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 이건 저자(글)
에프엔미디어 · 2022년 12월 20일
1인자보다 더 주목받는 2인자 찰리 멍거의 위엄
투자뿐 아니라 독특한 사고법으로 명성을 떨치다!
벤저민 그레이엄과 워런 버핏은 익숙하지만, 찰리 멍거는 다소 생소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투자자라는 버핏도 2014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 서한에서 멍거를 자신의 스승이며 ‘버크셔의 설계자’라 공언했듯, 멍거의 실제 위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월가의 투자 거장 하워드 막스는 2018년 팀 페리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도 노력은 하지만 멍거의 지혜를 따라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빌 게이츠는 《Poor Charlie’s Almanack》에서 “멍거는 가장 폭넓은 사상가이며 세상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지식의 소유자”라고 극찬했다. 모건 하우절은 2020년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그의 베스트셀러 《돈의 심리학》을 멍거의 ‘오판의 심리학’ 연설문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했고 ‘뻔뻔스럽게 제목을 훔쳤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 밖에 모니시 파브라이, 짐 시네갈, 존 웰치 등 전 세계 비즈니스 거물들은 물론, 전 세계 많은 투자자가 멍거를 존경하며 그의 말 한마디에 귀를 쫑긋 세운다. 2023년 99세가 되는 멍거는 이미 살아 있는 투자의 전설이며 오래도록 전설로 남을 투자계의 거인이다.
버핏을 ‘담배꽁초 투자’에서 벗어나게 한 사고법
멍거는 빨랐고 버핏은 한발 느렸다
멍거는 “경마와 주식 투자의 성공 비결이 똑같다”며 둘을 관통하는 원리인 ‘패리 뮤추얼’ 시스템을 기억하라고 한다. 이 원리에 따라 “가격이 잘못 매겨진 베팅 기회를 발견할 때까지 꿈쩍도 하지 말라”고 조언하며 그 사례로 2009년 미국 철도회사 BNSF를 인수해 큰 수익을 거둔 것을 든다. 또 버핏의 핵심 개념이기도 한 ‘능력범위(circle of competence)’를 강조하며 메이저리그 4할 타자처럼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공만 노렸던” 버핏의 방식이 왜 효과적인지 설명한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코카콜라, 질레트, 애플 등을 그 성공 사례로 든다. 요컨대 훌륭한 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인데, 버핏은 이를 멍거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훌륭한 기업을 적당한 가격에 사는 것이 적당한 기업을 훌륭한 가격에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멍거의 방식을 접하고 비로소 벤저민 그레이엄의 ‘담배꽁초 투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버핏은 “찰리는 이를 빨리 이해했지만 나는 느린 학습자였다”라고 밝혔다.
학습 기계가 되어 ‘능력범위’를 확대하라
자신의 ‘능력범위’를 파악하고 그 범위 안에서 베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능력범위를 확대하려는 노력은 더 중요하다며 멍거는 배움을 멈추지 말라고 조언한다. 능력범위를 확대해야 투자에서도 인생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멍거는 그 좋은 예로 페트로차이나와 애플에 투자해 큰 성공을 거둔 버핏을 거론한다.
버핏은 2003년 페트로차이나에 거액(4억 8,800만 달러)을 투자했고 2007년 전부 매도해 36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투자할 당시만 해도 페트로차이나의 기업 가치와 경영 효율성은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2006년 원유 가격이 상승하고 신규 유전이 발견되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능력범위 확대의 더 좋은 사례는 버크셔의 애플 투자(2016~2017 311억 달러)로 2022년 5월 기준 지분 가치가 4배 이상(1,275억 달러) 증가했다.
버핏이 원유와 기술주에 투자한 것을 두고 ‘아는 기업에 투자하라’던 평소의 지론과 모순되는 것 아니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멍거는 “버핏이 지금도 배우고 있다는 신호”라며, 버핏을 “끊임없이 배우는 학습 기계”라고 표현했다. “만약 당신이 배우기를 멈춘다면 다른 투자자가 당신을 앞서갈 것”이라고 멍거는 교훈한다.
다학제적 접근을 격자틀 인식 모형에 새겨라
멍거의 핵심 개념 중 하나로 ‘격자틀 인식 모형(latticework of mental models)’이 있다. 한 가지 도구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에 반하는 개념으로, 다양한 도구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자동으로 작동되는 모형을 가리킨다.
멍거는 이를 망치, 스패너, 렌치, 드라이버 등 다양한 공구가 들어 있는 공구함에 빗댄다. 가령 경제학만 알아서는 안 되고 역사, 심리, 화학, 수학까지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투자자는 기업 분석을 할 때 재무 정보만이 아니라, 내부 경영과 기업이 운영되는 더 큰 생태계까지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멍거의 한 팬이 정리한 격자틀 인식 모형 6단계를 2장 본문에 수록했는데 그 첫 단계가 바로 다학제적 접근이다. 다학제적 접근이란 다양한 학문에서 주된 모형을 모두 가져오되 학문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다양한 학문의 중요한 모형에 집중하고 융합해 이를 일상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객관적인 사고에 이르는 격자틀 인식 모형이 2장에 자세히 나온다. 멍거는 격자틀 인식 모형 안에 큰돈이 들어 있다며 자신의 경험이 이를 증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판의 심리학’으로 투자의 유리한 고지에 서라
멍거는 자타공인 ‘오판의 심리학’ 전문가다. 오판의 심리학이란 자신의 오류를 점검하고 타인의 사고 체계의 오류를 파악함으로써 터무니없는 실수를 방지하고, 투자에서 더욱 유리한 고지에 서게 하는 멍거의 투자 철학이다.
1995년 6월 하버드대 연설에서 멍거는 “오판의 문제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에 그동안 많은 대가를 치렀다”며 오판을 다루기 위해 많은 공부를 했고 오판에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멍거는 오판의 주요 원인을 24가지로 분류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인센티브 위력 과소평가, 현실 부정, 대리인 비용 문제, 일관성(몰입) 편향, 조건 반사 편향, 상호성 편향, 롤라팔루자 효과’ 등 22항목으로 정리해 4장 ‘멍거의 연설’에 실었다. ‘오판의 심리학’은 자신도 모르게 심리가 조작될 수 있음을 인지하게 함으로써 어리석은 투자 결정을 막는 실질적인 수단이 될 것이다.
성공과 행복의 비결? 뒤집어서 생각하라
“어떻게 불행을 보장할 것인가(How to Guarantee Misery).” 멍거가 하버드 웨스트레이크스쿨 졸업식(1986. 6. 13)에서 했던 연설 제목이다. 멍거는 ‘못 믿을 사람이 되고 약속을 지키지 말 것’ ‘자신의 경험에서만 배우고 남의 경험에서는 배우지 말 것’ ‘실패할 때마다 주저앉아 더 망가질 것’ 등 불행해지는 법을 말하며 이 셋을 거꾸로 하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멍거의 핵심 사고법 중 하나인 ‘뒤집어서 생각하는’ 사고법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 항공단에서 기상학 장교로 복무하며 조종사의 이륙을 지원하는 일을 맡았던 멍거는 ‘많은 조종사를 쉽게 죽이는 방법’을 생각했다고 한다. 답은 착빙과 연료 부족이었고 멍거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인 끝에 기상 전문가가 되었다. 만일 인도를 발전시키는 일을 맡았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인도에 피해가 갈까?’를 생각하는 식이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뒤집어 생각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멍거는 조언한다.
그 밖에도 멍거의 유익한 조언들로 빼곡하다.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은 의무다’ ‘기대치를 낮추라’ ‘극단적인 이념을 삼가라’ ‘이기심 편향에서 벗어나라’ 등 투자와 삶을 관통하는 멍거의 조언은 간단하지만 지극히 유용하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단순한 교훈이 가득한 이 책은 투자와 삶을 위한 훌륭한 교과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