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계절이
돌아오면 정치권에는 어김없이
‘명예후원회장’이라는
독특한 직함이 부상한다.
사실 이 직함은 법령에 명시된 공식 제도가 아니라,
정치적 필요에 따라 고안된 일종의
‘상징적
마케팅’에
가깝다.
다만 이를
다루는 두 거대 정당의 문법에는 뚜렷한 온도 차가 존재한다.
더불어민주당이 당의 원로나 대중적 인사를 내세워 지지층을
결집하고 모금 효과를 극대화하는
‘홍보의
도구’로
이를 적극 활용한다면,
국민의힘에선 주로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
즉
‘당정
일체’의
결속력을 확인하거나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 직함이 화두로 떠오르곤 한다.
결국 명칭은
같으나,
한쪽은 외연 확장을 위한 깃발로,
다른 한쪽은 권력의 구심점을 확인하는 척도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명예후원회장’이라는
직함은 유력 정치인들의 영향력을 증명하는 지표가 되고 있다.
핵심 친명 인사로 꼽히는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경기도를 중심으로 무려
26명에
달하는 기초단체장 후보들의 명예후원회장을 맡으며 당내 기반을 과시하고 있다.
송영길 전 대표 또한 전국적으로
16개
후보 캠프에 이름을 올리며 여전한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여기에 정청래 당대표 역시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마포구청장에
도전하는 유동균 후보의 후원회장을 직접 맡으며 전력 지원에 나섰다.
이처럼
중앙정치의 거물급 인사나 특정 계파의 핵심 인물들이 수십 명의 후보 후원회장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풍경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명예’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 가려진 민주주의의 왜곡을 이제는 한번쯤 냉철한 진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정치자금법상
후원회장은 후원회의 운영과 회계를 책임지는 법적 권한을 가진다.
반면,
법적 근거가 없는
‘명예후원회장’은
후보의 정치적 선명성을 과시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했다.
특히 특정 인사가 수십 명의 후보를 동시에 맡는 현재의
관행은 선거를 정책 경쟁이 아닌
‘계파
대리전’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이른바
‘반사체
효과’다.
지방선거는 지역 주민의 삶을 개선할 적임자를 선출하는
과정이지만,
정작 유권자들은 후보의 자질과 정책을 검증하기보다 유명
정치인의 이름값에 영향을 받기 쉽다.
그 결과 후보들은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되기보다,
거물 정치인의 후광에 의존하는
‘반사체’가
되기를 자처한다.
이는 결국 후보자의 실무 능력과 도덕성에 대한 엄정한 검증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이는
정당 내부의 건강한 경쟁을 해치는 독소로 작용한다.
특정 계파 인사가 다수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아 세를 과시하는
구조는 공정한 경선 관리를 어렵게 만든다.
정치 신인들에게는 기회의 문이 열리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앙정치의 파벌 싸움이 지방자치라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현장으로까지 확산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제는 이러한
기형적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공정한 선거를 위해 명예후원회장 제도의 폐지까지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전면 폐지가 어렵다면,
한 인물이 맡을 수 있는 후원회장 수를 엄격히 제한하고,
공천권을 가진 당 지도부나 현역 의원의 겸임을 금지하는 등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선거는
‘누구와
친한가’를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자리여야 한다.
명예후원회장이라는 허울뿐인 간판을 내려놓고,
후보 본인의 목소리와 정책으로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
것이야말로 지방자치의 본질을 회복하고 공정한 선거 문화를 세우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