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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수행자修行者의 삶 - 기본에 충실한 삶
2018.3.7.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신명4,1.5-9 마태5,17-19
어제 강론은 기도에 대해 많이 강조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 순간 ‘실천’이라는 말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기도 많이 하고 많이 알아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기도따로 삶따로가 아닙니다. 기도는 삶의 실천으로 입증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구체적 실천을 통해 진짜임이 드러납니다. 문득 예전에도 인용했던 예화가 생각납니다. 많은 수도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된 선배수도사제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까?” “규칙대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수도자들이 물을 때마다 이렇게 답변했다는 것입니다. 복잡할 것 없습니다. 잘 사는 길은 아주 단순합니다. 규칙대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말이 참 평범하지만 명답입니다. 영성에 대해 말하기전 삶의 기본에, 상식과 양식에 충실하라는, 수도자가 되기 이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는 옛 장상의 충고도 잊지 못합니다.
수행생활의 기반위에 관상생활입니다. 불가의 삼학의 우선 순서도 계정혜戒定慧입니다. 계율戒律 준수의 기반위에 선정禪定의 관상이요 지혜智惠입니다. 계율준수의 수행이 없는 영성생활은 사상누각, 모래위에 집짓기처럼 참으로 허술하고 위태합니다. 제가 예전에 늘 강조했던 말도 생각이 납니다.
“일과표의 궤도에 충실하십시오. 일과표의 궤도에 충실한 것이 해결의 지름길입니다. 마음따라, 감정따라 살지 말고, 일과표의 궤도따라 사십시오. 이렇게 일과표의 궤도에 충실하다 보면 때가 되면 떠났던 마음도, 감정도 본연의 제자리로 돌아와 마음의 안정과 평화입니다. 일과표의 궤도에 항구하십시오. 바로 구원의 길입니다. 성공적 정주생활의 비결입니다.”
영성생활은 비상하거나 뜬구름 잡는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영적일수록 현실적이라 했습니다. 가까이 있는 지켜야 할 규칙에 충실하고 항구한 것이 바로 영성생활의 토대입니다. 바로 이것이 기본에 충실한 본질적 삶입니다. 이래야 비로소 수행자라 할 수 있습니다. 분도 규칙도 거의 모두가 실천해야할 수행사항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늘날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는 미투운동을 보십시오. 십계명중 ‘6.간음하지 마라’, ‘9.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는 두계명을 위반한 경우가 아닙니까? 이 두 계명을 위반함으로 공든탑이 무너지듯 속절없이 무너지는 삶들입니다. 미투운동에 연루된 가해자에 대한 댓글도 잊지 못합니다.
“그의 철학과 가치관은 허위임이, 가짜임이 드러났다. 윤리가 결여된 모든 것들은 추호의 가치도 없다.”
문득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간음한 여인에 대해 분노하는 군중들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들 미투의 가해 남성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모든 남성들은 반성하고 자숙해야 할 것입니다. 모두의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식욕, 성욕, 물욕의 욕망을 제어하는데 구체적 규정과 법규들을 실천하여 습관화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늘 제1독서의 주제는 ‘모세와 하느님의 법’이고, 복음은 ‘예수님과 율법’입니다. 두분 다 얼마나 하느님의 법인 율법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는지 짐작이 갑니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보아라, 너희가 들어가 차지하게 될 땅에서 그대로 실천하도록, 나는 주 나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대로 규정과 법규들을 가르쳐 주었다. 너희는 그것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민족들이 너희의 지혜와 슬기를 보게 될 것이다.”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유독 강조되는 말마디가 ‘실천’입니다. 규정과 법규들의 실천에 충실함이 바로 지혜와 슬기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기본에 충실한 본질적 삶을 살 때 주님도 늘 그들과 함께 하시니 지혜롭고 슬기로운 삶입니다. 계속 이어지는 모세의 간곡한 당부입니다.
“너희는 오로지 조심하고 단단히 정신을 차려, 너희가 두 눈으로 본 것들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그것이 평생 너희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하여라.”
늘 하느님 현존 속에 살라는 말씀입니다. 매일 미사와 성무일도 분위기를 늘 생생히 간직하고 깨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하느님 법에 대한 예수님의 자세도 추상같고 단호하기가 모세를 능가합니다. 새 모세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기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법규나 규정들, 율법이나 예언서는 하느님 사랑의 선물입니다. 정말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들을 사랑하며 실천에 옮깁니다. 물론 율법의 완성은 사랑으로 이루어질 것이며 그 구체적 방법은 계속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진정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 때 마음의 순수요 그가 하는 모든 사랑의 행위는 율법의 완성에로 이끌 것입니다. 그러나 우선 그 마음의 순수와 사랑에 이르기까지는 구체적 계명과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늘 초심자初心者의 열정으로 돌아가 계명과 규칙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 있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 중심의 일과표의 궤도에, 또 우리의 3대서원, 정주와 수도승다운 생활, 순종의 실천에 충실하고 항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수행생활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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