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포필리아적 지향성과 토속적인 정취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2019년 부산수필문학상 수상자로 본상에 강신구 수필가가 선정되었다. 수상자는 1997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하고, 2014년 <문학도시> 신인상에 수필이 당선되었다.. 성파시조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부산시조문학회, 사하문학회, 시맥문학회 회장으로, 혜광고 교장을 역임한 바 있다. 본회 부회장을맡아 협회 발전에 기여한 바 크다. 이번 부산수필문학상은 선정 기준에 있어서 수필의 작품성뿐만 아니라 수필가로서의 문단 기여도 등이 크게 반영되었다. 글 쓰는 재미에 푹 빠져 남이야 뭐라 하든 멋대로 솔직하게 한 달에 두서너 편씩 써나가는 강신구 수필가는 평생을 교육 일선에서 후학을 길러온 분으로 자신의 성찰적 생활을 수필에 반영해온 분이라 하겠다.
당선작인 <홍시>는 토포필리아적 서정이 녹아 있는 수필이다. 이미 제목에서 암시된 바와 같이 이 작품은 고향 감나무에 달린 홍시에 대한 추억을 경험과 관찰을 통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주제의식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그의 다른 여타 작품들에 비해 서정성이 매우 짙다. 대상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로부터 나오는 정이 바탕이 되어 만물을 껴안는 작업이 서정의 힘이요, 그 서정의 그늘에서 미를 심는 작업이 <홍시> 속에 잘 그려져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서정성은 문학의 밑거름이 될 정도로 모든 문학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야 할 바탕으로서 수필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다. 사람은 누구나 막연히 동경하고 있는 세계가 있다. 작가는 홍시에 서려있는 어머니의 정을 한 평생 가슴에 지니고 산다. 고향의 감나무에 달린 홍시로 인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불태울 수 있고, 신념어린 삶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이 수필을 따라가다 보면, 시골길 감나무 가로수 등 인정 많은 시골의 토속적인 정취를 만날 수 있다. 어릴 적 작가는 시골에 살면서 홍시 감으로 배고픔을 달랬다고 한다. 오순도순 정답게 살아왔던 인정어린 고향의 감나무 풍경이 작가에게 그리움으로 남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겠다. 작가는 홍시라는 제재를 통해 자연 속에는 삶의 모범이 되는 실천 덕목이 내재되어 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단순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 따뜻한 훈기를 느끼게 하는 자연의 숨소리와 맥박을 발견해서 깨달음으로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는 차원에서 이 수필은 문학적 가치를 갖는다.
작가에게 있어 고향은 자신의 체취가 배어 있는 곳이다. 고향의 모습은 마을 사람들이 한 식구처럼 느껴졌을 정도로 인정이 넘쳐났던 곳이다. 정겨운 이웃의 영상은 고향이 인간의 영원한 안식처임을 말해 준다. 인간이 돌아가야 할 최후의 장소라는 토포필리아의 정신을 수필에 잘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비록 짧은 기간 머물렀지만 그곳은 운명 지워진 것으로 가득 차 있어, 그것들은 반추해 되새기면 하나같이 그리움의 보석이 되고 별이 된다. 이 같은 사실을 작가는 노계(蘆溪) 조홍시가(早紅柹歌)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이런 강신구 수필의 향토적이고 토속적 분위기는 건강한 생명에의 표식들로서 자연과 인간과 생명, 나아가 존재하는 모든 것에로의 회향을 바라는 작가의 무의식에 내재한 꿈의 그림자 형상들이라 하겠다. 낭만과 순수를 머금고 있는 고향의 감나무에 얽힌 따스한 추억과 분위기를 잊지 않으려는 강 작가의 시골 소환에는 자연 사랑의 정서와 인간 사랑의 정서가 점철되어 있어 주홍색을 나타낸다. 모든 것이 인간의 상관물이요, 인간 자신의 투영일 수밖에 없는 문학의 본질적 속성을 꿰뚫는 작가의식은 그의 수필 속에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으로 승화되고 있다. 인위적이며 인공적인 구조물에 둘러싸여 사는 이 시대적 삶에 비켜서서 고향을 잊지 않고 지켜보면서 홍시를 통해 어머니를 그리워 한 것은 생명에 대한 경외이며 진정한 삶의 원형에 대한 희구를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강신구의 ‘홍시’는 삭막한 도회 생활의 혐오이면서 건강한 삶에 대한 갈구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그는 자연을 간직한 고향이야말로 삶의 마지막 보루이자, 생명의 젖줄이라는 것을 홍시를 예시로 해서 구체화함으로써 이를 문학적으로 잘 표현했다. 수필 <홍시>에는 그리움의 대상으로서 어머니와 고향이야말로 진정한 우리들 영혼의 안식처라는 사실과 또 하나, 자연을 잃어버린 도시인에 대한 연민과 역설적으로는 문명 비판과 자연친화 사상이 담겨있다고 하겠다.
부산수필문학상 작품상은 김길수에게, 작가상은 김용식 수필가에게 돌아갔다. 두 분 모두 훌륭한 인품을 갖춘 분들로 우리 협회에 기여한 바도 크다. 현재와 과거를 매끄럽게 연결시켰으며, 감정을 매만지는 솜씨가 무난했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글로 말하고 인간성으로 평가받는다는 데 부합하는 분들이라 작품상, 작가상을 선정하는 데 있어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의 의견이 있었다. 문학은 한 인간을 무엇보다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수필은 물론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립과 갈등, 소통이 이루어지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바탕이 성숙하지 않은 사회는 이해관계만을 놓고 다투는 사회를 넘어설 수 없다. 그래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 문학이다. 부산수필문학상이 필요한 이유도 그렇다. 문학의 시대가 온 것이다. 문학은 인문학적 가치를 지향한다. 고사 위기에 있는 인문학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인간학인 수필을 발전시키고 고급화해야 할 것이다.
수필은 진솔한 언어의 문학이다. 내밀한 삶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작업은 자기 치유와 성찰을 낳는다. 이는 나를 이해하고, 또 누군가를 이해하며 나아가서 한 시대를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작품상 수상자 김길수 수필가는 부산수필문협, 한국문협, 부산문협, 전국공무원문협 회원으로 금샘문학상(제 3회, 소설 부문), 영호남문학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산문집 「가보지 않은 길」을 펴냈다. 일기에 대한 집착은 문학에 대한 열망을 대변하고 있다. 바쁜 삶의 여정에도 어릴 떼부터 일기를 써왔기에, 일기를 쓸 수 없는 현실에 수상자의 좌절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된다. 그 의지와 절절함이 감동을 주었다. 문학은 예술이기에 ‘품격’과 ‘맛’을 요한다. 창작에 있어서 정해진 어떤 법이라는 것을 굳이 말한다면, 그것은 메시지를 어떤 방법에 의해 미적으로 구체화할 것인가 하는 의미의 조형화다. 문학은 형상과 인식의 복합체라는 측면에서 문학성을 유지해야 한다. 당선작은 이런 기준을 충족함으로써 좋은 평가를 받았다.
모든 작품들이 기본적으로 미적 대상임을 전제할 때, 수필작품 속에서 생성된 미의식을 음미하는 것은 작품해석의 최종적인 단계에 해당된다. 그것은 곧 작가가 주제로 형상화해 낸 정서의 빛깔이자, 심오한 성찰 속에서 획득되는 철학적 울림의 멋과 힘이다. 꾸밈이 없는 내면풍경 보여주기는 수필의 생명이요, 최대의 강점이다. 자신의 과거를 잃고 현재에 묻힐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회상을 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바로 세우는 일이 바로 수필적 생활이다. 이 당선작품은 희미해져가는 기억력과 죽어가는 뇌세포에 대한 아쉬움을 정조준하여 ‘나이듦’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기록하는 것 이상 작가에게 더 큰 의미는 없다. 관통하고 있어 감동을 격조 있게 보여준다.
작가상을 받은 김용식 수필가는 부산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를 취득하고, 2006 가을 새시대문학 신인상 수상으로 문단에 등단한 분이다. 2011년 겨울 새시대문학 작품상 수상했으며, 현재 부산수필문학협회 부회장, 대한노인신문 논설위원, 송계경로대학장, 천사요양교육원 전임교수. 한국자원봉사연합회 이사장. 안나 노인복지시설 안나교회 담임목사로 있다. 삼성그룹에서 36년을 근무했고, 부산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남산정 사회복지관장. 북구자원봉사센터장. 사직동교회 협동목사 등을 역임했다.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은 웰다잉에 필요성을 정서적으로 잘 형상화해서 감동을 주었다,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은 제재를 통해 주제를 겨냥하는 수법도 그렇고, 수필의 특성인 솔직함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긍정적이며 순리를 좇아 살아가려는 인간의 아름다운 꿈을 가능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어 믿음직스럽다. 순수롸 긍정은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웰다잉에 대해 씀으로써 해서 독자에게 인문학적 사유의 세계를 열어준 점이 돋보였다.
가공할 만한 힘 때문에 독자들은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수필을 읽는 것이다. 그리고 감동한다. 벼랑 같이 느껴질 정도의 안타까움이 녹아 든 어구를 적재적소에 놓을 때까지 이들은 감각의 촉수를 갈고 닦았으리라 본다. 파토스, 에토스, 로고스적인 호소 구조의 설득전략에 대한 수상자의 확고한 믿음이 토포필리아적 지향성을 섬세하고 세련된 정서로 담아내는 데 기여했다고 하겠다. 우리 수필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런 가슴 따뜻한 수상자들이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수상자로 선정되는 자체가 영광스러운 일이다. 수상 이후에도 수상자에게 더욱 좋은 일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심사위원장: 권대근
심사위원 : 신영수, 서태수, 송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