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라성으로
오월 셋째 수요일이다. 스승의 날이라지만 예전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무덤덤하게 넘어가 마음이 편했다. 나는 한문 수업에 교과서 나오지 않은 구절을 하나 칠판에 적어 소개했다. ‘경사이구(經師易求), 인사난득(人師難得)’ 사마광의 ‘자치통감’에 나오는 구절이다. 글을 가르쳐주는 스승은 만나기가 쉬워도, 사람됨을 가르쳐주는 스승은 만나기가 어렵더라.
일과를 마치고 간편복으로 갈아입고 길을 나섰다. 거제대로 횡단보도를 건너 연사 정류소에서 지세포 구조라 방면으로 가는 22번 버스를 탔다. 어느 날 퇴근 후 지세포 해안을 산책한 바 있고, 옥림에서 거제대학 구내를 지나 장승포 연안으로도 나간 적 있다. 이번엔 22번 종점 구조라까지 가보고 싶다. 조라의 옛터가 ‘구(舊)조라’일 터인데, ‘조라’라는 마을이 곁에 있는지 궁금했다.
옥포를 거쳐 장승포를 지난 버스는 옥림고개를 넘어갔다. 고갯마루를 내려서니 원호를 그린 지세포 해안선이 드러났다. 거제 와서 둘러본 여러 포구 가운데 아름답고 운치 있는 지세포였다. 연초가 내륙이지만 발품만 팔면 어디든 바다를 접할 수 있다. 창원에서 마산이나 진해로 나가면 그곳 바다는 호수 같았는데 거제는 달랐다. 동남해안 탁 트인 푸른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대명콘도를 돌아갈 즈음 지세포항 바깥에는 지심도가 드러누워 있었다. 소동마을을 지난 신촌은 내가 지난번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거기서 내린 곳이다. 그때는 춘분 무렵이라 아직 해가 짧아 초행에 어두워지면 되돌아가는 길이 염려되어서였다. 이제는 낮이 길어져 지세포를 지나 구조라 종점까지 가고 싶었다. 버스는 일운 면소재지를 지나 와현고개를 넘어 구조라로 갔다.
인터넷으로 검색한 지도는 와현고개에서 융기해 나간 돌출부가 공곶이였다. 버스 차창밖엔 공곶이와 인접한 구조라 포구 바깥의 내도와 외도가 드러났다. 타고 간 버스는 구조라 포구에서 가장 끝인 수정에서 멈추었다. 포구엔 출항하지 않은 어선과 외도와 해금강으로 떠나는 유람선이 정박해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발을 디뎌본 낯선 포구 지형지물에 어두운 한 이방인이었다.
종점 수정에서 지세포 포구를 둘러보고 구조라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목을 찾았다. 잘록한 목에 형성된 삼정마을 골목을 빠져나가니 모래톱 해수욕장이 나왔다. 여름이면 파라솔이 펼쳐지고 피서객들이 몰려올 모래사장이었다. 해안은 샛바람 소리길로 명명 되어 있었다. 바다로 뻗쳐나간 산언덕은 구조라성이 있다는 안내판을 만났다. 시누대 대숲을 지난 산언덕으로 올라갔다.
바다가 바라보인 산등선에 임진왜란 이전 축조된 석성이 있었다. 포곡식으로 쌓았던 석성이 허물어져 근래 개축 정비를 해 놓았더랬다. 남녘 해안 왜구의 출몰이 잦자 방어적 성격의 성을 임진왜란 이전부터 쌓았던 것이다. 내가 엊그제 다녀온 장목면 북단 구영에도 영등성이 있다는 안내판을 본 적 있다. 옛날에 영등성이 있던 곳이라고 그 포구 이름이 ‘구영’으로 불리고 있었다.
구조라성에서 서쪽을 바라보니 아까 지나친 구조라 해수욕장은 망치 해안까지 모래톱이 훤히 드러났다. 더 서쪽으로는 학동 몽돌해수욕장까지 시야에 들어왔다. 구조라 해수욕장 바로 앞에는 무인도인 윤돌도가 그림 같이 떠 있었다. 주산에서 흘러내린 좌청룡과 우백호가 감싼 안산 같이 느껴졌다. 아직 석양이 비치긴 이른 때라 옅은 구름이 가린 햇살에 포구는 윤슬로 반짝거렸다.
석정을 넘어 구조라 포구와 와현고개를 바라봤다. 바다로 돌출한 공곶이가 구조라성과 함께 빙글 원호를 그려 와현과 구조라 포구를 감쌌다. 올랐던 길과 다른 방향 산책로를 따라 내려서니 아까 버스에서 내린 종점 수정이었다. 내가 타고 갔던 버스는 고현으로 복귀하기 위해 시동을 걸고 있었다. 날이 저문 시각이라 옥포를 지날 즈음 조선소 작업복을 입은 사내들이 더러 탔다. 19.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