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아르헨티나 두번 울리는 약탈형 펀드
금융자본주의의 재앙 ‘벌처펀드’
[54호] 2014년 10월 01일 (수)
디폴트 국채 5천만달러에 사들여 “액면가 13.3억달러 갚아라”…
채무조정안 백지화 우려
벌처펀드는 파산 직전에 몰린 나라에 또 다른 재앙이다. 디폴트 위기 국가의 국채를 헐값에 사들여 액면가 전액을 상환하라고 숨통을 조이기 때문이다.
최근엔 아르헨티나가 미국 벌처펀드의 사냥감 신세가 됐다. 93%의 채권자가 아르헨티나 정부와 채무 조정에 합의했지만 전액 상환을 주장하는 벌처펀드 때문에 모든 과정이 중단됐다.
도미니크 플리옹 Dominique Plihon
파리 제13대학 경제학 교수
‘벌처(vulture)펀드’는 디폴트 상태에 가까운 채무국의 국채를 헐값에 매입한 뒤 법적 경로나 협상을 통해 해당 채무국에 부채를 액면 그대로 갚을 것을 강요함으로써 엄청난 고수익을 얻어내는 헤지펀드를 말한다(vulture는 ‘탐욕꾼’이라는 뜻이다 -편집자).
NML캐피털은 이런 방식으로 2008년 아르헨티나 채권을 5천만달러(약 517억원)에 매입했고
8억달러(약 8280억원) 이상을 상환받아 1500%의 고수익을 올릴 것을 기대하고 있다.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2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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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처(vulture)펀드, 삼성을 정조준하다
이완배 기자 최종업데이트 2015-06-06 09:39:31
벌처펀드(vulture fund)라는 것이 있다. 공식적으로는 ‘파산한 기업이나 자금난에 부딪쳐 경영 위기에 처한 기업을 싼값에 인수하여 경영을 정상화시킨 후 비싼 값으로 되팔아 단기간에 고수익을 올리는 자금으로 고위험·고수익을 특징으로 함’이라고 설명된다.
하지만 금융가에서 벌처펀드는 이런 고상한 어감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해석된다. 벌처(vulture)는 ‘대머리 독수리’다. 썩은 고기, 즉 동물의 시체를 파먹고 산다. 이미 죽어있는 존재에서도 자신의 양식을 뜯어낸다. 한 마디로 악랄하다는 뜻이다. 벌처펀드는 바로 ‘마른 수건에서도 물 한 동이를 짜내는’ 지독한 펀드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4일 한국 증시에 이 대머리 독수리가 등장했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 지분 7.12%(1112만 5927주)를 장내 매수한 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한 결정이므로 이에 반대한다”고 선전포고를 하고 나선 것이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주주 행동주의 투자자인 폴 싱어(70)가 1977년 설립한 회사다. 그동안 벌처펀드로 세계 금융시장에서 유명세(혹은 악명)를 떨쳤다.
그들의 유명세는 단연 뛰어난 수익률에서 나온다. 1977년 설립 이후 지난해까지 연간 평균 수익률이 14.6%였다. 설립 이후 38년 동안 손실을 본 해가 단 두 번뿐이다. 반면 악명은 그들이 부실채권을 주로 사들인 뒤 끈질기고 집요한 소송을 통해 반드시 제값을 받아내기 때문이 생겼다. 싱어는 2001년 아르헨티나가 1000억 달러 규모의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면서 채권 가격이 80% 폭락하자 이를 헐값에 쓸어 담은 뒤 소송으로 100% 제값을 받아냈다. 당시 싱어는 소송으로 아르헨티나 정부를 압박하는 한편 아프리카 가나에 정박한 아르헨티나 군함을 차압했고, 대통령 전용기까지 압류를 시도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싱어는 콩고공화국과 페루 정부를 상대로도 승리를 거둔 말 그대로 ‘벌처펀드’의 전설 같은 존재다.
한국 증권가에서는 이 대표적인 미국 독수리의 등장에 “삼성그룹이 제대로 허를 찔렸다”고 입을 모은다. 부실채권이나 부실기업을 먹이로 삼는 벌처펀드가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그룹, 그것도 3세 승계의 핵심 전략으로 떠오른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을 노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미국 독수리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서 드러난 작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엘리엇매니지먼트의 발표가 나자마자 삼성물산 주가는 4~5일 이틀 동안 무려 20.8% 뛰었다.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증권가에서는 엘리엇매니지먼트의 평균 매입 단가를 5만 5000원 선으로 추정한다. 이들이 이미 2000억 원이 넘는 수익을 챙겼다는 이야기다. 앞으로 주가가 더 뛰면 독수리들이 앉아서 챙겨갈 한국의 국부(國富)가 얼마일지 상상조차 어렵다.
시나리오 1 - 엘리엇이 합병을 무산시킨다
시나리오 2 - 엘리엇, 단기적으로 먹튀한다
시나리오 3 - 엘리엇, 장기적으로 삼성 지배구조에 간여한다
시나리오 4 - 엘리엇, 삼성과 타협으로 실속을 챙긴다
이 때문에 제시되는 다음 시나리오가 삼성그룹과 엘리엇의 극적 화해다. 어느 정도 주가가 오른 뒤 삼성그룹이 블록 딜(주식을 대량으로 사고파는 거래) 형태로 엘리엇의 지분을 사 주고 일정 이익을 챙겨주는 것이다. 혹은 삼성물산이 거액의 주주배당을 실시해 엘리엇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안겨주는 방법도 있다. 실제 엘리엇은 4일 삼성물산에 "회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현물로 배당할 수 있도록 정관을 고치자"는 제안서를 보내오기도 했다.
삼성그룹은 분쟁을 피해 행복하고, 엘리엇은 실익을 챙겨 행복한 시나리오다. 다만 엘리엇의 퇴로를 열어주기 위해 국부를 유출했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독수리 등장의 의미와 한국의 재벌 지배구조
벌처펀드가 한국의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의 핵심 지배구조를 파고들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그 동안 삼성그룹이 짜 놓은 시나리오는 한국에서 대게 무리 없이 통용됐다. 삼성그룹은 그 동안 갖은 지혜(!)를 동원해 세법과 상법을 피해가며 2세, 3세 승계를 이뤄냈다. 도덕적인 비난은 있었어도 법적인 징계를 내릴 수는 없었다. “대한민국의 세법은 삼성이 개척했다”는 비아냥거림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재벌들은 차원이 다른 실력을 가진 국제적인 벌처펀드를 상대하게 됐다. 한국에서 모두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라는 ‘신의 한 수’에 감탄하는 동안, 엘리엇매니지먼트는 그 작은 틈을 놓치지 않고 치고 들어와 막대한 차익을 올렸다.
삼성그룹 3세 승계의 편법은 절대 옹호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그 편법을 파헤치고 수정하는 것은 오로지 한국의 몫이다. ‘금융시장의 해적’ 벌처펀드에게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면서까지 뒤늦게 알아채야 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돈 안들이고 바꾸겠다며 삼성그룹이 재주를 열심히 부렸는데, 돈은 왕서방이 챙겨 달아났다. 한국사회의 최우선 과제인 재벌구조의 혁파 외에도, 해외 자본의 자유로운 한국 유출입에 대해 강력한 통제 수단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http://www.vop.co.kr/A000008964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