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 '고창읍성(高敞邑城)' 산책 >
2023년은 세계유산 고창 방문의 해로 고창읍성은 고창을 대표하는 유적지이다. 고창읍성은 순천 낙안읍성, 서산 해미읍성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읍성으로 원형이 잘 보존된 읍성(邑城)이다.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원년(1453년)에 왜침을 막기 위해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일명 모양성이라고도 한 이 성은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되어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서 국난호국을 위한 국방 관련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1965년 4월 1일 사적으로 지정된 이 성의 둘레는 1,684m 높이가4~6m, 면적은 50,172평으로 동, 서, 북문과 3개소의 옹성 6개의 치성을 비롯하여 성 밖의 해자 등 전략적 요충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성내에는 동헌, 객사 등 22동의 관아건물과 2지 4천이 있었으나 전화로 소진되고 성곽과 공북루만 남아있던 것을 1976년부터 옛 모습대로 복원해 오고 있다.
산성은 성과 연결이 잘 되는 곳에 축성하게 되는데, 고창읍성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입암산성은 나주진관과 더불어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요충지였다. 호남내륙에서 한양에 갈 때는 노령산맥인 갈재를 넘어야 했다. 그런데 갈재는 험준하고 봉변을 주는 곳이었다.
이 읍성이 언제 축조되었는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고, '고창읍지'나 '동국여지승람'에 단순히 둘레가 3,008척, 높이가 12척이고 성안에 삼지사천(三池四泉)이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또한, 숙종 때 이항(李恒)이 주민의 힘을 빌려 8년 만에 완성시켰다는 설도 있고, 1453년(단종 1)에 축조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성벽의 '濟州始(제주시)·和順始(화순시)·羅州始(나주시)·癸酉所築宋芝政(계유소축송지정)'이라는 각명(刻銘)으로 미루어 볼 때, 계유년(癸酉年)에 전라도의 여러 지역에서 축성을 위하여 역부(役夫)가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계유년이 어느 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성벽의 축성법으로 보아 1573년(선조 6)으로 추측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