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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닦으며
이 홍사
*
희망을 달라는 나의 청구취지를 너는 기각했다.
동쪽 하늘가, 노을이 더 붉어지는 새벽이다.
*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골프와 자식 농사라고 어느 유명한 경영인이 말했다. 나는 거기에 하나를 덧붙인다. 바로 정치판이다.
작금의 정치판이 그렇다.
사랑이나 희망을 달라는 청구취지를 항상 기각하는 게 정치판이다. 아침마다 신문을 보다가 난폭하게 접는 날의 연속이다.
신문을 끊어야지.
그렇게 말하면서 이렇게 일찍 일어난 새벽이면 현관 앞의 신문을 가지러 내려간다. 보면 짜증이 일고 안 보면 궁금한 게 신문이라는 매체다.
신문을 가지러 내려가야지.
담배를 물고 그렇게 중얼거리는 새벽이다.
세상이 왜 이리 흐릿한지 모르겠다.
흐릿한 게 아니고 암울한 것인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더럽혀진 안경 탓인가? 안경이 왜 이리 흐릿해졌지? 세상에 명료한 것은 없다. 세상이 왜 이리 지저분하게 변했을까?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안경알에는 거짓말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안경을 벗어들고 닦는다.
내가 원하는 세상을 바로, 선명하게 보기 위해서다.
내가 구하고자 하는 것은 희망이다. 그런데 희망이나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인간이 희망이나 사랑 없이 살 수가 있나? 그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젓는다.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희망이다. 희망이 있어야 세상을 살아갈 맛이 있지.
안경을 닦는 궁극적 목적은 세상을 보는 눈을 고쳐 사랑이나 희망을 찾기 위해서다. 사랑은 희망이라는 말과 서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사람이 희망 없이 살 수가 있나? 희망이 바로 사랑이고 애착이 아니든가?
안경알에 티끌이나 이물질이 묻어 있으면 그게 확대되어 세상이 달리 보인다. 안경을 닦으면 세상과 희망이 명료하게 보일까? 대상이 더럽고 지저분한데 나는 그걸 안경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닌가? 혹시. 굽은 소나무가 도래솔 되어 선산을 지킨다고 했다. 그러나 이 정권이라는 굽은 소나무는 선산을 지키기는커녕 뿌리가 썩으면서 산소를 파고 들어간다. 명당을 아주 몹쓸 흉터로 만드는 희귀종이다. 도래솔은 풍수에서 바람을 막아주고 물을 빨아들인다. 풍수란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다. 그저 바람과 물이다. 바람을 막아주고 물이 잘 빠지면 그게 최고의 명당이다. 그게 전부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백성이다. 국태민안, 백성이 배부르고 편하고 희망이 있으면 끝이다.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다. 내 입에 베이컨이 물려 있는데 정책이 무슨 상관이랴? 누구의 말인지 모르겠지만, 이 정권은 어떤가?
흡혈귀 전략이다. 미래세대인 아이들의 피를 빨아먹고 있다.
586세대!
현재로서 오십 대이고 팔십 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며 육십 년대 생을 지칭하는 말이다. 민주화의 주역이란다. 20대 시절에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평생 우려먹는다. 그 특권을 자식들에게까지 물려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또 돈을 푼단다. 명목이 코로나 위로금이란다. 참 염치도 좋다.
궁극적으로 따지자면 누구의 돈으로 주는가?
백성은 희망을 달라는데 왜 암울한 빚을 줘?
기업 하기 좋은 나라?
기업 하기 좋은 나라!
이게 근본적인 경제 원칙이다. 일자리가 없어 난리란다. 이 여덟 글자 안에 하버드의 경제학 박사 논문보다 더 철저하고 위대한 철학이 담겨 있고 장황하게 펼치는 경영학의 논문보다 낫다.
정당한 방법으로 인한 부의 축적은 옹호한다.
학창 시절에 나는 그렇게 배웠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적으로 그렇지 않다. 세금을 많이 내는 작자에게 존경스럽다고 생각하기는커녕, 저 새끼 내야 할 세금을 얼마나 떼어먹었을까?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본다. 규제를 완화하여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그러나 기업 하는 사람들이 지닌 표는 극소수다. 피고용인의 표가 많다. 정치를 하는 새끼들은 그걸 염두에 두고 있다.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표만 생각한다.
찬
참으로 염치가 없다.
이제는 어지간한 정책에는 놀라지도 않는다. 백성들은 그렇게 단련되고 있다. 단련되는 게 아니라 백성들은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그렇게 익어가고 있다.
일은 적게 하고 보수는 많이 달라고 한다. 아니다. 달라고도 하지만 정부에서는 주라고 부추긴다. 그렇게 법을 고쳤다. 국민이 백성으로 보이지 않고 표로 계산하는 눈치다. 나는 그런 정치인을 혐오한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586의 작품이다. 586이라면 알레르기성 거부 반응이 일어난다. 듣기만 해도 치가 떨린다. 가치를 생산해 본 적이 없는 세대. 고용을 해 본 적이 없는 무리. 정서가 훼손되기에 뉴스를 잘 보지도 않거니와 어쩌다 뉴스를 접하면 아가리를 찢어놓고 싶은 작자가 한둘이 아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뜨신 밥을 처먹고 쉬어 터진 소리를 곧잘 한다. 어쩌면 저런 말을 공공연히 할까?
이 새끼야 네가 해봐라.
너 같으면 이 나라에서 기업을 하겠나?
어쩌다 거실의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가 혼자서 뱉는 쌍욕이다. 그리곤 바로 텔레비전을 꺼 버린다.
이 나라에서 기업을 하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행위다. 그 말은 친구에게 들었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고등학교 동기인 정수가 경영하는 정밀가공 공장에 커피를 마시러 심심하면 들른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친구인데, 드물게도 제 전공을 살린 친구다.
공단동에 있는 공장인데 규모는 크지 않고 직원이 여남은 명이 되는 곳인데 직원 모두가 십 년 이상 근무한 숙련공이라 나가는 월급이 만만찮다. 공장은 주차장을 포함해서 육백 평 정도가 되지만 다행히 임차한 공장이 아니라 정수의 이름으로 된 공장이다. 옛날에 은행 빚을 받아서 장만한 공장이다. 지금은 그 빚을 다 갚아서 온전히 정수의 공장이다. 정수는 그게 다행이라고 했다. 지금 이렇게 경기가 불안정한 시대에 남의 공장을 임차해서는 경영이 어렵다는 게 그 친구의 판단이다. 지금은 공단동에 지가가 올라서 그 가격으로는 언감생심이다.
정수는 스스로 자신을 월급 주는 노예라고 했다.
월급을 주는 노예? 그 말도 공감할 수가 있었다.
워낙 자주 가는 곳이니 일거리가 많은지 없는지 단박에 감이 온다. 일거리가 많을 적에는 사장인 정수도 직접 기계를 잡는다. 잔업을 해도 일거리가 밀려있는데 제조업이라는 것이 그렇다. 주문량이 없을 적에는 전 직원이 손가락을 빨고 놀고 있다. 잔업이 있을 적에는 잔업수당이 나가지만 일이 없을 적에는 월급을 깎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정수는 학창 시절에 수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수학을 전공할 줄 알았는데 기계공학으로 흘러간 친구다. 연습장에 아무리 빽빽하게 숫자를 적어도 바로 답은 정수의 머릿속에 있다. 숫자를 보는 순간 바로 답은 나온다. 희한한 눈을 가진 인간이다. 그렇게 수학에는 천재적인 기질이 있지만, 이 불경기에 일거리는 예측할 수가 없단다. 경기를 읽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사악한 고집쟁이들 때문이란다. 사악한 고집쟁이들이란 현 집권 세력을 말하는 것이라는 걸 안다. 기업에 규제를 많이 양산하는 무리, 초등학생에게도 안 통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세력이다. 사악한 고집쟁이라는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구절이 있다.
사악한 고집쟁이는 피하는 게 최선이다.
무턱대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모든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 가장 일반적인 태도다. 세상에는 항상 무법자처럼 행동하고 어떤 일에서는 자기 뜻만 관철하려 하고, 매사에 분쟁을 일삼는 사악한 고집쟁이들이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이런 사람이 국가 지도자가 되면 국가는 멸망의 위기를 맞는다. 이들은 파벌을 만들고 보살펴야 할 국민을 오히려 적으로 만든다. 또한 모든 일은 은밀하게 처리하고, 모든 성공을 자신이 지닌 능력 때문이라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이런 사악한 고집쟁이들은 보통의 방법으로는 바로잡을 여지가 없다. 오직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한 말이다.
발타자르는 벌써 사백 년 전에 이 말을 했다. 동양에 공자가 있으면 서양에는 발타자르가 있다고 했다. 지금 이 정권을 겪으며 다시 읽어보니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말이다. 그렇다. 사악한 고집쟁이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사악한 고집쟁이는 하나가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사서 읽고 나서 정수에게 읽어보라며 주었다. 물론 중요한 구절에는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은 상태였다. 가끔 커피를 마시러 정수의 공장에 가면 공장 안 조립식 패널로 만든 작은 사무실 탁자에 책이 얹혀 있다. 틈틈이 읽는 모양이었다. 이 책은 일단 손에 잡으면 짬을 내서라도 읽게 마련이다. 맞는 말만 요약해서 책으로 만들어서 손에 잡으면 놓을 수가 없다. 정수도 그 책을 읽고 안경을 닦을지 모르겠다.
희망이 없다.
사람들은 내일을 위해서 산다.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희망이 없다? 무슨 재미로 살아?
엊그제는 삭발했다.
코로나 위로금을 푼다는 말에 화가 치밀었다. 누구 돈으로 주는가? 주머닛돈을 빼다가 쌈지에 넣어주며 생색을 내는 게 아니던가? 혼자서 약이 올라 머리를 쥐어뜯다가 답답해서 머리를 밀어버렸다.
이발소 아저씨가 정색하고 물었다.
정말 밀까요?
밀어달라니까요.
왜 멀쩡한 머리를 밀어요?
희망이 없어서요. 군에 다시 가는 기분으로 살 거예요.
머리를 밀면 희망이 생기나? 이발소 아저씨는 모르겠다는 듯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하고 전동커트로 머리를 밀었다. 머리카락이 날아가는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희열이 일었고 쾌감이 느껴졌다.
머리를 밀면 희망이 생기고 내일이 기다려진다.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가 얼마나 자랐나 거울을 보고 내일을 또 기다려진다. 그런 변화라도 있어야지 일상이 너무 단조롭고 무료했다.
지난주에는 남해안으로 혼자서 바람을 쐬러 갔다. 건설경기가 죽어서 일도 안 되고 사무실을 지키자니, 너무 답답해서 무작정 차를 끌고 나섰다. 한마디로 사는 게 재미가 없었다. 권태로운 일상, 아니 눈에 안경이라도 닦고 싶었다. 집을 나설 적에는 딱히 어디를 간다는 계획은 없었다. 아내에게 말도 안 하고 나선 길이었다. 애초에는 나섰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저녁에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이박삼일이 걸렸다.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귀소본능이 강한 내가 분명 그날 저녁에 돌아왔을 것인데 그녀를 만나는 바람에 일탈이 생겼다.
구미에서 출발하여 거창을 거쳐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연곡사의 부도가 보고 싶었다. 연곡사 부도는 십 년 전쯤 무너진 것을 보고 갔는데 바로 세웠는지 그게 궁금했다. 눈이 오는 날밤 도굴꾼들이 부도를 넘어트렸다. 뭐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부도의 잔재를 천막으로 덮어 둔 것을 보고 아련한 마음으로 돌아왔었다. 그게 바로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별로 탈 없이 표시가 나지 않게 서 있었다. 연곡사 부도의 섬세함을 보면 돌로 어찌 이렇게 깎았을까, 의문이 인다. 돌을 밀가루 반죽으로 다듬듯이 상륜부 옥개석의 작은 서까래에도 연꽃 문양을 넣는 섬세함을 보인 조형물의 극치다.
염치가 없어서, 고맙습니다.
그녀가 내 승용차를 조수석에 타며 한 말이었다. 연곡사에서 부도만 보고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텅 빈 주차장에 나이가 나랑 비슷한 보살이 기다리고 있었다. 복장을 보아서 기도를 마친 모양새였다. 그때가 오후 두 시쯤이었다.
저 혹시 구례로 내려가십니까?
그래야겠지요.
구례로 내려가시면 저 버스 터미널까지 좀 태워다 주시면 안 돼요?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이 떠올라 태우고 싶지 않았지만, 외통수 길이라 마다할 구실을 찾지 못하고 태웠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남해에서 어제 왔다는 것이었다. 그 말끝에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고 구미에서 왔다는 대답을 하니 어떻게 혼자서 왔느냐고 물었다.
내 대답은 안경을 닦으려고 왔다고 선문답 같은 대답을 했다.
안경을 닦으려고요?
조금 놀라는 투로 그렇게 되물을 수밖에 없는 대답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흐릿한 세상에 대해서 험담을 하면서 연곡사를 내려왔다. 남해에서 왔다는 보살은 내가 연곡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부도 쪽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인상을 파악하고 저 차를 이용하면 되겠구나 하고 갈 준비를 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버스는 하루에 두 번밖에 없고 택시를 타고 올라갔었는데 택시비가 엄청 비싸서 부를 수가 없었노라고 했다.
무슨 연유로 남해에서 연곡사까지 기도하시러 왔느냐고 물었더니, 지난번에 연곡사가 좋다고 혼자서 어렵게 키운, 하나밖에 없는 딸의 중등학교 교사 임용고시를 앞두고 열흘간 기도를 했더니 합격이 되어서 인사차 기도를 왔노라고 했다. 나이가 얼마인데 임용고시를 칠 딸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남해 보살은 자신을 밝히는데 비교적 소탈했다. 돼지띠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이를 밝히는 것이었다. 나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데 놀랍게도 나랑 동갑이라고 했더니 그렇게 보인다며 친구를 하면 좋겠노라고 했다.
친구?
친구를 하면 반말을 해야 하는데?
깜짝 놀라는 척 농을 했더니 말을 놓고 지내도 무방하다고 농을 했다. 그런 농이 오가면 보이지 않던 벽이 허물어지는 법이다.
머리에 옅은 염색을 하고 터빈을 쓴 그녀가 갑자기 예쁘게 보였다. 웃을 때마다 가지런한 치열은 깔끔하게 보였다.
사성암에 간 것은 그녀가 먼저 제안했다. 무슨 말끝에 사성암에 가보았느냐고 물었다. 못가 보았다. 오산 사성암은 화엄사 맞은편 구례읍을 지나서 있는데 벼르기만 했지 못 보았다. 사성암을 보고 안경을 좀 더 닦고 가자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연곡사 보도를 보며 사성암을 생각했었는데 남해 보살과 마음이 통했던 모양이다. 나는 당시에는 안경을 닦을 필요가 없었다. 유쾌한 기분이었다. 구례 버스 터미널로 가지 않고 구례읍을 지나서 사성암으로 올라갔다. 길은 가파르고 좁았다.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길이었다. 사성암은 화엄사에 적을 둔 말사인데 기암절벽에 부처를 모신 반쪽짜리 절인데 사진으로는 많이 보았다. 사성암이 있는 산은 지리산이 아니다. 지리산 줄기와는 따로 떨어진 오산이다. 남해 보살은 번번이 사성암을 본다며 왔는데 연이 닿지 않아서인지 한 번도 못 보았는데 귀인을 만나서 꿈을 이루게 되었노라고 했다.
누가 보면 부부인 줄 알겠어요.
사성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올라가며 그 말을 했더니, 당연히 그렇게 보겠죠? 우리 부부 아니에요? 팔짱이라도 낄까요? 그렇게 농을 해서 또 유쾌해졌다. 아! 밖에 나오면 이런 사람도 만나는구나, 우울했던 기분이 상쇄되고 있는 걸 내가 느낄 수가 있었다.
정치판이 극도로 어지럽고, 불경기인들 무슨 상관이랴? 내 입에 베이컨이 물려 있는데. 그런 생각이 압도했다.
사성암은 조용한 암자였다.
둘이서 법당에 들어가 나란히 서서 삼배하고 나와서 주위 경관을 둘러보며 차 시간 물었다. 이렇게 늦게 출발하면 오늘 남해에 닿을 수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상관없단다. 친구가 있으면 한 달이 걸려도 상관없노라고 했다. 나는 내심 남해까지 태워주고 돌아갈 요량으로 그렇게 물었는데 남해 보살은 나에게 시간이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미모의 보살이 있는데 두 달이 걸려도 상관이 없다고 농을 했다. 내친김에 남해안이나 한 바퀴 돌며 안경을 좀 닦고 가야겠노라고 했다. 내가 그 말을 하자 남해 보살이 한쪽 손을 들어 손바닥을 보였다. 하이 파이브를 원하는 모양새였다. 그 모습이 하도 예뻐서 힘껏 손바닥을 마주쳐주었다. 그걸로 합의는 이루어진 셈이다. 오늘 돌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산천이 더 수려해 보였다.
사성암 절벽에 쌓인 나지막한 돌담 앞에서 우리는 한참이나 얘기를 했다. 가능하면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운을 떼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홀로 살아온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녀의 남편은 조선소에 다녔었는데 안전 재해로 유명을 달리하고 보살은 딸 하나를 키우며 남해 시장에서 한복집을 했다고 했다. 그게 벌써 이십 년이 넘었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살아온 얘기를 들으며 숙연한 기분과 함께 타인은 결코 지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어디를 가고 싶으냐고 물었다. 어디든 함께 가겠노라고 작심을 하고 물은 말이었다. 그녀는 거침없이, 아니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순천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순천만을 들먹였다. 텔레비전에서 본 순천만의 갈대숲과 철새가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미모의 여성이 원하는데 마다할 수가 있겠는가? 나는 바로 핸드폰의 내비게이터를 찾아서 순천만을 입력했다. 거기서 별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구례를 넘어서면 바로 순천이다.
갑시다.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보살님이 원하는데 내가 보시를 해야지요
그녀가 또 손바닥을 번쩍 쳐들었다. 나는 또 힘껏 마주쳐주었다. 그렇게 깔끔하게 합의가 되었다.
바로 출발했다. 구례에서 순천까지는 산업도로가 잘 닦여 있었다. 가면서 차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이미 물 건너갔다. 그녀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지금도 한복집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고 남해에도 인구가 줄어서 한복집을 그만두고 뭘 할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 나이에 혼자서 뭘 하는 게 좋을까 고민했지만 내 아둔한 머리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정작 순천만에 가서는 별로 많은 것을 보지 못했다. 도착하니 하늘가에 노을이 물들어 있었고 우리는 순천만 귀퉁이만 보고 돌아서 나와야 했다. 거기서 발전한 것은 나무다리를 건너고 좁은 갈대숲을 지날 때 그녀가 내 팔을 잡고 따라다녔다는 점이다. 팔짱을 끼었는데 싫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그날 밤은 순천에서 자야만 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고 그날 운전을 너무 많이 해서 극도로 피곤한 상태였다.
어디 가서 저녁을 먹고 순천에서 자고 가죠. 운전을 많이 해서 피곤할 텐데.
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나오면서 내심 잠자리를 걱정하고 있을 때 그녀가 먼저 제안했다.
아무래도 그래야겠죠.
못 이기는 척 대답했다.
처음에는 어디 민박집에 방 두 개를 빌려서 자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민박집에 가면 먹을 게 없다. 장을 봐서 들어가야 한단다. 가까운데 시장이 있으려나 차를 끌고 순천 시내로 나왔다. 다리를 건너니 이마트가 보였다. 아주 큰 건물이었다.
저기로 들어가요.
그녀가 이마트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이마트라는 곳엘 처음 갔었고, 그렇게 큰 주차장과 매장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쇼핑이 즐겁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내가 이마트에 처음이라고 하자 그녀는 촌닭이라며 핀잔을 주었다. 쇼핑 커터는 내가 끌고 마치 촌닭처럼 따라다니고 그녀가 장을 보았다. 그녀와 느긋하게 물건들을 구경하면서 매장을 거의 두 바퀴는 돌았을 것이다. 매장을 돌면서 맥주도 커터에 담고 안줏거리도 담고 그녀는 자신이 갈아입을 속옷도 골라서 담았다. 나는 그녀가 고른 팬티를 보고만 있었다. 그다음은 내가 갈아입을 속옷도 어떤 스타일을 입느냐고 묻고는 색상을 골라서 담았다. 물론 그녀가 골라주었다. 싼 반바지와 양말도 담고 차에서 쓸 일회용 물티슈도 담았다. 커터를 밀고 따라다니며 아무리 생각해도 어릴 적 어머니가 속옷을 사주었고 그다음은 아내가 내 속옷을 사주었는데 다른 여자가 골라주기는 처음이었다.
기분이 야릇했다.
계산을 하는 곳에 와서 그녀가 자신의 카드로 계산했다. 내가 카드를 내밀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카드로 샀다. 자꾸 내 카드를 내밀면 계산을 하는 아줌마가 부부로 보지 않을까 봐 조심스럽기도 해서 실랑이를 그만두었다. 계산한 물건을 내가 들고 차에 싣고는 그녀는 순천역으로 가자고 했다. 내비게이터에 순천역을 치니 바로 부근이었다.
그녀의 말로는 모르는 곳에 가면 역전으로 가면 먹을 게 제일 많다고 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순천역 인근에는 재래시장이 있었다. 거기서 콩나물국밥을 먹고 민박집을 찾아가려는데 차를 돌려서 나오니 부근에 현대식 모텔이 보였다.
저기서 자고 가요. 민박집은 씻는 게 불편해요.
그녀가 말했다.
모텔이라는 어감이 이상하고 야릇했지만, 주차장으로 차를 밀어 넣었다.
차에서 내가 장을 본 것을 챙기는 동안 그녀가 먼저 수부로 가서 제일 싸고 작은 방, 두 개를 달라고 하고는 또 카드를 내밀었다.
아! 한 방에 자는 게 아니구나.
이상한 상상을 했던 얼굴이 화끈거렸다.
키를 받은 작은 방은 삼 층 맨 끝 구석에 마주 보고 있었다.
저 방을 쓰세요. 그런데 이 방으로 좀 들어와요.
그녀는 자신이 쓸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들어서니 장을 본 것을 풀어서 내 팬티와 반바지, 양말을 챙겨주면서 저 방으로 가서 먼저 씻고 있으면, 자신도 씻고 건너갈 것이니 맥주를 마시자고 했다. 캔맥주가 다섯 개나 들어있었다. 안줏거리로는 땅콩과 과자가 있었다.
나는 팬티와 반바지, 양말만 챙겨서 내가 잘 방으로 건너갔다.
방이 썰렁했다. 모텔에는 여자와 들어왔는데 뭔가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할 게 조금도 없는 일인데 확실히 이상했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뭘 해야 하나?
한참을 서 있다가 텔레비전을 켜고 씻었다. 여자가 씻는데 남자보다 오래 걸리는 건 당연하다. 다 씻고 반바지 차림으로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한참을 기다리니 이윽고 그녀에게서 기별이 왔다.
다 씻으셨어요?
문을 두드리며 물었다. 기다리던 반가운 목소리였다. 그렇다고 하자. 그녀는 방으로 들어서면서 반바지가 잘 어울린다고 했다. 둘은 방바닥에 마주 앉아 맥주를 마셨다. 그녀는 터빈을 벗고 머리를 감았는지 머리가 촉촉했다.
내일은 어디를 갈까요? 두 달간 어디를 돌아다니지?
맥주를 건배하고 마시며 내가 물었다.
호호호. 두 달간이나 다닐 필요는 없고 내일은 돌산도 향일암에 한 번 가보아요. 소문만 들었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거든요.
이미 준비한 듯한 대답이었고 제안이었다. 그게 좋겠구나. 핸드폰 내비게이터에 향일암을 치고 거리를 보니 먼 거리는 아니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맥주 마시기를 끝내고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면서 내가 벗어둔 속옷을 빨아야겠다며 들고 나갔다.
그녀가 돌아가고 이상한 아쉬움에 좀 뒤척이다가 꿈도 꾸지 않고 잘 잤다.
객지의 잠은 이렇게 편한 것이구나. 집을 나오길 잘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냐는 것이었다. 내가 나간 걸 아침이 되어서 알았던 모양이다.
순천이야! 안경을 닦고 있어.
순천? 안경을 닦는다구요?
그리 알고 있어 두 달 후에 집에 들어갈게.
그 말을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때 그녀가 방문을 두드렸다. 아침을 먹으러 가자는 것이었다. 모텔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채로 걸어서 길 건너 역전으로 갔다. 재래시장이라 그런지 아침에 문을 연 식당들이 많았다. 허름한 국밥집에서, 아침을 대충 때우고 모텔로 가서 차를 끌고 여수로 향했다. 향일암을 올라가는 길은 가팔랐다. 그녀는 내 팔을 잡고 따라왔다. 향일암도 몇 년 전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불사한 모양이었다. 향일암에서 둘이서 팔짱을 끼고 절경인 바다를 한참이나 보다가 내려와서 늦은 점심으로 회덮밥을 맛있게 먹었다.
이제 어디를 가죠?
점심을 먹으면서 물었다.
남해로 가요. 가게에 들어가 봐야 해요. 그만둘 장사지만 너무 오래 문을 닫았어요.
한 달 동안 돌아다닌다고 했잖아요.
호호호. 그랬나요? 벌써 한 달 돌아다닌 거 아니에요? 아무튼 남해로 가요.
다시 내비게이터에 의존해서 남해로 갔다. 여수에서 돌아볼 것을 보고 남해에 도착하니 저녁 무렵이었다. 남해에 도착하니, 보이지 않는 곳에 보는 눈이 있다면서 데면데면하게 굴었다. 그녀는 남해 버스터미널 부근에서 내렸다. 그녀의 가게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전화번호라도 알려달라고 했더니 인연이 있으면 다음에 만난다고 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따로 없었다. 앞에 선 택시의 문을 열고 손만 흔들어주고 그녀가 택시를 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택시는 지체하지 않고 떠났다. 따라갈 기분도 입장도 아니었다. 그 밤에 구미까지 야간 운전을 할 자신이 없었다. 차를 돌렸다.
저 여자는 바람이었어. 사람을 만났던 게 아니야.
내일 남해에서 유명하다는 금산 보리암이나 보고 올라가자.
부근의 편의점에 들러 캔맥주와 간단히 먹을 안줏거리를 사서 남해 변두리의 허름한 모텔에 일찌감치 들어갔다. 극도로 피곤했다.
역시 타인은 지옥이야. 틀린 말이 아니야.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사 들고 간 맥주를 다 마시고 취기에 씻지도 않고 잤다.
다음날 새벽 아침도 먹지 않고 보리암도 보지 않고 구미로 올라왔다. 회귀본능이 강한 족속이라는 소리를 듣는 나답게 계획을 수정하고 빈속으로 올라왔다. 먹은 것이라고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신 것뿐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점심나절이 되었다. 삼 층의 집으로 올라가지 않고 이 층 사무실로 들렀다. 경리 부장인 여동생은 어디를 나갔는지 빈 사무실이었고 탁자에 이틀의 신문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그동안 무엇이 바뀌었나?
신문 타이틀을 훑어보며 넘기니 짜증이 확 일며 다시 안경이 흐릿해졌다.
아! 안경을 제대로 닦지 못했구나.
탁자 앞에서 신문을 펴 놓고 타이틀을 훑어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렇게 쥐어뜯다간 대머리가 되겠구나. 아무래도 머리를 밀어버려야지. 그날 순간적으로 문득 그 생각을 했다. 권태로운 일상에 변화가 필요했다.
머리라도 밀면 어떨까?
다시 군대에 간다는 기분으로 인내력을 발휘하여 국방부의 시계만을 쳐다보며 살아야지.
이틀 후에 나는 머리를 진짜로 밀어버렸다.
아내는 머리가 잘 어울린다고 했다. 빈정거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군에 다시 간다는 기분으로 살 거야. 내년에 정권이 바뀌면 낫겠지. 국민으로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지금은 현관 앞에 신문이 도착했을 시간이다. 신문을 보더라도 쥐어뜯을 머리카락이 없다. 안경을 닦는 것보다 머리를 깎는 게 잘한 일이다. 제발 오늘 신문을 보며 흐릿한 안경을 닦을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신문이 궁금하면서도 가지러 내려가지 않고 머리통을 쓰다듬는 새벽이다.
신문을 가지러 내려가야지.
희망을 달라는 나의 애절한 청구취지를 신문은 기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문을 가지러 내려가야지.
담배를 물고 중얼거리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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