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허라미 rami@hankyung.com
“반나절 쉬면 매출이 600만달러(700억원) 줄어듭니다.”
2008년 2월 초 미국 시애틀 소재 스타벅스 본사 8층 회의실.임원 한 명이 반나절 영업을 중단했을 때 어떤 피해가 있는지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하워드 슐츠 최고
경영자(
CEO)가 “떠난
고객을 잡기 위해 매장 문을 닫고 직원들에게 커피 만드는 법부터 다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 뒤 토론이 벌어진 것.임원들은 매출 하락을 불러오는 영업 중지만은 안 된다고 버텼다.하지만 슐츠는 단호했다.3주 뒤인 26일 미국 전역의 7100여개 스타벅스 매장이 일제히 문을 닫았다.매장 안에서는 바리스타들을 상대로 에스프레소 제조에 대한 재교육이 진행됐다.
세계 최대 커피체인으로 승승장구하던 스타벅스는 2007년 위기를 맞았다.방문 고객 증가율이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주가는 추락했다.
과도한 매장 개점과 이에 따라 발생한 균일하지 않은 커피 맛이 문제였다.불친절한 서비스에 대한 고객 불만도 늘었다.슐츠가 선택한 것은 영업정지와 재교육이었다.그로부터 2년 뒤 스타벅스 매출은 사상 처음 100억달러를 돌파했다.미국 매장 수는 1만900개,해외 매장 수는 6000개로 늘어났다.
◆직원 제안 받아들여 다각화 시동
슐츠는 최고
경영자(CEO) 자리를 떠난 지 8년 만인 2008년 1월 경영 일선에서 복귀했다.추락하고 있는 회사를 못본체 할 수 없었다.2년 만에
구조조정과 직원 재교육을 통해 회사를 정상으로 돌려놨다.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슐츠 없는 스타벅스는 생각할 수 없다”고 호평했다.
그러나 슐츠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미국은 커피 브랜드들의 전쟁터이기 때문이다.커피빈앤드티리프,엔제리
너스,싱크커피(think coffee) 등 수십개에 달하는 업체들이 엄청난 새로운 커피를 쏟아냈다.슐츠는 ‘미국에서 즐기는 정통 이탈리아 에스프레소’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바리스타의 역할과 커피 제조기법 정립에 묵묵히 심혈을 기울였다.고객들은 변함없이 스타벅스를 찾았다.
그러나 슐츠는 한발 더 나아갔다.포화상태인 커피 시장에 머물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그는 매장 직원들을 찾아갔다.현장에 답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던 어느 날 매장 직원들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할로윈 시즌 한정 상품을 팔자는 것이었다.다른 직원은 친환경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고객을 겨냥,신선한 주스를 직접 만들어 팔자고 제안했다.
슐츠는 결심했다.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로 한 것.할로윈 상품으로 호박에 계피를 탄 ‘펌킨 스파이시 라테’를 내놨다.대박이 났다.특정한 시즌에만 파는 ‘팝업마케팅’(pop-up marketing)이 주효했다.호박을 좋아하는 젊은층은 물론 계피 맛을 즐기는 중·장년층도 이 제품을 찾았다.지난 10월 초 할로윈 기간 중 펌킨스파이시라테는 전년에 비해 44%나 더 팔렸다.
슐츠는 직원의 또다른 제안도 받아들여 주스사업에도 손을 댔다.캘리포니아의 유기농 주스 생산 업체인 ‘에볼루션 프레시’를 3000만달러(330억원)에 인수한 것.WSJ는 “스타벅스 주변의 잠바주스와 스무디킹 등 주스 업체들이 긴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금 시간 허비하면 기회는 그냥 지나갈 것”
슐츠는 1953년 뉴욕 브룩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주변은 노숙자들로 넘쳐났고 거리는 오물 투성이었다.그의 아버지는 트럭 운전을 하다 사고로 다리를 다친 뒤 의료보험 혜택조차 받지 못한 채 회사에서 해고됐다.어린 슐츠에겐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열두 살 때부터 신문배달과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다.그에게 삶의 탈출구는 미식축구였다.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힘든 기억도 사라졌다.슐츠는 노던미시간대에 체육 특기생으로 합격했다.그러나 운동선수가 되지 않았다.사람들과의 만남을 좋아했던 그는 후지제록스 영업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하루 100통 넘게 전화를 걸고 물건을 팔기 위해서 어디든 갔다.문전박대를 받기 일쑤였지만, 3년간 영업맨 생활을 통해 포기를 모르는 근성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슐츠는 1981년 자신의 운명을 통째로 바꾼 기회를 맞았다.제록스를 그만두고
가정용품 생산업체인 해마플라스트에서 일하고 있던 때였다.시애틀의 한 작은 커피숍이 구형 드립식 커피 추출기를 대량 구입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 왔다.‘스타벅스’였다.
동네 커피숍 수준이던 스타벅스를 방문한 그는 풍부하고 깊은 커피 맛에 반했다.당시 커피는 사람들에게 잠을 깨기 위한 각성제쯤으로 여겨졌다.다시 회사로 돌아온 그는 스타벅스의 커피 맛을 잊을 수 없었다.1년여 뒤 해마플라스트를 뛰쳐나왔다.그리고 스타벅스 마케팅 책임자로 자리를 옮겼다.이탈리아 밀라노 출장 중 바 개념의 커피숍에 갔다.에스프레소에 스팀밀크를 넣어 만든 깔끔한 카페라테와 열정과 낭만이 가득한 사람들이 편히 앉아서 커피를 즐기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슐츠는 카페라테와 바 스타일의 커피숍을 미국에 들여오자고 스타벅스 경영진에 제안했다.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당시 스타벅스는 샌프란시스코의 커피전문점 ‘피츠커피앤티’ 인수에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망한 그는 1986년 스타벅스를 나와 커피바 ‘일지오날레’를 시애틀에 차렸다.세 번째 매장을 캐나다 밴쿠버에 낸 직후 스타벅스 경영진이 스타벅스 브랜드를 팔고 피츠만 경영하고자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슐츠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고 판단했다.투자자들을 물색해 자금을 모았다.그리고 1987년 스타벅스를 인수했다.슐츠는 성공비결을 묻는 질문에 “만일 내가 현재의 편안한 위치를 벗어나서 모험을 하지 않았다면 기회는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말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모두 함께 가자”
스타벅스에서는 직원들을 ‘파트너’라고 부른다.‘종업원(employee)’이 아닌 ‘동업자’로 규정하는 것이다.직원들은 회사의 열정을 고객에게 전달할 책임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슐츠의 경영철학 때문이다.회사 인사제도에도 이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모든 파트타임 종업원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종합적인 의료혜택을 주고 있다.종업원을 사업의 동반자로 만든 스톡옵션제도인 ‘빈 스톡’(Bean Stock)제도도 도입했다.그 결과
경쟁업체 이직률이 연간 150~400%인 것에 비해 스타벅스는 60~65%로 상대적으로 적다.매니저급의 이직률은 다른 소매점의 절반인 25%에 불과하다.이런 슐츠의 철학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고 있어야 했던 그의 어린 시절 경험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다.
스타벅스는 지난달부터 미국 내 매장 6800여곳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금’ 모금 운동을 하고 있다. 슐츠가 제안한 것이다. 그의 관심은 스타벅스에 머물지 않고 사회를 향하고 있다.
● 하워드 슐츠는
1953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 출신
1975년 미 노던미시간대 졸업
1979년 가정용품 업체인 하마플라스트사 부사장
1982년 스타벅스 마케팅 총괄 책임자로 입사
1985년 스타벅스 퇴사,에스프레소전문 커피숍 ‘일 지오날레’ 창립
1987년 스타벅스 인수
2000년 스타벅스 CEO 사임
2008년 스타벅스 CEO로 복귀
2010년 스타벅스 사상 처음 100억달러 돌파
2011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2011년 올해의 기업인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