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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돌과 비비추
 
 
 
카페 게시글
동산*문학관* 스크랩 소금쟁이 외 / 김영래
동산 추천 0 조회 19 16.02.06 18:2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소금쟁이 / 김영래

 

 

저놈은 완전 방수된 몸을 가졌다.
코를 틀어막고 물 먹이는 세상에서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수면 위를 산책한다.
떠다니는 가벼움을 위해 먹고
싸는 일을 포기한 신선 같다.
유연한 몸짓, 빙원을 활강하듯 유창한 행보,
보라, 유쾌한 정신의 물구슬 유희!
잡식으로 뒤뚱거리며 마음 물밑이 두려운 우리에겐
신약(新約)의 기적 같은 현신.
저놈의 아랫배 아래서 사타구니 밑에서
가려운 파문이 이는 물은 감히 그를 물들일수도,
수생(水生)으로 전환시킬 수도 없다.
정말이지 저놈들은 물들이지 않는 소금이다.

 

큰개자리 여인숙 / 김영래

 

 

소나무 사이로 별의 동녘이 움트는
큰개자리 여인숙,
오늘 하루 나 거기서 묵었다 가려 하네.
거인 사냥꾼 오리온은
왼쪽 옆구리에 끼기 좋은 하프 모양으로 누웠고
얼음 붙는 쩡쩡한 소리로
태백성이 호수를 타종하는 곳.
그믐이란 눈 덮인 숲길은 더욱 빛나
별의 성역으로 가는 길이 은싸라기를 뿌려놓은 듯하네.
발 아래 밟히는 이깔나무의 열매,
당의정 같은 산토끼들의 똥.
섬뜩하게 살별이 긋고 지나간 하늘엔 서기가 감돌고
별빛으로 휑궈낸 머릿속은 맑은 고량주 빛깔로 찰랑이네.
그곳, 밤이 나의 성좌임을
칠흑 어둠의 의지로 발화케 하는 곳에
도수 높은 내 명정의 간이 숙소가 있네.
순도 높은 휴식, 밤의 호의가 있네.
씨곡 알알이 겨를 벗듯 발아하는 별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지만 근육이 미소짓는 힘.
그러한 힘으로 길은 골짜기를 걸터듬어 산정으로 오르고
생의 향기를 맡은 별들이 숲정이로 내려앉네.
밤의 처마 네 귀퉁이에 열린 별의 풍경이
내 입김에 눈꽃처럼 녹아내릴 즈음,
내 아득한 꿈으로 애벌 씻은 하늘엔 운빈 걷히고
그렁그렁한 슬픔도 넘칠 듯 늘어
호박의 아주 오래된 온기를 지니네.
그 따뜻함, 훗훗함은
우주의 늘봄으로 지하 광석들을 꿈틀거리게 하네.
밤의 저 절대적인 싹들, 항성의 나무들.
성도 한 가운데 깊숙이 멧부리 들고 솟은 나의 노래는
수목 한계선 너머 은허문자의 영토를
밤새워 은유하다 가리.
큰개자리 여인숙, 그 객사의 하룻밤.

 

 

 

 

 

 

 

새벽이 오기 전에 걸어온 사람 / 김영래

 

― 사순절 10

 

 

무희여, 지난 사육제 때
내가 너의 입맞춤으로 깨워 춤추게 한
그 사람의 이름을
너는 알고 있느냐?
말해다오, 그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직도 자신의 시원(始原)에 무릎까지 담근 채
암흑의 물을 뚝뚝 흘리며
혼돈에서 깨어나 몸을 일으켰던 사람.
무희여, 그는

 

저녁이 매만지다 한밤중에다 내던져버린 사람.
진흙더미 속에 버려진 진흙 덩어리.
말해다오, 네가 그 이름을 듣고는 잊어버린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를.
밤이 그의 얼굴을 지워버린 뒤
우리의 형제라고 말하기 전에.
진흙더미가 진흙 덩어리를 부둥켜안고는
내 살이요 내 뼈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는 모두 새벽이 오기 전에 걸어온 사람들.
새벽이 오기 전에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또 내가 내 이름을 알아듣지 못해 고개를 돌려버린다면
모든 진흙은 빚어지기도 전에 굳고
굳기도 전에 이지러지고야 말리.
말해다오, 모든 견고한 것들이 부서져
먼지가 되기 전에.

 

무희여, 지난 춘분제 때 네가
등잔에 불붙여 그의 심장을 신방(新房)처럼 밝혀주었던,
또 그가 너의 손끝과 발끝에 달린 끈에 매달려
너와 함께 시가지와 들판을 누비며 춤추었던
바로 그 사람의 이름을
너는 알고 있느냐?

 

번데기에서 미래의 나비를 알아보는 이의 서판에
그가 있거늘,
죽은 번데기에서 나비의 비문(碑文)을 읽은 이가 있거늘
아, 지금 누가
불과 재 사이에서 울고 있는 것인가.
소리 없이 잠의 휘장을 흔들며 스며드는
검은 연기, 이 연기는
결코 연기로 사라지지 않는
어떤 고통을 중얼거리고 있는가.

 

아이의 잠자리를 빗속에 두고
혼자 이부자리에 누운 듯한 이 봄.
아무도 모르게 손이 자주 가는 상처
여럿인 몸으로 꽃이 피고 싹이 돋고
잎이 지고 꽃이 저물고…… 무희여, 지난 축일(祝日) 때
점토 인형으로 깨어 춤추었던 그를
지금 어떤 시간이 잠재우고 있는가.

 

모래로 된 가슴에
눈물로 적셔 가꾼 이끼 둥지 하나
여기 있거늘.

 

 

 

 

 

 

그믐의 그림자 / 김영래

 

― 사순절 14

 

 

이제 바람은 깊은 하늘에 가라앉았네.
한나절 소용돌이가 자취도 없이 말려들어
원추형으로 내리꽂히는 소(沼)의 중심에.
높디높은 하늘에 눌어붙은 듯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는 높은 구름들만이
서쪽 하늘의 소식을 전하여 오네.
이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네 발 솥 형상의 땅.
기름기 쫙 빠진 3월의 산과 다랑논,
잔설이 머물던 진자리마저 말라붙은 골짜기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불쏘시개로 져다 나른 섶과 같아
갈필(渴筆)로 긋는 한 획 붓질에도 불이 옮겨 붙을 듯한.
바람은 온종일
솥 가장자리를 핥고 또 핥으며
비등점에 이른 쇠여물처럼 달아올랐네.
한낮의 바람도 그러하였지.
골을 타고 오른 바람은 훌쩍 재를 넘고도
산모퉁이 몇 휘돌며 달팽이집 모양으로 소용돌이치다
산사 너른 마당에 이르러서야
서슬 퍼렇던 성깔 누른 채 빛의 범종을 두드렸지.
태양이 쟁여놓은
고산의 봉밀(蜂蜜)에 혀를 내밀었지.
하늘과 맞닿은 그 뜰의
기막힌 빛과 고요의 타종(打鐘).
해거름이 되자
바람의 와각(蝸角)을 희끗희끗하게 때리던 눈발.
지금, 그러나 이 고요는 온유하고 아늑하지만
가만히 되짚어보면
이 또한 밤의 결빙을 위한 오래된 다짐일 뿐.
나에게 온 이 평화도
해묵은 불화와 불화 사이에서 읽는 텅 빈 행간일 뿐.
녹아 지분대던 길이 다시 얼면
밤을 새운 침묵에 발을 헛딛게 되리.
나의 약속, 나의 믿음조차 또 다른 걸림돌이었네.
이제 바람은 밤의 품에 안겼고
그믐의 산보는 길을 잃을까 몹시 두렵네.
두려움만이 나를 깨우는 이 골짜기.
온 산을 구리쇠로 녹여 울던 바람,
차라리 그 바람이 그리워질 것인가.
두려움이여, 오래 반목했던 나의 그림자여.
내 일몰의,
내 그믐의 형제는 누구인가.

 

 

 

 

 

 

 

화석의 밤 / 김영래

 

 

1

 

나는 그 폐광의 깊이를
빛이 등돌린 입구에서
내가 내지른 고함을 통해 짐작할 뿐.

 

어둠의 식도로 통하는 검은 아가리.

 

순도가 높은 원석(原石)의 덩어리들
무개차에 실려 갱도 밖으로 나갔다.
채광의 금속성 사라진 길.

 

그믐으로 가는 내 영혼의 광구(鑛口)엔
폐석의 더미들,
끊긴 선로, 녹슨 연장,
버려진 원동기들.

 

밤의 내장으로 통하는 이 깜깜한 어둠의 식도

 

2

그곳에 가면 불이 있다.
빛이 분별할 수 없는
영원한 밤이 응축시킨 불.
수억 년 생명이 지층 속에 생매장된
떼죽음의 밤,
화석의 밤까지 가면.

 

사방이 산이다.
눈의 산, 밤의 산.

 

탄가루를 마시고 무거워진 심장들
돌아누워 침몰하고
유산된 꿈이 탯줄째 얼어붙는다.
물개 가죽신을 신고 상아 고드름 이빨로
동토(凍土)의 하늘을 톱질하는 바람.
마을로 가는 길 어디며
어디가 마을 밖으로 가는 길인가
사발 막소주로 씻은 눈들,
막장 속 밤의 아들들에 빛의 총명함을 전하던 눈들은
숯불에 돼지 껍질을 구우며
잘 꺼지고 자주 갈아야 하는 아궁이의 불을 생각한다.
석탄회관에 모여
탄불처럼 식어가는 생계를 생각한다.

 

막힌 불구멍을 터
신선한 풀무로 숯풍로를 지피며
금(金)을 제련하는 불,
꺼지지 않는 불은 어디에 있나?

 

그곳에 가면 불이 있다.

 

폐광으로 가는 길 눈에 묻히고
갱도에 눈 밝은 광부들 모두 떠나
마을 전체가 꺼져 냉돌인 밤,
대설(大雪)의 밤,
그 심장까지 가면.
어둠을 뒤져 불을 찾는다.
밤의 숯, 부싯돌 같은 빛.

 

존재의 일식이 비롯되는 곳은 어디인가?

 

내가 가진 것은 공기와 물,
부서진 악기, 재가 되어버린 꿈.

 

어디로 갔나?
불씨들, 삶의 토시인 빛의 깃털들.
부싯돌들, 부등깃 같은 희망들.

 

시를 쓰면 불을 지핀다.
끊어진 현(絃)으로 섬광을 켠다.
아주 오래 전
구덩이를 파고 묻어둔 한낮의 노래는
썩어 한 움큼의 캄캄한 화력으로 탄화되었을까?

 

발화성 높은 광석들은
수백 광년 저편의 별들처럼
밤의 자궁 속에 잠들어 있고
나는 인화물질이 부족한 주머니에서
어린 새 같은 언어를 키우며
밤을 통과한다.
출구가 없는 암흑의 떨림판에
내 불타는 심장을 비비며.

 

 

 

 

 

 

 

소리를 찾아가는 열 개의 문턱 / 김영래

 

 

하나. 득음(得音)

 

소리의 길을 막음으로써 소리의 세계를 공명케 하는
내 사유의 고막이 소용없게 되는 곳에서 만나는 소리.

 

둘. 청음(聽音)

 

온몸 맨살 땅바닥에 대고
햇살을 듣는 싹들.
들음이 곧 득음임을 아는.

 

한 음 긷기 위해
수없이 많은 고요를 청진했던 이의
맑은 이마.
초벌인 대지의 소리는 어떠할까.

 

유약 한 방울 바르지 않은 숨의 단지,
무변(無邊)항아리가 안아올린
지맥(地脈)의 소리굽쇠는.

 

많은 새가 노래하는 계절엔
그 노래에 귀기울이는 새들 또한 많다.

 

셋. 화음

 

단 한 번 부름으로 모두를 깨울 수 있는 소리 있고
단 한 번 부름에 일제히 깰 수 있는 침묵있다.

 

밤 잠 짧은 대지의 봄이 향음(鄕音)을 깨웠구나.

 

넷. 가락

 

청딱따구리 부리 오래 다져둔 침묵연다.
노래하는 입의 개복수술.
매화는 빛을 열였다. 두근거리는 봄볕,
꽃잎 안는다. 향기는 응달로 움직이고
돌연 빛과 그늘의 중심이 흔들린다.
땅속으로 내려간 마음, 땅속까지 뻗쳐간 힘,
표토 뚫고 색채로 돋아난다.
산수유꽃, 빛을 열었다. 온혈을 머금고
노랗게 하늘을 부등켜안는다.
매화의 흐르는 향기, 산수유 꽃의 붕붕거리는 향기.
깊이 파고 숨은 얼음 봄물 게워내고
깊이 파고 감춘 뿌리 수맥 길어낸다.
보료처럼 포근한 흙,
눈을 뜬다. 향기 들린다.
아무도 없음을 잊는다.
투명한 물의 혀로도 굳은 마음의 수피(樹皮)
쫄 수 있다. 쪼갤 수 있다.
청딱따구리 노래 빈 하늘 두드린다.
구름비 꽃비 내린다.
땅에 닿으면 이미 하늘이다. 

 

다섯. 마디

 

장구를 친다.
치고 막음으로 엮는 음의 관절.

 

소리의 죽(竹)을 심는다.

 

여섯. 노래

 

귀의 노래인 침묵 위해
그대들의 입을 틀어막는 것은 어떤 소리인가?

 

다문 입은 세 개의 귀처럼 이마를 밝게 한다.
온몸을 귀 삼아 땅을 듣는 뱀.

 

귀의 노래인 침묵으로,
세 개의 귀로 머릴 기울이면
땅의 시(詩)인 뱀 대가리로 대지를 수색하는 자,
광부의 노래 들리리라.

 

혼신으로 부르는
귀 밝은 노래 들리리라.

 

일곱. 묵음(默吟)

 

씨앗 속에서 한 포기 명아주처럼 발돋음하는 태동의 소리

듣기 위해 샘이 고갈된 우물 바닥에 귀를 대고
기다린다. 기다린다.

 

흐느끼면서 흐느끼면서 고요해지는 삼월의 비.

 

여덟. 말

 

누가 하늘 다락
종루에 이르는 동아줄을 당기는가.

 

청동 거푸집 속 텅한 공간은
허공을 발음한다.
울림이 긴,
떨림이 오랜 모음으로.

 

최초의 한 점을 응시하는 파문.

 

이제 , 마침내, 말하라.
귀기울이며 노래하는 실내악의 언어로.

 

아홉. 기도

 

당신은 왜 이토록 내 가까이서 침묵하시나요?
내 안에서, 나를 흔들어 놓곤
흔들리지 않는 나의 중심에서 숨을 죽이나요?

 

여물지 못한 이삭을 풋바심하는 당신의 일.
여기, 나 기꺼이 지스러기 되어 들판에 누웠는데.
꽃을 터는 바람에 꽃봉오릴 내밀었는데.

 

일찍이 당신이 귀기울여 득음하던 얼음장에 입술 대고
왜 당신은 온혈의 큰 숨 불어 청음의 고막을 녹이는가요?

 

들판으로 통하는 넓고 빈 길의 멱을 움켜잡듯
사시나무 뒤흔들던 푸른 힘 서슬 퍼런 힘 모두 풀고
당신은 왜 나를 돌려세워 허공과 마주서게 하시나요?

 

떨다가, 흠씬 두들겨 맞아 멍이 들었다가,
두려워 숨다가 이제 가까스로 당신을 향했는데.

 

열. 적(寂)....고요

 

귀 시린
물소리. 한밤
투명한, 꽉찬 살의
현(絃)을 퉁기다.
찬물 한 사발, 표주박으로 떠온
새벽 물 한 바가지
머릿속으로 뜨겁게 흘러
붉은 심장에 큰 파도 일궈내다.
풍경소리 들린다.
운두가 낮은 놋쇠 대접
탕, 치고 달아나는
발 빠른 정신 관절 소리 들린다.
물속을 들여다보는 눈의
문풍지 뚫는 집게손가락 소리 있고
새벽까지 깨어 있는
매운 사람 계피향 소리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김영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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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쟁이 / 김영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신약이란 무엇인가 소금쟁이가

물위에 사뿐 사뿐 걸을 수 있는 것은 물의 표면보다

더 넓은 마음을 지녔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본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삶은 기적과도 같은 일을

가슴에 꿈으로 놓고 살아가게 한다.

정말 이 세상 물위에 사뿐사뿐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두려움을 벗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에게도 그 두려움을 버리는 일이 일생의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벗어 버리는 일이

삶의 종착점인지도 모른다.

부와 명예도 두려움을 벗는 일에 도움이 안된다.

진실하게 사는 일만이 두려움을 벗는 일이다.

소금쟁이가 물 위를 두려움 없이 걷는

것처럼, 김영래 시인은 소금쟁이를 통해 그 가볍고

날쌘 몸의 유영을 배우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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