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실비아의집 원문보기 글쓴이: 民草
홍릉수목원/홍릉터 |
▲ 홍릉터 전경(하얀 띠로 둥그렇게 둘러진 부분이 홍릉터입니다.) |
☞ 보타사에서 홍릉수목원을 가려면 교통편이 애매하여 걸어가야 하며, 거리는 2.5Km 정도로 한 30분 정도 걸릴겁니다. 아래의 지도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홍릉 수목원 안에는 홍릉터가 있으며, 이 곳이 문화재 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어서 답사 코스에 포함하였습니다. 홍릉수목원은 일요일만 무료 개방하며, 주차도 불가능하여 대중 교통을 이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음식물 반입도 불가합니다. 꽃들이 많이 피는 시기에 한 번 가 보시기를 권합니다. |
▲ 홍릉 수목원 정문 전경 |
▲ 홍릉 수목원 안내도(23번이 홍릉터) |
홍릉수목원은 국립산림과학원 부속 전문 수목원으로서, 국내·외의 다양한 식물 유전자원을 체계적으로 수집·관리하여, 기초 식물 학문분야 발전은 물론, 식물유전자원 확보를 위해 조성한 시험연구림이다. 1999년 현재, 총 157과 2,035종(목본 1,224종 : 국내종 836종, 국외종 388종 / 초본 811종)의 식물 20여만 개체를 전시하고 있다. 또한 남한에 분포하는 목본식물의 석엽표본 1,143종 (국내종 945종, 국외종 198종)과 종자표본 812종(목본식물 734종, 국외종 78종)을 소장하고 있다. 1960년대까지는 총 면적이 99ha(299,035평)에 이르렀으나 그 후 일부가 한국과학기술과학원 등으로 관리 전환되어 현재 44ha(전문수목원 14.5ha, 자연학습장 3.5ha, 고정시힘지 4ha, 환경보존림 15.5ha, 경관풍치림 6.5ha)가 남아있다. 서울의 동쪽 천장산(141m) 남서 사면에 위치하며, 연평균 기온 11.1℃, 연강수량 1,259mm로 여름에는 고온다습하고 겨울에는 한냉건조하다. 산복 이상에는 소나무림이 우점하고 산록 및 계곡에는 활엽수림이 우거졌었으나 일제통치 및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극도로 파괴되어 오리나무, 물갬나무, 리기다소나무, 아까시나무 등으로 사방 조림되었다. 그 외 지역은 화백과 국내 자생수목인 잣나무, 전나무 등을 소나무림아래 식재하여, 현재의 복층림으로 조성하였다. 1993년 4월부터 매주 일요일 자연 학습 및 환경 교육을 위하여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
홍릉터는 어디에... |
☞ 수목원 정문에서 쭉 들어가면 정면에 건물이 있습니다. 이 건물 좌측으로 돌아가면 우측 동산에 산책로 가 여러 곳 있으며, 건물 바로 뒤편 부분의 산책로로 가면 홍릉터(메인 사진)가 있습니다. 홍릉터에는 낮 은 목책이 둥그렇게 둘러져 있으며, 홍릉터 중앙에는 '홍릉(洪陵)터'라 쓰인 표석이 있습니다. |
▲ 홍릉터 전경 | ▲ 홍릉터 표석 |
이 곳 홍릉은 조선조 말기 제26대 고종황제(이재황 : 1852~1919, 재위 44년)의 왕비 명성황후(여성부원군 민치록의 딸)께서 묻혓던 곳이다. 명성황후 민비는 1851년 여주에서 태어나 16세때 왕비에 간택된 후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 반대파를 규합하여 민씨 정권을 세우고 개국 정책을 주도하는 등 왕실 정치에 간여하였다. 그 후 계속하여 대원군의 친명, 친일정책 등에 반대하고 정치의 실권을 잡기 위하여 정쟁을 벌이다 1882년 임오군란으로 신변이 위태롭게 되자 충주, 장호원 등으로 피신 중 청나라의 도움으로 대원군을 밀어내고 민씨정권을 재수립하였다. 그러나 1884년 갑신정변으로 민씨 일파가 실각되자 민비는 청나라를 개입시켜 개화당 정권을 무너뜨렸으나 친일 내각이 득세하고 1894년 대원군의 재등장으로 갑오경장이 시작되자 러시아와 결탁하여 일본세력의 추방을 기도하다가 1895년 8월 20일(음) 새벽, 일본공사 미우라고로가 보낸 자객에 의하여 경복궁 곤녕각에서 난자 시해당한 후 시체가 궁궐 밖 뒷산으로 운반되어 거적에 말려 석유가 부어져 소각되었다 한다. 그리하여 민비는 일제의 사주로 폐위되어 서인이 되었다가 복호되었고 1897년 명성(明成)이라는 시호가 내려지고 그 해 11월 국장을 치른 후 이 곳에 묻혀 25년간 홍릉이라 불리어 관리되어 오다가 1919년 1월 고종께서 승하하시자 2웧 16일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현 홍유릉)으로 천장, 고종과 합장하게 되니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어 현재까지도 이 곳을 홍릉이라 부르고 있다. - 홍릉수목원 입구 안내판 내용 발췌 - |
동구릉에 조성되었던 홍릉지가 발견되어... |
☞ 2005년 4월 중순, 동구릉의 오효석 관리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었습니다. "광나루! 동구릉 숭릉 우측 언덕에 홍릉지와 석물이 발견되었으니 한 번 오시게나"라는 전화를 받았으나 직장인이 아무때나 갈 수도 없고... 며칠 뒤에 신문에 기사가 났더군요. 개인적으로는 5월 초에 가서 확인을 하였습니다. 동구릉에 가서 아래 좌측 사진의 능터는 발견하였으나 석물을 찾지 못하여 한참을 헤메다가 겨우 석물 (아래 우측 사진)을 찾았습니다. 신문에 나온 사진과 같지요... ☞ 저는 청량리의 홍릉터가 초장지인줄 알았더니 청량리에 능지를 쓰기 전에 동구릉에 능지를 조성했으나 동구릉으로 장례를 치르지도 못하고 무슨 연유에서인지 청량리의 천장산 자락에 홍릉을 다시 조성하였 습니다. 당시에는 청량리까지 전동차가 다녀서 고종이 황후의 능에 참배가기 쉬우라고 가까운 곳에 능을 썻다는 설과 동구릉에 조성한 능지가 파묘 자리라서 쓰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는군요... - 2005.05.08 - |
▲ 능지로 조성했던 자리 | ▲ 홍릉지 좌강 밑에 흩어진 석물과 능지 |
|
현재의 홍릉은... |
▲ 남양주시 금곡에 있는 고종과 명성황후가 묻힌 홍릉 전경 |
☞ 청량리에 있었던 홍릉은 고종이 승하하심에 따라서 금곡으로 천장되었다는 것은 위에서 설명을 드렸습 니다. 그 동안 홍유릉을 몇 차례 가서도 사초지 밑에서만 능역을 올려다 보았으나 카페 회원 몇 분과 함 께 가면서 관리소에 미리 연락을 해서 홍유릉 문화유산 해설사의 안내를 받아서 홍릉 능역에 올라가 볼 수 있었습니다. - 2004.10.31 - |
홍릉 수목원 위치도 |
소재지 :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2동 207 빨간 깃발이 있는 부분에 홍릉터가 있습니다. 보타사에서 홍릉터까지는 2.5Km 정도로 걸어서 30여분 소요됩니다. 직접 갈 경우에는 지하철 6호선 고려대역 3번 출구로 나와서 걸어 가거나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2번출구 청량리우체국 방향으로 나와서 1215번 버스승차 후 3번째 정거장 홍릉수목원 앞 하차합니다. |
첫댓글 한번 가보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