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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음악의 독립적인 교육을 위한 관련 단체의 조용하지만 힘있는 투쟁! 정서가 메마른 인간들이 악귀처럼 득세한 세상을 다시 백색의 캔버스에서 묵화를 그리듯이 시작! 사진 권오철
2024년5월29일 광화문 서울 정부청사 뒤에서 ‘음악 및 미술 교육 관련 단체’의 초등학교 예술교육 부활을 외치는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초등학교 저학년에 음악・미술 교과 없는OECD 유일한 국가가 바로 이른바 한류의 나라 사우스 코리아라는 것에 길가는 시민들은 의아해 하였다.
'한국 음악교육・미술교육 공동비상대책위'(이하 비대위)는 4월9일 보도자료에서, "정서교육과 창조적 역량 함양을 위해 필수적인 초등학교 저학년의 음악 및 미술 교육을 보장하라"고 주장한바 있다.
제3차 교육과정을 마지막으로 음악, 미술 교과가 지난 40년 동안 '즐거운 생활'에 어물쩍 통합되어 오다가 4월 12일 국가교육위는 통합교과'즐거운 생활'에서 체육교과가 신체활동 관련 교과로 독립하기 위한 논의가 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에 따라 체육교과의 움직임에 적극 찬성하면서도 공교육에서의 정상적인 예술교육을 위해 음악교과와 미술교과의 독립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비대위에는 음악교육 관련 주요 단체(한국음악교육학회, 미래음악교육학회, 한국국악교육학회, 한국국악교육연구학회)와 미술교육 관련 주요 단체(한국미술교육학회, 조형교육학회, 한국초등미술교육학회, 한국국제미술교육학회)가 소속돼 있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칭하는 교육에서 특히 적령기의 예술교육 부재는 이에 대한 초석 자체를 구축하지 못하는 일"이라며 "초등학교 저학년 예술교육을 말살한 국가에서 창조적 미래는 결코 도래할 수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외국의 저학년 음악과 교육과정 내용을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면, 외국의 경우는 가창, 기악, 창작, 감상 등 전 영역에 걸쳐서 골고루 학습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주로 노래 부르기와 간단한 리듬악기를 연주하는 것에 그친다. 미술과 교육과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그리기, 꾸미기와 만들기가 주를 이루면서 음악, 미술 교육과정은 유치원의 누리과정에서 배운 내용과 수준을 답습하거나 오히려 퇴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4월23일 기자회견 장면. 이제 진정한 전인교육을 위한 예체능의 부활이 필요한 시점이다. 잃어버린 악경(樂經)을 찻아서. 사진 월드코리아
이런 문제는 과도한 교육과정을 줄이자는 의도에서 명분없이 통합한 결과가 오늘날 정서 부재의 인간들을 양산하여 오로지 과도 입시(일류대),자격고시(법조,의학)이런 무뇌아(?)가 횡행하고 득세하게 만든 주 요인이다.
예로 우리는 ‘육경’을 공부하면서 인성을 길러 왔고, 그 육경은 바로 《詩經》《尙書》《禮經》《易經》《樂經》《春秋》이다. 시를 알고(시경), 명문장을 외우고(상서), 에치켓을 알며(예경), 천지원리를 배우고(역경),노래와 춤을 알아야(악경),역사의 흐름을 인식하고(춘추), 바른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그 옛날 입시 학년이 되면 음악,체육,미술 시간은 자습시간이 되고 음악교사는 자습감독이고, 체육교사는 잠시 바람 쐬주는 체조나 해주고, 미술교사는 혼자 그림을 그리면서 자습생들을 바라보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젊은 명문대 출신 체육교사가 칠판에 크게 쓴 글‘피지컬 에듀케이션(체육)은 무엇인가?’라는 제목과 혼자 자조 섞인 목소리로 조용히 설명하던 그 자괴감의 그 우울한 목소리는 반세기를 지나 아직 우리의 마음 속에 응어리 져있다. 그리고 축구공을 조용히 내어 주면서 놀다 오라던 그 목소리, 그것이 바로 이땅의 정서를 황폐하고 결과 주의의 편협된 오만으로 그것이 특권의식으로 이 사회를 아이 없는 우울한 시대로 까지 만들어 가고 있다.
악경(樂經)의 편린과 그 시위장소 광화문 뒤 근방 '양정'표지판, 사람을 바르게 기르는 '양정(養正)'의 원리! 어려서 부터 바르게 일깨워서 가르쳐 자기 마음을 바르게 기른다(蒙以養正 養心正己), 易經에 나오는 말이다! 사진 권오철
그것이 결국 이상한 정국을 만들고 파국으로 가는 암울한 전주곡으로 지나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잃어버린 ‘악경(樂經)’의 편린을 맞추어 보고,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그리고 수묵화의 고즈넉한 넉넉한 성품이 필요한 시대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교육 韓流는 그 본령을 찾아 작은 목소리나마 진하게 전달하고 있다. (글 권오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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