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 세상 다 가진 것 같은 기쁨 주는데 어찌 안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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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훈 교수가 단양군 보건소에서 안과 진료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단양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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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훈 교수는 “봉사를 할 때는 너무 힘들지만 막상 끝내고 돌아올 때는 이 세상이 전부 내 것 같은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면서 활짝 웃었다. 남정률 기자 |
가톨릭중앙의료원 의료협력본부 부본부장 김영훈(펠릭스, 51, 가톨릭대 의대 안과) 교수는 매월 둘째ㆍ넷째 주 목요일만 되면 새벽 기차를 타고 충북 단양으로 간다.
안과 의사가 한 명도 없는 단양의 군 보건소에서 안과 진료 봉사를 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4월에 시작했으니 꼬박 1년이 넘었다.
김 교수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 동안 진료하는 환자는 평균 120여 명. 점심을 먹으러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 외에는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환자에게만 매달려야 한다. 강행군도 이런 강행군이 없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는 파김치가 된다.
김 교수는 그래도 비교적 잘 알려진 단양 같은 지역에 안과는커녕 일반 병원도 몇 개 되지 않는다는 데 놀랐고, 안과 진료가 평생 처음이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한 번 더 놀랐다.
“단양읍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하루 몇 번 다니지도 않는 버스를 타고 오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습니다. 진료 예약이 벌써 6월 말까지 다 차 있습니다.
그만큼 안과 환자가 많아요. 대학병원에만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와 보니 상상 이상으로 열악합니다. 급할 때는 아기나 외상 환자도 봅니다.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닌 거지요.”
김 교수는 “보호자 없이 인근 제천이나 원주, 서울 등으로 진료를 받으러 가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아 치료 시기를 놓친 어르신들이 많다”면서
“안과 진료를 너무 늦게 받아 실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환자를 보면 의사로서 대단히 마음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교수가 단양과 인연을 맺은 것은 10여 년 전부터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실명예방재단을 통해 단양에 안과 의사가 없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다. 김 교수가 봉사 활동을 시작하면서 단양군 보건소는 안과 진료에 필요한 기초 시설을 갖췄다.
부족한 장비가 많아 정밀한 치료를 해야 하는 환자는 인근 대도시 병원으로 안내하고 있다.
김 교수는 진료에 필요한 의료비품을 주위 동료들에게서 뺏다시피 얻어오기도 하고, 2013년 의료협력본부로 오기 전에 근무했던 가톨릭대 성 바오로 병원에서도 도움을 받는다.
그런 수고로움까지 마다치 않는 김 교수가 지원받는 것은 교통비 정도.
“정말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봉사를 마치고 돌아올 때는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보람과 기쁨을 맛봅니다. 이 세상이 전부 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봉사에는 중독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더 봉사할 것이 없나 찾게 됩니다.”
단양에서의 진료는 김 교수가 평소 하는 봉사 활동의 일부분일 뿐이다. 한국실명예방재단의 소개로 몇 년 전부터 매월 한 차례 서울의 가난한 지역을 찾아가 200여 명의 주민을 진료하고 있다.
또 한 달에 한 번은 경기도 안산에 있는 이주민센터에서 이주민 환자들을 돌본다.
지난해까지는 안과 의사 여럿이 돌아가면서 진료하느라 진료의 연속성이 끊어지는 문제점이 있었는데, 올해 들어 김 교수가 전담함에 따라 그 문제는 말끔히 해결했다.
서울 영등포에 있는 무료 진료소 요셉의원(원장 이문주 신부)에도 찾아가 안과 의사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달라고 해놨다.
진료 말고도 김 교수가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는 봉사 활동이 또 따로 있다. 아직은 공개하기가 좀 이르다. 아주 장기적이고 원대한 꿈이다.
“성 바오로 병원에서 일할 때 만난 환자들이 대부분 극빈층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고 싶어서 병원 사회사업팀으로, 실명재단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봉사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김 교수의 봉사 활동은 의료협력본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꽃을 피운다.
의료협력본부는 가톨릭 중앙 의료원이 세계 각지 의료 소외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펼쳐온 해외 의료 지원 사업을 체계화하기 위해 세운 부서. 한마디로 봉사가 주된 업무인 의료협력본부로 오면서 김 교수는 물을 만난 물고기가 됐다.
특히 의료협력본부 의료진의 일원으로 2013년 태풍 하이옌으로 큰 피해를 입은 필리핀을 찾아가 아기도 받고 내과 진료까지 해야 하는 처참한 상황에서의 봉사 활동은 자신을 그곳으로 이끈 하느님의 뜻에 대해 다시 한 번 묵상하도록 이끌었다.
뼈저린 체험이었고, 하느님의 부르심이었다.
“앞으로의 계획 같은 건 따로 없습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라 하느님께서 시키시고, 하느님께서 뜻하신 대로 이룬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하느님께서 또 무슨 뜻을 주실지 저는 모릅니다. 그게 무엇이 됐든 시키시는 그대로 따르고자 합니다. 단양에서의 봉사는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은퇴 후에라도 계속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봉사를 요청해오는 곳이 있으면 거절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싶다는 김영훈 교수. 닮고 싶은 봉사 중독자다. 남정률 기자
▧ 취재 후기
김영훈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병원은 원래 자선기관으로 출발했다. 진료는 근대 이후 추가된 기능이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고 실천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교회가 병원을 운영하는 것은 그런 다양한 방법 가운데 특별히 의료 활동을 통해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다.
김 교수를 취재하면서 가톨릭 병원이 나아갈 길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김 교수의 봉사 활동은 사실 학교 측의 배려 없이는 힘든 일이다.
가톨릭 중앙 의료원, 그중에서도 의료협력본부 소속이 아니었으면 아마 지금처럼 맘껏 봉사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리 봉사하고 싶어도 주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마음으로만 그치기 쉽다.
뜻있는 의료진이 어려운 이를 돕는 봉사 활동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독려하고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교회 병원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 병원과 그 병원에서 일하는 이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