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버리세요
최진근
중학교 다닐 때였다. 국어선생님은 수업시간에 독서를 많이 하라고 권했다. 그래서 이 책 저책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때 읽은 명언이 지금도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영국의 토마스 카알라일의 “책이 없는 궁궐보다 책이 있는 오두막이 났다”, 책중도유(冊中道有) “책속에 길이 있다” 프랑스 철학자 G. 바슐라르의 “책은 꿈꾸는 것을 가르쳐 주는 진짜 선생이다”는 말은 책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주었다.
그 때부터 책을 애지중지 하였다. 한 권 두 권 늘어나자 보관할 책장을 살 형편이 어려워 동네 목수에게 보리쌀 한 말을 주고 3단 책꽂이를 만들어 책을 꽂았다. 그러다가 직장생활을 할 때는 책장을 구입해 두고 대형서점이나 헌책방을 다니며 전공서적을 사다 모았다. 이곳저곳 다니다가 필요한 책을 발견 하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을 느끼곤 했다. 가끔 서울에 출장을 가면 출장비를 아껴 책을 사곤 했고, 학술발표회에 참석할 때는 먼저 발표 자료집을 챙겼다, 은사가 격려와 사랑을 담아준 책과 함께 공부하던 동학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들도 더러 있었다. 때로는 학교 동기들이 월부 책을 팔려고 찾아 왔다. 그들이 권하는 종류는 문학전집이나 사전류가 대부분이었는데, 필요 하든 안하든 동기의 체면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 샀다가 월부 책값이 부담이 되어 아내는 불평하기 일쑤였다. 어느 때인가, LG 상남언론재단에서 독립신문 영인본 6권을 펴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중한 자료라 구입하려고 재단에 문의를 하니 “이 책은 한정판이라 드릴 사람이 미리 정해져 있다”며 거절했다. 그런 말을 듣고도 수없이 전화와 편지로 필요한 이유를 전하기도 하고, 출장 갔을 때 찾아가 부탁을 드리기도 했다. 그러자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처럼 담당자가 나의 간곡한 청을 받아드려 보관용을 어렵게 구해서 보내 왔다. 이뿐만 아니었다.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모아 필요한 물건을 사기로 가족끼리 약속을 했다. 한 닢 두 닢 일 년 가까이 모으니 가득 찼다. 가족이 모여 묵직한 돼지저금통을 자르자 동전이 쏟아 졌다. 그 순간 이 돈으로 뭘 살까를 생각하다가 국어대사전을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튼 날 민중서관에서 발행한 ‘국어대사전’(4482페이지)를 구입했다. 가족들은 일방적으로 사전을 사는 것이 못 마땅하다는 표정이었다. 소장하고 있는 책들은 나름의 사연이 있지만, 국어대사전은 한푼 두푼 동전을 모아 산 것이기에 더욱 애정이 간다.
60대 중반이 되었을 즈음 전공서적, 문학류, 사전류, 논문, 잡지 등이 책장8개에 가득 차 게 되었다.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방이 세 칸이다 한 칸은 침실로 사용 하고, 한 칸은 책상과 전공서적 책장 6개를 넣어 서재로 사용하고, 한 칸은 일반교양서적 책장2개를 넣어 화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자 어느 날 .평소 말이 없던 아내가 가뜩이나 집이 비좁은데 책 때문에 숨이 콱콱 막힐 지경이라며 불만을 틀어 놓았다.
“ 방 3칸 중 2칸은 서제와 화실로 사용하는데 나는 방도 없이 이기 뭐 꼬. 오래된 책은 지질이 누렇게 변했고, 곰팡이가 실어서 퀴퀴한 냄새도 나고, 벌레가 생겨 건강에 해로울 낀데 필요 없는 책은 버리세요, 그림 그리는 도구는 서재로 옮기고 방 한 칸은 내방으로 꾸며 지인과 차담을 나누는 공간으로 해줘요,”
“ 책을 버리는 것은 나의 영혼을 버리는 것과 같아, 책에서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러나, 그림도구를 서재로 옮기면 복잡해서 작업을 할 수 없잖아.”고 반문하자
“ 당신은 내 생각 한 번이라도 해봤어요, 어느 집에 방 세 칸 가운데 두 칸을 남자가 차지했는데도 가만히 있을 여자 있으면 나와 보라 하세요, 너무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지”라고 쏴 부친다.
그동안 책 때문에 다툴 때가 더러 있었다. 이사를 할 때는 책을 버리라고 강하게 요구해 왔다. 그 이유는 이삿짐센터에서 책이 많아서 이사비용을 턱없이 많이 내란다. 돌이켜 보면 이사를 여러 번 하다 보니 작은 봉급으로 한 달 한 달 겨우 살아가는데 책 때문에 이사비용이 많이 든다는 심정을 이해 못하는 봐는 아니다. 또 다른 이유는 화실이나 서재에서 냄새가 나서 지인이 오면 실례가 된단다. 이럴 때마다 혼자 투덜거렸다. ‘나는 서재에 있어도 냄새나는 줄 모르겠는데 당신 코는 참 예민 하구만’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여러 차례 성화를 견디다 못해 버린 책이 줄잡아 수십 상자는 될 것이다. 지금은 책이 반으로 줄어들어 책장 4개만 있다. 퇴직을 해서니 이것마저도 버리라니 너무 한 것 같다. 한평생 애지중지 모은 책이 줄어들자 가난했던 시절 쌀독에 양식이 줄어들어 허전해 하시던 어머니 마음 같다고나 할까,
나이가 들자 젊은 시절 뜨겁던 열정이 식어가고 생각도 바뀌어 간다. 책을 벗 삼아 살아온 자신에게 내가 물어 본다. ‘책이 주는 길을 찾았는가?’ 답은 ‘남들 같이 훤히 트인 큰 길은 찾지 못하고 지금도 희미한 길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럼 ‘책이 꿈꾸는 것을 가르쳐 주는 선생이었나?’ ‘훌륭한 선생은 맞지만 능력의 한계에 부딪쳐 꿈을 활짝 펴보지 못했음’을 알고 후회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일흔 중반인데도 아직 방 두 칸을 서재와 화실로 사용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과 아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모든 것을 버리고 갈 것인데, 좀 더 일찍 버리면 어떠랴! 더 늦기 전에 아내만의 방을 마련해 주어야지.
첫댓글 공감하는 글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건강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저와 똑 같습니까?
나는 몇해전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교과서까지 시골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 후 누가 버렸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 집에는 1971년부터 대학 교재, 노트까지 보관되어 있습니다. 군생활
때 받은위문 편지, 그리고 결혼 전 여자 친구들과 주고 받은 편지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도저히 책을 버리지 못하는 습관 때문에 아내로부터 매일 꾸지람
듣고 삽니다. 우짜마 좋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버리지 못하는 것은 저와 같습니다. 대학교재 노트를 보관한다니 책과 삶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초등학교 교과서 까지
보관하셨다니 저보다 더 책에 대한 애정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모님으로 부터 꾸지람은 당연할 것 같군요. 사모님 편하게 해 드리면 좋을듯 합니다. 좋은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