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의 투수놀음1- 양현종의 투구 변화와 이대진 코치의 조언
올 시즌 초반 나는 양현종 선수가 어떤 투구를 보일지 궁금했다. 시즌이 끝난 후 자신의 꿈을 따라 해외 진출을 노렸지만 고심 끝에 최종적으로 기아를 선택했다. 시즌 후 양현종 선수와 함께 NPB리그 팀과의 미팅에 같이 동행했고, 메이저리그 윈터 미팅까지 함께 했었던 나는 당연히 초반 양현종 선수의 투구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어떤 투수든지 마찬가지로 홈 개막전에 선발로 마운드에 오르게 된다면, 자신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간다. 양현종도 다르지 않았다. 첫 타자 김강민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산뜻한 출발을 보였지만, 전체적으로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 보였다.
몸에 힘이 들어가면, 공에도 힘이 실리게 되어있는데 준비를 잘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본인도 잘 알고 있었는지 2회까지는 힘 있는 속구 위주(38구 중 32구)의 투구를 했다.
많은 투수가 그러하듯 홈 개막전 선발은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개막전만을 기다린 홈 팬들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과 첫 단추를 잘 꿰고 가야한다는 부담감은 자칫 자기도 모르게 몸에 더 많은 힘이 들어가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몸에 힘을 많이 싣다 보면, 제구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특히 양현종의 제구를 보면, 볼과 스트라이크의 차이가 커 보였다. 1회를 무실점으로 마쳤지만, 2회에도 1회와 같이 무너진 밸런스를 찾지 못해 위의 투구표처럼 공이 전체적으로 높은 위치에 형성되었다.
기아의 벤치에서도 이를 파악하고 있었다. 양현종의 33구 투구가 끝난 후 이대진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와 양현종에게 조언을 건넸고, 이후 양현종의 투구는 조금씩 안정감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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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난 후, 양현종 선수와 통화하며 이대진 코치와 대화에 대해 물어봤다. 양현종은 “(이대진 코치가) 자기 힘의 80%만 가지고 투구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내 개인적으로 좋은 전달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공이 높게 가면 ‘볼을 낮게 던져라’라고 말한다. 이는 오히려 투수들에게 혼동을 야기시켜 제구가 더 흔들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냥 낮게만 던지라고 말하면 투수는 그 생각 때문에 투구를 할 때 상체를 더 앞으로 숙이게 되고, 상체가 낮아질수록 공을 놓는 위치인 ‘릴리스 포인트’는 더 뒤에서 형성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를 주문할 때는 ‘왜’인지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 투구 시 공이 높게 형성되었을 때는 뒤에 팔을 조금 짧게 한다는 생각을 가지라고 한다던지, 자신의 힘을 80%만 사용해 볼을 던지라던지, 아니면 같은 투구 동작을 유지하되 디딤발(우완 투수의 왼발)의 무릎의 각도를 좀 더 유지하라는 등의 설명이 필요하다. 이런 방법은 상황에 따라 투수에게 적절히 설명해주면 된다.
이대진 코치는 그중 두 번째 방법을 택했고, 양현종 선수는 그 의미를 잘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닝이 끝난 후 다시 덕아웃에서 대화를 나눴고, 양현종은 투구 패턴을 바꾸었다.
위의 3회 투구표를 살펴보면, 1, 2회 속구 위주의 투구에서 변화구 위주로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볍게 던지라는 생각에 오히려 변화구 투구를 하는 것이 좋다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속구도 서서히 안정감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4회부터는 우리가 아는 양현종 선수로 돌아왔다. 3타자 모두 초구부터 스트라이크를 던졌고, 이제는 볼과 스트라이크 차이도 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칫 잃어버릴 수 있는 자신의 투구 동작을 찾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로 인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양현종 선수는 누구나 알다시피 기아를 대표하는 에이스다. 초반 무너진 밸런스로 조금 흔들렸지만, 이닝을 거듭할수록 다시 에이스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양현종 선수가 잃어버렸던 밸런스를 찾게 된 또 다른 이유가 하나 있다. 바로 서동욱 선수의 수비다. 2회 동점을 허용한 후 무사 1루에 이재원의 타구를 다이빙 캐치 후 병살 플레이로 연결 시켜준 서동욱 선수가 없었다면 그 당시 투구 밸런스를 찾지 못하고 있었던 양현종 선수는 더 어려운 상황으로 몰리거나 아예 경기 자체를 넘겨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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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에서 코치 시절 서동욱 선수를 봤었다.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선수다. 겉으로 많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팀에는 꼭 필요한 선수다. 최근 안치홍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서 2루수 위치를 맡고 있는데 오늘 2회 다이빙 캐치 하나는 투수진에게 큰 도움을 준 수비라고 할 수 있다.
기아는 헥터와 팻딘 그리고 양현종을 제외하면 4, 5번 선발이 좀 약하다고 평가받는다. 올 시즌 첫 등판인 양현종이 일찍부터 무너졌다면, 이번 경기뿐만 아니라 시즌 초반 기아의 투수진이 어려움을 겪었을 지도 모른다.
이대진 코치의 적절한 조언, 양현종의 변화, 서동욱의 안정된 수비, 이 세 박자가 적절히 어우러져 홈 1차전 승리를 가져올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