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인류가 조작해서 만들어 낸 결과물들이다. 그 중 화폐는 인류가 만들어 낸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다.
화폐란 원래 자연엔 없었지만 인간이 상상한 가상의 가치(價値)를 어떤 매개체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우겨서 만들어 낸 대표적인 가상 상품이다. 그러니 현실화폐나 가상화폐(암호화폐)나 가상의 발명품인 건 마찬가지다.
가상의 가치가 부여된 화폐는 거래를 통해 ‘부(富)의 획득’ ‘부의 축적’ ‘부의 착취’를 용이하게 만들었다. 과거 새로운 왕조(정부)가 설립되면 집권세력이 맨 먼저 단행하는 게 전제개혁(田制改革)과 화폐개혁(貨幣改革)이었다. 새로운 집권세력의 부를 보장해주기 위해 기존의 가치체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부의 원천’과 가치체계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의 원천’은 땅(토지)에 있었으므로 인류 역사는 ‘부의 획득’ 또는 ‘부의 확장’을 위한 ‘땅 따먹기’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다. 영토 위에서 채집되는 특산물과 생산되는 농축산물 그리고 거주하는 인구수에 따른 노동력이 ‘부의 원천’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화폐는 그런 ‘부의 원천’에서 창출되는 ‘부의 가치’를 거둬들이고 나누고 축적할 수 있는 모든 거래를 용이하게 해줌으로써 집권세력의 부의 획득과 피지배계층의 ‘부(富)의 착취’ 및 ‘부의 통제’ 수단으로서 한 몫 해왔다. 그러니 애초부터 화폐는 독재 권력에 의해 탄생했고 독재화에 길들여 오면서 발전해 왔다.
그런데 화폐의 가치 생산은 ‘화폐발행자’가 아닌 화폐의 가치를 거래하는 ‘화폐사용자’들로부터 나온다. 아무리 귀하게 발행된 금덩어리 화폐라도 지불수단으로서 그 가치를 교환할 수 없다면 그냥 금속덩어리일 뿐이다. 대표적인 예가 1866년(고종 3년)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고자 발행했던 당백전(當百錢)이다. 당백전은 화폐사용자의 외면으로 6개월 만에 사라졌다.
실물경제에서 가치교환의 기능을 상실해 지불수단이 되지 못한 화폐는 골동품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당백전은 골동품거리인 인사동 골목에서 간혹 거래된다. 사실을 논하자면, 그동안 탄생한 수많은 암호화폐들도 거의 골동품이다. ‘암호화폐 거래소’(Cryptocurrency exchange)는 솔직히 말하면 ‘디지털 골동품 거래소’를 명칭만 세련되게 만든 것이다.
골동품은 투자 대상이지 화폐는 아니다. 요즘 암호화폐가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직면했는지 슬그머니 ‘암호자산’(crypto asset)이란 용어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암호화폐가 골동품이란 사실을 은연중에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 암호화폐의 탄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동안 화폐발행의 독재화에서 화폐발행의 ‘민주화 바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오늘날 결코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일을 과거엔 당연하게 여겨온 사례들이 많다. 사람을 죽이는 검투사의 경기가, 종과 노예를 거느린 것이, 여자가 남자를 받드는 남존여비 사상이, 국가의 모든 권력이 왕에게 있다는 관념이 그랬다. 그중 화폐발행에 대한 국가의 독재적 권력은 아직도 당연하게 여겨져 왔다. 그러나 ‘화폐사용자’의 ‘사회적 합의’ 없이 화폐를 독재적으로 발행하는 게 당연한 것일까?
사실 화폐의 주체는 ‘화폐사용자’다. 그런 ‘화폐사용자’가 화폐의 발행권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비민주적이다. 이런 점에서 비트코인(Bitcoin)의 출현은 화폐발행의 민주화를 위한 첫 시도였다는 데에 의미가 크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이는 국민주권론에 기초한 민주국가의 기본 개념이다. ‘국가의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화폐의 모든 가치 창출은 화폐사용자들로부터 나온다. 더불어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것’처럼, 화폐발행의 주권도 화폐사용자에게 주어져야 할 것이다.
화폐는 금융의 핵심 자원이며, 금융은 경제의 핵심 엔진이다. 국방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만, 경제는 화폐를 통해 국민의 삶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지금까지의 암호화폐는 화폐로서의 기능보다는 암호자산으로서 투기의 대상이 되어 원성이 높았다. 파이코인(Picoin)은 ‘파이코인 사용자’가 파이코인을 발행하고 ‘파이코인 사용자’들 간의 가치교환의 지불수단이 되어 ‘파이코인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받는 암호화폐(가상화폐)가 되어 화폐발행의 민주화를 반드시 완수하길 기대해 본다.
<파이타임 : 정신화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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