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황금 연못
미국의 극작가 어니스트 톰슨 원작으로 1979년에 초연됐고 1981년에는 헨리 폰다, 캐서린 햅번, 제인 폰다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헨리 폰다의 '유작'이 된 영화 '황금연못'은 노인 부부와 가족 관계를 다루었다. 드넓은 호수가에 위치한 조용한 집에 함께 살고 있는 노만(헨리 폰다)과 에셀(캐서린 헵번) 은 노부부이다. 평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 이들 부부는 노만의 80회 생일을 맞이하여 헤어져 살고 있는 딸 첼시(제인 폰다)를 초대한다. 딸을 만난다는 사실에 들떠있는 노부부, 그들앞에 딸은 남자친구와 함께 나타났다.
은퇴 교수인 노먼은 퉁명스럽고 심술궂은 노인이다. 사람의 말에 있는 그대로 대답하는 법 없이 늘 엇나가서, 본인은 농담이거나 반어법을 쓰는 것일지 몰라도 당하는 사람들은 고역이다. 그런 노먼에게 상처받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아내 에텔뿐이며, 딸 첼시도 이미 그런 아버지에게 일찌감치 등 돌리고 멀어져갔다.
그러나 솔직히 노먼은 지금 참 힘들다. 굽은 등에 불편한 다리는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아서 행동은 굼뜨고, 아내와 천 번도 더 걸었던 숲길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져, 딸기를 따기는커녕 땀을 뻘뻘 흘리며 도망쳐 나오기도 한다. 나이와 함께 육신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죽음에 대한 생각이 수시로 마음을 흔들어 놓아 참 힘들다. 속상한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밝고, 명랑하고, 유머 감각이 뛰어난 아내뿐. 그런 아내가 고맙다.
딸과 딸의 남자 친구는 유럽으로 둘만의 여행을 떠나고, 두 노인 곁에는 열세 살짜리 빌리가 남겨진다. 빌리는 무섭고 괴팍한 할아버지가 싫고, 노먼은 예의 없이 건들거리는 빌리가 영 마음에 안 들지만, 두 사람은 같이 한 달을 보내야만 한다. 이 두 사람을 이어주는 것은 황금 연못이다. 연못에서 함께 배를 타고 낚시를 하고, 수영을 가르쳐주고 배우면서 조금씩 가까워져 간다.
노부부 곁에 남은 빌리는 자신이 낯선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쓰레기처럼 버려졌다고 생각한다. 노먼은 '인생 67년 선배'라고 하면서 빌리의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늘 큰 소리로 고함을 치는 노먼을 이상하게 여기는 빌리에게 에텔 할머니가 설명해준다. "너한테 소리 지르는 게 아니란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고함을 치는 거지. 아직도 포효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늙은 사자 같이…." 유럽 여행에서 돌아와 빌리를 데리러 온 딸 첼시에게 엄마 에텔은 간곡하게 아버지와의 화해를 권한다. 아버지는 딸이 생각하는 것처럼 '무서운 사람, 알 수 없는 사람, 못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내색하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말해 주었다. 누구나 가만히 들여다 보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이는 법이라며, 아버지에 대한 그런 감정으로 평생을 망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는 엄마의 말에 첼시는 아버지에게로 다가간다.
딸만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실은 두 사람 모두 서로를 무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딸이 먼저 말을 걸고 손을 내민다. 이제 노부부는 여름을 지낸 황금 연못 별장을 떠나야 한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노먼이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두 사람은 언젠가는 겪게 될 죽음과 이별을 경험하게 되고, 새끼들을 다 키워서 떠나 보내고 또 다시 둘만 남은 호수 위의 물오리를 바라본다. 여전히 호수는 황금빛 혹은 물빛으로 반짝이고 있다.
이제는 노인이 된 부부가 서로 이별할 날이 오더라도 황금빛 호수의 물빛처럼 반짝이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면 노인으로 생의 마지막도 외롭지 않게 잘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노년에 느끼는 삶에 대한 기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살아온 세월에 대한 회한, 손상된 관계에 대한 후회와 안타까움, 참으로 당연한 일이며 인간적인 일이다. <황금 연못>은 이 모든 것을 황금 연못가의 노먼과 에텔을 통해 풀어 나가고 있다.
고집스럽고 심술궂은 노인 노먼, 명랑하고 활기 있는 부인 에텔, 아버지와의 불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딸 첼시,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를 받고 마음 붙일 곳 없는 소년 빌리는 핵가족화하여 서로 떨어져 사는 오늘의 우리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노인의 외로움을 치유해주는 것은 가족이다. 특히 평생을 함께 해온 부인 에텔의 역할이 크다.
손자와 할아버지의 관계도 손자가 성인으로 자라면 남남처럼 멀어지겠지만,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을 동안에는 정서적으로 서로가 많은 도움을 준다. 80년 대의 미국 영화이지만 오늘의 우리나라 노인문제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노인들은 자신이 먼저 죽을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사별하는 수가 많다. 이럴 경우에는 정서적인 반응을 보인다. 비탄을 보인다. 그러나 45세의 부인이 47세의 남편과 사별하는 경우와 75세 부인이 77세 남편을 사별하는 경우의 비탄 반응이 달랐다. 75세의 부인은 어느 정도 사별을 예견하고 있었고, 자신이 더 오래 살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므로 심리적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비탄의 감정은 우울증으로 나타나는 수도 종종 있다. 일반적으로 일 년이 지나면 비탄의 과정도 끝이 난다. 더 오래 동안 비탄에 빠져 있으면 정신과적인 진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