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우도진(牛島津)
관산읍 삼산리 우산도 서편 삼서포구로 잇는 나루이다. 우산도 북서쪽 송촌리 대평마을 앞까지가 갯골이어서 고장흥의 일반 포구로 활용된 성 싶다.
<대동지지> : 진도(津渡) : 우도진(牛島津)
우도(牛島)[이상 여러 섬은 동남쪽 바다가운데 있다]
12. 대흥(大興)
대덕읍 도청리 복판 178-18번지에 있는 대흥면사무소터가 중심지이다.
<대동지지> : 대흥(大興) : 남쪽으로 처음은 50리이고 끝은 70리이다.
13. 보림사(寶林寺)
유치면 봉덕리 45번지에 있는 절로 가지산(510m) 남서쪽 기슭, 남닥천 용소 북안 해발 98m인 당촌에 있다(1/5천 지형도). 동양 3보림(인도․중국․한국)의 하나로 우리나라에 선종이 가장 먼저 들어와 정착된 곳이기도 하다. 원표대덕(元表大德)이 터를 잡고 759년에는 장생표주를 국가에서 건립하도록 교지를 내리기도 하며, 보조선사대에 이르러 중창된다. 국보 제44호 삼층석탑과 석등, 국보 제117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157․158호인 보조선사창성탑․탑비 등 통일신라시대 불교문화의 보고이다.
<대동지지> : 가지산(迦智山) : 북쪽 40리에 있다. 보림사가 있다.
14. 선암사(仙岩寺)
천관산 연대봉 동남쪽 50보 아래(삼동자석 위쪽) 샘터 근처에 터가 있다. 고려시대 기록인 천관산기(정명국사 천인)에 “산꼭대기에서 남으로 3리 쯤 달리면 선암사(仙巖寺)가 있고, 절 북쪽에는 바위가 총총히 있는데 지선(지선)이 살던 곳이니, 아마 단애옹(丹崖翁) 황석공(黃石公)의 다음가는 사람들일 것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존재 위백규가 지은 천관산의 향토지리지인 지제지(支提誌, 1779년)에 자세한 기록이 있다.
“선암(仙菴) 초암(草菴)아래 있다. 암자 뒤에 큰 바위가 있으니 전체가 금갑(金甲)과 같다. 전하는 말로 옛날 선인(仙人)이 이 암자 위에서 대낮에 승천했다고 하여 바위 이름을 황석공암이라 하고 선암이란 이름도 이 때문에 얻은 것이다. 암자가 극히 장려(壯麗)하여 정당(정당)이 5칸이요, 동쪽 별실이 5칸, 앞 누각도 5칸이니 이 산에서는 큰 암자가 된다. 루는 아름다운 계곡을 바라보며 항상 봄과 여름에는 맑은 못과 와폭(臥瀑)이 구름을 끼곡 궤석(几席)의 사이에서 우레를 뿜어댄다. 동백과 비자, 푸른 소나무와 대가 다래넝쿨과 어울려 두견화를 끼고 붉은 것을 서로 시기하며 푸른 것을 서로 다투니 사람으로 하여금 이에 도취케 하여 정신을 상쾌하게 해준다. 루 이름은 벽허루(碧虛樓)니 1759(영조己卯)년 사이에 암자가 비게 되자 본읍의 향소(鄕所)에서 관에 알리게 되어 그 지붕기와를 순천 제민창에 보내므로써 마침내 암자가 없어지고 말았다”(지제지)
<대동지지> : 천관산(天冠山) : 남쪽 70리에 바닷가에 있다. 선암사와 천관사 옥룡사가 있다.
15. 수인산(修仁山城)
수인산은 유치면 오복리와 강진군 병영면 상락리의 경계에 있는 높이 562m 산이다
수인산성[전라남도 기념물 제59호]은 유치면 대리와 장흥읍 성불리, 강진군 병영면에 걸친 산마루에 쌓은 석성으로 주위가 5.5㎞, 높이 4~6m, 폭 4m이며, 3개의 문지가 남아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진현 고적조에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3천 7백 56자, 높이 9자이다. 고려말 도강․탐진․보성․장흥․영암 백성들이 모두 여기에서 왜구를 피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이후 왜구의 피해를 피하기 위한 입보처로 이용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전라도 남해안 지역의 대표적인 산성이다. 대한제국기 의병장인 심남일과 이교민이 왜군과 항전하다 전사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수인산 정산에 봉수터(修仁山烽燧址)가 위치한다. 조선 초 개설되었으며, 억불산봉수로부터의 적변을 전라병영성에 전달하는 제 5거 권설봉수였다.
<대동지지> : 수인산(修因山) : [장흥도호부] 서북쪽 10리에 있다. 강진을 보라.
<대동지지> : 수인산(修因山) : 도강에 있다. [강진]현에서의 거리가 동쪽으로 30리이다.[강진 산수조]
16. 천관산(天冠山烽燧)
천관산은 관산읍 농안․용전․방촌․외동․삼산리와 대덕읍 연정․연지리에 걸쳐 있는 높이 723m 산이다. 천관사, 탑산사를 비롯하여 많은 절과 절터가 있고, 기암괴석이 우뚝우뚝 솟아 있어 천태만상을 이루고 있으며, 천풍산, 지제산이라고도 부른다. 봉수는 조선초에 개설되었고 제5거 직봉이었으며 동쪽으로 전일현(全日峴), 서쪽으로 강진 원포봉(垣浦峰), 북쪽으로 억불산 봉수에 응하였다. 봉수대는 관산읍 농안리 산51-4, 산97-4번지에 있다. 현재 정상의 평탄지대에 1985-1986년 사이 주민들의 자문을 받아 복원되어 있다. 복원된 규모는 남북 6.65m, 동서 7.9m, 높이 2.35~2.6m이다. 석재를 판석형으로 가공하여 장방형의 형태로 연대를 축조하였고, 북편에는 계단이 시설되어 있다.
<대동지지> : 천관산(天冠山) : 남쪽 70리에 바닷가에 있다. 옛이름은 천풍(天風) 또는 지제(支提)라고도 칭한다. 남으로 큰 바다에 임했고 기복이 심하고 지붕을 두른 듯한 돌의 형세가 뛰어난 승경이고 험준하다. 상봉을 구룡(九龍)이라 하는데 서쪽에 영통대(靈通臺)가 있고 대의 동쪽 절벽에 대석탑이 있다. 또 그 서쪽에 청포봉(靑浦峯)이 있고 봉우리 위에 세개의 돌이 솥처럼 깊이가 있다. 한 돌은 신령스럽게도 물이 솟아나 맑은 못이 되어 아홉마디의 창포가 자란다. 또 불영봉, 당암, 고암, 신중암, 측립암, 사자암, 향적암, 사나암, 문수암, 보현암, 구정암, 금강굴, 반야대, 환희대가 있다. 선암사와 천관사 옥룡사가 있다.
연혁 : 오아때의 고읍은 천관산의 남쪽에 있는데 고장흥이라 부른다.
형승(形勝) : 천관산은 우뚝솟아 바다에 임했고 예양강은 구비돌아 성을 감싸고 있네 산천은 수려하고 들은 비옥하며 남쪽 큰 고을로 해륙의 요충이네 天冠磅礴而臨海 汭陽回還而包城 山川秀拔田野肥 饒爲南繁海陸之要衝
봉수(烽燧) : 천관산(天冠山)
17. 억불산(億佛山烽燧)
억불산은 장흥읍 우목․평화리와 안양면 기산․수양리와 용산면 계산․모산리 경계에 있는 높이 517m 산이다. 기암괴석이 우뚝 우뚝 솟아 있는데, 그 모양이 모두 부처가 서있는 것 같다. 밑에 부암[婦巖, 며느리바위]이 있고 부암산 또는 억부산이라고도 부른다. 남동쪽 학성이 있다. <대동여지도>에 황보성을 억불산 남쪽에 표기하고 있는데, 학성을 착오한 것이 아닌가 싶다. 며느리 바위는 시주승 학대 설화의 전형이다.
<대동지지> : 억불산(億佛山) : 동쪽 10리에 있다. 산 허리에 부암(婦岩, 며느리바위)이 있는데 또는 망부석(望夫石)이라고도 한다.
억불산(億佛山)봉수 : 동쪽 10리에 있다. 권설(權設)이다.
18. 전일산(全日山烽燧)
전일산은 안양면 수락리 동남쪽에서 보성군 회천면 봉강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저날재(全日峙)’라고도 한다. 이 고개의 남쪽 205m의 봉우리에 봉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남쪽리 수문해수욕장이다.
<대동지지> : 전일산(全日山)봉수 : 동쪽 35리에 있다.
19. 중령산(中寧山古山城)
장흥읍 원도․축내․향양․건산리에 걸쳐 있는 높이 60m 산으로 장흥고등학교 뒷산으로 여겨지며, 토성 터가 있다. 1392년 부사 황보덕(皇甫德)이 고을의 부로들이 장흥부는 은띠(정3품-종6품) 이상의 관원이 다스리었는데, 이제 보성군에 붙이어 작은 고을에 딸리게 되었으니 심한 수치라는 진정을 받아 안렴사 이원(李原)에게 보고해서 이웃 고을의 장정 350명을 모아 8월 17일에 공사를 시작, 9월 27일에 끝마치었다. 중령산고성지는 원도리 연곡 전20-2, 22, 91, 98, 106, 108, 593, 596, 666번지 일원이다. <대동여지도>의 황보성은 억불산 남쪽으로 위치를 표기하고 있다.
중령산(中寧山) : 동쪽 5리에 있다. 고읍성(古邑城) : 중령산(中寧山)에 있으며 태조 원년에 쌓았다.
20. 용두산(龍頭山)
장평면 등촌․축내․제산리와 부산면 용반․금자리에 걸쳐 있는 높이 537m 산이다. 지형이 용머리처럼 생겼다 한다. 고려시대에 금장사라는 큰 규모의 절이 있었다. 금장사는 부산면 금자리 금장마을에 있었고, <동문선>에 용두산금장사금당주미륵삼존개금기(龍頭山金藏寺金堂主彌勒三尊改金記)가 있다.(김희태, 동문선소재 기문 3례, <장흥문화> 11집 참조).
<대동지지> : 용두산(龍頭山) : 동북쪽 20리에 있다. 금장사(金藏寺)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