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로 들여다 본 사찰 36. 불감(佛龕)
불상이나 經을 모시는 공간
▲ 국보 제42호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불감은 불상이나 경(經) 등을 모시는 장치로 주자(廚子)ㆍ두자(豆子)라고도 한다. 단목(壇木)과 같은 나무 또는 금속으로 감형(龕形)을 만들고 불ㆍ보살을 새겨 휴대하기도 했다.
때로는 불감과 보각(寶閣), 주자를 구별해서 부르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대체로 쓰임새들은 서로 비슷하다. 목재나 금속으로 집ㆍ통(筒)의 모습을 만들고 그 정면에다 여닫이문을 달아서 칠이나 금박 등을 바르고 장식하는데 주로 나무로 된 것이 많다.
불감을 주자라고 한 것은 주자가 원래 부엌에서 조미료를 담던 그릇이었는데, 훗날 그 모양이 마치 불감과 비슷하게 바뀌면서 그것을 불상 봉안의 장치로 삼았기 때문인 듯하다. 한국에서는 이동하기 쉽도록 여닫이문을 닫으면 동그랗게 되는 작은 것도 있고 집 모양으로 된 것도 있다.
순천 송광사 불감이나 동국대박물관 소장 불감, 광양 상백운암 불감 등은 나무로 만들어졌고, 천은사 불감이나 간송미술관 소장 불감 등은 구리로 만들어졌는데, 모두 미술적으로 훌륭한 작품이다.
국보 제42호 송광사 목조삼존불감은 통일신라시대(9세기) 작품이다. 중앙에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한 석가여래를, 좌협시는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 우협시는 사자에 탄 문수보살을 조각했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염지(念持)하던 것으로 중국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것으로 전해진다. 높이 13.9㎝, 지름 6.9㎝. 이러한 목제 감상(龕像)은 중국에서 많이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그 유품이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중국의 경우 《관홍명집》 제6에 실린 중국 양나라 간문제가 쓴 《여승정교(與僧正敎)》를 보면 “때로 십존오성(十尊五聖)이 함께 한 감(龕)에 있기도 하며 혹은 여래와 함께 하나의 궤(櫃)에 놓여지기도 한다”라는 글이 있다. 이것은 양나라 때에 이미 불감제도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록이다.
출처 : 금강신문(https://www.ggbn.co.kr)
[출처] 돋보기로 들여다 본 사찰 36. 불감(佛龕)|작성자 안동처사 택전 윤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