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일:8월26일(월)
불광산사를 참배하다.
가이드 이야기: 대만의167개 대학 가운데 100개 대학이 사라지고 67개 대학만이 살아 남았다 하니,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감소 현상 때문에 일어난 사회현상이다.
카오슝高雄은 대만에서 두 번 째의 도시다. 불광산 때문에 유명해졌다고 한다.
가이드의 안내 말씀: 불광산 본산 참관➝불타기념관(1시간) ➝채식식당에서 점심 예정이다.
한국으로 치면 강원도에 해당하는 화렌花蓮에 자제공덕회가 있는데, 이번 순례에서는 갈 수 없어 빠졌다. 최근 큰 바위가 도로로 무너져 내려 통행이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제공덕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선봉사 단체이다. 지금은 자제기금회로 명칭에 바뀌었다고 한다. 년간 1조원이란 기부금이 모인다 하니 재정과 인적 자원의 규모가 어마어마 하다.
불광산사는 星雲대사(싱윈따쉬, 1927~2023)가 1967년 창건하신 큰 절이다. 성운 스님은 대만불자들이 인사할 때 보통 “아미타파”라 하던 것을 “진쌍 吉祥”으로 할 것을 가르치셨다 하니 “행복하세요”라는 뜻이다. 스님은 평소에 “나는 돈이 없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제자들이 “무슨 말씀이세요? 이 큰 절이 스님 것이 잖아요.”하면 “아니, 나는 대중의 한 스님으로 살아갈 뿐이야.”라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죽을 때는 통장에 잔고가 단지 40만원에 불과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청빈한 삶이었다. 그분이 쓴 책의 인세는 모두 기부금으로 들어간다. <공익신탁 성운대사 교육기금>이 그것이다. 스님은 3好운동으로 일상을 살아가자고 했다.
좋은 말 하기, 좋은 일하기, 좋은 마음 가지기.
그분이 내세우는 기치는 <인간불교>이다.
성운대사가 쓴 임종기원문에서
“제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 제가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더 이상 두렵지 않게 해 주십시오.
여행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기쁨을 주시고
수감자가 석방되는 것과 같은 자유를 주시고
낙엽이 뿌리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움 주시고
공산의 둥근 달과 같은 밝고 깨끗함 주시옵소서”라고 부처님께 기원했다고 하니, 대승보살의 원력으로 한 생을 바친 거룩한 삶이었다.
가이드 이야기: 호접란胡蝶蘭은 타이난臺南의 명물로 각국으로 수출한다. 대만의 일반 가정은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으며 한 달에 두 번, 초하루와 보름에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토속신 특히 재물을 부르는 기복신을 많이 모시는데, 토지대감이라는 토지신을 모시는 것이 각별하다. 도교와 일본 신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구정에 가족이 모두 모여 제사를 지내며, 일년에 네 번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이런 신앙형태를 道佛습합 내지 道佛敎라고 한다.
불광산사의 여러 전각을 둘러보다. 마지막으로 종조전宗祖殿은 성운대사를 위해 지어진 전각이다. 전 세계 제자들이 손수 보시한 돈으로 지어졌기에 제자들이 “내가 지었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한 단다. 불광산사가 지어지기 전 이 땅은 대나무 밭이었는데 50년 동안의 대작불사로 천지개벽을 한 셈이다.
<성운대사의 가르침>
滿樹桃花日棵根, 因緣果報重重無盡. 만수도화일과근, 인연과보중중무진
만개한 복숭아 꽃도 나무의 한 뿌리에서 피어나듯,
인연과보 역시 끝도 없이 드러날 것이다.
사랑은 아낌, 자비, 공헌, 포용, 자혜 그 자체이다.
千載一時, 一時千載. 好好把握機會. 천재일시, 일시천재. 호호파악기회
천 년의 인연이 오늘에 이어지고, 이 순간이 천년으로 이어진다.
순간의 인연을 소중히 하라.
天下唯心, 法界悠然. 盡未來歲, 佛在心裏. 천하유심, 법계유연. 진미래세, 불재심리.
천하가 오직 마음 뿐이니, 법계가 여유롭게 편안하구나!
미래세가 다한다 해도, 부처님은 마음 속에 있도다!
11:00 불광사 경내에 있는 예경대청 식당에서 점심 공양, 재식(채식)으로 8가지 접시 요리가 나온다. 11:50에 공양 마치다.
다시 버스를 타고 길을 떠나다. 도중에 ‘雪山’이란 터널이 있는데, 설산산맥의 동굴인 셈이다. 길이가12.9km이다.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양쪽에서 뚫어 만들었기에 쌍 터널이라 한다. 13년 걸린 대공사로, 1년에 1km로 진행된 難난 공사 중에 難 공사였다.
대만의 기름값은 싸다. 그래서 누구나 차와 오토바이 굴린다. 집집마다 차 1대와 오토바이 2두 대를 가지고 있다하니 출퇴근 시간에 거리에는 오토바이 물결로 넘쳐난다.
2시간30분 달려 타이쭝 台中으로 향하다. 거기서 저녁 공양할 예정이라 한다. 타이페이에서 타이쭝으로 가는 것은 서울에서 양양 가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라 한다. 한 차례 스콜이 지나간다. 잠깐 조는 사이 홀연 번갯불이 번쩍이며 멀리 바다가 보인다. 새삼스레 타이완은 사면에 바다로 갇힌 섬이라는 사실이 실감된다. 땅끝이 모두 바다로 막혔으니 도망갈 곳이 없다. 섬나라는 구속과 속박, 폐쇄로부터 해탈을 꿈꾸는 곳이랄까, 욕계가 바로 그런 곳이니 출리심을 계발하라고 부처님께서 일찍이 가르치셨다.
5:30 동해어촌 식당에서 저녁 공양하다. 6:40pm 공양 마치고 출발하다.
兩岸양안관계에 대하여: 대만은 중화민국이라 자칭한다. 반면 중국대륙은 중화인민공화국이라 칭한다. 대만사람들 80%는 자기를 중화민국이라 자처하면서 ‘대만사람’이라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20%는 ‘중국사람’이기를 고집한다. 80%의 대만사람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외래정권이라 여긴다고 한다. 국민당 정부 시절에는 양안관계가 평화적 공존을 지향했다면, 정권이 민주진보당(민진당)으로 바뀌자 대만중심주의로 정책이 변하면서 양안관계에 긴장이 고조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줄여서 중국)은 절대로 대만의 독립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만일 대만이 독립을 꾀할 경우 중공은 침략을 감행하여 전쟁을 불사할 태세이다. 더구나 시진핑 주석의 심중에는 2027년까지 대만을 흡수통일 한다는 계획이 있다는 말이 떠돈다. 대만과 본토 사이에 있는 금문도(金門島)는 그야말로 최전방으로 예전엔 대만군이 10만이나 주둔하여 방어했으나 이제는 병력이 감소하여 소규모의 병력만 지키고 있다고 하니, 시절이 하수상하여 장차 벌어질 사태는 오리무중이다. 이렇게 된 까닭은 대만에도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된 동시에 출산율의 저하 때문에 인구가 줄었기 때문이다. 징병제를 지속할 수 없어서 모병제로 전환했는데도 불구하고 병력이 충분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 대만 남자들은 모두 군복무를 의무적으로 했지만, 이제는 1년만 기본훈련을 받으면 그만이라 한다. 그래도 시진핑의 야망은 쉽게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대만의 반도체 기술 특히 TSMC는 유럽전자산업에 기초재료를 거의 전부 공급하고 있기에 유럽은 대만이 중국의 수중에 떨어지는 걸 싫어할 것이고, 미국은 중국이 대만을 점령하여 곧바로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걸 극도로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사시 대만은 본토의 샨사 댐을 폭파하면 3, 4천만의 인명피해를 일으킬 수 있기에, 물론 피차공멸이겠지만, 어쨌든 전쟁은 피해야 할 것이다.
밤9:30 숙소에 도착. 礁溪자오시 Pin Hotel 1315호에서 1박하다. 온천지대에 있는 호텔이라 욕조에 온천이 나온다. 목욕을 하고 몸을 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