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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1963.02.05 (화), 한국 전본부교회
전부 몇 명? 한 삼십 몇 명? 대다수의 여기 모인 사람들은 젊은사람입니다. 30미만의 대다수 사람인데 이 젊은 사람들이라는 것은 씩씩하고 용맹스럽고 혹은 옳지 못한 것을 볼 때는 참지 못합니다. 의분심이 강한 것이 청년 시대의 기질입니다.
청년시절에는 의분심에 불타는 기질을 길러 나가야
이 의분심을 그야말로 잘 쓰면 나라를 살릴 수 있고, 더 멋지게 쓸 수있으면 세계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협회장도 얘기했지만 역사노정의 투쟁시대를 거쳐 올라가 가지고, 전쟁이 나 가지고 싸우는 데 있어서는 나이 많은 사람 가지고는 안 된다 말이예요.
우리 나라가 세우고자 원하는 정의의 주권을 이 천지 앞에 세우기 위해 의분심에 불타 가지고 그 정의의 주권 앞에 그릇된 모든 것이 있거든 그거 참지 못하고 그것을 격파하기 위하여 책임을 지고 제일선에 나설 수 있는 용맹하고 씩씩한 기질이 젊은이의 기질이라는 것입니다.여기는 그런 젊은이들이 모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할 때 혹은 사생활에 있어서, 아까 협회장 이이야기했지만서도 그런 고충은 물론 있어야 되는 것이며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있더라도 그러한 생활적인 것은…. 여러분들이 이제 생활적인 면에 있어서 그런 고충이 있더라도 우리가 여기 모인 목적은 여러분 개인적인 의분심을 기르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 단체적인 의분심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천 사람, 만 사람이 공동 목표를 대신하여 나가는데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사용할 수 있는 의분심을…. 여러분이 가지각색의 개체의 의분심이 있다 하더라도 전부 다 띠둘러 가지고 둥그렇게 만들어 가지고 공적인 의분심에 불탈 수 있는 사나이, 혹은 아낙네로 만들어야 하는 도장이 여기여야 됩니다.
여러분이 올 때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왔을 것입니다. 또 팔도 강산 수많은 곳에서 모여 왔으니만큼 사정도 다르고 풍습도 다르고, 여러 가지 생활감정이 다른 분야가 있겠지만 이거 다 잊어 버려요. 이제 여기서 지도하는 하나의 목표를 중심삼은 한때를 맞이하여 멋진 의분심을 가져 가지고 세계 앞에 호령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 자기 자체를 발견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을 명심해 두기를 바랍니다. 알겠지요? 「예」 부탁이예요.
수련생이 유의해야 할 점
그리고 대개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게 되면, 지금까지의 전례를 봐서 대다수의 수련생들이 와 가지고 3일 기간을 넘기가 힘들어요, 3일 기간. 이 3일 기간 출발하는 때에는 환경도 달라지고 여기에 대하는 모든 사정도 달라져요. 특별히 수련생 여러분들은 본부에 대해서 신망을 갖고 왔을 거예요. '아, 우리 본부에 가게 되면 본부에 있는 분들은 전체 우리 통일교회 이념을 지도하는 사람들이니만큼…' 여러분들이 바라는 기준 이상 될 줄 알고 물론 왔을 거예요. 또, 큰 포부를 갖고 왔을 거예요.
또 큰 포부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수련받기 위해서는 그런 포부가 필요한 거예요. 여러분이 갖고 온 포부, 본부에 대한 신앙심이라든가 혹은 믿는다는 기여심, 이러한 것, 지금까지 갖고 있던 것을 다시 한번 수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다시 한 번 수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본부에 있는 사람이 여러분들에 대해서 반대적인 현상으로 대할지 몰라요. 상충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문제가 있더라도 꾹 참아야 됩니다. 또 어떤 때에는 누구, 선생님이 가끔 누구를 시켜서 반말도 하게 할 거예요. 할아버지 같은 사람 대해서 자기 손자 같은 사람에게 시켜 가지고 반말도 시키고 아주 성내게 하고, 그런 놀음도 가끔 할 거예요. 어느때에 어떤 사람을 통해서 그 사람을 시험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련받는다면 입은 다물어야 됩니다. 입은 다물고 눈은 아래로 내리 뜨고 귀는 덮고…. 눈을 열고 귀를 열고 입을 열 때는 말씀과 혹은 직접적인 지도자와 관계되어 있을 때에 열어야 됩니다. 이러면 무사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들기를 더디하고, 보기를 더디하고 말하기를 더디하면서…. 나 중심삼고 살다가는, 그렇게 나가더라도 나 중심삼고 나가다가는 또 문제 생겨요. 그러니까 나를 잊어버리고 전체를 위해 산다는 관점에서 나가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 선다면 본부의 수많은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수많은 사람들은 수련생을 바라보게 될 때에 그 수련생이 자기를 중심삼은 수련생이 아니요, 공적인 수련생으로서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적인 입장에 서지 않게 될 때는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충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충고할 될 때는 아주 뭐 서리발 같은 충고를 하고, 용서 없는 충고를 해 주어야 됩니다. 또 충고해 주는 사람이나 충고받는 사람이나 공적이라는 그 엄숙한 과제 앞에서는 머리 숙여야 됩니다. 충고할 때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충고하고, 충고를 들을 때에는 자식을 대신하여 들을 줄 아는 여러분이 되겠다는 마음만 갖고 있으면 이 환경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다 넘어가게 되어 있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이젠 왔으니 환경이 다르지만, 여기 본부에 신망을 갖고왔으니 떡 눈에 쌍안경을 끼고 들춰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 풀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다 풀어 놓고…. 이제부터는 전부 다 풀어 놓아야 됩니다. 이제부터 다시 하나 붙여야 할 것은 공적인 기준에 선대중을 위한 나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은 이렇게 나온다 말이예요.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중을 위한 나. 이러한 입장에서 나가면 아무리 어려운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나는 공적인 문제를 책임지고 왔으니 아무리 불편이 있더라도 공적인 뜻을 세우기 위해서는 어려운 것이 있어야지요. 거기에 항의한다면 `이놈!'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견지에서 나가면 지금까지 선생님이 주의 주려고 하는 이런 과정을 후다닥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공적인 기준 중심삼은 나, 그런 견지에 서게 되면…. 공적인 나의 입장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이게 쉬운 것이 아니예요.
공적인 내가 되어야
오늘날 이 대우주를 바라보게 될 때에, 이 대우주에는 완전한 공적인것이 있었느냐 할 때에 대답할 수 있어요? 완전한 공적인 그 무엇이 있었느냐?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내 생활이 그러했으며, 오늘날 시대적인 현실이 그러했으며 혹은 역사적인 과거가 그러했으며, 오늘날 시대적인 현실이 그러했으며 다시 찾아올 미래가 그러할 것이냐?
공적인 것 중에 공적인 것, 그 공은 하늘이 공인하고 땅이 공인하고 만민이 공인하고 과거ㆍ현재ㆍ미래가 공인하는 존재의 수많은 실체들이 영원한 목적의 실체와 같은 그런 공적인 존재라고 인정할 수 있고 또 그 가치에 있어서는 무한한 가치를 대신하고도 남음이 있을 수 있는 공적인 실체라고 공인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었느냐 하면, 그거 없었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공적인 그것이 나타나게 되면 우주는 꽉 찰거예요. 최고의 공적인 것, 만민이 고대한 것, 어느누구나 다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절대적인 공적인 일이나 공적인 사람, 그 공적인 것 가운데에는 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공적인 일이나 공적인 사람이나 공적인 말이나 공적인 시선이나 공적인 희망. 공적인 것에는 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하나 공적인 세계에서 뺄 수 없다는 그런 최고의 공적 기준이 이 천지간에 벌어져야 하는 거예요. 만일에 그것을 채우는 날에는 세상은 자기한테로다 오게 됩니다.
그러한 기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이런 공적인 문제를 논의해 가지고 개인으로서의 교양을 하고, 가정으로서의 교양을 하고,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교양을 하고, 국가면 국가에 있어서 어떤 주권을 중심삼아 정책적인 기준에 있어서의 국민성을 개조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건 다 뭐냐? 나중에는 이 천지간에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공적인 것에, 그건 다 들어간다 말이예요. 이걸 남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대우주의 공적인 그것과 아까 말하던 공적인 누구? 나. 문제는 여기에 부딪치는 거예요. 공적인 그것과 나. 이러한 문제에 부딪친다 말이예요.
그러면 공적 기준을 세울 줄 모르는 사람은 나를 완전히 찾지 못하는 거예요. 나를 완전히 찾아 자기의 생활 기준 앞에 세우지 못하는 사람은 공적인 세계와 공적인 역사와 공적인 이념과는 관계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그 무엇과 `나'라는 것이 문제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기준 앞에 내가 흡수되어야 할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기준에서, 공적인 기준에서 여러분 자신을 세우는 입장에 서고 넘어가 주길 부탁드려요.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3일날, 3일 고개를 넘기 힘들어요. 요 3일 고개만 딱 넘고 나면…. 사흘동안은 복잡하단 말이예요. 그다음에는 일주일 동안, 일주일 동안. 일주일의 고비가 넘어가야 되는 거예요. 일주일쯤 돼야 공부하는 기분 나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 그거 지나가게 되면 2주일 동안, 한 2주일쯤 돼야…. 그다음에는 3주일, 한 20일 지나야 여러분이 본 궤도에 올라간다는 거예요. 더우기나 이번에 여기 온 사람 가운데는 새로 온 사람이 한 3분의 1가량 되는 모양인데, 3분의 1, 이런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여기의 이 환경을 수습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지장을 가져오리라 봅니다. 그러니만큼 여기에서의 지도위원들과 여러분은 혼연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명령함에 여러분은 응하고, 지도위원들은 이들의 모든 부족한 것을 청산하여서 옳은 면을 세워 나갈 수 있게끔 혼연일체가 되어서 이번 40일 수련을 잘 움직여 주기를 부탁한다 말이예요. 대강 알겠지요? 「예」 또 지도위원들 대강 알겠지요? 「예」
생활 속에서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갈 줄 알아야
그러면 이제부터 선생님이 말씀할 것은 무엇이냐? 여러분 자신 이렇게 말하면 누구예요? 나라는 말이예요, 나. 거기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자, 여기 생각하는 청년이 있다 하자구요, 생각하는 . 아, 요거 말하기 전에 한마디만 더 하자구요. 여러분들 이제 내일부터 물이, 지금 물이 없다 말이예요. 물이 안 나와요. 이제 2층에서 물 걱정하다 내려왔는 데 대번에 부닥쳐야 하는 것이 생활환경이…. 내일부터는 세수도 못 한다 말이예요. 요 한마디 다시 첨부하고 넘어가자구요. 선생님은 이런 생각하는 거예요. 이런 생각을 했고, 이럴 생활을 한 때가있었어요.
사람이 제일 참기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 뭐 노동하고 매맞는 것도 참아요. 그러면 뭣이 제일 어려울 것 같아요? 제일 참기 어려운 것? 한 번 얘기 해 보자구요. 「배고프고 잠오는 것입니다」 배고프고 잠 오는 것. 제일 힘든 것이 뭐냐 하면, 물론 잠 오는 것도 그래요. 제일 힘든것은, 그 중에 배고픈 것. 배고프고 그다음엔 목마를 때 물 없는 것입니다, 제일 힘든 것이….
여러분들은 그저 어디가든지 가다가 고개만 숙이면 그저 강물이라도 벌꺼덕벌꺼덕 마실 수 있는 환경에 사니 그 환경은 천지간 어디에도차 있기 때문에 그건 염두에도 두질 않는 거예요. 그건 응당히 내 것으로 되어 있지요. 여러분 대개, 사람들이 대개 말하기를 `빵을 위해 산다' 이렇게 말하지요? 천만에. 빵은 간단한 거예요. 빵보다도 물을 안먹으면 더 빨리 죽는 거예요. 물 안 먹는 게 문제예요. 사람이 7할, 4분의 3이 물로 되어 있다 말이예요. 목마를 때 물 안 먹으면 이거 배고픈 것 이상이예요. 그런 생활 모를 거예요.
감옥 생활 같은 거 해보면 참 거 배도 고프지만, 배고픈 가운데 목이 말라 보란 말이예요. 한 덩이밖에 없는 밥하고 물하고 바꿔 먹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젊은이들이 알아야 할 것은, 배고플 때에 알아야 할 것은 `아, 배고플 때에 먹을 것이 하나 있구나. 물이 있구나' 하는 거예요. 여러분, 금식을 해도 그냥 하면 오래 못 가지만 물만 먹으면 40일도 넘어갈 수 있는 거예요.
그래, 배고플 때에 생각해야 할 것은 나에게 감사한 한 가지 소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무엇이냐? 어디 가든지 배고플 때에 물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사람은 무엇이든 감사한 것을, 내 생활에 있어서의 감사한 그 무엇을 하나 가질 줄 알아야 됩니다.
또 배고프고 목마를 때, `아이구 나 죽네!' 할 때도 감사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알아야 됩니다. 이거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배는 고프지, 목은 마르지, 그럼 난 죽느냐? 안 죽는 다 이거예요.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이 나에게 한 가지 있나니 뭐예요? 콧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뭐예요? 「공기요」알겠어요? 여러분들은 그걸 갖고 있어요. 그거라구요.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이 누구냐? 제일 필요한 것을 빼앗아 가는 사람이 제일 악한 사람입니다. 제일 선한 것이 무엇이냐? 제일 어려운 때에 있어서의, 그 어려운 때에 제일 좋을 수 있는 것을 갖다 주는 것이 선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내 생명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제일 긴박하고 제일 절박한 것이 무엇이냐? 물보다도 더, 밥보다도 더 절박한 것? 무엇이? 「공기입니다」공기. 고차적인 이런 음식을 이 우주 간에 충만하게 나를 위하여 준비한 내 무한한 양식이니 고맙다 이거예요.
나에게 이 원수들이 밥을 안 주고 물을 안 주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공기까지 안 주는 날에는 큰일이구나, 이렇게 생각할 때에 한가지 감사의 여유를 갖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공기를 들여 마셔 보라는 말이예요, 얼마나 맛있나.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 수련생들 대해서 밥 안 먹이고, 물 안 먹이고…. 아, 이녀석들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 하면 또 섭섭해할지 모르지만, 나이 많은 양반도 있지만서도 그것 다 평균이예요. 평균으로 취급하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섭섭하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예요, 이건. 그러한 공적인 공약 밑에서 얘기하는 거예요. `아, 뭐 밥도 안 주고…' 밥 안 먹이고, 물 안 먹이고 하는 것까지 수련입니다.
구멍을 몇 개 파 가지고 있는 힘을 다해서 들이쉬어야 겨우 살 수 있게끔 공기 구멍을 딱 만들어 놓고 갖다 넣어 보란 이거예요. 아주 한번 그렇게 만들어 훈련을 시켜 가지고 거기에서도 참고, 거기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그 무엇…. 죽음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생명, 죽음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생명이다 이거예요.
거기는 공기가 문제가 아니예요. 공기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 천하의 고통이 침범할 수 없는 생명력…. 그런 자리에 있어서도 감사할 수 있는 한 가지를 가질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천하에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못 하는 것이 없는 거예요. 손을 들어 밀어 대면 세계가, 천하가 다 휘말려 들어가는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에게 밥이 있어요? 밥 있어요? 밥 있으면 감사해라 이거예요. 여기에는 물도 있고…. 공기도 있어요. 밥이 있으면…. 물이 있어요? 또 공기가 있어요? 공기하고 밥하고 바꿔? 아니예요. 물하고 밥하고 바꿔? 아니예요. 이렇게 생각할 때에 우리들은 부자다 이거예요. 그것만 있어요? 태양 빛도 갖고 있거든요.
제일 귀한 것은 싸구려야, 여러분들이 그렇게 안다 말이예요. 제일 귀한 것은 싸구려다 이거예요. 그것을 싸구려 알았던 이 녀석들이니 이건 악한 녀석들이예요. 여러분들 물 한 모금 먹을 때 고맙게 생각했어요? 누구한테 그거 감사해 봤어요?
여기 나이 많은 아저씨들도 왔지만 40평생, 50평생, 60평생 중심삼은 동안에 내 물 한 모금 마셨다고 `물님 고맙습니다' 공기면 `공기님 고맙습니다' `태양이면 빛님 고맙습니다' 그래 봤어요? 제일 귀한 것을 무가치하게 취급하는 사람은 파괴 분자로서 이 사회에서나 어떤 공적인 세계에 있어서 존재의 가치를 지니게끔 떡 존재시킬 수 없는 거예요. 그런 물건들이라면 그 물건들은 악한 놈들이예요. 악한 놈들이예요. 그래 여러분들 그랬어요? 못 그랬으니 수련받아야지요.
제일로 귀한 것은 태양 빛입니다. 빛만 없애게 되면 이 모든 만물은 죽어 버려요. 뭐가 있든, 공기가 있든 다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태양빛을 고맙게 생각했나요, 물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했나요, 공기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했나요? 내 언젠가 한번 이렇게 얘기했지만, 이런 햇빛님이, `야 동맹 파업하자, 인간들이 악하니까. 난 아침 햇빛을 안 발하겠다' 하면 다 죽는 거예요.
또 물님이 `아 전부 다 나는 인간하고 관계없다' 하고 동맹파업 딱 할 때는 죽는 거예요. 그렇지요? 또 쌀님들이…. 그러면 빚지고 사는 거예요. 빚지고 살면서도 고맙게 못 사는 것이 이게 사람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을, 귀한 것을 함부로 천대하는 것은 악한 놈들이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런 것을 전부 다…. 지금까지 그랬으니 이제부터 그러지 않기 위해서 온 거라 말이예요. 그렇지요? 「예」 응? 「예」 그렇기 때문에 내일부터 물이 없을지 몰라요. 선생님도 감옥에 살 때는 물 한 모금 주면 물 한 모금으로 세수 했습니다. 아주 귀한 멋진 것! 한번 해보라구요. 얼마나 좋은가. 아주 얼마나 좋은가.
물 한 방울을 천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데서 물 한 모금을 받아 가지고 세수한다면 금 대야에다 적당히 온도 맞추어 가지고 따뜻하게 세수하는 것보다 더 귀한 거예요. 한 모금이…. 저 부엌에서는 물이 없지요? 내일은, 이제 세수…. 그거 본부에서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예요. 서울시에서 그런 사고가 생겨나서 지금 그렇게 됐으니, 나중에 물을 많이 떠 가지고 바께스로 주고, 그렇게 못 할 거예요.
그걸 볼 때 `이 녀석들 잘 되었다. 수련 첫날부터 물 한모금씩 줘 가지고…' 하는 생각도 하는 겁니다. 앞으로, 내일을 하루에 물 한 그릇도 안 줄지 모르지요. 이래 가지고 국, 찌개도 못 할지 몰라요. 그러면 이제 뭐 소금좀 달랠지 모르지. 물 안 들어가는 걸로 해야지요. 그러니 그러한 고충이 있을지 모를 테니까 여러분이 이런 생활에 있어서, 사람이 사는 생활에서는 한 가지, 자기의 환경을 넘어갈 수 있는 감사의 그 무엇을 발견하고 갈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수련하는 거예요, 수련. 그렇기 때문에 그건 첨부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자, 이제부터 얘기해 보자구요. 무엇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그랬나요? 「나에 대하여」아, 김 서방, 박 서방? 무슨 서방? 내 서방. 자기. 김가면 김가, 박가면 박가, 이가면 이가. 여기 선 선생님처럼 문가면 문가.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얘기해 보자구요.
상대를 위해 우주의 모든 존재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사람을 딱 바라보면 이목구비가 갖추어진 체구의 모양에 있어서는 종류는 다 같습니다. 눈 둘, 코 둘, 같지요? 입 하나, 귀 둘, 손발 열. 체구는 같은 종류란 말이예요. 눈 종류, 코 종류, 귀 종류, 입 종류, 팔종류, 다리 종류. 같은데 그 내용에 있어서는 천태만상이예요. 요 사람도 다르고, 고 사람도 다르고.
그러니까 그렇게 천태만상이니, 가짓수는 마찬가지인데 그 내용은 천태만상으로 벌어져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의 외형이 천만 가지로 벌어지니만큼 내형도 천만 가지고 되어 있어요.
그러면 이러한 수많은 인간이면 인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기준을 잡느냐? 생각해 봤어요? 선생님이 뭐하러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요? `아이구, 아담 해와고 무엇이고 다 귀찮아. 뭐 인류고 무엇이고 다 이 나라 뭣이고 다 귀찮아! 이러지요? 나의 조상이 어떻게 됐을 것이냐?'하고 말이예요. 그래 생각해 봤어요, 여러분들? 생각 안 해봤나요?
내가 아버지든 뭣이든, 그거 다 귀찮거든요. 내가 천지간에 딱 눈을 뜨다 보니, 내가 처음으로 눈 뜬 사람이다 이거예요. 입을 벌리다 보니 좋은 소리는 안 냈겠지요. `빽' 하고 우는 데에는 나쁜 소리 울었을 거예요. 울다 보니 내가 처음이예요. 보다 보니, 움직이다 보니…. 천지간에 내가 처음으로 활동했으면 어떻게 됐을 것이냐? 여러분들 그런 것 생각해 보라구요. 어떻게 됐을 것이냐? 어떻게 돼 있을 것이냐?
어디, 바닷가를 찾아갔을 것이냐, 산을 찾아갔을 것이냐? 그저 또, 물론 자연에 대해선 그렇게 대한다 하고. 이 세계를 , 이 찬란한 모든 이 천지를 바라보게 될 때에 이 천지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 이놈들아!' 하고 호령했을 것이냐, 무서워했을 것이냐? 이와 같이 복잡하고도 아주 진지한 사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럼 그러한 것 다 제쳐 놓고 나만 남았을 때에 `나'라는 것은, `나'라는 명사를 세울 때에…. 나라는 것은 벌써 상대적이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나'라는 것이 상대적이예요, 아니예요? 「상대적입니다」 반드시 상대를 세워 놓고 `나'라고 합니다. 천지를 창조한 어떤 창조주가 이땅에 계시다 하면, 창조주가 있다면 그 창조주가 내가 하나님이다! 하려면 어떤 상대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것이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이 움직이는 것은 상대 때문에, 눈이 보는 것도 상대때문에, 팔이, 다리가 움직이는 것도 상대 때문에. 다 분야 분야 그 어떤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안 그래요? 그런가,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그건 부정 못할 거예요. 상대를 필요로 하여 모든 이 체구의 종류들이 지금 떡 분별되어 있는 거예요.
이 분별되어 있는 종류들이 통합하여야…. 혼자밖에 없을 때에는 `나'라는 명사는 무엇인지 모르지요. 이것이 실체가 되기 위해서는 , 이런 종류들이 합해 가지고 이것이 하나의 실체로서 서기 위해서는 이 종류들의 어떤 상대가 있어야 됩니다. 상대가 없어 가지고는 존재 가치가 없어집니다. 안 그래요?
손이 하나 있으면 뭐하느냐 이거예요. 암만 있으면 뭘하느냐 말이예요. 반드시 상대적인 어떤 대상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상대로 하고 움직이게 될 때에 거기에서 좋으니, 나쁘니 가치를 논하게 됩니다. 그렇지요? 알겠어요? 「예」 그것이 나를 중심삼고 현재에 되어지는 환경적인 조건을 부정하지 못할 거예요. 나를 들고 나오기 전에 천지 가운데 내가 먼저 나왔느냐? 가만히 생각해 봐요. 이게 또 무궁무진 하거든요.
나는 어디서부터, 어디서부터 나왔느냐? 개구리 새끼서부터? 어디서부터 나왔느냐? 부모가 없을 거예요, 나만 있는 맨 처음엔. 나라는 명사는 존재치 않아요. 그 무엇인지 모르지만 있긴 있어요. 이것이 어디서 나오느냐? 다시 생각할 때는 그게 미지의 것일 것입니다. 미지의 것일 거예요. 미지의 것일 것인데 내가 나왔어요.
나왔으면 내가 원해서 나왔느냐? 목적을 둔 감정을 세워서 나왔느냐? 아무것도 없어요. 모른다 말이예요. 뭐 있나? 내가 원한 것도 아니요, 어떤 감정적인, 목적적인 무엇을 필요로 해서 나온 것도 아닙니다.
이런 걸 볼 때에 이 만유의 존재가 반드시 개체의 진리의 실체로서 나타나기 위해서는 상대적인 기준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원칙을 부정 못 할진대, 내가 있기 위한 상대의 주체는 어디 갔을 것이냐? 이런 것을 또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주체가 있어야 할 터인데, 내 자신이 상대의 주체가 되고 상대체가 될 수 있느냐 할 때에 그것 가지고는 만족하지 않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그런 견지에서 보게 될 때에 어떤 관계의 결실체로, 관계의 내용을 통하여, 어떤 관계와 혹은 어떤 인연의 내용을 통하여 현실의 목적의 결과로서, 혹은 대상체로서 있어야 할 내 입장을 긍정할진대는 여기에 있어서의 내 배후의 동기적인, 내용적인 모든 조건은 어떤 것이냐? 이것이 지금, 인간이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입니다. 생명의 근본문제가 거기에 부딪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동기적인 주체인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존재가 되어야 할 인간
과거, 과거. 과거 없는 현실, 과거 없는 오늘날 실존체는 존재의 가치가 없어요.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훌륭하게 살았다 하더라도 과거가 없는 사실이 과거의 내 자신을 중심삼고 입증된 사실과 그리고 현실적인 모든 환경의 가치를 논의할 수 있는 무엇을 남기지 못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예요.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입니다. 무가치한 겁니다.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내가 있기 위해서는 전후가 있어야 돼요. 그렇지요? 응? 「예」전후가 있어야 되고, 좌우가 있어야 되고, 상하가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몰랐지만 반드시 전후가 있다는 거예요. 좌우관계가 있고 상하관계가 있다 이거예요.
그러면 내 주위에는 , 지금까지 얘기했던 것과 같이 내가 대상 실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동기적인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 동기적인 주체가 무엇이냐? 이것을 놓고 인간들이 답답한 명사로 풀이를 하다 보니, 있긴 있는데 부정할 수 없으니 그걸 갖다 붙이는 명사가 뭐냐 하면 하나님이니 갓(God;하나님) 이니 뭐 가미사마(かみさま;하나님)니 여러가지예요. 즉,수많은 인간들이 부르짖는 대명사를 갖고 있는 그 실체가 되어 버렸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이것도 명사로 치면 명사는 명사인데, 있긴 있는 데 내용은 미지수예요.
이것을 우리 인간이 처음으로 놓고 그다음에, 그다음에 내 실체를 공인시켜 놓고, 그다음에 무엇인지 모르지만 내가 가야 할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지금 나가고 있는데,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나가는데 지금까지 교양이나 수련이나 모든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데는 인간 위주로 한 목적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까지 나온 것이 아니예요. 지금까지의 역사는 신과 인간, 이렇게 나온 거예요.
지금에 와서는 인본주의 사회로 들어와 가지고 지금까지 나아가고 있지만 결국은 또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주의가 뭐냐 하면, 하나는 신이 있다는 것, 하나는 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형태를 거쳐 가지고 두 갈래로 이렇게 되어 있지만 결국에 가서는 오늘날 인간이 참다운 소망으로 할 수 있는 그 이상세계, 내가 무엇인지 모르고 과거의 어떤 본체 앞에 현실의 내 자신을 세워 놓고 미래적인 어떤 목적을 세워야 돼요. 나라는 것은 반드시 대상적인 어떤 목적이 있어야 됩니다.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보게 될 때에 여기에서 그 목적은 인간 위주로 한, 나 위주로 한 목적은 성사할 수 없다는 거예요. 왜?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역사적인 반응이 될 수 있는 주인의 입장에 설 수 있는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이 하늘이 중심삼고 그다음에는 인간 나를 중심삼되 나'라는 그 `나'는 육을 중심삼은 `나'가 아니예요.
이러한 배후에 이 천적인 하늘이면 하늘, 하나님이면 하나님을 배경으로 할 수 있는 그 상대적인 제1 기준이 몸뚱이가 아니고 마음입니다. 양심을 중심삼고 너 양심은 하늘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 하늘은 변치 않는 이런 법도권 내의 주체입니다. 그러니 그 주체권 내에 속하여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변하는 자체가 아니예요.
인간 앞에 변하지 않는 자체를 찾아보게 될 때에 몸뚱이가 아니고, 눈이 아니고, 귀가 아니고, 코가 아니고 팔이 아니예요. 그렇지만 사람 앞에 하나의 변치 않는 그 무엇이 있느냐 할 때에 그것이 있단다면 무엇이냐? 무엇이예요? 양심이예요.
그러면 하늘이 있다 한다면 하늘은 반드시 양심의 다리를 놓아 가지고, 과거의 우리 선조로부터 다리를 놓기 시작하여 오늘까지 세계의 다리를 놓아 가지고, 어떤 절대적인 이 주체의 본체가 인간에게 다리를 놓아 가지고 절대적인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가야 할 그런 뜻이 있을 것이다 하는 생각할 수있다는 거예요. 뜻이 무엇이냐? 신의 목적이예요. 오늘날 우리 원리로 말하면 창조목적이예요. 창조의 뜻이예요. 뜻을 세워야만 목적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렇지요? 뜻을 세워야만, 뜻을 세워서 나가야…. 뜻을 세우는 데에는 무엇으로 세우느냐? 생활적인 하루에 세워야 됩니다. 하루에 세우는 동시에 한 시간에 세워야 되고 일초, 더 작은 몇백 분의 일초 순간에 뜻을 세울 수 있는 실적을 쌓는 자 아니고는 그 목적의 세계로 갈 수 없다 하는 거예요. 알겠나요? 「예」 그런 입장에 선 나예요.
그러면 나라는 존재는 어떤 입장에 섰느냐? 중간 위치에 놓여 있어요. 알겠어요? 「예」 나라는 것이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해 혼돈 상태에 처한 현실
자, 그러면 이제 하나님이 뺨을 `이 자식아!' 하면서 친다면`왜 그래? ' 하는 마음이 있어요, 없어요? 맘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아, 솔직히 이야기해요. 「있습니다」 그거 있고 말고. 어, 속이 벌렁벌렁 가슴까지도 막 홍두깨질하지요. 있고 말고요. 내 팔다리도 부들부들 떨고….
그렇지만 들이치는 데 내가 잘되고 내가 훌륭하게 되기 바라서 친다면, 어떠한 치는 사람이 있는데 백 퍼센트 이 사람이 진정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친다면, 사랑하는 부모가 있어 가지고 아들을 들이 팰 때에 `이런 것은 아, 나를 잘되게 하기 위함이고, 나를 귀하게 만들기 위함이고, 나를 더 훌륭하게 만들기 위함이고, 나를 더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함이고, 나를 더 세계적인 뜻을 품고 세계적인 목적을 지닐 수 있는 단계로 올리는 위함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배후에 그러한 크나큰 의미를 갖고 있는 거예요.
배후의 크나큰 복의 기관을 혹은 복의 가치의 문제를 갖다 주기 위해서 친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매맞으면서도 어떻해야 돼요? 그래야 되겠어요? 내가 매맞는 아픔보다도 천배, 만배 더 클 수 있는 복의 가치를 갖다 주는 것만 알게 되면 매맞고도 감사할 거예요. 그럴 수 있는 소질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소질 없는 사람은 내일 아침에 보따리 싸 가지고 가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옛말에 미운 자식에게는 뭘 더 준다구요? 「밥을 더 줍니다」 미운 자식에게는? 「떡입니다」 떡 한 개 더 준다 이거예요. 떡 한개. `옛다 먹어라 이놈아!' 그건 빨리 망하라는 거예요. 고운 자식에게는…. 옛말에도 그런 말 있지만 말이예요. 이게 왜 이렇게 되느냐 이거예요.
채찍을 들이 치는데는 , 불의의 부모 앞에 맞게 될 때는 항거를 해도 천법에 어긋나지 않아요. 불효해야 돼요. 오늘날 역사종말시대에 있어서는 전부 다 효자 효녀의 도리가 다 깨져 나갔어요. 다 깨져 나갔어요. 다 깨져 나가야 됩니다. 선생님 그렇게 생각해요. 다 깨져 나가라 이거예요. 다 깨져 나가라 이거예요. 부모가 부모 같은 것이 없어요, 자식을 위해서 채찍을 들어 치더라도.
`이 자식아. 너, 내 밥을 안 벌어다 먹였지? ' 그런 것이 아니예요. 그건 벌써 천도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가정이 산산이 다 깨지고 사회의 우리 모두의 취미가 전부 다 파괴되어 나가는 것은 인간이 그렇게 보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역사적인 환경이 그렇게 되는 것인데 그렇게 되는 데에는 자동적으로 될 수 없어요. 인간이 미처 이해 못할 어떤 동기의 이면의 세계에서 반응이 돼 가지고 현실에 나타난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산이 전부 다 부서져 나가는 것입니다. 다 그렇지요?
참다운 것이 무엇이냐? 옳은 것이 무엇이냐? 선이 무엇이냐? 힘이 정의지. 거 한마디면 다 되느냐 말이예요. 힘이라는 것은 영구한 것이 아니예요. 참이라는 것은 채찍을 들어 치더라도, 맞고 나서도 고마운 거예요. 불의라는 것은 먹이고 나서도, 먹고 나서도 분한 것입니다. 그런 거 더러 느껴 봤어요? 어떤 녀석이 나에게 뭘 사 줘서 받았는데 알고 보니 불의의 것이예요. 내가 정당한 길을 가야 하고 내 본심의 양심 생활, 이런 이론적인 자아 인격을 구성해서 나가려고 하는데 어느 누가 살인 강도한 그것으로 아주 뭐 진수성찬 잘 베풀어서 줬다 이거예요. 그걸 먹고 `잘 먹었소!' 한다구요. 잘 먹고 대답한다 이거예요. 그 꼴이 얼마나 불의한 것이냐 이거예요. 먹고는 분함을 못 참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사회를 보게 될 때에 참 같은 것이 참인지, 참아닌 것이 참인지 알 수가 없어요. 어머니 아버지의 명사는 네 어머니 아버지나 내 어머니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어머니 아버지나 증조 할아버지의 어머니 아버지나 명사는 마찬가지인데 환경은 달라진다는 거예요. 여기에는 시간과 거리가 달라진다는 거예요. 달라지니 그 어머니라는 명사도 달라져 나와요. 그러니 오늘날 지금까지 모두 가정적으로 전부 다 깨져 나가요. 사회적인 명사나 모든 것. 옛날에 주권자였던 뭐든 전부 다 힘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마음을 중심삼고 잘못된 현실을 잘라 버리는 용단을 내려야
자, 이러한 어떤 흐름이 나를 동반하여 흘러 나가는데, 어떤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가야 할 것이 필연적인 도상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현실에 처해 있는 입장에서 가려고 보니, 앞을 바라보니 갈 수 있는 목적의 세계는 어디 갔는지 없다 이거예요. 뒤를 돌아보니 동기적인 실체는 어디 갔으며, 이러니, 앞이 막혀 있고 뒤가 막혀 있으니 거기에 고립된 자신을 걸어서 탄식하는 탄식의 아우성 소리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소리가 마을을 지나, 사회를 지나 국가를 넘어 세계에 파동 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는 최후의 종착지를 향하여 급행 열차의 달리는 속도 이상의 빠른 속력으로서 내 운명을 끌고 몰아쳐 들어가는 이 사망의 물결이 내 꼬리를 물고, 내 옷자락과 내 몸뚱이와 내 다리를 당겨 매 가지고 뜰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이 한 손가락에 달린, 여기에 생명줄이 걸려 전후 좌우로 피해 가면 죽는다는, 최후의 끝에 와 있다는 것을 온 세계 인류 전부 다 느낄 수 있는 시대적환경에, 시대적인 환경이라기보다 시대적인 찰나에 처해 있다 이거예요. 자, 이런 환경에서 이제는 가정이 파멸입니다. 돌아서려니 돌아설 힘이 없어요.
그러면 이 사회에서 쭉 가다가 바른쪽으로 빠지든가, 왼쪽으로 빠지든가 도피해야 할 이런 방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어느누구나 부르짓고 있고, 어느누구나 심각한 입장에서 찾고 있는데 가야 할 길, 돌아갈 수 있는 길, 혹은 좌우 길을 피할 수 있는 피난 길은 어디 있을 것이냐 이거예요.
여기에서 손을 붙들고 몸으로 동댕이를 치고 있는 현상이 오늘날 세계 30억 인류의 현상이요, 여기에 모인 과거의 여러분의 현상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시간에도 여러분은 그런 현상을 피하기 위해서 여기에 찾아온 것입니다. 도피하고, 전후로 피해 갈 수 있는 그런 구명을 찾기 위해서 왔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그러한 입장에서의 나다 이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문제는 여기 있어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여기서? 하나를 잘라 버려라, 잘라 버려라는 것입니다. 대가리가 장애가 되면 대가리를 잘라 버려라 이거예요. 팔이 있어 장애가 된다면 잘라버려라 이거예요. 가정에 있어 장애가 된다면 잘라 버려라 이거예요. 청산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이러한 사망의 물결이 휘몰아치는 여기에서 급류로서 끝내 버리자는 것입니다. 나이아가라 목포와 같이 떨어져야 할 이런 운명이 다가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어떻게 할 것이냐 이거예요. `물이 다 없어진다. 어서 가자' 덩치 크게 해 가지고 가운데 골수부터 전부 다 자꾸 벗겨져 나야 된다 이거예요. 가장자리로 가장자리로 붙어라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생활에 있어서 정성들이는 입장에서 모든 걸 갖추어가지고 흘러가는 모든 사조 앞에 다 부러워할 수 있는 주체적인 사조의 입장에 서지 말 것! 뭘할 것이냐? 곁길로 살아라 이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다리를 놔라 이거예요. 용단을 내려라 그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가던 길을 돌이켜라 이거예요.
용단을 내릴래야 내릴 수 없고,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 없으니 여기에서 한 가지 비법을 찾는 최후의 방법이 있으니 곁길로 가자 이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다 말이예요, 곁길로 가자. 나는 주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곁길로 가자 이거예요, 소용돌이치면서 가장자리로 가장자리로 흘러 내려간다는 말이예요. 이러한 위치에 가 가지고…. 그것이 뭐냐 하면, 오늘날 이 사회적인 발전도상에, 역사적인 발전도상에 있어서 그러한 유에 속하는 무리들이 무슨 무리냐 하면 세상에서 몸뚱이를 딛고 장단 맞추어 가지고 `에라, 먹고 살자. 에라, 좋구나' 춤추는 무리들이 아니예요. `너희들이야 흘러가겠으면 흘러가라. 내, 곁길로 간다' 이런 길을 찾아오는 그러한 무리들이 있나니 그 무리들이 뭐냐 하면 인륜 도덕을 논의하고 선의 이념을 추구하면서 하나님을 숭상하는 무리들인 거예요. 이런 무리들이 반드시 역사 도상에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길이 뭐냐 하면 종교 패들이예요, 종교 패들. 이건 비현실적이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곁길로 보내야 되겠다 이거예요. 곁길로 가야 돼요. 가려니 용단을 내려서 이걸 쳐부수고, 이것을 전부 다 박차고 밀어 낼 수 있는 내 능력이 없고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이런 비결을 모르니 할수없이, 할수없이 곁길로 가는 거예요. 곁길로 가려니 공부해야 돼요. 전부 다 두 갈래 길이니 거기서 산중 수도하고….
에미 애비도 다 몰라보는 거예요, 도의 길 가는 사람들은. 자기 처자도 다 몰라 보는 거예요. 다 잘라요. 맨 나중에는 자기 살점도 다 잘라 버리는 거예요. 이놈 팔이 그러면 팔을 잘라 버리는 거예요. 팔이 원수면 팔 잘라 버리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다 껍데기 벗겨 가 가지고 무엇? 마음이 쉴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얼마나 바쁘냐 이거예요. 가만 있어도 바쁘단 말이예요. 우리 6. 25동란 이후에 한국 백성이 얼마나 많이 걱정해요? 다 벌거숭이가 되고 깡그리 다 먹지 않고 입지 않고 마음이 편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거예요. 편할 수 있는 것은 뭐냐? 그 급류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제일 행복한 거예요.
사망의 도상에서 아브라함이 말이지요, 소돔과 고모라성을 하늘이 심판하는 데에는 불벼락을 내릴 것을 알아 가지고 야단 도망가게 될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곁길로 뺀 거예요.
부패한 환경을 수습할 수 있는 종교지도자를 믿고 따라가야
이런 놀음을 하라고 오늘날…. 그 어떤 주인이 있다고 하면 그 주인의 목적이 이루어지게 되는 그런 과정적인 도상에 있어서는 시대시대를 따라서 그러한 상충된 면에 반드시 부딪치면서 거기에서 후퇴한다는 거예요. 앞으로 도피 작전시키는 이 방법을 오늘 인간 앞에 암암리에 제시해 주는 이런 일이 있어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한 길이 역사를 통해서 있었느냐 할 때, 이것이 도(道) 라는 거예요. 이런 도, 이런 종교라는 명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인간으로 하여금 도피라는 방법의 내용을 설명하는 형태가 있나니, 오늘날 역사과정에 있어서 필연코 우리 인간의 더불어 배후에서 섭리하여 인간을 도피시키는 하나의 방편을 세우는 어떤 나 이상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런 분이 하나님인 거예요. `아하, 하나님이 그렇게 됐구나!' 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시대든지 위기에 봉착하면 봉착할수록 예언자가 오는 거예요. 시대 시대에 반드시 거기에는 지도자가 오는 거예요. 부패의 일로에 종말되는 것이 아니라 부패의 자리에서 개혁을 해야 돼요. 혁명을 일으켜 새로운 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길에서 자꾸 곁길로 나오는 거예요. 오늘날도 자유당때보다 곁길로 나오지요. 하나님도 막을 수 없어요. 주류가 얼마나 세냐 이거예요. 자꾸 끌어당기지만 나가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곁길로 가 가지고 딱 붙들고, '홍수가 나더라도 못 끌어간다'해야 됩니다. 거기에서 비로소 흘러가던 그 입장으로부터 사방을 수습해 가지고 이념을 잡고 나오자 하는 것이 종교 이념이예요.
그리하여 종교 이념을 중심삼고 최후의 인류들은…. 인류 역사상에 있어서 세계적인 지도자가 나와야 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오늘날 이러한 이념권 내에 분열된 입장에 있어서 자기 개체의 신념을 세워 놓고 그 환경적인 입장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거기에 침범을 받지 아니하고 그환경을 수습할 수 있는 이념적인 종교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세계적인 그 이념적 입장에 있어서 만민이 흘러가는 객류의 도상에서 도피하여 내가 비로소 천주와 더불어 하나의 목적적인 대상의 실체가 되어 가지고 거기에서 나의 가치를 세운 후 많은 실적의 도리를 세워 가지고 만우주 앞에 새로이 나타날 수 있는 존재를 반드시 하늘이 필요로 하는 거예요. 거기에서 필요한 존재가 누구냐 하면 종교적인 세계적 지도자예요. 그러한 분이 뭐냐 하면 메시아요, 그러한 사상이 메시아사상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알거예요, 대개.
보라구요. 이제 그렇다면 하나님이 있는 걸 알았지요? 그런 인연이 역사도상에 있는 걸 알았지요? 그런 인연이 역사도상에 있어야, 어떤 문화 역사로서의 세계사 가운데 그러한 움직임이 있어야 신의 실존을 부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신의 실존을 부정할 수 없으면 신이 요구하는 사람이 반드시 나와야 되는데 그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되느냐?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되느냐 하면 인간 전체가 내 대신 중심체라고 바랄 수 있는 분이어야 돼요. 내가 그분만 잡으면 과거를 알 수 있고 그분만 잡으면 현실을 알 수 있고 그분만 잡으면 미래를 알 수 있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분만 잡으면 상를 알 수 있고 그분만 잡으면 하를 알 수 있고 그분만 잡으면 좌우를 알 수 있어요. 그거예요, 그거.
하나님의 창조의 동기는 선이나 인간 출발의 동기는 악
'나'라는 것인 상대적인 인연 가운데서 벗어나서는 안 되는 거예요. 내가 벗어나게 되면 주체도, 나를 중심삼은 절대적 주체가 되어야 할 그 주체도 나로 말미암아 무가치하게 되는 거예요.
이런 견지에서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도 오늘날 동기와 결과의 그런 세계를 향하여 섭리하시는데, 여기에선 이건 몰락적이예요. 전부 다 이 세계는 원치 않아요. 여기는 기쁨이 아니예요. 기쁨이예요? 기쁨이 아니예요, 슬픔이예요.
인간시조가 생겨난 그날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부부가 기쁨의 부부가 아니예요. 기쁨의 부부가 아니기 때문에 기쁨의 가정이 아니요, 기쁨의 가정이 아니니 기쁨의 사회가 아니요, 기쁨의 사회가 아니니 기쁨의 국가가 아니요, 기쁨의 국가가 아니니 기쁨의 세계가 아니예요. 기쁨의 세계가 아니니 기쁨의 하늘땅이 못 되어 있으니 하나님도 결국은 슬픔의 하나님이 된 거예요.
그러면 슬픔으로서 끝나는 것이 우주의 창조의 동기냐? 아니예요. 동기는 그렇지 않아요. 동기는 기쁨이었어요. 어머니가 뱃속에 어린애를 밸 때 `오, 이놈의 배야! 어찌하여 불러지느냐?' 해요? 어떤가요? 슬픈가요, 기쁜가요? 저 아저씨들? 아주 뭐 뜻 깊은 이런 가운데 `임자가 아니면 내가 죽고 내가 아니면 임자가 죽지' 하는 거예요. 둘이 하나요, 하나가 둘일 것인데, 당신을 봐도 나 같고 나도 당신 같은데…. 그 가운데 복중에서 애기씨가 자라 움직이고 자꾸 커지는 복중을 바라볼 때 그의 어머님이나 아버님이나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있어요? 아무리 병신이라도….
내가 한번 이런 일이 있었어요. 보면 말이예요, 팔은 곰배팔이요, 입은 찌그러질대로 찌그러져 있고, 눈은 병신 눈인데 길을 걷는 것 보면 이건 뭐 요지경이고 그래요. 팔도강산 유람하는 가지각색 이상이예요. 아주 뭐 그거 연구하면 참 재미있는 재료가 많이 나올 수 있는 이런 사람이 있었어요. 또 그런 마나님이 있거든요. 마나님이 그렇고 영감은 또 소경이고 이런 패들. 이들이 부처끼리 다니면서 복중의 애기를 대해서 `영감도 복중에 애기가 있는 거 좋아합니까? ' 하면 `허허, 그거 나도 모르게 마음이 궁금하게 좋네' 하고 그 여자도 그렇게 병신이지만 `복중에 들은 그 애기를 생각하면 기쁩니까? ' 하면 `기쁘고 말고' 합니다. `당신 같은 아들딸 낳으면 어떻게 되겠오? ' 하면 그건 생각도 안 하고 하여튼 좋다는 거예요. 그거 그런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복중에서 태어나는 걸 가만히 볼 때 누구나 불문하고 부모의 입장에 선 사람은 다 좋아하게 되어 있어요. 총각들은 모를 거예요. 한번 시집 장가 가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뭐라고 설명은 하지 못하지만 동기는 좋아서…. 그런데 낳아 놓고 보니`아이코!' 낳고 보니 슬픈 세상에 태어나게 된 그게 한이예요.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인간을 창조할 때 슬픔에 잠겨 `아이고, 이거 이놈의 세상! 드디어 이거…. 아이고, 가슴이야! 아이고, 큰일났구나! 아이구, 슬픔이야!' 하며 눈물 줄줄 흘리기 위해서 지었겠어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짓는 모든 전부에는 자기 정열이…. 한 가지 짓고 두 가지 짓고 세 가지 짓고 천천 만만의 수가 앞으로 나감에 따라 가지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정이 통하고 하나님의 심정이 흐르고, 심정이 흐를 뿐만 아니라 자기 개체가 후닥닥 사정없이…. 맛으로 말한다면 최고의 맛인 거예요. 호랑이들이 아주 굶주린 가운데 토끼새끼 갖다 대면 확 삼키는 그 이상 굶주린 자리에 있었으니 아주 맛있는 진수성찬을 갖다 던지는 것보다더….
그러한 기쁨이 거기에 숨어 있어야 하나님도 그 어려운 창조의 창업을 전부 다…. 그럴 거 아니예요? 만일에 하나님이 있으면 그 하나님은 어떻게 지었느냐? 슬퍼서 지었느냐? 슬퍼서 짓는 하나님이라면 벼락을 맞을 하나님이예요. 그럴 거 아닌가 말이예요. 하늘은 어떤 하늘이냐? 이 창조주가 있으면 창조주는 출발 당시에서부터 슬픔의 동기을 가졌다면, 그 슬픔의 동기를 가진 하나님이라면 인간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어요. 원수예요.
이걸 생각할 때 어디까지나 선, 선을 찾아야 돼요. 선을 위주로 한 이러한 원칙의 논리는 부정할 수 없는 거예요. 안 그렇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동기는 선해요. 동기가 선하였으니 과정도 선하고 과정이 선하였으니 목적도 선해야 된다는 거예요.
인간이 그런 입장에 섰더라면 인간은 고통 가운데 살 것이 아닌데…. 여기에서 동기는 선이었는데,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창조의 동기는 선인데 인간의 생활의 출발과 생활의 동기는 선에서 출은? 악!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동기와 출발은, 생활적인 동기와 출발은 악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기쁜 날로 시작했느냐, 슬픈 날로 시작했느냐? 슬픈 날로 시작했다 이거예요. 인간의 동기가 슬픈 날로 되었으니, 슬픈 날로 시작했으니 슬픈 자신을 거두어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슬픔은 가정적인 슬픔으로 옮겨가고 가정적인 슬픔은 민족적인 슬픔으로 옮겨가고 민족적인 슬픔은 국가적인 슬픔으로 옮겨가고 세계적인 슬픔으로 이렇게 갈라져 나온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의 최후에 승리할 수 있는, 역사도상에 있어서 최후에 남아질 수 있는 기쁠 수 있는 하나의 주권을 되찾는 그날이 와야만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겠느냐?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어디서부터 출발했다구요? 「악에서 출발했습니다」 악에서 출발했고, 무엇으로부터? 슬픔으로 시작했으니 인간은 세계성을 띠고 인간은 세계와 관계를 맺고 세계적인 인연을 가져 가지고 하나님의 대창조의 목적과 더불어 관계의 도상을 벗어날 수 없는 그런 본성적인 창조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그 본성을 떠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개체로부터 시작한 것은 세계성을 반드시 걸어 놓고야 해결지어 나가기 때문에 개인적인 슬픔과 개인적인 고통과 개인적인 죄는 가정적으로 벌어지고, 가정적인 슬픔은 종족적인 슬픔으로, 종족적인 슬픔은 민족적인 슬픔으로, 점점 커 나가는 거예요. 민족적인 슬픔은 세계적인 슬픔의 단계를 향하여….
온 인류가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메시아사상을 믿고 따라가야
인간에게는 기쁨을 보유할 수 있는 내적인 기준과 슬픔과 접할 수 있는 외적인 기준이 있는데 몸뚱이는 슬픔과 접하려고 하고 내적인 마음은 기쁨과 접하려고 하지요. 기쁨과 접하는 데는 어떻게 되느냐? 역사적인 인연과 접하려고 해요. 지금까지 그 나라의 국법이 있었으면 국법을 중심삼고 이거 하지 말라고 했으면 말이예요, 새로운 시대가 왔어도 양심은 과거의 법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식된 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해서는 안 돼!' 하는 거예요. 몸뚱이는 이 마음을 반대하여 상충적인 입장에서 몸과 마음의 세계가 두갈래로 딸 벌어져서 하나는 내적인 세계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있는 것이요, 하나는 외적인 세계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물질을 중심삼은 세계요, 하나는 마음을 중심삼은 세계예요. 딱 그렇게 되어있어요. 알겠어요?
그러니 이건 뭐냐? 세계적으로 보게 될 때에는 이것이 범위가 클 뿐이지 인간 개체는 본래 세계적인 대표자예요. 세계적 대표자니, 세계적인 대표형이니 내 개체로 보면 하나는 몸뚱이 대표자요, 하나는 마음적인 대표자, 하나는 유심사관이고 하나는 유물사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부딪치는 거예요. 몸과 마음이 싸우지요?
이런 역사적인 도상에서 지금까지 몸과 마음이 투쟁하던 것이 세계적인 투쟁 현상으로 벌어진다 이거예요. 하나도 맞지를 않아요. 공산주의가 하자는 것은 민주주의 전부가 원치 않아요. 민주주의가 하자는 것은 공산주의 전부가 원치 않아요. 나와 같은 이런 외적인 형상 실체상이 세계적인 대표형으로서 벌어졌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이렇게 되어서 슬픔에서 출발한 인간은 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반드시 갈라져야 된다 이거예요. 갈라져야 돼요. 둘 다 갈라지는 거예요.
이제 하나의 기준이 완전히 서지 않게 되면 둘 다 갈라지는 거예요. 하나의 완전한 기준을 세우려면 합하든가 갈라지든가 해야 돼요. 갈라낼래야 갈라낼 수가 없다는 거예요. 민주주의를 놓고 볼 때, 유심 사관을 중심삼은 절대적인 마음의 기준이 무엇이냐? 없어요. 절대적인 몸적인 기준은 뭐냐? 없어요. 없으니 할수없이 여기에 있어서의 참다운 마음의 사람, 참다운 몸의 사람을 모방해야 돼요. 알겠어요?
그러한 내용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관적(史觀的)인 현상을 두고 보게 될 때 하늘은 이런 역사적인 종말이 필시 온다는 것을 예상하셨기 때문에 세상 위에 거기에 비로소 지도자 구세주를 보낸다고 한거예요, 구세주.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구세주사상이 나와야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걸 알아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그 구세주 사상이 나오게 되면 사람마다…. 그분의 마음으로 우러나는 말이요, 말이 통하여서 이루어지는 생활적인 무대니, 또 말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생활환경이니….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양심을 통하여 우러나오는 것은 천정과의 인연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역사해요. 하나님은 재까닥 해 나오는 거예요. 찢어 놓은 거예요. 왼발 자국은 이미 출발해 놓았지만 오른발 걸음이 나아갈 목적에 누구를 ? 완전한 사람을 떡 딛고 넘어선다는 거예요. 사람을 지배하고 넘어서야만 하나님이 하나님 노릇 한다는 거예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세계를 주고도, 지금까지 타락한 세상의 수많은 인간이 갖고 있는 무슨 주의니 무슨 주권이니 무슨 국민이니 뭐 문화니 하는 전부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이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 한 분만…. 세계는 순식간에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전부 다 지배받는 권내에 들어온다는 겁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기에서는 악을 대신하여 절대적인 기준으로서 처리할 수 있는 우주의 중심이 벌어져요. 완전히 우주의 중심인 나! `나'가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메시아는 인간 앞에 최후의 이상적인 견본
그 한 분의 마음을 붙들면 내 마음적인 역사적인 고통을 통하였던 그날들을 다 제껴 버리고 소망의 나의 개체로부터 소망의 가정으로부터, 소망의…. 소망의 민족으로부터, 소망의 국가로부터 소망의 세계성을 띠고 나오던 그런 기쁨의 대상의 실체로서 화하여 나타난 화신체가 구세주입니다. 몸을 통하여 지금까지 고통을 받고 나온, 지금까지 슬퍼하면서 땜을 때워 나오던, 이러한 개인적인 고통을 피하려고 했고 가정적인 고통, 종족, 민족, 세계적인 고통을 피하려고 했지만 피하지 못하였던 그 모든 사실이 그분 몸뚱이와 더불어 접함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고통을 피할 수 있는 화신체인 그분을 찾으면 우주의 나를 발견하는 거예요. 과거의 잃어버렸던 내 개인을 찾는 것이요, 과거의 우리 선조가 개인을 잃어버렸던 그것을 내가 복구할 수 있는 것이요, 과거의 우리의 선조들의 가정, 과거의 우리 선조들의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복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우리 선조들이 소망으로 하였던 그 소망의 실체와 접한 사람은, 그분을 가진 사람은 이 역사를 전부다 완성한 실체로서, 승리적인 실체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늘은 '그 한 분을 찾기 위해서는 전부 다 버려라! ' 하신 것입니다. 그 한 분은 수많은, 지금까지 이 악한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터 위에서 온 분입니다. 그러한 나, 그러한 나….
여러분들이 그런 입장에 서서 반드시, 출발이 선했으니 과정이 악했으나 목적이 선해야 돼요. 하나님이 있으면 하나님이 구상하신 실체를 세우는데 있어서 틀림없이 선의 실체로 세웠는데 선의 실체가 못 되고 악의 실체가 되었으니 악의 실체를 정비해 가지고, 이것을 다시 한 번 수정하여 재차 만들어 놓기 전까지는 하나님은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을 다시 회생할 수 없기에 이 복귀도상에서 지금까지 다시 구원이라는 고통스런 길을 세워 나오는 것입니다. 남을 구원하려면 고통스럽지 않아요? 죄인을 구하려면 죄의 자리에 들어가야 돼요. 똥 묻은 사람을 구하려 면 똥 묻는 자리에 들어가야 돼요. 더 들어가야 됩니다. 더 들어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최고의 수고의 왕자로 군림해 온 분입니다.
그러면 그 뜻을 따라 나오는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어떻게 되느냐? 전부 다 죽음의 도상에서 허덕이면서 우리의 후손들 앞에 최후의 유언을 하기를 선은 승리한다고 하고, 하늘이 같이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부르짖고 가던 그 목적은 비로소 오늘날 최후의 그 한 분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 열매가 맺혀지니 비로소 완전한 저울이 나왔기 때문에 가짜 저울은…. 가짜 저울이 많아요!완전한 저울이 나오지 않았을 때는, 원기, 원체, 원래의 저울이 없게 될때는 가짜가 전부 진짜 놀음 했는데 원래의 완전무결한 천지가 공인하는 저울이 척 나올 때는 그것 중심삼고 가짜를 전부 다 골라내는 거예요.
그것은 인간의 이상적인 최후의 표본, 견본입니다. 가다(かた;형틀), 뭘 찍는 데 있어서의 원형이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오면 그분을 닮아라! 그러면 그분은 어떻게 나오느냐? 그분은 어떻게 나오느냐? 하나님의 마음 상, 심상의 존재에서부터 나오는 거예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선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인간의 생활적인 기준에 있어서 출발과 그 동기는 악이 아닙니다. 본래는 선이었기 때문에 본래 인간이 타락하기전에,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의 구상에서부터 이루어진 분이 그분입니다. 그분을 쳐들어서 의논하면 그분은 하나님의 창조이상, 상입니다. 형상, 구상의 그 바탕, 구상의 바탕 가운데 있어야 할 본래의 사람입니다.
가짜인 나는 악의 무장고
그러니 지금까지의 사람은 전부 다 가짜들입니다. 거기서 우주의 사람으로서 우러나와 가지고 이 천지, -천지인입니다, 천지인-하늘과 땅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람으로서 비로소 가치를 가지고 천지 앞에 비로소 사방에 활개를 펴고 상하를 전부 다 움직일 수 있는 가치적인 이런 사명자로 오시는 분이, 그분이 누구냐 하면 아까 말한 내가 있기 위해서 필요한 이상적인 주체의 대신체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가짜 나입니다. 가짜 나라는 거예요. 그래, 여러분들은 무슨 나예요? 「가짜 나입니다」 무슨나야? 「가짜 나입니다」 무슨나야 ! 「가짜나입니다 !」 가짜 나야, 가짜 나 ! 잘났든 못났든 전부다 가짜 나입니다. 가짜예요. 이랬으니 어떻게 되겠어요? 보면 눈깔에서 뿔이 나오고, 코구멍에서 갈고리가 나오고, 입에서는 별의별 게 다 나오는 것입니다. 독사 혓발같은 게 나오고 다 나온다는 거예요. 쇠고랑이고 뭐고 그저 별의별 게다 있는 거예요. 흉악한 흉기는 다 갖고 있어요. 그래 가지고 무엇을 잡아먹느냐? 마음을 잡아먹고 사회를 잡아먹는 흉기는 다 갖추고 있는 거예요. 악의 무장고입니다, 무장고 ! 이 지긋지긋한 무슨나? 거짓 나지요? 「예」 악의 무장고라는 거예요. 그것이 지긋지긋한 나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이걸 깨뜨려야 돼요. 이걸 짤라버려라 ! 그러기 위해선, 마음으로써 눈을 빼버리는 데는 이 마음이 결심을 안 하면 안 돼요. 이 눈에 원수의 화살이 꽃혀 있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화살인 이것이 뽑아지지 않아요. 마음에서부터 이걸 잘라 죽인다, 이래서 그것을 청산해야 돼요. 그걸 청산해야 돼요. 그러려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냐? 통일교회는 뭘하는 곳이냐? 요놈의 이 사지백체가 원수의 무장고가 됐으니 이걸 짤라버려야 돼요. 짤라버리는 거예요. 안 그러겠다면 들이 쳐서라도 짤라버리게 하는 거예요. 자기 힘으로 못 자르면 여기서 의사와 마찬가지로 수술대에서 다 빼 가지고…. 그러면 뭐 '흥- 흥-'아파할 거예요. 칼을 대면….
여러분 그러지요? 해부 같은 것 할 때, 배를 쨀 때는 사정 봐주지 않지요. 그저 째는 거예요. 시간이 될 때는 그 시간에 안 째면 죽는 거예요.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짤라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짤라버리니 '아이구-나 죽는다. 아이구 아이구, 싫어 싫어' 그래요. 이럴 때는 손이고 뭐고 딱 졸라매 가지고 떡 잘라 가지고 살려주는 거예요. 죽을 자리에서 살려주니 살고 나서야 '고맙습니다'그래요. 그렇게 해야 되겠어요. 원수의 무장고를 , 이 지긋지긋한 무장고를…. '어-그렇게까지 지긋지긋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심한 얘기를 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래도 자기 몸뚱이인데 왜 그렇게 해야 돼? ' 할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한번 설명해 보자구요.
'왜 그렇게 원수의 무장고라고…. 아이구, 그래도 내 손이고, 이 손가지고 아버지에게 떡도 정성껏 사다드렸는데' 할지 몰라요. 주긴 줬는데 다 그렇지 않단 말입니다, 그 내용이, 그 동기가. 왜 그런가 한번 보자구요. 여러분이 언제 하나님 있는 거 알았어요? 하나님 있는 거 알았어요, 하나님이 있는 거? 말만 들었지, 알았나 말이예요. 세상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았어요? 동네 개는 주인의 무엇을 잃어버릴까 봐 밤낮으로 지켜나 주지. 문전에 지켜 서서, 동삼삭에도 아주 쭈그리고 밤 잠을 못 자고 지키는 거예요. 개는 주인을 염려해서 밤잠을 안 자고 지키고 있지만 여러분은 그래 봤느냐 말입니다. 전부 다 자기 멋대로 그저 되는 대로 살아온 껄렁패들 아니예요? 뭐 그렇게 얘기해도 섭섭하지 않을 거라구요. 껄렁패지요. 말하자면 전부 다 껄렁패지요.
또, 언제 이 입이, 언제 내 손이 하나님이 좋아하실 입과 손이 되었어요? 그 손이 훌륭한 손이예요? 죽은 다음에 천국 나라 갔을 때 내 손을 박물관에 표본으로 갖다 놓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해 봤어요? '야, 내눈은 황금 눈보다, 내 보기에는 천하에 제일 귀하다는 황금 눈보다도 귀한 거로구나. 내 눈이여 ! '그래 봤어요? '야, 내 몸뚱이 얼마나 아름답고 존귀하냐? 천하가 다 머리를 숙일 수 있는 귀한 자체로구나' 그래 봤어요? 이것들은 아무데도 쓸 수 없는 거예요, 이 전부가.
악을 청산하는 데는 최고로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품고 해야
그렇기 때문에 여기는 무엇이냐? 그러한 사탄 물건을 전부 다 어떻게 해야 돼요? 짤라버리고, 내쳐버리고 수습해 가지고 필해야 돼요? 재창조해야 돼요, 재창조! 재창조해야 돼요. 그러면 어디서부터? 여기서부터. 참 진리라면, 참다운 진리라면 울어도 세상에서 제일 크게 우는 것이 돼야 됩니다. 울어라, 통곡을 해라 이거예요. 아이구 분하구나 ! 아이고 분하구나! 내 어머니 아버지가, 어머니 아버지 수천명이 한꺼번에 쓰러져 죽어도 그 분함이…. 어머니 아버지 한 사람 죽었는데 뭐, 어머니 아버지 하나 죽었으면 죽었지 슬플 게 뭐야? 그런 부모 천 명, 만 명 이상 죽은 슬픈 그런….
이 나라에 애국자가 있으면 그 애국자보다 더 분해야 돼요. 세계주의자가 있어 가지고 선한 입장에서 싸우다가 학살당한 그 사람들보다 원통한 그런 마음도 품어야 돼요. 그런 분함을 느껴도 여러분이 지금까지, 혹은 뭐 늙어 죽도록 살았다 하더라도, 수십 년, 혹은 백년 가까운 이런 생애를 살았다 할지라도 그 가운데서 생각하면 제일 분해야 돼요. 제일 원통해야 돼요. 원통해서 내 칼이 없으면 칼 대신 참대 꼬챙이라도 칼로 알고 나가서 싸워야 되겠다는 거예요. 참대 꼬챙이가 칼 대신이니 참대 꼬챙이와 칼과 비교하여 약한 그 기준만큼 나는 성의와 열의를 가져 가지고 싸우겠다, 이런 마음이 있어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을 만들기 전에는 패자가 안 될 수 없습니다. 나를 못 찾습니다. 나를 못 찾는 거예요! 깨끗이 돌려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언제 하나님을 대하여 죄의 옷을 다 불사르고 '나는 천하가 공인하는 아들로서 왔소이다, 아버지! '그래 봤어요? 우리 통일교인들, 그렇게 해봤어요? '당신이 찾고 싶었던 아들, 내가 왔습니다, 아버지! '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아버지의 뜻이 통하고, 아버지의 사정이 통하고, 아버지의 심정이 통하고, 통할 뿐만이 아니라 너와 나는 하나라는 공인을 받아야 돼요. 그래야만 인간으로서 태어났던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천주주의자가 돼야 본연의 인간의 기준을 통과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만 알아서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뜻만 알면 뭘하노? 오늘날 선한 뜻을 몰라서 다들 실천 못 했어요? 자유당이 정책이 나빠서 망했어요? 사정을 못 통해서 망했어요? 심정이 통하지 않아서. 무슨 심정? 천리의 심정이 통하지 않아서. 이 국가의 운세의 심정이 통하지 않아서.
뜻이 통하고, 사정이 통하고, 심정이 통하기만 하면 뭘하나 말입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통하면, 모든 주고 받는 것이 완전히 통하면 화합을 이루어야 돼요. 전기가 완전히 합하면 무엇이 되는 거예요? 전기도 아니고 무엇도 아닌 빛이 돼지요, 빛.
완전히 통하고 나서 나중에는 뭐냐 하면, 하나되는 거예요, 하나 ! 뜻이 하나요, 사정이 하나요, 심정이 하나인데 몸과 마음을 중심삼은 하나님과 하나돼야 돼요. 이렇게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야 할 것이 인간의 본의인데, 그거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이 타락했기 때문에, 나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나는 부모도 거짓 부모를 가졌고, 형제도 거짓형제요, 내 사촌, 혹은 사돈의 팔촌 전부 다, 친척들이라는 명사를 가진 그런 수많은 무리들도 역시 전부 다 거짓이라는 명사의 탈을 쓴 사람들입니다. 오늘 내가 사랑하는 민족이나 내가 사랑하는 국가나 내가 사랑하는 세계, 내가 살고 있는 이 천지간의 모든 만유의 현상은 전부 다 악의 탈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한 그런 권내에 있어요. 이걸 벗어나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세계주의자가 돼야 돼요. 알겠어요? 「예」 세계주의자가 돼야 되는 동시에, 그다음에는 뭐가 돼야 되느냐? 그것과 대등한 입장에 서 가지고는 만물을 주관 못 해요. 그래서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주의를 첨부하여, 하늘주의를 첨부하여 천주주의라는 명사를 세워야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주의? 「천주주의요」
그러면 천주주의라는 명사를 세워 가지고는 뭘할 것이냐? 거기에 돌아가 그때의 그 자리에 가야 되는데, 본래 인간이 탄생되어서 하나님하고 제일 가까울 수 있는 타락하지 않은 우리 조상의 자리, 그 자리에 나가야돼요. 그 자리가 어디냐? 천주주의 완성한, 천주주의자로서 비로소 하늘과 땅과 만물을 대신한, 창조주의 실체 앞에 내가 이 창조주의 대상체로서 섰다 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잡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인간의 선조가 타락하지 않고 가야 할 그 첫째 기준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도의 세계에서는 독신생활을 해야 하는 거예요.
여자도 그런 여자가 안 나왔고, 남자도 그런 남자가 안 나왔으니 어서 빨리 남자가 나와야 돼요. 구세주는 남자예요, 여자예요? 「남자입니다」여자지요. 여자지 ! 「남자입니다」 여자지 ! 「남자입니다 !」 그래 옳은 건 옳다고 해야지. 옳은 건 모가지가 떨어져도 옳다고 해야 됩니다. 그 답에는 내가 항복입니다. 여자 아닌 남자입니다. 그러면 여자도 남자도 그 자리에 못 갔으니 그 남자, 독신으로 찾아오는 그 한 분, 그런 낭군이 있나니 그 낭군이 뭐냐?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랑되시는 예수입니다. 알겠어요? 알겠나 말이예요? 「예」 부처끼리 오는 것이 아니라 독신 남자로 오는 거요, 남자로.
세계적인 종교는 개인에서부터 세계적인 제물적 존재를 가진 종교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천지창조 이후 지금까지 인간이 거짓으로 출발했고 악으로 출발한 이 세계를 정리하기 위해서 한 사람 찾는 거예요. 한 사람, 한 사람 ! 진짜 한 사람 ! 그 진짜는 어떤 사람이냐? 이제 말한 거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통해야 됩니다. 뜻을 통하려면 동기를 알아야 되고, 결과를 통하려면, 동기와 결과를 통하려면 인연을 알아야 됩니다. 인연, 이 과정적인 인연을, 과정적인 관계를 피할 수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간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간이 자기의 책임을 못 하니 인간의 인연을 다리 놓기 위한 이런 무리가 있나니 그런 무리들이 수많은 개체를 대신하여 다리 놓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인데 아브라함은 개인이요, 야곱은 가정이요, 모세는 민족이요, 예수는 세계라, 격식이 맞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논법에서 찾아보게 될 때 기필코 개인으로부터 세계적인 대표자, 지도자, 세계적인 제물적인 존재를 반드시 가진 역사적인 종교의 내용을 가져야만 세계적인 종교이지 그러지 않으면 세계적인 종교가 못 됩니다. 그런 견지에서 볼 때 기독교가 세제적 종교의 내용을 지닐 수 있다는 거예요. 이해돼요? 「알겠습니다」 이런 얘기를 왜 하느냐 하면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 인을 세울 때 하늘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세계적인 구세주를 얼마나 그리워 했겠느냐? 본래는 내 개인을 세울 그 때에 있어서 세계적이면서 개인적인 승리자가 돼야 될 건데 그게 못 됐어요. 왜? 타락했기 때문에. 한꺼번에 세계성을 띨 수 없으니 개인적인 시대, 가정적인 시대, 민족적인 시대, 국가적인 시대, 세계적인 시대로써 분담하여 이 역사노정을, 기나긴 시대를 거쳐오면서 하늘은 세계적인 인물 하나를 키워 나오기 위한 재료를 수습하기 위해서 분담적인 구세주 사명을 대신하는 자를 보내줘 가지고 전부 다 이 땅 위에서 슬픈 자의 입장을 대신하고, 억울한 자의 입장을 대신하고, 죽음에 몰리는 자의 입장을 대신하게 한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이제 세계적인 지도자로 오시는 그분은, 그분은 지금까지 개인적인 구세주 사명을 개척하기 위해서 개인적인 책임을 지고 오시는 분이요, 민족적인 시대에 있어서 민족적인 구세주 책임을 하여 민족을 연결시키기 위한 책임자요, 개인으로부터 가정으로부터 민족적인 기준을 세워 가지고 국가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국가적인 기준에서 승리적인 하나의 기준을 세워 놓고 거기에서 세계적인 대신 실체로 나타나는 분입니다. 그분이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럼 메시아 하나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어떤 일을 해야 되느냐? 옛날에 한을 가져야 했던 개인적인 조상이 여기에서 소원성취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옛날에 가정적인 섭리시대에 희생하고 갔던 그런 가정적인 우리 조상들의 한을 해원성사하는 거예요. 민족적인 섭리시대에 희생해 갔던 우리 민족적인 조상들의 한을 해원성사하는 거예요.
그분은 과거의 하늘 개인과 하늘 가정과 하늘 사회를 대표하여 하늘국가적인 이념을 섭리해 나오신 하늘의, 우리 인간이 알지 못하는 배후의 이념적인 터전 위에 숨어 있는 크나큰 무한한 가치, 역사적인 가치의 실체인 메시아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 예요. 과거를 잘 알아야 현실의 자아가 그 복을 상속받고 우리 조상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하나님의 상투끝에 올라가 춤추고 싶어할 정도로 커
그러면 오늘 이 때가 무슨 때냐 하면, 천주주의 시대이니 천주주의 시대라면 여기서 개인으로부터, 가정으로부터, 국가적이요 세계적인 메시아로 왔던 이 메시아가 이상적인 천국, 이상천국세계까지 전부 다 알아야만 된다는 거예요. 그러한 기준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이상주의자입니다, 전부가. 전부 다 개인주의가 아닙니다. 전부 다 그 마음은 세계주의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암만 못났어도 여러분의 마음은 '너, 잘되면 좋으니 못되면 좋으니? ' 하면 '물어볼 게 뭐 있어? ' 그래요. '잘되면 좋으냐, 못되면 좋으냐? ' 두 우수(偶數) 말 가운데 뭐가 좋으냐고 하면 물어볼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야 물론 잘되는 게 좋은 거지' 그럽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그렇지요? 그럼 '얼마만큼 얼마만큼 잘될래? 뭐 대통령만큼 잘될래? 뭐 케네디 대통령이 제일이야? 얼마만큼 잘될래? ' 하면 어때요?
저나라에 하나님에게 충성을 많이 한 그런 공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공신도 있을 것이고 종중의 종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케네디 대통령이 저나라에 가면 천사세계의 천사장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게 문제입니다. 얼마만큼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만큼 욕심이 많고 얼마만큼 내가 간절히 고대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묻고 묻고 묻고 보면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하나님 꼭대기까지 올라가요. '하나님 앞에 가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되면 좋겠습니다' 할 거예요. 심부름꾼으로 만족할 것 같아요? 안 해요. 그럼 뭐 종으로써 만족하겠어요? 그것도 안해요. 종중의 종으로 만족해요? 그것도 안 해요. 그럼 뭐 사위로써 만족할 것 같아요? 그것도 안 해요. 뭐 ? 사위가 됐지만 그 장인의 유산과 모든 목적과 모든 살림살이가 엄청나고 훌륭하다면 그거 전부 다 갖고 나서야 '허허'하는 거예요. 사람의 마음은 그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크기가 안 큰가요? 다 그렇지요? 사람의 욕심은 하나님을 타고 귀를 잡고 춤추고 싶은 거예요. 욕심이 다 그래요. 여러분들 그렇지 않아요? 「그렇습니다」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래, 그래, 그래 ! 그럴려면 이제보라구요.
그러면 종새끼가 주인 타고 귓발을 붙들고 춤추어서 되겠나 말이예요. 그런 법도 있어요? 「없습니다」 무슨 법을 통하여 그 자리에 나갈 수 있느냐? 사랑하는 아들딸, 어허둥둥 내 사람아! 알겠어요? 둘도 없는 내 아들이요, 너는 내 꽃 중의 꽃이요,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요, 내 상투 끝에 올라가 천년 만년 대공사를 해 가지고 영원무궁토록 행복의 노래를 하고 그저 잔치를 하겠으면 하고 별의별 것을 다 하겠으면 해라! 이럴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걸 보고 '야 이놈들아, 왜 이러나? '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입장이 되려면 어떠해야 되느냐? 하나님 이 둘도 없는 사랑하는 아들딸이어야 돼요. 알겠어요? 「예」 찾아보니 그 명사가 만사에 통치 못 함이 없는 명사거든.
인간이 무불능통할 수 있는 이런 기준에 있기 때문에 그러한 욕망의 최고 악질적인 녀석입니다. 타락했으니 악질적인 녀석입니다. 원래는 악질이 아니고 좋은 성질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악질이 되었지요. 그렇지만 그 본질의 성품은, 바탕은 남아 있기 때문에 인간은 최고야 ! 하나님의 상투에 올라가 춤추고 그래도 하나님도 기뻐하는 거예요. 이러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인생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
그러면 그 욕망을 해소하는 데는 어떻게 돼야 되느냐? 다 안 됐지만 하나님의 소망의 실체의 아들딸의 명분을 갖추면 '너는 천지간에 너 하나요, 천지를 주고도 바꿀수 없는 너로구나. 어허둥둥 내 사랑 ! ' 이러며 높이고만 싶고 춤만 추고 싶은 거예요. 이런 입장에까지 인간은 나가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인 기준에서 인간을 참다운 선으로 지배해 가지고 이념적인 세계에 있어서 변할 수 없는 하나의 중심된 그 인연, 내적인 철옹성 같은 이런 연결적인 쇠사슬이라 할까, 연사체라 할까, 이런 기준을 완전히 맺어 가지고 뗄 수 없는 하나의 절대적인 인연을 맺으면 창조주를 대하여 '내 아버지 ! ' 할 때 그분이 '야, 내 사랑하는 아들딸아, 네가 없으면 나는 천년 대공사도 쓸데없다'하는 거예요. 아무리 천지간에 승리한다 하더라도, 원수를 굴복시키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굴복시킨 후에 아들딸이 태어나야 기뻐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원수를 정복하여 승리함으로써 기뻐할 것이냐? 승리하고 나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냐? 아들딸들이 그 승리의 영광에 동참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냐? 아들딸 찾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종교의 내용을 가져 가지고 그러한 기준에서 인간을 구한다는 명사가 반드시 있어야 된다고 하니 종교의 내용을 가져 가지고 하나님을 아버지라는 명사로 부르는 단체가 기독교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를 발판으로 해서 지금나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하나님과 나와 일체를 이루는 거예요. 그래야 내가 나로서 생명이 연결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역사적인 그런 인연을 거쳐 가지고 실천 과정을 전부 다 넘어서 가지고 목적적인 실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가야 거기 에서는 영광 중의 영광의 자리에 나가도 하나님이 좋아하고 땅의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은 뭐냐 하면, 아들딸이란 명사 아니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여기에 온 것은 뭐냐? 아들딸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수련받는 목적은 그것입니다. 어느 단시일 내에 아버지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느냐? 그의 심정을 내가 통하며, 그의 사정을 통하며, 그의 뜻을 통하며, 그의 사정과 그의 뜻과 그의 심정을 통하여 그 대신 인격자, 심정과 사정과 그러한 뜻이 통해 가지고 영원히 풍겨날 수 있는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그 대신자인 아들딸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 이 땅 위에 태어난 최고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알았어요, 목적? 「예」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어떻게 되느냐? 하나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수습해야 되는 거예요. 그럼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딱 하나돼 가지고 하나님의 상투 끝에 올라가 가지고 춤만 춰서 되겠나요? 그다음에는 , 기뻐하고 나서는 인간에게 만물을 주는 거예요. 기쁨으로 주실 유업, 우리 아들에게 줄 게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도 아들에게 줄 게 뭐 있어야지요. 아들딸이 좋아하고 다 기뻐하고, 너와 나와 영원히 하나된 입장에서 그다음엔 아들딸한테 뭘 줄 것이냐?
내 재롱거리로서, 내 살림살이의 재롱거리로서 준 것이 이 만물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 하나님이 아들딸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기뻤는데 아들딸 갖고 나게 되면 줄 것이 있어야 돼요. 그래야 천지만물을 아들딸을 위해 창조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그래서 지금 이 땅 위의 인간들은 욕심이 많아요. 하나님을 정복하고 나서는 , 마음세계는 하나님을 정복하고 나서 '세계는 내 것'그래요. 이 뚜꺼비 같은 녀석들 다 그렇다구요. 그러려고 하지요. 그거 사실 말이 맞는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면 하나님 것이 내 것 아닌가 말입니다.
과거·현재·미래를 대신한 부모·부부 ·자녀의 삼대상 기준을 갖춰야
이래서 내적으로는 심정일치 · 사정일치 · 소원일치가 돼 가지고, 소원성취 · 사정성취 · 심정통일한 후에는 뭘할 것이냐? '천지만물을 내가 정성껏, 정성을 다해 지었지만 이것은 네 것으로 준다' 이거예요. 부모가 정성을 다해 모은 모든, 한 푼이라도 아껴 모은 전체 귀한 것을 자식에게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쁨으로 주는 거예요. 주고 나서는 후회하지 않는 입장에서 인간 앞에 상속권을 부여하겠다는 거예요. 요것이 비로소 하나님과 일체가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이름이 내이름이 돼 가지고 하나님의 기쁨으로부터 출발해 가지고 그 기쁨권 내에서 만물을 상속받는 그런 입장에서는 나입니다. 그 나가 역사를 대변할 수 있는 나요, 역사의 실체가 될 수 있는 그런 입장에 선 실체가 돼야 돼요. 그러한 실체가 돼야만 시대를 대표해서 거느릴 수 있고, 시대를 대표해서 거느릴 수 있어 야 만물이, 모든 천지운세가 그 무릎 앞에 우거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다시 상속해주고 가는 사람이라야 나로서, 아까 말한 전후 좌우 상하를 갖춘 입장의 나로서 완성하고 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알겠나, 말이예요? 「예」
그렇기 때문에 상(上)으로는 하나님이요, 부모입니다. 오늘날은 누구냐 하면 자기의 상대입니다, 부처끼리. 가정 하면 할아버지가 중심이 아닙니다. 그 부부가 중심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건 현실입니다. 현재예요, 현재. 그다음에는 자녀입니다. 자녀는 미래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역사가 벌어졌기 때문에, 전후관계가 인연되어 있는 이 세계의 인연을 갖고 비로소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은 반드시 부모가 없으면 슬픈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부부중에 한 사람이 없으면 슬픈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자식이 없으면 슬픈 거예요. 거 슬퍼하지 않는 녀석들은 천지의 법도를 어기는 녀석들입니다. 그건 죄인입니다. 자식 없다고 기뻐하는 녀석들은 그건 전부 다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없어도 슬프고 부부 중에 누가 없어도 슬픈 거예요. 혼자 사는 것도 천지법도에 어긋난단 말입니다. 합격자가 아닙니다. 병신입니다, 병신.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갖춰야 되고, 그다음엔 부부를 갖춰야 되고, 자녀를 갖춰서 삼대상 기준을 갖춰야 돼요. 이것이 대상기준입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할아버지 할머니도 대상이지요? 「예」 이것이 자기들끼리 상대적입니다, 이게. 좌우되고, 그다음에 아버지와 아들은 상하입니다. 이렇게 된단 말입니다. 나를 중심삼고 볼 때 위로는 아버지요, 그다음엔 아래는 자녀입니다. 나를 중심삼고 이게 전후관계입니다. 그다음엔 부부입니다, 좌우. 그다음엔 친척, 이렇게 가정이 되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달랑달랑 요것만으로 해결하는 게 아닙니다. 그다음에는 이것 중심삼고 천하를 품는 거예요. '아버지도 우리 거요,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도 우리 거다' 할 수 있는 입장에 선 내가 인생이 소원하던 나요, 하늘이 소원하시던 나요, 하나님이 사정을 통하고 싶었던 나요, 오늘날 역사적인 선한 사람이 사정을 통하고 싶은 나요, 또 하나님의 심정이 있으면 그 심정을 통하고 싶었던 나요, 역사적인 모든 위인들의 소망의 심정이 있으면 소망의 심정으로 찾고 있던 나라는 거예요. 그러한 나로 완결되어야 비로소 나는 나로서 이 땅 위에 존재의 가치를 완결시키고 비로소 책임을 다 완수하게 되는 거예요. 그것을 가져야만 비로소 천지를 창조한, 대상실체세계를 창조하신 그 원칙 밑에 자기의 동기도 목적도 다 이룬 그 핵심적인 축소체가 되는 거예요. 그게 이제 말한 하늘가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는 신랑 신부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없나요? 하나님이 조상으로 있으되 제일 문제가 신랑 신부라는 거예요. 조상은 있는데 신랑 신부가 합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조상서부터 하나님을 모셔놓고 아들과 하나님과 내적으로 합했던 것이 바로 상대적이니, 세상을 중심삼고 구세주로 와 가지고 상대, 외적인 기준에 있어서 상대를 찾아 나오는 신랑 신부의 이념을 세워 놓고 신랑 신부를 중심삼고 자녀의 명분을 남긴 것이요 기독교의 이념입니다. 그렇지요? 「예」 여기에 이 선한 이상세계, 지상천국을 이루어 천하를 통치하게 되면 만왕의 왕이 돼요. 그래서 만왕의 왕이라는 명사를 남겨 놨다는 거예요. 그러면 만왕의 아들딸이 되면 만왕의 왕의 후계자들입니다. 아들딸이 만왕의 후계자예요. 알겠어요? 「예」
종교의 출발을 부정에서부터 해야 하는 이유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온 것 전부 다 아닙니다. 어느때 내가 하나님을 부모로 모셨으며, 내 부처끼리 재미 있게 살고 너 아니면 내가 죽는다고 맹세하고 별의별 놀음 다 하고 뭐 지지고 볶고 뭐 어떻고 하던 그들이 어느때 하나님이 쌍수를 들어 해주시는 축복을 받았더냐? 이 아저씨, 받았어요? 받았어요? 그런 축복을 받았어요? 「축복 못 받았습니다」그걸 못 받았지만 그렇게 줬으면 하지요? 「예」 여기에 곡절이 많아요. 아들딸도 있지요? 「예」 언제 하나님으로부터 '아이고, 내 손주 귀하구나 ! ' 하는 소리 들어봤어요? 「못 들었습니다」 (웃음) 들을 수도 없지, 몰랐으니까.
이렇기 때문에 전부 다 깨진 그릇입니다. 미안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공인하는 이런 사회제도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천리가 공인하고 영원무궁한 이념을 중심삼은 그런 하나님의, 창조주의 심정을 통하고 사정을 통하고 뜻을 통할 수 있는 이런 기준에서부터 벌어진 소망의 그틀거리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입니다. 종교는 부정에서부터. 제일 가까운 데서부터 부정해라 ! 그래 내 제일 가까운 것이 원수다 이거예요. (녹음이 잠시 끊김)
예수님이 어머니 대해서 '여인이여 너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그랬습니다」그게 복음을 선포하면서 나온 첫번 얘기입니다. 또 제자들이 와서 모친과 동생들이 찾는다고 할 때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이 누구냐' 했어요. 무엇대로 하는 사람이? 아버지 뜻대로 하는 사람이. 뜻이 무엇이야? 뜻이 그런 가정제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제 말한 천륜의 심정을 통하고, 천륜의 사정을 통하고, 천륜의 소망의 뜻을 통할 수 있는 그런 부모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시끄럽다 이거예요. 방해꾼이라는 거예요. 형제들, 이놈의 형제들이 전부 다 방해꾼이라는 거예요. 도움은 못 되고 전부다 방해꾼이라는 거예요. 원수예요. 그렇기 때문에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런 말 있지요? 「예」이런 견지에서 그런 게 다 풀리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는 반석 위에 설 수 있는 실체 회복 방법을 배우는 곳
그러면 나로서 취하여야 할 목적실체는 무엇이냐?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늘의 본집(종가집)으로 오시는 맏아들인데 이 맏아들을 맞아야만 그 아버지의 소식을 알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을 모시고 있던 분인데 그분이 옴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느냐? 우리 타락한 인간들은 전부 다 하나님과의 인연이 없으니 그분은 맏아들 대표자로 와 가지고 동생과 같이 키워 주고 그러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 메시아를 고대하지 않을 수 없는 현세 인류의 현실이더라!
그래 가지고 뭘할 것이냐?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로 와 가지고 하나님의 딸을 취해서 가정을 이루었으니 그 가정을 중심삼고 우리 가정을 걸어 놓고, 세계 만물을 걸어 놓고 축복해 주시옵소서'할 수 있고, 축복을 당당히 받을 수 있는 나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입장에서 '당신은 나에게 축복을 해줘야 되고, 나는 당신한테 축복을 받아야 되겠소 ! '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소망을 취할 수 있고, 소망을 품을 수 있는 출발점에 서 가지고 이 천국 사회, 천국 국가 생활에 있어서의 제일보를 출발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다 그렇게 못 되었거든. 할아버지든 누구든 다 그렇게 못 되었어요.
그럼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그러한 것을 소개해 주자는 거예요. 소개해 주면 뭘할 것이냐?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나의 위치, 나의 가치, 나의 출발, 나의 뜻, 나의 사명, 나의 소원, 나의 심정 전부가 하늘을 대신해서 '내가 이러니 나로부터 인연되어 있는 모든 피조만물은 나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하고 천지를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천지가 동해도 움직일 수 없는 이러한 완전히 반석기대 위에 선 하나의 실체를 만들 수 있는 자아를 회복하기 위해서 나타났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교회가 되지 않으면 통일이라는 명사가 나오지 않아요. '통일' 할때 '통'은 무슨 통 자예요? '거느릴 통(統)' 자지요? 통일교회가 무슨 통일교회예요? 그렇지 않아 가지고 통일하겠나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러한 내력, '과거의 인간이 이랬구나. 오늘의 나는 어떻고, 앞으로 어떻게 되겠다. 하나님의 사정이 이랬고 하나님의 뜻이 이랬고 하나님의 심정이 이랬고 아버지의 고통이 이랬던고. 슬픈 아버지 였으니 그 아버지 앞에 내가 어떻게 나가야 할 것 인가? 피와 눈물과 땀으로 제물되어 나왔으니 제물을 받기 위해서는 피와 눈물과 땀으로 받지 않으면 안 되겠다' 이래 가지고 슬픈 눈물로써 '아버지께서는 주기 위해서 슬퍼해 왔고, 주기 위해서 피땀흘려 왔으나 우리 인간은 받기 위해서 죽어 왔고 받기 위해서 눈물흘렸고 받기 위해서 고통받았으니 주고 받을 수 있는 그 한 날이 얼마나 기쁘겠느냐? 울음으로 출발하여 기쁜 울음이 앞을 가려 가지고 내 입이 복받치던 사무친 한이 다 폭발되어나와 가지고 기쁨과 영광과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는 그 날을 가져야 되겠다' 이래야 돼요. 거기에서 비로소 하나님이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내 딸이다' 할 수 있는 , 천하만물의 모든 복을 앞에 갖다 놓고 하나님이 심정과 사정과 통할 수 있는 일체적인 이념권 내에서 '너는 내 아들이요, 나는 네 아버지다' 할 수 있는, 부자지인연을 복귀하여 인침을 받아가지고 비로소 하늘가정을 이뤄 가지고 하늘백성을 이루고 하나의 세계, 하나의 주권, 하나의 천지를 만들 수 있는 이것이 인간인 나로서 되어있는 인연의 중심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부모와 그다음엔 무엇? 부모와 부부와 자녀와 만물, 이것이 사위기대입니다. 그것을 아버지 중심삼고 세계가 공인한 법도, 원칙, 혹은 공식 법도에서 통과할 수 있는 내 가치 이것을 여러분들이 갖기 위해서 왔고, 그러한 나를 찾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기 도
높고 한없는 천지는 당신의 영광을 상징하였고, 어두운 밤이면 저 창공에 빛나는 일월성신들은 당신의 숨은 내적인 신비의 세계를 상징하였사옵고, 지어진 모든 미묘한 비밀에 잠겨 있는 모든 만물의 요소와 만물의 상징인 실체들은 당신의 미묘한 천지의, 천양(天壤)의 묘미를 우리에게 은은히 가르쳐 주는 것을 우리 인간시조들은 알지 못하였사옵고, 이 무한한 이 우주적인 예물을 오늘날 소홀히 대했던 그 죄를 저희들은 엄숙히 자기 자신을 직고하여 아버지 앞에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과거를 청산하고 현실을 청산하고 미래를 염려하는 가운데 있어서 엄숙하신 당신의 존전 앞에 타락의 후손 된 것을 원망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자기 자체를 세워서 회개할 줄 아는 아들딸이 돼야되겠습니다.
그러면서 선을 추구하기를 옛날의 아담 해와보다도 간절하게 허락하여 주옵고, 선을 위하는 그런 간절한 마음이 수많은 우리 선조들보다도 당당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용맹이 필요하고, 여기에 의분심이 필요하고, 여기에 정기가 필요한 것을 저희가 알았사오며 이 엄숙한 천국건설에 내 한 자체를 세우시기 위한 아버지의 놀라우신 수고의 역사노정을 더듬어보았습니다. 이 수고의 역사를 수습하기 위해서 보내 주시는 그분이 우리의 실체를 대신한 아버지 대신의 실체요, 실체를 다시 낳기 위하여 참부모의 실체로 온다는 것도 저희 알았사오니 그 부모를 모시고 영광을 아버지 앞에 돌리고 부모 앞에 돌리고 온 만물 앞에 돌릴 줄 아는 참다운 아들딸들이 되기 위하여 여기 모인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이날서부터 40일수련을 출발하옵니다. 여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사오매 개개인의 실체들은 당신의 소원하시던, 실체를 짓기 원했던 그 소원대로 자기를 세워 천륜 앞에 바칠 수 있는 이런 자아를 재조성하기 위하여 연단하는 이 기간이요, 몸과 마음을 닦아 빛내어 만우주 앞에 내스스로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 실체를 만들기 위한 기간인 것을 알고, 스스로 선별된 입장을 취하며 스스로본이 될 수있는 기준을 취하여 노력하고 꾸준히 싸울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합당하지 못한 자들이 있사오면 쳐서라도 아버지 뜻대로 경륜하시어서 이번 참석한 기간 가운데 사탄의 참소를 받아 하늘 앞에 조소거리를 남기는 이런 아들딸들이 없게 하여 주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어두움의 권한이 아무리 힘차다 할지라도 생명의 권한을 대신해 나타나는 모든 환경과 개체의 신념이 강할 때는 자연히 굴복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우주를 대신하여 스스로 승리할 수 있는 그런 자체를 이루기 위해서 스스로를 세우고 스스로의 깊은 골수를 찾아 심정의 인연, 심정의 사정, 심정의 뜻을 상속받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나를 중심삼은 모든 인연과 관계에 대해서 얘기했사오니, 그 전부는 잃어버린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잃어버린 천주를 복귀하기 위한 가운데서 아버지와 나와의 심정적인 인연을 갖춰야 할 것을 저희들이 배웠사오니 이 말을 중심삼고 스스로 그런 목적의 실체를 이루기 위해 준비하는 데 있어서 게을리하지 말고 꾸준히 참고 견디어 아버지의 영광 앞에 축복받을 수 있는 자들이 많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 맡겼사오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보내 놓고 염려하는 수많은 당신의 아들들도 있사오니 그들 위에도 같은 축복을 하여 주옵고 이를 염려하는 모든 무리 위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전체는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이것이 청산 돼 나가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아뢰오면서,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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