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먼저다
32: 31-32
31.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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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주일이자 현충일을 맞이하여 성도인 우리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듯,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을 기억해야 합니다. 현충일은 ‘국권회복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희생한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기념일’입니다.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나라를 위해 희생했습니다. 이름도 없이, 대가도 없이 오직 나라를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이들이 가족을 뒤로 하고 목숨을 바친 것은 나라가 먼저였기 때문입니다. 내 생명, 내 가족이 귀하지만 나라가 먼저이기 때문에 과감히 자신의 생명을 내놓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가진 우리는 어떻습니까? 많은 현대인들이 대한민국과 나는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대한민국이 곧 우리 가족이며, 우리 삶의 터전입니다. 대한민국 없는 나는 없습니다. 나라가 나무라면, 개인과 가족과 일터와 교회는 가지입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정교분리에 대한 오해 때문에 나라에 무관심합니다. 정교분리란 교회가 국가를 지배해도 안 되고, 국가가 교회를 지배해도 안 된다는 것이지, 나라에 무관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나라를 먼저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러면, 현충일을 맞아 애국선열의 정신을 되새겨 봄으로, 하나님 나라와 조국 나라의 애국자가 됩시다.
첫째, 애국선열을 기억하자
수많은 애국선열들의 피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3.1운동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도 정신이 죽은 국민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6.25전쟁으로 우리나라가 공산화 되었다면, 우리도 북한 동포들처럼 자유를 잃어버리고, 인권과 평화도 없이, 배고프고, 헐벗고, 죽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의 애국선열들이 생명을 바쳐 싸워주셨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보호아래서 우리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악인이 많아서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받은 것은 의인 열 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수의 애국자가 나라를 살립니다. 대한민국도 국가의 위기 때마다 생명을 바치는 애국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풍요와 자유를 누리며 사는 우리는 애국선열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사 46:9상)고 말씀합니다. 그분들이 이루시고자 했던 것, 그 뜻을 이어갑시다. 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에게도 감사하며,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분들이 있다면 마음과 물질로 보답합시다. 나라를 위한 한 사람의 희생은 가족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둘째, 우리도 애국자가 되자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비기독교인들보다 오히려 더 역사의식을 가지고 나라를 사랑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성도는 지도자입니다. 국가의 흥망성쇠는 성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애국선열들이 목숨 걸고 지킨 대한민국을 우리도 목숨 걸고 지킵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삶의 순서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세상보다는 하나님이 먼저이며, 나보다는 나라가 먼저입니다.
대한민국 없이 교회는 없으며, 대한민국 없이 개인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신앙인, 건강한 국민의 삶의 우선순위는 “하나님 먼저, 나라 먼저, 그리고 나”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동족인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막 7:27). 사도 바울도 선교할 때, 제일 먼저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애국하는 성도, 애국하는 교회가 됩시다.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목회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딤전 2:1-2상). 국민과 대통령, 그리고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나라를 위해 우는 성도가 됩시다(눅 19:41). 우리가 나라를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축복하십니다.
셋째, 애국자가 하나님께 쓰임받는다
조국 나라,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요일 4:20)다고 증거합니다.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들은 애국자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해 왕의 술 관원 자리를 포기했습니다.
에스더는 “내가 어찌 내 민족의 화 당함을 참아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참아 보리이까”(에 8:6)라고 탄식하며, 동포를 살리기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에 4:16).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위해 생명조차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3).
이 외에도 사무엘과, 다윗 그리고 많은 예언자들도 모두 애국자였습니다.
이기주의자, 물질만능주의자는 하나님이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 사회는 버려야 할 3심, 즉 ‘이기심’, ‘탐심’, 그리고 ‘의심’을 자녀에게 심어주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자녀들을 사랑하고, 자녀들을 큰 인물로 만들고 싶다면 ‘신앙심’, ‘애국심’,‘효심’을 심어줍시다.
하나님께 뜻을 두고 역사를 바라보는 자는 반드시 지도자가 됩니다.
애국자가 하나님께 쓰임받습니다.
넷째, 하나님은 애국자를 기억하신다
모세는 한 때 애굽에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인이었지만 바로 딸의 아들로 자라며, 문무를 겸비한 실력자였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애국심 때문에 히브리 민족을 위해 애굽 사람을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모세는 살인자가 되어 도망쳤습니다. 모세가 광야로 도망친 후, 모세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쩌면 모세 스스로도 자신을 잊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양을 치고 있는 80세의 모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르셨습니다. 모세의 능력을 보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서 보신 것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모세는 젊을 때뿐만 아니라, 나이 들어서도 애국심이 있었습니다. 히브리 민족이 우상숭배의 죄로 멸절당할 위기에 처하자 그는 자신의 생명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출 32:32).
하나님은 애국심이 있는 사람을 기억하십니다. 애국자의 기도에 속히 응답하십니다(느 2:4-6). 조국 나라와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가 됩시다. 하나님께서 따로 기억하시고, 주목하여 보시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애국자가 많은 대한민국은 어떤 역경이 와도 무너지지 아니하고, 망하지 아니하며, 희망을 가지고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애국가 가사처럼 대한민국을 사랑하십니다. 정부와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 있고, 국민은 나라를 위해 있습니다. 나라가 먼저입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애국선열과 그 가족을 기억하며, 사랑합시다. 그 가족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면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짐을 같이 나누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21세기의 애국선열이 됩시다. 나라를 위해서 살면 그 복이 내게 임합니다.
기 도
애국자를 기억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친 순국선열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가족을 돕기 원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먼저, 나라 먼저, 그리고 나’의 순서로 살아가는 애국자가 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