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기도하는 교회 (8) 전례 거행과 표징
전례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고 거행합니다.
이 거행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은 그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를 구원의 신비로 초대하는 전례는 거룩한 표징을 통해서 거행됩니다.
이는 교회가 인간적인 동시에 신적이며,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신비를 소유한 성사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이루고 세상에 드러내는 성사인 교회를 보여주는
가장 탁월한 도구가 바로 전례입니다(전례 헌장 2항 참조).
구원의 성사라는 교회의 본질을 드러내는 전례가 표징을 통해 거행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기인합니다.
인간은 육체적인 존재인 동시에 영적인 존재 - 이성적 차원을 포함하는 - 입니다.
인간의 이성적이고 영적인 특성은 육체를 통해서 표현되고, 육체의 움직임은 영적인 것으로 변해갑니다.
그래서 표징과 상징은 인간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표징과 상징 - 대표적인 도구로 언어가 있습니다 - 을 통해 드러내고
동시에 그 표징과 상징을 통해서 영적인 실체를 만나기도 합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전례 예식이 지닌 성사적이고 상징적인 구조는 이러한 인간의 실존을 수용하신
하느님의 사랑 곧 말씀이 사람이 되신 강생의 신비에서 비롯됩니다.
하느님의 외아들께서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습니다(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참조).
이러한 사실을 바오로 사도는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다.”(콜로 1,15)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신앙 안에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원성사(原聖事)’이시며
모든 전례 표징의 첫째이며 근본이십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계시 된,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교회를 통해서
세상에 드러나야 합니다.
육을 취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근원적인 표징이며 성사이신 것처럼, 그분의 몸이며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모든 인간에게 선물로 주어진 구원의 표징이며 성사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전례 거행은 외적으로 보이는 형식만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느님의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전례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전례 안에서 인간의 성화가 감각적인 표징들을 통하여 드러나고 각기 그 고유한 방법으로 실현되며,
그리스도의 신비체, 곧 머리와 그 지체들이 완전한 공적 예배를 드린다(전례 헌장 7항).”
따라서 교회의 전례 거행은 인간의 감각을 요구합니다.
즉 전례 안에서 사용되는 표징은 인간의 오감 - 후각, 미각, 촉각, 시각, 청각 - 을 통해
우리를 신비로 인도합니다.
또한 전례에 사용되는 표징은 언어라는 상징 체계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언어 더 원초적으로, 말은 우리가 다른 감각을 통해 만나는 표징의 의미를 좀 더 쉽게 깨닫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인간의 말을 통해 다가오십니다. 인간은 자신들의 언어로 하느님께 응답하며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따라서 말은 하느님의 구원 의지가 효력을 내게 하고, 인간이 응답할 수 있게 하는 자발적인 표징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우리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교회는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고(표현, expression), 그 말씀을 들은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 안에 새깁니다(인상, impression).
이처럼 파스카 신비는 전례 거행의 중심을 이루고, 강생의 신비는 그 전례가 존재하는 근거가 됩니다.
전례는 우리가 하느님의 신비 곧 구원의 신비와 만나도록 인도합니다.
물론 구원을 현재화하는 전례는 늘 이해하기 어려운 일로 남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만나고 이해할수록 전례는 구원을 살아가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전례 안에서 온몸으로 구원의 신비를 만나시면 좋겠습니다.
[2024년 9월 15일(나해) 연중 제24주일 청주주보 3면, 김형민 안토니오 신부(교구 복음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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