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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너더리통신 108/181203]봉급쟁이 36년의 한 달 유급휴가
12월, 2018년도 딱 달력 한 장으로 남았다. 3일 월요일 한 달만의 출근이다. 지난달은 월급쟁이 36년(그중에 22개월은 백수)만에 처음으로 한 달 동안 휴가였다. 처음엔 날아갈 것같던 기분이 초읽기에 몰리자 자꾸 우울해진다. 한 달이 순식간에 지나간 까닭이다. 11월초 고향 가을걷이(감 수확)에 사흘을 보내고, 중순께 92세 아버지의 암수술 간호차 대학병원에서 5일을 보내고, 남은 날들은 어떻게 보냈더라,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멍청하게 소비하지는 않았을 터.
참, 모교의 원로선배 대여섯 분을 맹렬히 만나고 다녔다. 그분들의 인생 역정을 듣고 기록하는 일을 자청했기 때문이다. 일단, 속된 말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들의 장시간 얘기를 들으며 배울 점이 많은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하나같이 성실했고, 검소했고, 엄청나게 부지런했으며, 우리 사회에 기여한 부분이 많은 점에서 존경스럽기도 했다. 이제 그분들의 삶과 생각을 써야 하는데, 제대로 잘 그려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모두 열한 분의 이야기를 묶어 문집으로 제작하려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은 기쁘고 보람된 일일 것이다. 모교의 발전과 모교 후배들의 면학을 위하여 최소 1억에서부터 20여억원까지 기부한, 나눔 실천에 앞장선 분들이다.
모처럼 책상에 앉아, 지난 주말(토, 일) 숨가빴다면 숨가빴던 일정을 되새겨본다. ‘新너더리통신’도 어느새 108회, 마지막이지 않는가. 자료를 찾아보니, 2016년 10월 18일 ‘인간극장과 기록의 승리’라는 제목으로 1보를 전했으니, 2년이 조금 더 지난 세월이다. 내 인생에 또 한번의 ‘108 고개’를 넘는 셈이다. ‘108 고개’를 넘는 행진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나는 2004년 9월부터 ‘백수일기’를 시작으로 몸으로 부닥치는 108拜 대신 글로 108拜를 시작했다. 이후 ‘오목교통신’ ‘우천의 생활속 이야기’ ‘행복어칼럼’ ‘생활칼럼’ ‘살며 사랑하며’ ‘너더리통신’ ‘은행잎편지’ 등 제목을 달리하며 108편의 글을 작성했다. 200자 원고지로 치면 모두 몇 만 장이나 될까? 그중에 어떤 것은 서너 권의 책으로 나오는 행운을 맛보기도 했다. 어떤 글은 문집으로 펴내어 구순의 부모님을 ‘인간극장’에 출연시키는 대박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제 또 108배 행진에 또 하나의 획을 긋는다. 다음 코너의 제목이 무엇일지, 언제부터 시작될지는 나도 모른다. 그저 마음이 내키는 대로, 붓가는 대로 쓸 작정이다. 숨이 붙어 있는 한, 가치가 있든 없든, 나는 생활글을 쓰고자 한다. 읽어주는 이가 많든 적든 개의치 않는다. 그저 담담히 日記처럼 쓸 뿐이다. 아버지의 수십 년치의 일기가 고스란히 營農안내서가 되듯이.
12월 1일 토요일 새벽 2시 30분. 좀더 잤으면 좋으련만 저절로 눈이 떠져 또랑또랑, 정신이 맑다. 며칠 전 인터뷰한 선배에 대한 글을 5시까지 써내려갔다. 나중에 읽을 기회가 있겠지만, 그분의 이야기는 무조건 한 권의 소설로도 모자란다. 5시 홀로 아침밥을 먹고, 혈압약-당뇨약-전립선비대증 약을 먹고 5시 30분, 남부터미널로 향했다. 6시 30분 전주행 고속버스를 타다. 정안휴게소에서 요양병원에 계시는 부모님과 같은 병실의 환자들에게 드리려 호도과장 1상자를 사다. 설친 새벽잠을 보상한답시고 잠깐 눈을 부치니 9시 30분. 택시를 타다말고 아차, 싶었다. 호두과자를 놓고 온 것이다. 10시, 일주일만에 두 분을 뵙고 아버지와 휴게실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고관절에 금이 간 어머니,최소 2개월은 침실안정이 기본이란다. 암수술한 아버지는 당신이 환자인데도 옆방에 있는 老妻 간병으로 부산하다. 식사를 잘 하거나 안하고 적게 드시는 것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一喜一悲하신다. 좀 지나치시다. 새벽에 고른 글자 큰 책 서너 권을 심심풀이로 읽으시라고 드리다. ‘김성동의 진서 320자’ 두 권은 우리도 반드시 읽어야할 것만큼 유익한 책이다.
11시 갈 길이 바빠 엘리베이터 앞에서 작별을 하려는데, 큰형과 遭遇를 하다. 다시 들어가 10여분 데면데면한 채로 이야기를 나눈 후, 인근에 사는 처형집에 가다. 마침 미국에 사는 처조카가 와 있다. 率家하여 아중역 근처 ‘황금코다리’라는 맛집으로 가 점심을 하다. 1인 1만4000원이라는데 점심이라고 1만원을 받는단다. 푸짐한 코다리찜과 무한리필 막걸리에 저절로 입이 벙긋거려진다. 4년전 국내에서 결혼한 조카와 모처럼 만남이기에 술잔이 오고가다. 이럴 때라도 내가 점심을 살 수 있어 다행이다. 아내가 들으면 ‘잘 했다’고 칭찬을 할 것같다. 1시 20분 전주고속터미널에서 광주행 버스를 타야한다. 모두 낮술을 한 탓에 서둘러 나왔지만 택시가 잡히지 않아 하마터면 버스를 놓칠 뻔했으나 최악의 경우는 면했다. 2시 40분 광주 운암동에서 아시아문화전당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그곳에서 3시에 월간잡지 ‘전라도닷컴’ 200호 발간 축하행사가 열린다. 그 잡지를 아시는가? 이땅에 사는 民草들의 생생한 기록을 도맡고 있는, 오직 전라도의 사람․문화․자연만을 다루는, 2000년 밀레니엄과 함께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기적같이 끈질진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는 유니크한 토종잡지. 내가 외국에 산다고 해도 이 행사만큼은 꼭 와보고 싶은 귀한 自祝잔치다. 30여분 사이에 무슨 말을 하다 택시기사와 정치이야기를 잠깐 나누다. 그분의 興奮과 분노가 특히 인상적이다. 역시 빛고을 光州답다. 광주항쟁을 일으킨 전두환, 그 인간은 정말 나쁜 놈이지만, 어찌 보면 그보다 더 나쁘고 용서할 수 없는 인간이 ‘명박이’란다. 어찌 보면 일리가 있다. 요지는 세계 어느 나라 大統領이 ‘돈을 벌려고’ 대통령이 된 사람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 권좌에 있다보니 어떻게 非理를 저지르고 불명예퇴진을 한 경우가 있지만, 그는 애시당초 오로지 致富만을 하려고 권력을 거머쥔 것이 틀림없지 않은가. 행사장 앞 긴 책상 위에 1호부터 200호까지를 부채꼴 모양으로 주욱 진열해 놓았다. 이런 장관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이 장면 하나만도 족히 멋진 사진거리가 아닌가.
참가독자가 족히 200명은 될 듯하다. 짧은 마당극 공연에 이어 고정 레퍼토리인 ‘전라도말 알아맞히기’는 몇 번이고 배꼽을 쥐게 한다. 배우이자 성우인 지정남 님은 어찌나 진행을 맛깔스럽게 하는지 신통방통하다. 오지게 덕스럽다. 이제 나를 반기는 사람들을 만날 차례다. 장성 축령산에서 비장의 술 ‘八木酒’와 최고급 안주 ‘하몽’을 갖고 달려온 方外之士 청담 변동해 형님, 정읍의 재야인문학자 이종형님, 진뫼마을에서 김장하다 달려온 도수형, 그리고 예상치 않았는데 만나서 더욱 반가운 전라남도 문화특보 선배. 마지막으로 ‘인간극장’으로 맺어진 우리 아버지의 수양딸(당연히 나의 누이가 된다)과 그의 지인 두 명과 악수를 나눈다. 어디 그뿐이랴. 닷컴 18년을 눈물겹게 만들어온 오늘의 주인공 발행인과 할머니-할아버지 전문기자와 관계자 몇 분. 그리고 광주의 영원한 청년시인 김준태 선생님, 오늘의 자리를 빛내주기 위하여 서울에서 내려온 특별시장 박원순. 언제 어디서 만나든 자꾸 보고만 싶은 사람들과 악수 세례가 이어지다. 아, 또 있다. 지리산 폭포 아래서 7년간 獨功으로 이룬 명창 배일동, 가수 인디언 수니. 그들 모두 진심으로 나를 반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6시 20분 행사 종료. 광주 누이와 지인에게 인근의 老圃에서 불고기전골을 사다. 그런데 웬일인가? 닷컴 발행인의 전화다. 뒤풀이식당에서 꼭 줄 것이 있다한다. 200호 기념 접시를 만들었는데, 有功者처럼 내 이름을 새겨진 접시를 선물한다. 자격이 진짜 없다고 사양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 이름을 새겨놓았으므로. 세상에 이런 일이, 참으로 興感할 따름이다. 뒤풀이에서 중학교 한문선생인 백금렬님의 소리도 한 자락 들었으면 더 좋았으련만, 8시 40분 서울행 KTX를 타야 한다. 광주 송정역까지 지하철로 이동, 아슬아슬하게 승차를 하다. 아쉽다. 내일 배드민턴대회만 없었더라면 그 밤, 흔쾌히 막걸리와 고담준론으로 지새웠을 터인데. KTX는 빨라도 너무 빠르다. 정읍-익산-오송역-수원-광명역, 2시간 5분밖에 안걸리다니. 판교(너더리)집에 도착하니 11시가 훌쩍 넘었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내일을 위하여 눈을 부치다.
다음날 새벽 5시, 역시나 나홀로 밥을 먹고 세검정초등학교 체육관으로 향하다. 1년에 두 번밖에 없는 세검정초교 배드민턴클럽 자체체육대회. 워밍업 연습게임을 두 번하고 9시부터 본게임. 아깝다. 듀스에서 아깝게 지다니. 1승 2패. 승부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 한편에서는 아줌마들이 장만해온 갖가지 반찬으로 아침을 들고. 회장은 개회선언을 하고. 총무는 40여명의 회원에게 기본적인 선물보따리를 안기느라 바쁘고. 1, 2, 3세트에 열기가 가득 하다. 이렇게 재밌는 사회체육 모임이 어디 있을까. 민턴은 직접 하는 것도 재밌지만, 보는 것도 재밌다. 여기저기서 “인이야”(out이 아니고 in, 즉 safe), “아까비”(매우 애석하다) 남발하는 기쁨과 아쉬움이 남발한다. 12시, 청팀-백팀 게임은 끝났더라.
시상식에 이어 4시 반 ‘점저(점심+저녁)’와 노래방을 기약하며 헤어졌지만, 못내 아쉬운 우리는 두서 게임을 더하고 1시쯤 헤어진다. 아내의 호출이다. 아들내외가 휴가차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호텔을 예약했는데, 자지는 못할지언정 다녀가라고 한다며 귀가를 재촉한다. 할 수 없다. 아들의 호출이 아니고 세 살 손자의 호출임을 왜 모르랴. 양해를 구하고 급하게 귀가를 하니 오후 2시. ‘깜빡 졸음’을 염려하는 아내가 핸들을 잡는다. 오크우드호텔, 오후 4시 도착. 포스코건설이 지었다던가. 근방의 모든 호텔을 완전히 압도하는 60여층짜리 5성호텔. 53층에 올라가는데, 36층에서 일단 방문객을 거르는 모양이다. 머리털 나고 이렇게 높은 호텔 처음 올라왔을 뿐만 아니라 모든 시설이 100% 디럭스하다. 엘리베이터에서조차 귀가 먹먹하고, 객실에서 보는 전망이 장난이 아니다. 나같이 소심병환자는 창가에 다가가는 것조차 떨리고 무섭다. 세 살 손자는마냥 재있는 듯 ‘하삐(할아버지)’ 창가로 오라!고 숫제 ‘명령’을 내린다. ‘오 마이 갓!’이 따로 없다. 수영장, 뷔페, 어린이놀이방 등 어지간한 시설이 다 있다고 한다.
아항, 이래서 젊은 친구들은 ‘호캉스(호텔 바캉스)’를 즐기는 모양이구나. 우리 세대의 체질과 다른 것을 누가 탓하랴. 우리야 주변에 트레킹할 올레길만 있으면 그만인 것을. 위에서 내려다보니 호수가 보이고, 호수에 유유자적하는 갖은 모양의 보트들이 보인다. 이왕 이렇게 왔으니, 우리 손주와 저것 한번 타보자. 우산 모양의 보트를 보자, 나의 영민한 손자가 대번에 ‘우산 쓴 배’란다. 언어의 조탁사가 따로 없다. 곧바로 우산쓴 배를 타러 갔다. 5인 패밀리 30분에 3만5000원. 물도 바닥이 보일 정도로 깨끗하고, 제법 굵직한 물고기들도 노닌다. 호수 중간의 토끼섬도 아이에게는 볼 거리. 돈이 아깝지 않다. 6시, 인근 한옥식당 ‘경복궁’이 눈에 띈다. 지난해인가, 처조카 혼인식날 와본 적 있지만, 오크우드호텔은 보지 못했던 것같은데. 한 가족이 먹는데 20여만원. 결코 싼 값이 아닌데도 만족도가 높아 그나마 다행이다.
롯데마트에 잠깐 들어 손자가 좋아하는 헬륨풍선과 구름빵도 사고, 호텔로 돌아와 평상복 차림으로 와인 한 잔씩 원샷! 아아-, 손자까지 분위기를 맞출 줄이야. 우유 한 잔을 들면서 빼식이 웃는다. 12월초 단란한 한가족의 회식은 이렇게 완성된다. 토요일 새벽부터 전주로, 광주로, 다시 서울로, 배드민턴 게임으로 헤매인 게 얼마인가? 와인 한 잔에 졸음이 쏟아진다. 늘 그렇지만 소파에서 잠깐 눈붙임은 언제나 꿀맛이다. 밤 10시 반, 아내가 깨운다. 내일 한 달만에 출근해야 하는지 서둘러 집에 가자는 거다. 돌아오는 길, 세상 모르게 코를 골았다던가. 그 다음 월요일 새벽 4시 반, 어김없이 잠을 깬다. 그래, 또 운동을 가자. 6시 반. 세검정초등학교 체육관 도착. 벌써 10여명이 레슨을 받거나 게임을 하고 있다. 아주머니 회원 몇 명이 모여 수군거리고 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어제 뒤풀이에서 많이 취한 모모의 여인이 싸웠다나 어쨌다나. 하하. 여기도 역시 어김없이 사람 사는 세상이러니, 그냥 웃으며 흘리면 되는 일이겠거늘. 세 게임을 연속으로 치고 출근하니 8시 10분. 컴퓨터 부팅을 하다. 이 일기를 쓰고자파서. 흐흐. 참 바쁜, dynamic한 weekend였구나. 역시, 우천, 너답다. 건강해라. 늘 안녕해라. 이런 씨잘데기없는 잡글이라도 항상 써서 올려라잉-.
이러케 신너더리통신 108배 통신의 글을 마칩니다. 언제 또 무슨 이름으로 인사를 올리게 될지는 나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는 해, 오는 해, 모다모다 건강하고 좋은 꿈 꾸며 맞이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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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내가 너무 홈피에 안 들어와서 우천의 개인사를 몰랐네.미안해...속히 어르신 쾌차를 기도드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