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Ⅳ
사사기 18장 1-13절
영적적용:시험 드는 이유
요약
사단의 시험에 드는 이유가 8가지 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부족할 때, 주신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때, 세상을 가까이 할 때, 본능을 통제하지 않을 때, 마음이 좁을 때, 말씀을
이탈할 때, 안일하게 신앙생활할 때, 은혜와 직분과 복을 바로 감당치 못할 때 찾아 온다.
강해
오늘도 미가 강해를 통해 함께 은혜 받기 원합니다. 그동안 미가를 통하여 사단의 인간
타락 수법 다섯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을 반대로 해석할 때 그
속에 또한 귀한 복음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오늘은 여섯 번째로 사단이 시험에 빠뜨리는 방법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실을
알면 시험에 빠지지 않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럼, 사단이 어떻게 신앙을 시험합니까?
1.보이는 것에 집착하게 하므로 시험에 빠뜨립니다.
1절에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당시 이스라엘에 왕의 제도가 없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본래 왕정을 기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왕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데도 사사기의 기자는 이스라엘의 여러 가지의 문제의 원인을 왜 왕이 없었기 때문이라
고 말씀하는가?
그것은 그 만큼 사회가 커졌다는 뜻도 되나 더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그 만큼 강팍해졌
고 불신앙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신앙으로는 통하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
님보다 하나님을 대신할 강력한 리더쉽을 가진 보이는 왕이 있어야만 되겠다는 것입니
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헛된 이상일 뿐 그 보이는 왕 때문에 이스라엘이 멸망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표준하여 살고 있습니다. 히11: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
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또 고후5:7에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입
니다. 그런데 보이는 것만을 표준하여 산다면 이것이 불신앙이요 시험들기 딱 알맞습니
다.
예를 들면 홍해 앞의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모세의 믿음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거기서
바로왕에게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광야에서도 그렇고 가나안에서도 그렇고 모세는 오직
믿음 믿음 믿음 믿음으로 풀어나갔지 보이는 것으로 했다면 백 번이면 백 번 시험들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보면 믿음이 없어서 보이는 환경을 탓하며 얼마나 시험 속에 깊이 빠져 있는
지 모릅니다. 대부분이 그래서 시험이 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광야
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 같습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 표준하여 살아가기 때문입
니다. 이와같이 하나님보다 보이는 상황에만 집착할 때 시험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2.주신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때입니다.
다시 1절 후반절에 "단 지파는 이때에 거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
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때까지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라" 했습니다.
여기 단지파가 기업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수 19장을 보면 여호수아 생존시에
이미 기업을 분배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이 없어서 차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땅에 거주한 아모리족에 의해 쫓겨나 떠도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약해서가 아니고 믿음이 없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미 이
스라엘에게 붙이셨으므로 믿고 가서 치면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요새화된 산성에 살아
가는 강대한 아모리족의 위세에 압도되어 싸울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와같이 이미 주셨으나 그것을 믿음으로 감사하지 못할 때 시험에 빠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해결하셨음을 믿고 언제나 감사해야 합니
다. 그러면 놀라운 기적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살전 5:16-18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
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했습니다. 여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란 너희가 예수를 믿는다면 너희는 기뻐할 수밖에 없고 기도할 수밖에 없고 감사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 분 안에서 문제가 다 해결되었고 너희는 영광스
런 구원을 받았으니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되어야 정상적인 신앙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거울 앞에 서서 과연 그런 표정인지 한 번 살펴 보
시기 바랍니다.
왜 기뻐하지 못합니까? 왜 감사하지 못합니까? 왜 기도하지 못합니까? 이 귀한 사실을
알지 못해 거기에 눌려 믿음이 질식 당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든 것의 주인은 예수
님이십니다. 내 문제가 아니고 내 자녀가 아니고 내 몸도 내 것이 아닙니다. 이 관계가
분명하지 않는 한 주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합니다. 성경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
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책임지셨으니까 그 염려를 놓으시고
이제 할 일은 오직 기뻐하며 믿음으로 기도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혹은 이해되지 못하
는 일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지 못하면 시험에 사로잡힙니다.
3.세상을 가까이 할 때 시험이 옵니다.
2절에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그랬습니다.
여기 소라와 에스다올은 삼손의 고향입니다. 이곳은 본래 유다지파와 단지파의 경계였
습니다. 이 경계란 이 세상을 가까이하고 세상과 짝하는 육신에 속한 신앙을 비유합니다.
세상을 가까이 하면 시험에 듭니다. 먹물 가까이 하면 먹물이 묻기 마련입니다. 자동차를
세차해 보면 조심해도 바지가 젖고 얼굴에도 물이 뛰깁니다. 잠언이 보여주는 신앙의 지
혜란 죄를 멀리 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죄 가운데 있어도 죄 짓지 않아야 한다고 하면서 죄 중에 거하자고 하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나를 자주 넘어뜨리는 것이 무엇일까? 발견하시고 그것을 최대한
멀리 하시기 바랍니다.
4.본능을 통제하지 못할 때 시험이 찾아옵니다.
다시 2절에 "자기 온 가족 중 용맹 있는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탐지하고 살피게 하
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
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했습니다.
여기 다섯 정탐군들이 나옵니다. 여기 다섯은 우리 몸의 오각 즉 육신의 본능을 상징합
니다. 정탐군은 적의 동정 즉 기미를 알아 차리는데 전문적이어야 합니다. 이와같이 육신
의 오각은 밖의 것을 알아차리고 느끼는데 전문적인 감각기관입니다.
이 본능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적당히 통제하여 써야 합니다. 또 여기 다섯의
정탐군들은 용맹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이와같이 육신의 본능은 너무도 용맹하여 통제하
지 않으면 상상치 못할 일들을 저질러 버립니다. 죄와 하나님의 두려움도 나중 문제로
여깁니다. 사람에게는 식욕 물질욕 명예욕 권세욕 성욕 생명욕 등 여러가지 본능이 있습
니다. 이 본능을 방치하면 반드시 시험에 들게 되어 있습니다. 에서도 식욕 때문에 그랬
고, 발람도 물질욕에 그랬고, 유다도 돈에 눈이 어두워 그랬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명
예욕과 물질욕에 그랬으며, 심지어는 성군 다윗도 성욕을 억제하지 못하여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육신의 본능을 잘 통제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5.이기심의 좁은 이해타산에 사로잡힐 때입니다.
3-4절에 "그들이 미가의 집에 가까이 올 때에 레위 소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
이켜 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
서 무엇을 얻었느냐?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여차여차히 나를 대접하여 나를 고빙
하여 나로 자기 제사장을 삼았느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다섯 정탐군들이 새 땅을 알아 보려고 가다가 에브라임 지파 미가의 집을 지
나칠 때의 일입니다. 그들은 레위 소년의 음성을 알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 질문하는
자의 "무엇을 얻었느냐"는 말과, 대답하는 자의 "미가가 … 나를 고빙하여"란 말을 보십
시오. 둘 다 얼마나 성직에 대해서 타산적이고 천박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
기 고빙이란 '사카르'로 '임금을 주고 고용하다'는 뜻입니다. 당시에 이러한 관념들이 통
용됐다는 것은 심각한 종교적인 타락을 엿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좁은 생각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교회
앞에서나 어디서나 시험을 가져옵니다. 이 따지고 대드는 좁은 마음이 시험의 원인입니
다. 하나님께서는 이 큰 우주와 천국과 하나 뿐인 독생자까지도 주셨는데 사람들이 마음
쓰는 것을 보면 해도 너무합니다.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마음 좁은 사람들이 다투고 싸
우고 시험드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왜 그렇게 원수가 많습니까? 혹시 자신의 좁은 마음
때문이 아닌지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또 이 좁은 마음으로는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교회 일도 타산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왜 나만 봉사시키는가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감사하십시오. 정 불
평된 마음이 있으면 조용히 하지 마십시오. 주의 일은 성령의 감동으로 하는 것이지 억
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산적이고 옹졸한 마음에는 시험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6.하나님의 말씀을 이탈할 때입니다.
5-7절에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보아서 우리의 행
하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
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하여 시돈 사람같이 한가하고 평안하니 그 땅에는 권세
잡은 자가 없어서 무슨 일에든지 괴롭게 함이 없고 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며 아무 사람
과도 상관하지 아니함이라" 했습니다.
여기 레위의 소년은 정탐군들이 앞날을 물을 때 소년은 그들의 형통을 예언합니다. 우
선 듣기에는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소년은 그들에게 바른 교훈을 해주지 아니하고 그
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축복했습니다. 소년은 그들에게 마땅히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떠나 어디로 가느냐고 권면해야 옳을텐데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레위 소년의
큰 죄입니다. 레위 소년이 막았더라면 미래의 불행을 막았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의 삶이 말씀에서 떠나면 사단의 올무와 시험에 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8:20-22에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찌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주릴 것이라 그 주릴 때에 번조하여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 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 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
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리라" 하셨습니다. 말씀 떠나면 그것은 큰 시험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단이나 사교단체가 돈을 주겠다 결혼시켜 주겠다 십사만 사천에 끼워
주겠다 등등 온갖 방법으로 속여도 넘어가면 그 앞 날은 어둡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
다. 거기서 나오지 못하면 지옥입니다. 이 사실을 깊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7.육신의 안락을 추구할 때 사단에게 사로잡힙니다.
8-10절에 "그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에 돌아와서 그 형제에게 이르매 형제들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 보기에 어떠하더뇨 가로되 일어나서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
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말라 너희가 가면
평안한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 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려고 한 라이스가 어떤 곳인줄 알아야 합니다. 그곳은 겉으로는 평안
한 곳이지만 라이스는 '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파는 세상에 다시 없이 평
안한 곳을 찾았지만 그곳이 사람을 삼키는 사자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단지
파는 그곳에 살다가 외세의 침입을 받고 역사 속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좀 더 자자, 좀 더 놀자, 좀 더 편해 보자, 이렇게 우리의 신앙생활이 안일에 빠
지게 되면 그것이 시험이 올 징조입니다. 그래서 박해보다 평안할 때가 더 큰 시험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상에도 태풍의 눈이라고 극도의 평안 뒤엔 거대한 폭풍이 몰아쳐 오는
것입니다. 기독도가 천성을 향해 가는데 사람들이 길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원수가 나타
나니 깨라고 권했지만 그들은 일어나서 둘러 보더니 아무 일 없는데 하고 다시 자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도가 책을 찾으러 다시 그 길을 되돌아 왔을 때 그들은 모두 목
이 짤려 죽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벧전5:8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
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신
앙생활을 좁고 험한 길로 비유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그러나 평탄
하고 안일한 넓은 길은 사망의 길입니다. 마치 등산할 때의 그 기분이 정상적인 우리 신
앙생활의 감정입니다. 즉 편안만을 추구하는 것이 결코 사는 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
리가 신앙의 십자가를 피하면 더 큰 시련의 십자가가 옴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8.은혜와 축복을 감당치 못할 때 시험이 찾아옵니다.
11-13절에 "단 지파 가족 중 육백 명이 병기를 띠고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출발하여 올
라가서 유다 기럇여아림에 진 치니 이러므로 그곳 이름이 오늘까지 마하네단이며 그 곳
은 기럇여아림 뒤에 있더라 무리가 거기서 떠나서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니라"
했습니다.
정탐군의 긍정적인 보고를 받은 단지파는 드디어 육백 명의 군대를 조직하여 자신들의
기업을 떠납니다. 그러나 가는 길에 그들은 앞 날을 보장받기 위해서 두 군데 즉 마하네
단과 미가의 집에 머뭅니다.
그들이 기럇여아림의 뒤 쪽에 있는 마하네단에 임시 진을 친 것은 이곳은 삼손이 여호
와의 신의 감동을 받던 곳으로 그들도 그곳에서 삼손처럼 여호와의 신에 사로잡혀 적을
이기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은 미가의 집에 이르러 그의 신전에 쳐들어가 우상들과 에봇과 드라빔 그리고
레위 제사장까지 탈취하여 갑니다. 그것은 가는 곳에서 복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육신적인 욕망을 위해서 하나님의 성령의 은사와 종교적인 믿음과 의식들을 이
용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은사와 직분과 축복을 이용하려는 실용주의로 탈선하면 결국 사단에게 사로잡
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은사와 직분과 축복은 신앙건설과 사명을 위해서 주신 것이지 사
람들의 육신적인 욕망을 채워주는 일에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
고 이렇게 남을 점쳐주고 돈 받고 실용주의로 나가다가 귀한 선물도 빼앗기고 자신도 버
림받고 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또 주신 직분 축복도 감당치 못하면 그것 때문에 시험이 옵니다. 차라리 복 받지 않았
다면, 차라리 평신도로 있었다면 더 좋을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이는 가룟
유다와 같이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 할 자도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은사와
직분과 축복을 감당하면 복이 되거니와 감당치 못하면 그것이 시험이 되고 올무가 됨을
깊이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단은 오늘도 성도들을 시험으로 끌어들여 믿음을 무력화시키
려고 광분하고 있습니다. 절대 시험에 들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절대 사단의 속삭임에 넘
어 가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서서 바로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도 사
단이 얼마나 시험을 주었습니까? 그러나 주님을 그것을 다 이기셨습니다. 우리도 이겨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이 귀한 축
복을 누리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