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당시 초등학교 교육과정 개편을 앞두고 조기교육 차원에서 '한자(漢字)'를 국어교과서나 별도의 교과서로 채택
도입하고자 하는 의견을 매스컴에 올리는 학자들이 여럿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국어학자들 중에도 그런 의견을 내는 분이
있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도 중고교 시절에 한자를 주 1회 배우기도 한 적이 있다. 국어 교과서에는 중요
낱말 뒤에는 괄호 속에 한자를 표기하기도 했었다. '한글전용론'과 '국한문혼용론(=한자혼용론)'을 왔다갔다 줄타기하는
정책으로 그런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때도 있었다. 양분법으로 구분을 하자면 나도 한글전용세대에 속한다.
여러 선생님들께서도 의견이 엇갈려서 어떤 선생님께선 한자 무용론을, 어떤 선생님께선 한자 익히기를 강하게
말씀하기도 하셨다. 나는 어려운 한자를 왜 익혀야 하는지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그렇지만 역사를 공부 하거나 뜻이
분명해야 할 전문서적을 읽을 때는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정도의 생각은 갖고 있었다.
1993년 한글날을 열흘 정도 앞둔 무렵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날은 내가 야간당직(숙직)을 하는 날이었다. 숙직은 교장,
교감과 여교사를 제외한 모든 남교사들이 순번을 정해 돌려가며 했다. 당직자는 당일 퇴근시간부터 다음날 일직자가 출근하여
인수인계할 때 까지 잡무원(통칭 '소사')과 함께 숙직실에 머물면서 잠을 자지 않고 한시간 간격으로 순찰부에 이상유무를 기록
하며 근무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실지로는 숙직실에 침구도 준비되어 있고 잠을 자기도 하지만, 일년에 한두번 정도는
상급기관인 교육청 관리과 직원이 한밤중이나 이른 새벽 불시에 학교로 당직상태 점검을 나와서 당직근무 상태를 확인 하기도
했다. 잠을 자다가 적발되면 시말서나 사유서, 반성문 등을 써내는 경징계를 받아 창피를 당해야 했다.
나도 당직날 초저녁부터 잘 수는 없어서 교무실로 배달되는 신문을 미리 갖다놓고 읽고 있었다. 기사 내용에 한자혼용론을
장황하게 올린 내용이 있었다. 이랬다가는 가르치는 교사나 배우는 학생이 큰 고생을 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본 신문이 동아일보였는데 한 코너에 '독자의 편지'라는 난이 눈에 띄어 나도 한번 의견을 써서 보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칠팔십년대에는 관공서에서 야당성이 강한 '동아일보'를 구독하는 것은 금기시 된 적도 있었다.-
'독자의 편지' 기사의 길이를 판단한 후 한자혼용론에 반대하는 의견의 글을 밤 늦게까지 써서 완성한 후 다음날 우편으로
동아일보에 보냈다. 당시에는 동아일보가 최고의 메이저급 신문사로 내가 보낸 원고가 채택될 것으로 크게 기대는 하지 않고
관심도 별로 두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출근을 했는데 만나는 동료 선생님 몇분이 반색을 하며 내가 쓴 글이 동아일보
기사에 났다고 알려 주었다. 그날이 바로 한글날이었다!
스크랩해 두었던 그때의 기사내용을 아래에 첨부해본다.
지금은 한글이 날개를 달고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BTS, 블랙 핑크로 대표되는 K-Pop을 비롯하여 영화, 드라마, 동요, 음식,
소주, 뷰티, 의료, 과일, 과자, 교통, 농업기술, 놀이문화 심지어는 탱크, 미사일 등 무기까지 앞에 'K'자를 달고 종횡무진 날고
있는데 힘입어 한글의 확산 속도가 빠르다. 세계적 일류 대학에서도 중국어, 일본어는 학생 수가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한국어과는
몇십대 일의 경쟁률이 있을 정도라 한다.
지금은 한자혼용론을 말하는 학자가 없다. 극히 일부에서는 한자가 꼭 필요한 학문도 있지만, 대부분 한글 만으로도 충분히
지식축적이 가능한 것이 입증된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자국의 문자를 해득하는데 만도 초등학교의 대부분을 보내는나라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2학년 정도면 읽고 쓰는데 불편없이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컴퓨터, 스마트폰을 통하여 빠른 속도로 정보를
검색할 수 있으니 해외에 나가면 한국 사람들은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