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하나를 경계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맞닿아 있었다. 해가 지구 반대편으로 훌쩍 떠나고, 어둠이 세상을 뒤덮으면 그 경계는 매우 명확해졌다. 뿜어져 나오는 광량의 밝기로 시간의 멈춤과 진행을 고스란히 전달받을 수 있었으며, 비단 빛뿐만 아니라 관점의 방향에 맞춰 그 요소들은 가지각색으로 다가왔다. 마천루와 고전양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매력으로 작용했고, 오피니언 리더 격 되는 사람들도 그 부분을 적극적으로 언급하며 이 도시의 장점을 설파하고 있었다.
그 시간이 멈춘 곳에 현재의 손길이 맞닿아 묘한 매력을 즐길 수 있는 순간이 존재했다. 각각 상시와 그어진 제한선에 따라 각기 다른 운영방식이 존재했으며, 그곳을 다녀왔던 사람들은 평생 그 매력을 간직하고자 전문 사진작가들을 동반하기도 한다. 고궁 전각 끝에 자리한 잡상은 우두커니 하늘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으며, 그 아래를 거닐던 사람들은 삼삼오오 순간을 향유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조만간 시작될 티켓팅 전쟁의 순간, 서울 곳곳에 자리한 고궁 야간개장의 순간들을 풀어보려 한다.
1. 경복궁
우선, 야간개장 하면 가장 먼저 생각 나는 곳은 단연 경복궁이다. 광화문과 함께 사직단 그리고 종묘와 함께 한양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은 조선의 법궁. 이곳은 시즌에 맞춰 일정기간 동안 야간개장을 진행하는데, 창덕궁을 포함해 매번 티켓팅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다. 주말과 금요일의 난이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오픈런을 시작하기보다는 취소표를 노리는 게 오히려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말이다. 아직도 이 사진들을 보고 있다 보면, 처음 성공했던 그 순간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입장과 동시에 그 수고로움은 성취감과 환희를 동반했다. 광화문을 통과한 뒤, 흥례문을 지나자마자 근정전의 그 아름다운 자태는 두 번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피크 시간대를 피해 이곳을 찾는다면, 더욱 완성감 있는 사진도 함께 담을 수 있다. 더불어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경회루의 반영인데, 오직 그것만을 바라보고 경복궁을 찾던 분들도 더러 보였다. 지난 시즌부터 복원이 완료된 뒤, 문을 연 향원정의 밤 모습도 아름답다고 하니, 경복궁의 밤이 더욱 봄 날씨와 맞닿아 더욱 아름답게 다가올 예정이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제한된 시간과 한정된 공간이었다. 야간개장 방문객들은 가이드라인 바깥의 궁역을 돌아볼 수 없었으며, 마감시간도 상당히 짧았기에, 매우 아쉽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조금 더 그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보고 싶었지만, 경회루에 도착했을 때,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눈물을 머금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다음에 이곳을 다시 찾게 해 주던 동기로 작용했으니, 나도 이번 티켓팅 때, 향원정을 돌아보고자 그 전쟁에 참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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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덕수궁
덕수궁의 본래 이름은 경운궁으로, 조선말 정치의 중심지로 활용됐던 곳이다. 그 덕분에 주변으로 무수히 많은 해외 공사관들이 자리했으며, 그것들 중 러시아 공사관과 영국 대사관은 각각 아관파천의 무대와 조선시대 당시 활용됐던 건물을 지금도 활용 중인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은 덕수궁 주변 돌담길을 배경으로 활영 했으며, 극 중 등장했던 ‘호텔 글로리’는 그 주변에 자리했던 호텔을 활용했다 전한다. 그 주변을 돌아보면 지금은 덩그러니 남아있는 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덕수궁은 현재 대한문 앞 월대 공사로 가림막이 쳐져 있었지만, 입장료만 지불하면 언제든 고궁의 밤을 즐길 수 있었다. 실제 조명에 담긴 석조전의 우아함은 이곳이 한국이 맞나 싶을 만큼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담고자 주변을 배회하곤 했다. 나의 경우 이곳에 포인트를 주고자 카메라에 크로스필터를 장착해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는데 실패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이후, 눈으로 그 순간을 즐기는데 만족했던 것 같다.
다른 고궁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특별 이벤트를 진행하곤 하는데, 그것들 중 단연 기억에 남는 행사는 석조전 테라스에서 즐기는 ‘가베’ 행사다. 기록에 따르면 고종은 이곳에서 커피와 와플을 종종 즐겼다고 한다. 오롯이 그들만 즐길 수 있는 행사가 사전예약을 통해 더불어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공유한다 하니, 매우 부러웠던 순간이 오롯이 남아 있다. 하지만, 별도의 제한 없이 이곳의 야경을 즐길 수 있었기에, 근처에서 회사를 다니며, 매주 금요일마다 덕수궁을 나 홀로 찾던 순간은 아주 행복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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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창경궁
함양문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자리한 창덕궁은 그 밤의 자태를 지금껏 볼 수 없었지만, 창경궁은 그 자태를 매 순간 즐겼었다. 고궁의 전각들 중, 가장 오래된 전각이 은은한 빛과 맞닿아 빛을 발했으며, 매우 좋아라 하던 공간으로 하루는 해가 질 때 이곳을 찾아 가만히 앉아 있던 적이 있었다. 저 멀리 보이던 남산타워를 뒤로 한 채, 저물어가던 해가 하루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화양연화를 선사한 뒤, 제2막의 고궁의 은은한 분위기가 이어지며, 그 치명적인 자태를 자랑했다.
창경궁도 덕수궁과 마찬가지로 휴궁일을 제외하곤 상시 개장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드넓게 자리한 궁궐 전각들을 맘껏 돌아볼 수 있어 엄청난 자유도를 자랑했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저 멀리 보이던 남산타워는 전각의 기와 또는 잡상과 맞닿아 묘한 조화를 자랑했으며, 창경궁 정전인 명정전 앞 품계석이 나열된 방향에 맞춰 자리한 청사초롱은 오직 이곳에서만 볼 수 있던 모습이었다. 게다가 창경궁 내 자리한 큰 연못에서는 선 따라 나열된 청사초롱의 반영을 오롯이 담을 수 있는 곳이다.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밤에 굳게 닫혀있던, 창경궁 대온실이 밤에 그 매력을 일반에 공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부 입장도 가능해 덕수궁 석조전과 마찬가지로 이국적인 순간을 밤에도 즐길 수 있어 보였다. 창경궁 전각들과는 다르게 항상 베일에 가려졌던 대온실 영역. 낮과 다른 밤의 풍경이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입궁시 홍화문 주변에서 청사초롱을 직접 대여할 수 있으니, 그걸 들고 천천히 걸어보고 싶어진다. 항상 여유가 필요할 때, 습관적으로 찾던 곳. 요즘은 그 여유가 너무 그리워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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