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16 문자 한통에 30년이란 확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며
緖
가을에 한 창 감 수확기에 점심 먹으로 집에 왔는데 휴대폰에 문자가 한통 들어와 있었다.
<이제 시간도 있으니 한 번 만나야지요, 서울 쪽으로 나들이 할 기회가 있으면 꼭연락해 주시고>
이런 내용이다.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고, 나를 생각하는 듯해서 쉬는 시간에 전화를 해 봤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ㅇㅇ입니다 하는 것이다 , 누구요, 재차 물으니 “문자들 다 읽어보시지 않으셨군요” 하면서 또 ㅇㅇ입니다 한다. 그재야 아! ㅇㅇ 이군 했다.
本
1. 문자를 받고, 통화 하고.
문자는 4캇트로 보냈는데, 맨 나중 문자만 열어 봤다. 그렇기 때문에 보낸 자를 몰랐다,
자신이 작년 2014년 12월에 전역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청도 영감이 우째 지내는지 궁금해서 문자를 보냈다는 것이다. 전화 번호는 울산에 있는 kk한테 물어서 했다 한다.
통화를 마치고 생각해보니 세월이 30여년이 지났다. 음성도 가물 가물하다. 지금와서 문자를 보낼 이유가 뭐가 있나 싶을 정도다. 현직에 있을 때 전화 한통이라도 하지,
갓 끈이 다 떨어지고 남은 것은 시간 밖에 없으니 문자나 보내는 것이 아닌가. 한편으로는 그래도, 30여년이 지났지만 머릿속에 나를 기억을 하고 안부 문자를 보내 주는 것만도 고마워해야 하나.
물론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다보니 전화 한통 할 여유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은 하지만 시원섭섭한 것은 남는다.
2. 나는 30여 년 동안 무었을 했나.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돈을 벌인 것이 있나, 명성을 가진 것이 있나, 농사짓는다고, 이것도 일류 농사꾼이 아니고, 방거치 농사꾼, 역전 골목에 쳐박혀 농약쟁이 하는 불쌍한 인생이 아닌가.
확, 지나가버린 나의 인생사를 뒤돌아보니 인생을 잘못 살았구나 하는 생각밖에 없다. 허구 헛날 멍청하게 가는 세월도 모르고 하루 하루 살았으니까. 남은 인생이 얼마인지 나도 알 수는 없지만, 남은 인생이 3년일까,10년일까, 이 기간 동안이라도 남들만큼 평범하게나 살고나 있을까.
나는 내 주위 사람들에 비하여 평법하게 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의 삶은 역전 골목길에 웅크리고 있는 지나가는 외제 자동차나 눈요기로 감상하고, 저 자동차에 속에 있는 사람들은 대단한 존재로 늘 생각한다. 이런 역전 골목길 양아치에 불과한 나에겐 희망이란 것은 없다. 그냥 하루 하루 시간만 하염없이 보낼 뿐이다.
그래서 답답하여 골목길에 농약쟁이 한지도 9년이 되었으니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자고 해도 마누라는 꼼짝도 하지 않고 이대로가 좋다고 하니, 희망을 가지고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다.
3. 감 한 상자 보낼 것이 주소를 보내라.
우리 학과 사람들은 모두가 똑같은 말을 한다. ㅇㅇ이도 똑같은 말을 한다.
애무가면서 농사 진 것을 어떻게 받아먹느냐고, 그래서 성남 목소리를 “주소를 보내라카이”, 억박질렀다. 그러자 알겠습니다 하면서 문자를 보내와 청도감 한 상자를 보냈다. 감이라도 한 상자 보내니 내 맘이 편안하다.
며칠 후 문자가 왔는데, 감 잘 받았다고 하면서 만나서 식사는 하자고 한다 그래서 울산에 있는 kk하고 날자를 조정해보라고 했다.
4. 만나면 울산과 서울, 청도 셋 사람이 만나 식사 한 끼 하는 것보다.
30여 년 동안 얼굴보지 못한 동문들 얼굴을 보는 것도 좋으니 울산 kk 니가 알아서 연락을 취하라 했다.
그래서 날짜를 받은 것이 12월 5일 pm5시 대구 수성구 송학구이 집이다. 모임의 장소가 학교 내나, 학교주변이면 좋으련만 이너묵손들이 이렇게 정했다.
結
학교 동문들이 만난다는 것은 학창시절에 가까이 지내지 않은 동문들하고는 만나기가 어렵다. 또 형편이 좋지 않으면 동문은 나오지 않는다. 동문회에 참석하는 자들은 그래도 형편이 좋은 사람들만 오니 자연스럽게 사정이 좋지 않은 동문들 얼굴 보기가 어렵다.
형편이 나은 동문들이 베풀어야 하는데, 이것도 잘 되지가 않는다. 이들은 이들만의 세계가 있으니,
30여 년 만에 문자를 보낸 동문은 군생활을 아주 오래 했다, 공고 졸업후 5년간 하사관으로서 군복를 하다가 대학들어 왔고, 군법무관이 되고, 군고등법원장을 거쳐 감사실장을 마지막으로 전역을 했다고 한다.
입학 동기 중에 사시6명, 행시1명이 합격했는데, 동기 모임이 제대로 되지 않고, 학창시절에 친하게 지냈는 사람들만 소수가 만날 뿐이다. 그러니 뿔뿔이 3,4명끼리만 만나고 있다.
동기 중에 현재국회의원이 있는데, 내가 몇 번이고 당선되고 나서 동기들에게 축하 꽃을 보내고 가까이 있는 동기들은 방문하라고 해도 가는 사람이 없다. 국회의원 당사자의 성격상의 문제는 전혀 없다, 우리 학과생들 성격이 이러하다. 원체 똥고집 센 놈들만 있으니.
그러니 30여 년이 지난 지금, 만나서 뭐하겠느냐는 생각뿐이고, 청도에서 대구까지 가려니, 움직이기가 싫다.
울산kk가 몇 명에게 연락한지 모르지만,
왠지 반가운 마음에 가고 싶은 맘이 생기지 않는다.
2015.12.4.
청도 영감 kimsujnbee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