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은 고2다.
내년에 대입시험을 치른다.
밤 늦은 시간.
도서관에서 귀가하다가 초록색 신호등에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갑자기 택시가 달려들었다고 했다.
피한다고 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그만 앞바퀴에 한쪽 발이 깔렸다고 했다.
택시도 급브레이크를 걸었지만 눈 쌓인 도로라 제동거리가 상당히 길었던 듯했다.
그래도 큰 부상이 아니어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기사의 연락처가 적힌 메모지를 한 장 들고 귀가했다.
"그만하기 다행이다. 하룻밤 지낸 다음 이상유무를 확인해 보자"
아들에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혼자 떠나는 여행을 많이 하게했다.
무더운 여름이든 혹한의 겨울이든 매번 방학 때나 중간고사가 끝나면 어김없이 1박2일이나 2박3일 간 지리산,덕유산,설악산 등 큰 산을 찾아가 혼자서 종주산행을 하곤했다.
본격적인 나 홀로 산행은 중1 때부터 시작했다.
그런 아들이라 자제력과 인내력이 꽤 큰 편이었다.
침소봉대하거나 엄살을 부릴 녀석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발이 팅팅 부어 있었다.
아예 신발을 신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눈 쌓인 거리를 '슬리퍼'를 신고 등교했다.
그러나 걷는 폼을 보니 골절 같은 심각한 상황은 아닌 듯했다.
나도 '해병대 특수수색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검도, 울트라 레이스, 철인3종, 트레일런, 오지탐험 등 운동깨나 해 본 사람이라 근골격계에 대한 약간의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었다.
더욱이 아들은 그 주가 '기말고사' 시험기간이었다.
"죽고 사는 문제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시험 잘 보렴. 그리고 시간이 나는대로 병원에 다녀오거라"
"예, 그럴게요"
내가 소개해준 병원은 철인과 울트라를 함께 했던 형이 운영하는 정형외과였다.
같은 동네에 있어 거리도 가까웠다.
아들도 잘 알겠다며 씨익 웃는 얼굴로 등교했다.
밤에 다시 아들을 보았다.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니 다행스럽게도 뼈에는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왔단다.
감사했다.
저녁식사 후에 다시 도서관에 가겠다며 슬리퍼를 신고 절룩거리는 상태로 집을 나섰다.
매서운 북서풍이 씽씽 부는 거리를 슬리퍼를 신고 나갔으니 발이 무척 시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눈까지 쌓여 있었으니.
대문을 나서는 아들의 뒷모습에 대고 아내가 한마디를 건넸다.
"자정쯤 우리가 픽업하러 갈 테니까 도서관 앞에서 기다려라"
"아이고 엄마, 죽을 병도 아닌데 뭐하러 오세요. 그냥 집에 계세요. 날씨도 추운데요"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곤 연신 절룩거며 씩씩하게 집을 나섰다.
"아이고, 누가 지 애비 아들 아니랄까봐..."
아내는 몹시도 안타까운 듯 연신 혀를 '끌끌' 찼다.
"왠만큼 아픈 상태가 아니면 아예 아프다는 말도 안하니...아무튼 우리집 남자들은 참 희한한 사람들이야"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아내는 몇 배 더 그랬을 것이다.
아들은 요즘도 공부하다가 시간만 나면 교내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대학교에 입학하면 곧바로 아빠를 따라 '해병대'에 지원하겠다면서 성심을 다해 몸을 만들고 있다.
아빠의 '대학 후배'가 되진 못할지라도 꼭 '해병대 후배'가 되는 게 자신의 목표 중 하나라고 했다.
"허허, 짜슥"
난 유구무언이었다.
나의 고교시절 추억들이 떠올랐다.
약 30여 년 전이다.
운동장 한 켠에 '철봉과 평행봉'이 몇 개 있었다.
그 당시 교내엔 운동시설이 거의 없었다.
지금처럼 고등학교 안에 멋진 헬스클럽이나 실내 체육관이 존재할 수 있다니, 그런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그나마 설치되어 있던 철봉과 평행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자투리 시간이 나면 나는 그곳으로 가서 혼자 '평행봉'을 열심히 했는데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피식피식 웃음이 흐른다.
키는 작은 편이었지만 누구도 나를 건들 수 없을 만큼 몸이 다부졌고 깡다구도 있었다.
"아들아. 이만하기 정말로 다행이다. 감사하게 생각하자"
사람도, 건물도, 차도 많은 대도시에서의 삶이다.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인생길에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분다.
숱한 날들이 그렇다.
"조금 져주면서 살고 약간 손해보는 듯하게 살자"
내가 우리 애들에게 늘 하는 말이다.
자신에겐 엄격하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선 좀 더 배려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3일이 지나자 겨우 신발이 들어갔다.
간만에 신발을 신으면서 "발이 따뜻해서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헤벌쭉 웃는 녀석에게 나도 박수를 보냈다.
다시 월요일이다.
힘찬 한 주 시작하길 바란다.
감사와 사랑을 전하며.
브라보.
2010년 12월 20일.
아침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