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에 한번 있는 동문산악회에 갔다. 이번 산행지가 시산제를 겸해서 진주 방어산으로 정했는 모양인데, 산행대장이 산행지를 설명하면서 LG설립자 구인회회장의 생가가 있는 지수에 들러 구경하고 간다기에 언젠가 한번은 꼭 가볼 곳이라 벼르던 곳이라 이동중인 버스에서 지수라는 동네와 LG가문에 관련된 자료를 대충 검색했다. 갈마음수혈이라는 구인회의 조부모산소는 20여년전 풍수관산회 때 다녀간 곳이라 등산코스가 이곳을 지나가길 바라며 지수초등학교앞에 내렸다.
내리고보니 벌써 분위기가 달랐다. 자그마한 시골동네이긴 해도 양명해 보였다. 오늘 시산제를 행하는 방어산이 진산이 되어 남서쪽으로 굽이쳐 돌아와서 회룡고조(回龍顧祖-산의 지맥이 뺑 돌아서 본산과 서로 마주함을 이르는 말)를 이루고,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풍수요건을 갖추고 있다. 풍수라는 어원은 장풍득수(藏風得水-감출 장(藏)에 얻을 득(得)을 사용하여 바람은 감추고 물은 얻는다)라는 뜻이다. 대다수의 집들이 배산임수의 지세를 따라 동향인데 LG에서 분가한 GS그룹 사장들의 여러 생가들이 연이어져 있었다. 집앞으로 흐르는 내당수(內堂水)가 특이하다.서울로 말하면 청계천이 내당수다. 물은 재물을 상징하는데 물이 앞으로 빠져나가거나 환포하지 않고 반배하면 재물이 나가는 것으로 본다. 더욱 기특한 점은 마을 전체가 사방으로 둘러쌓여 물이 나가는 수구가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이다. 지금은 남해고속도로가 생겨 먼남쪽 래룡맥이 잘려 있으나 양동마을 하회마을도 가 보았지만 가장 압권이다. 일제시대에 이 마을에 만석군이 한집 오천석군이 두집 천석군이 여덟집이나 되였다니 참 대단한 부촌임에 틀림없다.
엘지에서 시대적인 조류에 의해 지수초등학교의 폐교를 막으려고 외지학생을 유치하고 각종편의를 제공하여서인지 내후년이면 100주년이 되는 전통있는 학교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학교는 GS그룹의 선대 만석군이 1921년 터를 기증하여 개교했으며, 서당공부하던 구인회가 2학년에 편입하고, 다음해 의령 출신의 이병철은 이마을 허씨집안으로 시집온 누나집에서 3학년에 편입하여 1년간 재학하다가 서울 수송초등학교로 전학하니 2대 재벌을 탄생시킨 명문 초등학교이다.
20분간 답사시간은 주었지만 재벌가 GS의 많은 허씨들 생가와 구씨 생가는 대문이 잠겨있어 분위기만 읽고 주마간산의 아쉬움은 다음을 기약하며 산행지의 들입구에 다시 내렸다.
백만불 짜리 양택지를 둘러본 환희심으로 방어산의 들머리에 이르니 버스안에서 바랬던 구인회의 조부모산소옆이었다. 이 또한 쾌재가 아닌가. 내가 풍수학인을 자처하며 삼한인근은 말할 것도 없고 조선팔도의 명당을 찾아 관산회에 따라 다닐 때 보왔던 곳을 우연히 등산와서 겸사로 다시 3볼줄이야.
에전에 왔을 때는 인솔선생의 설명만 듣고 명당
이니까 명당인갑다 했는데, 아직 초보수준인 돌팔이 풍수학인의 눈에도 명당임에 틀림 없어 보인다.
우선 주산인 방어산 산세가 엄청 힘이 있어 보인다. 실제로 방어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호쾌하기 그지 없었다. 힘있는 용(래맥)은 기복과 좌우로 방향선회를 심하게 한다(생룡).
반대로 힘없는 용은 변화가 없고 밋밋하다(사룡). 비룡상천형이란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을 말한다. 풍수가 정론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사술로 폄하한데는 이와같은 물상론 때문이다. 지수마을을 금계포란형이라 하고 이 산소는 갈마음수형이라 하는데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형이다고 한다.진짜 웃기는 이름이 많다. 노서하전(늙은 쥐가 들판에 내려오는 형국),옥녀탄금(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상제봉조(옥황상제가 신하로부터 절받는 형국) 오선위기(다섯 신선이 바둑을 둔는 형국), 금오탁시(금까마귀가 시체를 쪼는 형국) 등등 희안 별구한 문자로 갖다 붙인다.
천문 지리에 해박했던 조선중기의 전설적인 지사였고 격암유록을 저술한 남사고는 남의 집 산소는 숱하게 점혈하였음에도 진작 자기 선고자리를 아홉번이나 이장하여도 명당 발복을 보지 못하고 대도 끊어졌다. 열번째로 비룡상천혈을 찾아 이장하였는데. 어떤 도인이 지나가면서 구천십장 남사고야 비룡상천어디두고 고사괘목 이 아닌가 했다는 말에서 보듯이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하고 죽은 뱀이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니 물형으로 명당을 논하는 자는 문자깨나 하는 엉터리 풍수의 극치다.
방안에서 문자로 패철로 풍수를 나불거리는 작대기 풍수사들 때문에 사기치기 딱 좋은 분야로 전락한 게 풍수다.
진주에서 포목상으로 돈을 번 구인회는 이곳 산소를 쓰고 난 뒤 1947년 부산에서 럭키화학을 설립하고, 한국최초로 플라스틱을 생산하고 6.25전쟁통에도 럭키크림으로 일약 거부가 되었다. 증손자 구자경이 LG그룹으로 발전시키고, 고손자인 구본무가 3대 재벌그룹으로 성장하였으니 귀납법으로 해석해도 그럴 듯도 하다.
하산길에 다시 이 산소에 서서 둘러보았다. 기가막힌 주산도 주산이지만 안대하나가 기물이다. 세가닥의 청룡 중에 안산을 겸한 마지막 외청룡이 산소정면에서 거의 270도 각도로 감싸고 있었다. 이 산소의 특징이 백호가 없는 것인데도 안대가 백호역할을 해주고 래용이 용진처에서 좌선룡함으로서 물을 거수하여 백호가 관장하는 재물을 대신함이었다.
이 산소의 발복으로 재벌이 되었다 치자. 그러면 구인회는 62세에 뇌종양으로 사망하고 구본무의 아들인 6대손 장손은 17세의 나이에 사고사로 죽어 구본무 동생의 외동아들 구광모를 양자로 들였으며 구본무는 아버지 구자경이 살아 있는데 먼저 죽었는지도 밝혀져야 풍수가 신뢰를 얻을 수 있으리라. 너무 완벽한 요구를 하는지 모르지만.
하산길에 마을 어르신에게 여러 가지를 들을 수 있었다. 구인회는 돈을 벌자 졸부들이 그러했듯이 산소를 치장했단다. 독일에서 수입한 대리석으로 번듯하게 묘소주변을 호화분묘로 만들었는데 다음해 구인회가 62세의 나이에 죽자 화가 치민 그의 부인이 덤프트럭 다섯 대 분량의 석물을 모두 남강에다 폐기처분하였다 한다.
구인회의 부친산소가 용인에 있다가 지금의 만덕 터널입구 온천동의 금정산 아래로 이장하였는데 용인산소의 결함때문인지는 연구대상이다. 온천동 럭키아파트 자리가 금성사 공장이었는데 이것이 인연되어서 인지 구인회묘소는 고향 선산을 두고 금성사가 보이는 이곳에 점혈하였을 걸로 짐작된다.용인에 있던 선고 산소는 그 후 아들인 구인회 산소 윗쪽으로 이장하여 풍수학인들이 관산지로 인기가 있는 곳이다. 손자 구본무의 단명과 증손자의 사망은 이곳 산소의 피해가 아닌지 유추해 본다. 17세에 요절한 증손자는 금수저로 태어나 재벌그룹의 후계자로 따논 당상이었는데, 왜 죽었어야 했는지도 규명된다면 풍수는 겁나는 분야임에 틀림 없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명당이라 해도 완벽한 명당은 없고,대대로 명당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금수저는 좋은 음택과 양택의 영향으로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과연 누가 명당에 들어가는가. 천장지비(天藏地秘)해서 이대기인(以待其人)이라는데 명당은 하늘이 감추고 땅이 비밀로 하면서 들어갈 사람을 기다린다 했다.돈이 있다고 권력이 있다고 해서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논어에 이르기를 적선지가에 필유여경이라 했다
설령 임자가 아닌 사람이 명담에 들어간다해도 도로가 난다든지 국가사업을 한다든지 해서 반드시 일어난다는 점도 알아둘 일이다
금수저로 태어나기를 원하는가.조상을 잘 모셨는가.?
흑수저로 태어났는가. 전생에 업을 짓지는 않았는가?
명당 얻기를 원하는가 적선을 했는가?

LG, GS그룹 가계도

위성에서 본 생가(生家)와 조부 연호공의 묘소, 방어산에서 녹색선은 조부 연호공 묘소를 내려가는 룡맥을 표시한 것이고 노랑점이 묘소, 적색선은 생가로 내려가는 룡맥을 표시한 것이며 적색점이 생가(生家), 길게 노랑선은 남해안 고속도로,

지수면 승내리 전경

구씨 생가

허씨생가

구인회 조부모묘소- 배위가 둘, 가운데가 조부

구인회 부친 묘소- 온천동 금정산 아래, 용인에서 이장해옴

구인회 묘소 -온천동 만덕터널 입구,부친묘소 아래
첫댓글 재미있는 풍수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긴글 읽어보셨다다니 감사할뿐이오
이참에 저의 풍수관을 밝힐까 합니다
저는 화장예찬론자 입니다
자식들에게 유언해두었고요
그러나 지금까지 공부한 바에 의하면 풍수가 전혀 근거없는 사술은 아니다는 점입니다
모르는 것을 알고 싶은게 본연의 심정일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풍수 공부 좀 엿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