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예루살렘으로 환궁하는 다윗 왕의 복위에 관한 이야기가 19장에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다윗은 환궁하는 길에 자신을 저주했던 시므이를 용서하고 므비보셋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은인 바실래를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복위와 환궁에 따른 기쁨을 같이 누리지 못한 이스라엘이 유다 지파와 갈등을 일으켜 국론은 다시 분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 다윗의 슬픔과 요압의 조언
1) 통곡하는 다윗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죽음은 다윗 왕의 마음을 슬프게 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아들에 대한 혈육의 정 뿐만 자니라 과거에 지은 죄악의 보응이라는 죄책감에 기인한 슬픔이었습니다.(참조, 삼하12:9-14).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할 줄 하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신앙의 눈은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통곡은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단순한 울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통곡 속에는 죄책감, 자신의 연약성, 아들의 잃음 등 다양한 감정을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a.그 이름을 부르며 욺(삼하19:4)
b.미련한 아들을 둔 아비는 근심하게 됨(잠17:25)
2) 백성들에게 악영향을 끼친 다윗의 슬픔
백성들은 압살롬의 반란군을 쳐부수고 승리의 기쁨에 넘쳐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기쁨을 다윗에게 알리길 원하였고 같이 기뻐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왕이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 심히 슬퍼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기쁨에 젖어 있던 백성들의 마음은 다윗의 슬픔으로 인해 슬픔으로 변화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전투에서 승리하였지만 패잔병처럼 조용히 성안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a.방성 대곡을 한 다윗(삼하19:4)
b.왕에 대한 소문이 남(왕상10:6)
3) 뜻을 돌이키는 다윗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을 잃은 다윗의 슬픔이 계속되고 그것이 백성들에게 악영향을 끼치자 요압은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요압은 왕에게 나아가 백성들의 상태를 이야기하고, 왕이 직접 백성들에게 나아가 섭섭해하고 있는 백성의 마음을 위로해 주라고 조언했습니다. 또한 그는 왕이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오늘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참모인 요압의 적절한 조언을 받아들인 다윗은 뜻을 돌이키고 성문으로 나갔습니다. 다윗이 요압의 조언을 받아 다시금 이스라엘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결국 그가 하나님의 뜻에 순응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a.부끄러움을 느낀 다윗의 신복들(삼하19:5)
b.지혜로운 여인과 같이 모사를 행함(삼하20:16)
2. 다윗의 민심 수습
1) 제사장들에게 협조를 요청함
다윗 왕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기별하여 유다 장로들에게 자신을 궁으로 모시게 하라고 명합니다. 왜냐하면 마땅히 선두에 서버 다윗을 모셔야 할 유다 족속은 조용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외침이 먼저 다윗의 귀에 들렸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자신을 궁으로 모시려고 하는데 왜 자기 지파인 유다는 자신을 궁으로 모시려는 기별이 없느냐는 의미입니다. 이에 다윗 왕은 매우 불쾌한 생각을 가짐과 동시에 제사장들에게 협조를 요청한 것입니다.
a.다윗이 임명한 제사장 사독(대상24:3)
b.선을 도모해야 할 성도(롬12:17)
2) 다윗의 환궁을 바라는 유다 지파
제사장들에게 협조를 요청한 다윗은 이어 반역한 압살롬의 군대 장관으로 일하고 있던 아마사를 설득하여 자기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유다 지파의 백성들도 다윗의 환궁을 바랐습니다. 사실 유다 족속은 왕에게 승전보를 가지고 왔을 때 왕에 게 대접을 받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다윗은 자신들의 승전을 무안하게 했습니다. 그 때문에 화가 나서 반응이 없었던 유다 지파는 다윗이 분노하고 하나님이 저주할 것이라고 말하자 이 소식을 듣고 유다 족속은 일제히 뜻을 돌이키고 왕을 맞이하게 됩니다.
a.유다 지파 사람인 다윗(계5:5)
b.골육지간임(창29:14)
3) 시므이를 용서함
시므이는 상황 판단에 능한 기회주의자였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이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것을 보고 다윗 왕을 저주하며 비난하다가 다시금 다윗 왕이 세력을 얻자 재빠르게 다윗 쪽으로 전향합니다. 극단적인 용어를 사용하면서 다윗을 저주하던 시므이는(참조, 삼하16:5-8), 이제 아첨을 하면서 다윗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다윗은 공의보다는 화해와 일치의 명분을 내세워 시므이의 처형을 유보하고 용서합니다. 당시의 전황은 이스라엘 백성의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는 일이 급선무였기 때문입니다.
a.사울 왕의 친척인 시므이(삼하16:5)
b.선으로 악을 갚는 것임(롬12:17)
3. 다윗의 영접과 다툼
1) 다윗을 영접하는 므비보셋
다윗이 마하나임에 거할 때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이 내려와서 다윗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는 도피하는 다윗의 고난에 깊이 동참하였습니다. 그가 다윗을 향하여 취한 행동을 보면 마치 부모의 상을 당한 자식처럼 다윗의 고통에 적극 동참하는 깊은 애도의 모습이었습니다. 므비보셋은 자신의 신체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왕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까지 혼자서 예루살렘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는 자신에게 베푼 다윗 왕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며 충성이라 할 수 있던 것입니다. 그 후 예루살렘에서 다시 다윗을 맞이할 그때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왜 나와 함께 피난 길에 나서지 않았으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그는 시바가 자신을 거역하여 못 갔다고 변명하면서 어떠한 처벌도 받겠다고 하였습니다.
a.사울의 종이었던 시바(삼하9:2)
b.행위가 온전했던 므비보셋(잠11:20)
2) 바실래의 영접
바실래는 다윗과 압살롬의 전투가 임박한 위급한 상황에서 다윗의 진영에 귀중한 물자를 공급하여 다윗을 공궤하였습니다(참조, 삼하17:27). 그는 길르앗 사람으로서 다윗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윗은 그의 선행을 기억하고 그 에게 후대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바실래는 자신이 왕을 도운 것은 당연히 해야 될 일이었기 때문임을 고백하면서 상 받는 것이 당치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상을 바라고 다윗에게 온 것이 아니라 다윗을 배웅하기 위해서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a.압살롬을 피해 도망한 다윗을 공궤함(삼하17:27-29)
b.선을 베풀기에 힘써야 함(잠3:27)
3) 유다와 이스라엘의 다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다 지파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왕을 호행하는 것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항의하였습니다. 즉 그들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연합으로 왕을 맞이해야 할 일을 유다 사람들이 단독으로 실행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무리들은 이러한 유다 사람들의 행위를 도적 행위라고 규탄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불평에 대해 유다 사람들의 답변은 '왕은 우리의 지친인 까닭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결국 세바의 난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a.주도권을 장악했던 지파(삿12:1)
b.육신에 속한 것임(고전3:3)
결론
반역을 일으킨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 다윗은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여 슬퍼하였습니다. 이는 성군 다윗이 왕으로서의 임무를 소홀히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환궁에 있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지파 간의 갈등을 일으킨 것 또한 잘못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이런 모습을 통해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모든 일을 신중하고 지혜롭게 처리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