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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목사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반드시 부흥이 된다는 부흥에 대한 용기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성경 말씀을 얼마나 믿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 10절에 보면, “내가 계획한 일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반드시 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성경에는 이와 비슷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이사야 9:7에 보면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NLT 성경에 이 말씀이 “The passionate commitment of the Lord of Heaven’s Armies will make this happen!”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NKJV에는 “The zeal of the LORD of hosts will perform this”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람이 무슨 일에 열심을 내도 그 일이 이루어질 때가 많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성적을 받습니다. 공연을 앞두고 열심히 연습을 하면 좋은 연주를 할 수 있습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이번에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이규혁이라는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선수는 이미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여러 번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러나, 유독 올림픽에서는 금 메달을 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밴쿠버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이번에 금메달을 따면 기분 좋게 은퇴를 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500M에서 기록이 좋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안타까워했습니다. 그가 한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일에 도전하는 자신이 슬펐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세상 일에는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일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이규혁 선수처럼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일도 있습니다. 쇼트 트랙 선수들의 경기는 박진감이 있습니다. 앞서 가는 선수를 추월하는 모습이 가장 멋있습니다. 예전에는 인코스로, 코너를 돌 때 원심력이 있어서 대개 선수들이 인코스에서 멀어집니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앞서가는 선수들을 추월했습니다. 한국 선수들은 이 원심력을 이겨내는 각종 기술을 개발해서 쇼트 트랙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각국 선수들도 그 기술을 구사합니다. 그래서 인코스로 비집고 들어가기가 참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은 또 다른 기술을 개발해 냈습니다. 그것을 “호리병 주법”이라고 합니다. 이 주법은 코너를 돌기 직전에 아웃 코스로 치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인코스로 파고 드는 기술입니다. 해설자가 그래요. “아웃 코스로 나가서 상대방을 추월하는 저 모습이 쉬워 보이지요? 선수들이 저런 기술을 구사할 때까지 얼마나 피나는 연습을 했겠습니까? 엄청난 체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기술입니다.” 그러니까 아나운서가 그래요. “예. 밥만 먹으면 얼음판에 섰겠지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어떻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일에 열심을 내시면 그 결과가
어떻다고 생각합니까? 되는 일도 있고,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도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다 됩니다. 그러니, 만일 하나님께서 열심을 가지고 하시는 일이라면 어떻겠습니까? 그 결과가 불을 보듯이 뻔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 하나님께서 열심히 하시는 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일을 우리가 추구한다면 그 일의 결과는 뻔하지 않습니까? 혹시 되더라도 그것은 정말 운이 좋아서 되는 일이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아닙니다.
로마서 4:19-21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해석한 말씀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백 살이나 되어 거의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게 되었고, 사라도 나이가 많아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불신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약속을 굳게 믿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칭송을 받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은 그런 그의 믿음을 기쁘게 여기셨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좀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런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고, 너도 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떻습니까?
다른 일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냥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되거든요? 그냥 단순하게 믿고 받아 들이고 하면 되는데, 그게 잘 안 되거든요? 자꾸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머리로 알고는 있지만 그 믿음을 삶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참 귀한 믿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불신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약속을 굳게 믿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참 귀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바빌로니아가 멸망하고 새로 등장한 페르시아가 세계를 제패하는 시대적 상황입니다.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때 그 시대를 경험했습니다. 바빌로니아가 멸망하면서 그들이 섬기던 벨과 느보가 가축들이 모는 수레에 실려 갑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바빌로니아의 우상인 벨과 느보를 짐승들이 싣고 간다. 그 우상들은 실어 날라야 할 무거운 짐이며, 짐승들을 지치게 하는 것일 뿐이다. 이 헛된 신들이 모두 고꾸라졌다. 그들은 자기를 구하지 못하고, 모두가 포로처럼 끌려간다.” 바빌로니아의 신들은 그들이 이렇게 묶여 수레에 실려가도 자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런 우상을 섬기는 삶이 얼마나 우습냐고 합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믿고 의지했던 벨과 느보신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어리석은 일들을 많이 하는지, 어차피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것들을 추구하고 미련을 갖는 일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짐 엘리옷(Jim Elliot, 1927-1956)에 대한 말씀을 아시지요? 이 청년은 29살 때 순교했습니다. 시카고의 휘튼 칼리지(Wheaton College)를 졸업한 그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져 버리고 남미 에콰도르(Ecuador)의 아우카(Auca)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그의 인생을 헌신합니다. 아직 한번도 복음을 듣지 못한 부족을 찾다가 에콰도르에서도 가장 잔인하기로 소문난 아우카족을 위해 자기 인생을 드리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1956년 1월 초에 4명의 선교사와 함께 에콰도르 쿠라라이 강(Curaray River)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1956년 1월 8일에 다섯 명의 선교사는 모두 아우카족에게 창과 도끼로 살해 당합니다. 「LIFE」지에 다섯 명의 젊은 선교사들의 죽음에 대하여 이런 제목의 기사가 났다고 하지요? “이 얼마나 불필요한 낭비인가(What a unnecessary waste)!” 엘리옷의 부인 엘리사벳(Elisabeth)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낭비라니요? 나의 남편의 죽음은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의 온 생애를 그 일을 위해 준비해 온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책임을 모두 완수하고 죽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엘리옷이 죽은 후 그의 일기장에서 이런 글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결코 잃어 버릴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어차피 지킬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사람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He is no fool who gives what he cannot keep to gain that which he cannot lose)!”
남편의 뒤를 이어 부인 엘리사벳 엘리옷이 아우카족에게로 들어갔습니다. 남편을 따라 죽을 각오로 들어갔는데, 아우카족은 여자는 죽이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죽지 않았습니다. 아우카족 추장이 엘리사벳에게 묻더랍니다. “당신은 누구기에 우리를 위해 애써 수고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엘리사벳이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나는 5년 전에 당신들이 죽인 그 남자의 아내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당신들에게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상을 믿는 사람은 어차피 버려야 할 것들을 끝까지 쥐고 사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을믿는 사람들은 어차피 버려야 할 것들을 일찌감치 버리고, 영원한 것들을 붙잡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벨과 느보와 질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어떻게 관계하시는지 그 말씀이 3-5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야곱의 자손아, 내 말을 들어라. 살아 남은 이스라엘 백성아, 귀를 기울여라. 너희가 태어날 때부터 내가 너희를 안고 다녔고,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너희를 돌보았다. 너희가 늙을 때까지 내가 너희를 돌보겠고, 너희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내가 너희를 품어 주겠다. 내가 너희를 지었으니 너희를 돌보겠다. 너희를 인도하며 구원해 주겠다.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겠느냐? 누구를 나와 견줄 수 있겠느냐?” (To whom will you compare me? 3-5절)
이 말씀에서 주목해야 할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품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NLT 성경에 이렇게 나옵니다. “I will carry you along and save you.” NKJV에는 “Even I will carry, and will deliver you”라고 나와 있습니다. 언제까지요? 너희가 늙을 때까지, 너희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우리를 품어 주시겠다고 합니다.
“모래 위의 발자국”이라는 유명한 이야기를 아시지요? 이 이야기는 누구의 작품인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모래 위의 발자국의 사진과 함께 이 이야기가 성도들의 집에 액자에 걸려 있습니다. 어느 날 밤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걷고 있는 꿈이었습니다. 하늘 저편에 자신이 걸어온 인생 장면 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한 장면씩 지나갈 때 마다 그는 모래 위에 난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그의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그와 함께 걸으신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 비쳤을 때 그는 모래 위의 발자국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걸어온 발자국이 한 쌍 밖에 없는 때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알고 보았더니 그때가 바로 그의 인생에서는 가장 어렵고 슬픈 시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불편해진 그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결심하면 항상 저와 동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제 삶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는 제 발자국 밖에 없습니다. 제가 가장 주님을 필요했던 시기에 주님이 왜 저를 버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소중하고 소중한 아들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버리지 않는다. 네 시련과 고난의 시절에 네 발자국만 보이는 것은 그 때 내가 너를 업고 갔기 때문이란다." 누가 쓴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참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8절 말씀에 “이것을 기억하고 잊지 마라.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들아, 이 일을 생각하여라” 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말씀이 개역 성경에는 “너희 패역한 자들아, 이 일을 기억하고 장부가 되라. 이 일을 마음에 두라.”
NKJV에 이 말씀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Remember this, and show yourselves men; Recall to mind, O you transgressors.”
“장부가 되라”는 말씀은 “사나이답게 결단하라, 남자답게 결심하라” 이런 뜻입니다. 결코 우리 인생에 있어서 헛된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어차피 그것들은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붙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10-11절에 보면, “내가 계획한 일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반드시 한다. 내가 내 뜻을 이룰 사람을 동쪽에서 불렀다. 그가 먼 나라에서 독수리처럼 올 것이다. 내가 한 말을 이루겠고, 내가 계획한 그대로 행하겠다.”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I called a man from a far country to execute My counsel) 한 사람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계획적으로 그의 모략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을 가지고 추진하는 일들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는 일이라면 반드시 그 일이 이루어집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분은 끊임없이 일하고 계시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마지막 그 날에 그 모든 선한 일을 확실히 완성하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1:6)
여러분과 저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여러분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He began the good work within you already.”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입니다.
그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지금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 중에 어떤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닙니다. 그 사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무거운 짐들을 지고 있습니다. 그 일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좋은 일이 이미 우리 안에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어차피 버려야 할 것들이라면 일찌감치 버리고, 어차피 붙들어야 할 것이라면 일찌감치 하나님을 붙드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