엇이라고 대답을 했는지 아십니까? 방에 들어와 보니 느낌에 불이 켜져 있는 것같아서 불을 껏는데 불이 켜 진것 같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여러분 ! 이 신령한 눈이 없는 사람은 흑암 중에 살면서도 자신이 빛 가운데 사는 줄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흑암을 광명이라고 주장하며 본문(21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그들은 < 스스로 지혜롭다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면서 용감하게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 믿는 자에게 항상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즉 내가 오늘 흑암 중에 있는지, 빛 가운데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금 말씀을 떠나고 기도를 떠나서 흑암 중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지금 광명 안에 있다고 오해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 신령한 눈이 감겨서 흑암을 분별하므로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쓴 것과 단것에 분별이 없는 자.
본문(20절하)에 보면 <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에게 화가 있을 지어다 >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 여기서 단것과 쓴 것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것과 세상의 것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 믿는 사람들이 믿음에서 타락하게 되면 무슨 증상이 나타나는지 아십니까? 단것과 쓴 것에 대한 분별력이 약해져서 쓴 것을 달다고 말하고, 단 것을 쓰다고 말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 믿음이 떨어지면 입맛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밤에 잠이 오지 않는 사람은 성경을 보면 잠이 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너무 재미가 없어서 잠이 온다는 말입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그것은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떨어져서 입맛이 간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시19:10)에 보면 다윗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 꿀과 송이꿀보다도 더 달도다. > 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보니까 지금 여러분 중에도 요즈음입맛 간 분들이 여러 명 계시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 믿음이 좋아져서 은혜가 될 때에는 쓴 것도 달고 단것도 답니다. 그래서 넘어져도 감사하고 일어나도 감사하며 범사가 감사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떨어져서 은혜가 떨어진 사람은 단것도 쓰고 쓴 것은 더욱 써서 매사가 불평이고 감사한일이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분은 믿음이 떨어져서 쓴 것과 단것에 분별이 어려워진 분들입니다.
여러분 ! 쓴 것과 단 것에 분별이 없다, 라는 말에는 또 하나의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계9:10)에 보면 <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리라 > 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 (잠9:17)의 말씀을 보면 <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 도다 >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 이 말씀들의 의미를 잘 아시지요 ? 사탄이 주는 사탕은 달지만 그 속에 독이 들어있어서 먹은 후에는 배에서 쓰게 된다는 말입니다. 또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약과 같아서 먹기에는 쓰고 힘들지만 먹은 후에는 그 배에서 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언젠가도 말씀을 드렸지만 옛날 학질에 먹는 겐게랍 이라는 약을 기억 하십니까 ?
세상에 그 약은 왜 그렇게 씁니까 ? 너무너무 써서 제가 죽어도 안 먹겠다고 하니까 우리 아버지와 두 누님들이 강제로 내 팔다리를 붙들고, 입을 벌리고, 코를 막고 이약을 나에게 먹였습니다. 그때 우리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놈아 ! 이거 안 먹으면 죽는 거야 !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 우리는 단것과 쓴 것에 대한 신령한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아무리 써도 잘 참고 인내하여야 할 때가 있으며, 사탄이 주는 사탕은 아무리 달아도 담대하게 거절하고 먹지 않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가 참 지혜 있는 자인 것입니다.
여러분 ! 오늘 본문이 말하는 ( 스스로 지혜로운 자 )가 누구입니까 ?
1) 선악에 분별이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2) 흑암에 분별이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3) 쓴 것과 단 것에 분별이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내 자신은 오늘 본문이 말하는 스스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닌지 생각해 보시는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