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좀 사올래요? 청국장 끓여줄게.”
아직 이불속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을 때였다. 오늘 따라 무슨 일로 아내가 설친다. 스마트폰을 켜서 시계를 본다. 여덟시반. 기상 시간이 좀 늦었다. 지난 주 대구를 거쳐 점촌엘 다녀온 뒤부터 생활 주기가 뒤엉켰다. 잠들고 깨는 시간이 엉망이 된 것이다. 그 전에는 보통 네시나 다섯시면 잠이 깨어 컴퓨터를 켜서 문중13. 카페에 글을 올린 뒤, 동아일보 조선일보 세계일보 문화일보 일간스포츠 스포츠서울을 차례로 읽는 게 일과의 시작이었다. 그러다가 일곱시가 되면 현관문을 열고 배달원이 복도에 던져놓은 중앙일보를 주어다 읽으면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거나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다 찬밥을 먹었는데. 나는 겨울에도 찬밥을 더 좋아하고 물은 냉장고에 넣어둔 찬물만 마신다. 여름에도 더운 물만 마시는 병옥이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습관이리라. 어쨌든 기상시간 좀 꼬인 게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어떻게 보내든 하루는 24시간이니까.
일어나 옷을 걸치고 113동 뒤 수퍼로 간다.
“어머, 죄송해요, 두부가 다 팔리고 없네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부부가 운영하는 수퍼다. 보통 이 시간은 남편 담당인데 오늘은 무슨 일로 부인이 나와 있다. 말투가 똑 부러지고, 장사 친절이 아니라 인간적인 매너가 몸에 밴 교양 있는 여자다. 그녀에게서는 늘 은은한 향수 냄새가 난다. 어느 날 눈이 번쩍 뜨이는 젊은 여성이 가게를 보고 있기에 나중에 이 부인에게 물어봤더니 시집간 딸이라고 했다. 어느 먼 조상으로부터 건너온 유전자인지 부모의 외모 가운데서 정수만 뽑아다 섞어놓은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미모였다. 딸이 시집을 갔으면 이 부부가 최소한 60대는 되었단 얘긴가? 이 가게는 아침 여덟시부터 자정까지, 두 번의 명절을 포함해서 365일 쉬는 날이 없단다. 그러고 보니 2008년 이 아파트로 이사 온 뒤 이 가게가 문 닫은 것을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인사를 하고 정문 옆 편의점으로 간다.

“어머, 사장님 어서 오세요. 이렇게 일찍 웬 일이세요?”
이 가게 역시 부부가 운영하는 24시간 편의점이다. 오전은 부인이, 오후는 남편이 담당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쓴다. 이 여인 역시 마음에서 우러나는 친절이 몸에 배어 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처음으로 이 가게에 들렀다가 그녀의 눈빛에 가슴이 서늘해진 적이 있었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 저런 눈빛을 바라볼 수 있는 남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싶은 애수 어린 눈빛이었다. 남편은 좋겠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은 듯, 남편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불만 정도가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일일이 간섭하는 남편을 저주하고 있다. 교대하러 나왔다가 남자손님과 길게 이야기하는 장면만 봐도 혹 무슨 관계가 있는 거 아니냐고 닦달이 장난이 아니란다. 그건 남편 탓만은 아닌 듯하다. 나 같으면 저 정도 미모와 언변에 눈빛까지 깊은 아내라면 가게에 내놓을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이 가게에도 두부 같은 거 있어요?”
“그럼요, 저희 가게에도 두부 같은 게 있답니다. 그런데 그런 것도 사가세요?”
“당연하지. 늙어서 안 쫓겨나고 붙어살려면 이 정도 심부름은 해야지.”
“어머, 웬 일이니? 사장님 같은 분이 두부를 다 사가시고. 귀여우셔.”
이 여자는 내가 진짜 돈 많은 사장이라도 되는 줄 아는지 늘 과대평가하는 어투다. 그러나 다정다감한 대응이 싫지만은 않다. 남편이 신경을 쓸 만도 하다. 여드름투성이인 외아들이 군에 가 있는데, 이 여자는 40을 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짙은 눈화장이라도 한 날은 10년은 더 젊어진다. 내 눈에도 물건 사러 들린 중년남자와 긴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자주 눈에 띄었고, 어떤 날은 통화를 하다가 내가 들어서자 당황한 표정으로 급하게 끄기도 했다. 사람 일이란 건 장담할 수 없다. 남편이 담당하는 오후시간에 잠깐씩, 어느 멋진 남정네와 번개팅이라도 하며 지내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내와 마주 앉아 아침식사를 하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대개는 서로 편한 시간에 지가 알아서 챙겨 먹는다. 나는 내키는 시간에 왕뚜껑사발면 하나면 땡이다. 혹 같은 시각에 식사를 해도 나는 소반에, 아내는 쟁반에 밥과 반찬을 챙겨 시시마꿈 자기 방에서 먹는다. 아내가 보고 있는 연속극 때문에 시작된 습관인데, 나도 금방 익숙해졌다. 아내는 얼마 전에 결승전이 끝난 <수퍼스타K 시즌7>에서 우승한 캐빈오의 가창력 자랑에 열을 올린다. 처음에는 나도 몇 번 보다가 김민서가 탈락한 뒤부터 보지 않았다. 노래 실력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매력이 넘치는 아이였다. 나는 민족적 정체성을 팽개치고 이름을 성 앞에 갖다붙여 캐빈오니, 존박이나 하는 한국계 미국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미국시민권을 얻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혈연을 중시하기 때문에 성을 앞에 붙인다’고 알리고 오캐빈이나 박존이라고 왜 부르지 못하는가! 한국으로 귀화하여 하일이라는 한국명까지 가진 미국 법학박사 로버트 할리도 자기의 본래 이름을 얘기할 때는 절대로 우리 관습을 따라 할리 로버트라고 하지 않는다. 개인을 중시하는 서양적 정체성은 어떤 경우에도 양보하지 않는 것이다.
식사가 끝나고 내 방으로 들어와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펼쳐 읽는다. 고등학교 때 내 문학적 감성을 자극한 책 가운데 하나다. 30대 남자와 사랑하는 40대 이혼녀가 20대 변호사와 육체적 탐닉에 빠진 진부한 스토리, 그러나 직업이 안정된 중년 남녀의 자유분방한 생활이 아편보다 강하게 내 혼을 앗아갔었다. 그 위에 사강의 스피디한 문체로 구성된 상황 설명과 심리 묘사는 내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었다. 1935년생으로 나보다 11살 많은 사강은 대학 1학년 때인 19세에 이미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하여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었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 프랑스 제일의 소르본대학교에 다니는 19세 소녀, 그 위에 세계적인 명성과 함께 경제적 기반까지 탄탄하게 갖춘 사강은 내가 동경조차 해서는 안 되는 성(城) 안의 선녀였다. 세계 각국에서 책을 번역할 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아니라 반드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표기하도록 요구한 당당한 작가 사강! 그녀도 2004년, 지금의 내 나이에 미련없이 세상을 떴다.
그러나 70대에 다시 읽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옛날의 그 느낌이 아니었다. 마치 작년에 김승옥의 「생명연습」을 다시 읽으며 느꼈던 감정처럼, 고등학교 때의 감동과 부러움과 올라가지 못할 것 같은 까마득한 문학적 수준에 대한 동경은 재현되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아직 도달하지 않은 연령대의 경험과 생각과 사회적 위상이 아득했을 뿐이지 나도 그 연령대를 차례로 겪고 보니 그저 그렇고 그런 인생이었다.인테리어 업자인 여주인공 폴르의 일상과 남성편력도 보통사람의 일상일 뿐이었다. 늘 책을 읽고 음악회에 참석하고 교외로 드라이브를 가는 생활도 주어진 시간을 소일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었다. 특히 그처럼 까마득하던 김승옥의 소설은 어휘도 부적절하고 문장도 어색하여 다시 읽는 내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몇 시간 만에 뚝딱 읽어치웠던 그때와 달리 요즘은 하루 서너 페이지가 고작이다. 마치 배부른 아이 깨지락대며 박 먹는 것처럼.

‘딩동, 딩동, 딩동’
깜빡 잠이 들었었나보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켜서 시간부터 본다. 어느 새 오후 한시. 일어나 현관문을 연다.
“배달 왔습니다.”
장년 남자가 배추와 무를 한 수레 싣고 문 앞에 서 있다. 아하, 김장을 담글 모양이구나. 웬 일로 아내가 아침부터 설친다 했지. 한 다발씩 받아서 식탁 옆에 늘어놓는다. 보나마나 아내는 삼겹살을 한 근 사서 뒤따라오고 있을 것이다. 해마다 김장 날은 삼겹살을 푹 삶아 굵직굵직하게 썬 뒤 겉절이를 얹어 술안주를 해주었으니까. 캬~
첫댓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책...
지난 봄에 우리들 독서클럽에서도 누가 독후감 발표를 했었는데...벌써 다 까먹긴 했지만...
나도 글을 따라 같이하는 것이 아주 즐겁네.
경지에 오는 달인의 글 솜씨에 싱싱한 안주에 감칠맛 나는 돼지고기요리꺼정 같이 잘 먹었네.
그대 있어 우리 site 가 빛이 확~ 나누만!
내겐 아주 감사한 일이네.
술에 눌려 술이 쳐다만 보이니 술을 마실 수 있는 건강이 무지 그립네.
내겐 벌써 향수가 되어가는 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