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꼬 / 정선례
물없이는 살 수 없다. 물과 공기, 햇볕은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므로 누구에게나 골고루 한없이 누릴 수 있게 풍부하다. 물은 태양 에너지의 흐름에 따라 수증기로 증발하고 구름이 된 뒤 비나 눈을 뿌려 땅으로 흘려 보내는 순환을 한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다.
노자의 도덕경에 '상선약수'라는 사자성어가 나온다.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란 뜻이다. 그래서 한자를 만물 물자를 쓰나보다. 모든 생명은 물에서 태어난다.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여성이 임신하면 태아는 물로 가득찬 양수에서 자라는데 물이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세상의 살아있는 것에 생명을 주고 자라게 한다.
물은 건강과 장수의 비결중에 첫번째다. 우주 탐사에서도 물은 생명체 존재의 가장 중요한 근거로 취급한다. 극한 상황에 처했을때 음식은 2주 정도 먹지 않아도 버틸 수 있지만 물은 3일만 마시지 못하면 탈진하여 생명이 위태롭다. 그것은 사람의 몸이 물로 만들어졌기에 그럴까? 우리 몸이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어서 1%만 부족해도 심한 갈증을 느낀다. 몸에서 매일 배출되는 수분의 양만큼 물을 보충해야하는 까닭이다.
일어나자마자 양치하고 습관적으로 따뜻한 물을 마신다. 노폐물을 몸밖으로 배출하여 소변 색깔이 투명해지고 변비에도 도움된다. 내가 마시는 하루 물의 양은 4L이다. 좋은 물을 마시는것만으로 독소를 배출하고 혈액을 맑게하여 질병을 예방한다고 의사들이 방송에 나와 한목소리로 말한다. 폐를 도와 몸속을 청소해준다고. 척추가 받는 충격을 흡수하여 누그러뜨리는 역할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질병 예방법 중 하나가 물이다.
내가 좋아하는 말중에 '마중물'이라는 우리말이 있다. '나오는 물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지하수를 펌프질할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붓는 물을 마중물이라 했다. 물이 잘 나오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가면 펌프 안의 물이 사라지고 손잡이를 반복하여 당겨도 잘 나오지 않을때가 있다. 그럴 때 펌프안에 물을 한바가지 넣고 손잡이를 위아래로 당기면 물이 콸콸 쏟아진다. 요즘은 사라진 풍경으로 손으로 물을 끌어올리던 시절의 이야기다.
물은 농부들에게도 한 해 농사의 성패를 결정할 만큼 중요하다. 그렇기에 논에 수시로 나와서 물이 새거나 논두렁이 무너진 곳이 없는지 살핀다. 벼농사는 심을때부터 여물이 들때까지 물 속에서 자란다. '하지 지나면 발을 물꼬에 담그고 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논에 붙어 살다시피하여 물을 관리해줘야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벼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물이 한참 필요한 벼이삭이 팰 시기인 하지 후에 물이 논으로 계속 흐르게 대는것이 중요하다.
가뭄에 논물 싸움은 예사다. 먹고 살기 위해서다. 논농사는 밭농사와 달리 물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동창 미자 아버지 별명은 동네에서 '놀부'였다. 유독 물 욕심이 많아서이다. 놀부의 논 주변에 논을 가진 이웃들은 그와 싸우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정도다. 남의 논둑에 구멍을 내서 물이 흐르게 했고 다른 논 물꼬를 막고 자기 논에는 물꼬를 터서 한방울이라도 더 들어가게 밤새 지켰다. 주변 논이 쩍쩍 갈라져도 제 논에 물 댈 궁리만 한다고 동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비난을 해도 모른체다. 광산김씨 집성촌으로 아제, 당숙, 삼촌이 대대로 살고 있는 자자일촌 자연부락으로 타성받이가 거의 없었지만 가뭄이 심한 해에는 친척도 친구도 없어져 버린다. 평소 집에서 큰소리를 내지 않은 남정네도 들판에서 고성이 오가고 물꼬를 만지던 삽, 괭이가 날아 다닌다.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는만큼 농심도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것이다.
요즘은 농어촌공사에서 물을 가두는 저수지를 농촌 곳곳에 만들어 물관리를 잘해주어 한해 가뭄정도는 수월하게 지나간다. 이때에는 귀한물이 수로로 빠져 나가지 못하게 나무판자에 비닐을 대고 돌로 눌러 물을 방방하게 댄다. 그런 후 다른 논으로 흘러 들어가게 물꼬를 터준다. 어느덧 논물싸움도 먼 옛날 이야기가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농부들은 제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가 가장 듣기 좋다고 말을 한다. 나도 올해 처음으로 그걸 느꼈다. 신랑이 우시장에서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느라 물관리를 도맡아 했던 것이다. 비소식은 살아 돌아온 조부모님보다 더 반갑다는 말이 있을정도다.
첫댓글 제가 승진하기 바로 전에 함께 근무했던 상사분은 붓글씨를 잘 쓰셨어요.
그분이 제게 써서 선물로 준 글귀가 '상선약수'였지요.
물처럼 담은 그릇에 따라 둥글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루 물 권장량이 몸무게 ×0.03 이라고 하는데 무조건 많이 마시는 것도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