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 숙련된 주부들의 김치 버무리는 솜씨가 빠르다. 분주히 손을 움직여 보지만 양념을 뒤집어쓴 배추 포기들이 자꾸만 내 앞에 쌓인다. 마치 ‘뭐 하냐?’ 하며 쳐다보는 것 같다. 날렵하지 못한 내가 주부 9단 고수들이 잽싸게 버무려 주는 것을 마무리하여 통에 넣자니 숨 쉴 틈이 없다. ‘휴!’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김장철을 맞아 김치를 어떻게 담가야 맛이 있을까 생각하였다. 편하게 골목 시장 채소 가게에 배추를 절여 달랄까. 싱싱한 것을, 쓸 수 있게 해남 농가에다, 절임 배추를 주문할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중 경주 막내 고모가 생각났다. 작년 여름에 가서 먹어 본 김치가 특별히 맛이 있었다. 목장 퇴비를 뿌려 키운 배추라 아삭하고 달았다. 고모에게 올해 김장할 때 우리 것도 같이할 수 있을까 물어보니 흔쾌히 승낙했다. 덤으로 동생네 것도 해 주잔다.
남편은 주문 배추로 집에서 하면 될 걸 괜히 번거롭게 군다고 나무랐다. 하지만 시골집 마당에서 고모랑 사촌들과 왁자지껄 김치 담글 생각에 개의치 않았다. 밤새 엎치락뒤치락 잠을 설친 후, 아침 일찍 전날 사 둔 돼지고기와 게장을 들고 경주로 내달렸다.
고모 집에 도착하니 마당, 한가운데는 절임 배추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사촌 동생이 시가에 상을 당해 못 온다니 김장 버무릴 사람이 나랑 고모밖에 없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팔을 걷어붙여 보지만 겁부터 났다. 다행히 일손이 모자란다는 말을 들은 이웃 아주머니 두 분이 오셨다. 일을 배분했다. 며칠 전부터 배추 절이고 양념 만드느라 고생한 고모는 관리를 맡고 막내 동생은 심부름, 이웃 아주머니와 나는 김장 버무리기에 착수했다. 아주머니들이 배추에 양념을 발라 주면 무채, 미나리, 토막 갈치를 모아 싸서 김치통에 넣는 게 내가 맡은 소임이다. 큰 배추 백여 포기를 갈무리하자니 일이 해도 해도 끝없다. 팔과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도와주러 온 아주머니들 앞이라 내색할 수도 없다. 내년에는 집에서 혼자 해야겠다며 남몰래 한숨만 내쉬었다.
목장에 나갔던 고모부와 사촌이 돌아오자 푸짐한 점심상이 차려졌다. 윤기 흐르는 찰밥에 갓 버무린 김치, 훈김이 올라오는 구수한 돼지 수육, 달콤한 게장…. 직접 짜온 싱싱한 우유까지 커다란 상 두 개가 가득 찼다. 포기째 상에 오른 김치를 손으로 죽 찢어 입에 넣는다. 매운맛이 내는 반찬이 입안 가득 펼쳐져 혀가 즐겁다. 여럿이 둘러앉아 밥 먹으랴, 얘기하랴, 웃으랴 떠들썩하다. 신이 나서 허리 아픈 것도 잊어버렸다. 그래, 이게 까마득히 어릴 적 김장 날의, 모습이다.
아버지가 칠 남매의 장남인 우리 집은 식구가 많았다. 초등학교 취학 전에는 할머니, 총각인 삼촌들과 어린 고모까지 열 명이 넘었다. 겨울 찬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이라 추워지면 김장을 많이 했다. 그날은 동네 아지매 들까지 거들러 와서 넓은 마당이, 가득 찼다. 어른들은 볼과 손이 빨개지도록 정신없이 바빴지만 우리는 좋아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숙모가 마당 한켠의 디딜방아에서 찰떡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점심상이 차려지고 새빨간 김치와 파란 콩고물 떡이 올라오면 매워서 호호거리며 먹었다. 엄마가 담근 막걸리도 잘 익어 어른들은 서로 잔을 주고받았다.
일을 마치고 뒷정리를 한 후 허리를 폈다. 고모와 방으로 들어가 아랫목에 나란히 누웠다. 내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겨주는 고모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농사일을 많이 한 손바닥이 거칠다. 두 손으로 한참 쓰다듬자 온기가 돌며 부드러원진다.
고모와의 나이 차이는 얼마 안 돼 함께 엮은 추억이 많다. 할머니와 엄마를 기억에서 불러온다. 나는 고집쟁이 오빠가 일곱 살 때 태어났다. 엄마를 독차지할 수 없어, 젖을 떼자마자 할아버지 할머니 방으로 내밀렸다. 두 분은 오랜만에 본 손녀가 귀한 데다 엄마 품을 일찍 뺏긴 게 안스러워 고모 자리에 나를 눕히고 번갈아 가며 안아 주었다.
아홉 살이던 고모는 하루아침에 엄마 품을 빼앗기자 샘을 내고 삐쭉거렸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걷기 시작하자 놀러 갈 때마다 데리고 다녔다. 나는 매달리듯 양손을 잡힌 채 “아이고, 자야!” 하는 그들의 말을 흉내 내어 “이이꾸 짜야야~!” 하며 흔들렸다. 모두가 왁자하게 웃던 그때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고모는 엄마처럼 김장김치, 찰 흑미, 배추, 무 등을 트렁크에 가득 실어 준다. 남은 양념도 주시니, 무김치를 담고도 찌개 양념으로 넉넉하겠다. 된장까지 한 통 들고나오기에 우리 집 된장도 있다고 했지만, 고모 된장 맛도 한번 보라신다. 고모의 마음 보따리를 잔뜩 싣고 돌아오니 부자가 된 듯하다.
그동안 내뱉었던 날숨들이 모여 냉장고 속을 가득 채웠다. 얼마 동안 반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이제야 힘든 순간은 다 잊어버리고 흡족한 웃음이 나온다.
“하, 하, 하”
첫댓글
그김치 가족의 사랑으로양념하였으니 참으로 맛이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