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 논설위원이 간다] 첫 시집 ‘오뇌의 무도’ 히트, 인세는 7개월치 생활비
중앙일보
수정 2021-03-24 01:31:00
백석의 시에 화가 정현웅이 그림을 붙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두 작가의 우정을 보여준다. [사진 근대서지학회]
“내가 시를 써서 원고료를 많이 받기는『오뇌의 무도』를 출판한 후 인세로 450원을 받은 것이 최고이다.” 시인 김억(1895~?)이 1934년 발표한 ‘나의 시단 생활 25년기’의 한 대목이다. 450원은 2021년 기준으로 얼마쯤 될까. 해당 시집은 1921년 3월 선보였다. 한국은행 홈페이지에 있는 화폐가치계산 프로그램을 돌려보았다. 536만원쯤 됐다. 100년 전 당시 액수로는 꽤 많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은 시인의 숙명이 아닌가.
구인모 연세대 교수(글로벌인재학부)는 ”450원은 당시 경성 중류 이상 3인 가족의 약 7개월분 생활비였다”며 “『오뇌의 무도』는 2년 뒤 재판을 찍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 한국 시집 최초의 베스트셀러쯤 된다”고 말했다.
한국 첫 현대시집 『오뇌의 무도』.
『오뇌의 무도』는 단행본으로 엮인 한국 최초의 현대 시집이다. 주로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번역·소개했다. 해서 올해는 한국 현대시집 100년을 맞는 해다. 지난 한 세기 한국인과 함께 웃고 울어온 시집 100돌을 기념해 다음달 한 달 동안 서울 인사동 화봉문고에서 특별전이 열린다. 근대서지학회가 한국 현대시 100년을 압축해 보여주는 시집 100권을 선정했다.
오영식 근대서지학회장은 “『오뇌의 무도』부터 기형도의『잎 속의 검은 잎』(1989)까지 한국 현대 주요 시집 100권이 한자리에 모인 건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주최 측은 시집의 역사성을 고려해 일제강점기(1921~1945) 50종, 해방기(1946~1950) 30종, 한국전쟁 발발 이후 20종을 골랐다.
한국 현대시집 100년 시집 10선 표지
김억부터 기형도까지, 시집 100종 특별전
『오뇌의 무도』는 동료·후배 시인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영탄과 비애 등 세기말 서구의 퇴폐적 정서가 주조를 이루지만 소설가 이광수는 당시 문학청년들의 글쓰기가 ‘오뇌의 무도화(化)’했다고 지적할 정도였다. 요즘 독자들의 애송시 ‘시몬, 그대는 좋아하는가, 낙엽 밟는 소리를?’(구르몽의 ‘낙엽’)도 이 시집에 포함됐다.
1950년 납북된 김억은 1988년 해금 조치 이후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일부 친일성 작품으로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가 한국 현대문학사에 남긴 자취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1923년 한국 최초의 창작 시집『해파리의 노래』를 냈고, 특히 번역문학에 남다른 공적을 남겼다. 당시 관행인 일본어 중역을 넘어 서양시 원문을 번역하려고 애썼다.
김억은 이렇게 말했다. “자전(字典)과 씨름하며 말을 만들어 놓은 것이 이 역시집 한 권입니다.” 이에 대해 ‘논개’의 시인 변영로는 “우리 문단이 부르짖는 처음 소리요, 우리 문단이 처음 걷는 처음 발자국이며, 장래 우리 시단의 대심포니를 이룰 프렐류드(Prelude·서곡)”라고 상찬했다.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영문학)는 “한국에서 번역은 김억에 이르러 중역의 젖을 떼고 직역의 이유식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시인 김억, 김소월, 윤동주, 백석. 한국 현대시의 큰 줄기를 이룬 작가들이다. [중앙포토]
2021년 코로나19 역병 속에서도 봄은 찾아왔다. 봄의 절정으로 치닫는 요즘, 김소월(1902~34)을 빼고 한국 현대시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전국 산하에 진달래 꽃망울이 폭발하고 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가 절로 터질 정도다. 한국 현대시집 100선에서도『진달래꽃』(1925)이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
김억과 소월의 각별한 관계도 주목된다. 김억은 평북 정주군 오산학교에서 소월을 가르쳤다. 소월의 문학적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문단에 처음 소개했다. 김억이 소월의 문학적 스승이자 산파인 셈이다. 김욱동 교수는 “서양문학에서 ‘황무지’의 T S 엘리엇이 에즈라 파운드를 만난 것처럼 김억 없는 김소월도 생각하기 어렵다”고 했다.
『진달래꽃』은 한국 시집 중 유일하게 근대문화재로 등록됐다. 현재 900종 가까운 근대문화재 가운데 『진달래꽃』 이외에 등록된 문학유산은 이육사의 친필원고 ‘바다의 마음’과 ‘편복’, 윤동주의 친필원고,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 정도다. 우리네 마음의 젖줄이 돼온 한국 시집 100년을 돌아볼 때 좀 더 활발한 등록이 요청된다.
시인 윤동주가 재학 시절 머물렀던 기숙사 건물 전체를 전시공간 꾸민 연새대 윤동주기념관. 최정동 기자
이번 전시는 1950년 한국전쟁 이전의 작품에 무게를 실었다. 한국 현대시의 발흥과 전개에 초점을 맞췄다. 실제로 예전의 시집이 차지하는 문화적 비중은 오늘날과 바로 비교할 수 없다. 독자가 제한되고, 제작비도 만만치 않아 그 시절 시집을 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문인은 물론 동료 화가들이 삽화와 장정(裝幀)에 동참하는 일종의 협업예술과 같았다.
당연히 각 시집에 얽힌 사연도 풍성하다. 『진달래꽃』 초간본의 경우 출판사는 한 곳이지만 총판매소 두 곳에 세 가지 이본(異本)이 전하고 있다. 백석은 100부 한정판으로 자가 출판한『사슴』(1936)에 당시로선 가장 비싼 정가 2원(현재 약 2만2000원)을 매겼다. 이육사와 윤동주는 생전에 시집을 내지 못했다. 해방 이후 지인·가족의 도움으로 유고집『육사시집』(1946)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가 빛을 보게 됐다. 이상은 친구 김기림의『기상도』(1936) 편집을 책임졌고, 김기림은 그 우정에 보답해 이상의 유고집 『이상선집』(1949)을 엮어냈다.
반면 ‘거지 시인’ 천상병의『새』(1971)는 시인이 살아 있는데도 주변에서 숨진 것으로 오해해 생존 시인의 유고시집이란 독특한 기록을 남겼다. ‘애비는 종이었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자화상)이 실린 서정주의 첫 시집『화사집』(1941)은 그의 문우(文友)이자 남대문약국 주인인 김상원이 제작비 500원(현재 약 430만원)를 대기도 했다.
한국 시문학전집 정리·발간 숙제로
이번 특별전은 몇 가지 아쉬움도 남긴다. 우선 전시장이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인사동 고서점 맥을 잇고 있는 화봉문고 전시장 200㎡(약 60평)에서 열린다. 한국 시집 100년을 담아내기엔 다소 왜소하다. 오영식 회장은 “국공립 전시장 등 여러 곳을 알아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한국 문단의 열악한 오늘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국시 100년을 꿰는 한국시문학 전집 출간도 숙제다. 주요 시집의 초판본 영인본을 만들고, 현대어로 옮기고, 해설도 곁들인 ‘정본 전집’이 부재한 실정이다. 오 회장은 “상업성 부족이 원인이겠지만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한국시인협회 등록시인 1700명(비등록 합하면 수만 명 추정)에, 지난해에만 신간 시집 2948종(출판협회 납본 기준)을 낸 ‘시 공화국’ 한국의 또 다른 초상이다.
화가 정현웅 "책 장정은 그 나라 문화 수준"
출판미술가 정현웅
“서적의 장정, 그것만으로도 그 나라 문화 수준의 한 면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1930년대 출판미술가인 정현웅(1911∼76)의 말이다. 이번 특별전의 감상 포인트 중 하나는 시집 장정이다. 『오뇌의 무도』는 장정가를 밝힌 근대의 첫 단행본이다. 평양 출신의 서양화가 김찬영이 표지를 그렸다. 표지 왼쪽 위에 오선지를, 오른쪽 아래에 양귀비꽃을 그려 넣었다. 붉은색의 시집 제목이 불안한 시대를 웅변하는 듯하다. 괴석 옆 진달래꽃이 눈에 띄는『진달래꽃』의 장정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백석의 『사슴』은 아무런 꾸밈이 없는 겹장의 한지로 마감했다. ‘무장정의 장정’인 셈이다. 『정지용시집』과 『영랑시집』은 재킷만 다를 뿐 똑같은 형태로 만들었다. 임화의 『현해탄』 표지에는 화가 구본웅이 거친 터치로 휘갈긴 파도가 일렁거리고, 서정주의『화사집』 특제본은 책등(書背)의 시집 제목을 붉은색 실로 수놓았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5월 30일까지)에서도 그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