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명예를 고양시키며 유가족들의 피 맺힌 한을 풀어내고 우리가 있기까지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음을 알림으로써 나라사랑 의식을 함양하기 위해 세워진 현충비앞에 서다.
1949년 5월 송악산 전투에서 박격포탄을 안고 적기관총 진지에 몸을 던져 장렬하게 산화함으로써 나라를 지킨 보병 1사단 11연대 육탄 10용사의 충혼을 위무하고 살신구국의 군인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져 육군 전하사관의 후원으로 1980년 5월에 건립한 비입니다.
하늘을 향해 10인의 용사들의 용맹스런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합니다.
6·25당시 문산전투에서 산화한 육군 제 3270부대 장병 2.385명에 대한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기원하고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1972년 12월 육군 보병사단에서 건립한 충현탑입니다
비문에 적힌 글을 읽어봅니다
"붉은 무리 탱크를 앞세우고 임진강을 넘어 오던 날 오직 죽음 하나로 지켰던 내 조국
그 날 1사단이 4반세기의 성장 후에 주인으로 돌아와 통일의 지름길 위에 가신 님의 거룩한 정신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여기 통일동산에 단을 세우다."
이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우리 후손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일이기에 그 분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소위 김만술상>
6·25 자유수호 전쟁 당시 1953년 7월 연천 북방의 베티고지에서 불과 1개 소대의 병력으로 중공군 2개 대대를 맞아 생사를 초월한 필승의 신념으로 최후까지 싸워 물리쳐 세계 전쟁사의 유래가 없는 대승을 거두어 국군의 용맹성을 유감없이 과시한 보병 제 1사단 11연대 2대대 6중대 김만술 소위의 베티고지 혈전신화를 기념하고자 1996년 12월 4일 고 김만술 소위 흉상을 건립하였다.
<한국전 순직종군기자 추념비>
6·25당시 종군기자들의 프레스센터였던 문산역의 평화열차가 내려다 보이는 유서깊은 취재현장에 세워진 이 비는 한국전쟁을 전 세계에 보도하다 희생된 국내외 기자 18명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전국 일선 기자들의 성금과 사회 각계의 지원금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
이 비는 타자기 모양의 화강암으로 된 받침대 위에 저널리스트의 머리 글자 J자를 딴 타이프라이터 종이가 높이 솟아 있으며 비 윗부분에는 승리의 월계수와 기자정신을 상징하는 펜을 쥔 손과 한국 전쟁을 뜻하는 지구의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한국 기자협회는 매년 4월 당시 종군 기자들을 비롯한 언론계 인사들을 초청하여 종군기자 18명 그들의 영령을 추모하고 있다 합니다.
<살신성인탑>
2000년 6월27일 10시47분경 육군 제 1보병사단 수색대대장 이종명 중령과 설동섭 중령은 대대장 임무 인수인계차 DMZ 군사분계선 부근에서 19명의 부대원과 함께 수색작전중 미상의 지뢰폭발로 설중령이 두 다리를 잃게 되고 이 중령과 수색3중대장 박영훈 대위가 파편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중령은 자신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부상자들의 신속한 조치와 부하들의 안전을 고려하여 '너희들은 들어오지마라! 위험하니 내가 들어가겠다.후송헬기를 신속히 요청하라 !'며 다시 설중령을 구하기 위해 혼자서 들어가다가 자신도 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두 다리가 모두 절단된 극한 상황에서도 두 대대장은 더 이상의 부하희생을 막기위해 "위험하니 들어오지마라, 내가 기어 나가겠다" 라고 부하들의 접근을 막았으며 자신들의 피묻은 총과 철모를 끌어안고 기어나오는 초인적인 희생정신을 보여주였습니다.
두 대대장들은 후송되는 동안에도 "부하들은 다친 사람이 없는가?' '부대에 누를 끼쳐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이며 의식을 잃었습니다.
비문을 읽어내려가며 나는 울고 있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져 가면서까지 나 아닌 부하들을 먼저 걱정하는 형이자 선배이자 아버지같은 지휘관들.
이 시대에도 진정한 사랑의 깊이를 나누는 정겨운 지휘관들이 필요로 합니다.
당신들을 진정 사랑합니다.
<육군 첩보부대 제 1지대 전공비>
파주시 파주읍 봉서리 360-1에 위치한 전공비.
1950년 6·25동란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국군이 낙동강까지 후퇴하여 국제 연합군의 지원으로 1950년 9월 28일에 서울을 수복하고 계속 북진을 거듭하여 통일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뜻밖에 중공군의 한국전 개입으로 인하여 1950년12월 하순에는 중공군의 정월 대공세작전으로 아군의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지고 두번째로 1.4후퇴로 인하여 서울이 재차 함락하는 불리한 전세였을때 육군첩보부대 제 1지대는 문산지역에 지대본부를 설치하고 의정부, 동두천지역에는 미제 3사단 파견대를 비롯 6개 파견대로 편성되어 적 후방 깊숙이 침투하여 중공군 제 63군, 제 64군에 대한 주요작전계획을 탐지 보고하여 연합군의 3월 대반격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위험하니 내가 간다" <김정식작사, 최영섭작곡>
긴장속의 최전선 밤낮없이 살피고
떠나는 그 날까지 땀 젖은 전투복
저기는 지뢰지대 위험하니 내가 간다
지휘관의 그 외침 부하위한 사랑이네
고귀한 그 정신 길이길이 받들어
사나이 붉은 가슴 나라 위해 바치리
눈부신 기백은 지축을 흔들었고
불꽃같은 정열로 온 몸을 던졌네
여기는 지뢰지대 위험하니 오지마라
비장한 그 목소리 우리들의 표상이네....
송악산 비둘기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포탄을 가슴에 안고 장렬하게 산화한 열명의 장병, 충용탑.
전사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명예를 고양시키며 유가족들의 피 맺힌 한을 풀어내고 우리가 있기까지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음을 알림으로써 나라사랑 의식을 함양하기 위해 세워진 현충비앞에 서다.
1949년 5월 송악산 전투에서 박격포탄을 안고 적기관총 진지에 몸을 던져 장렬하게 산화함으로써 나라를 지킨 보병 1사단 11연대 육탄 10용사의 충혼을 위무하고 살신구국의 군인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져 육군 전하사관의 후원으로 1980년 5월에 건립한 비입니다.
하늘을 향해 10인의 용사들의 용맹스런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합니다.
6·25당시 문산전투에서 산화한 육군 제 3270부대 장병 2.385명에 대한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기원하고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1972년 12월 육군 보병사단에서 건립한 충현탑입니다
비문에 적힌 글을 읽어봅니다
"붉은 무리 탱크를 앞세우고 임진강을 넘어 오던 날 오직 죽음 하나로 지켰던 내 조국
그 날 1사단이 4반세기의 성장 후에 주인으로 돌아와 통일의 지름길 위에 가신 님의 거룩한 정신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여기 통일동산에 단을 세우다."
이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우리 후손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일이기에 그 분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소위 김만술상>
6·25 자유수호 전쟁 당시 1953년 7월 연천 북방의 베티고지에서 불과 1개 소대의 병력으로 중공군 2개 대대를 맞아 생사를 초월한 필승의 신념으로 최후까지 싸워 물리쳐 세계 전쟁사의 유래가 없는 대승을 거두어 국군의 용맹성을 유감없이 과시한 보병 제 1사단 11연대 2대대 6중대 김만술 소위의 베티고지 혈전신화를 기념하고자 1996년 12월 4일 고 김만술 소위 흉상을 건립하였다.
<한국전 순직종군기자 추념비>
6·25당시 종군기자들의 프레스센터였던 문산역의 평화열차가 내려다 보이는 유서깊은 취재현장에 세워진 이 비는 한국전쟁을 전 세계에 보도하다 희생된 국내외 기자 18명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전국 일선 기자들의 성금과 사회 각계의 지원금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
이 비는 타자기 모양의 화강암으로 된 받침대 위에 저널리스트의 머리 글자 J자를 딴 타이프라이터 종이가 높이 솟아 있으며 비 윗부분에는 승리의 월계수와 기자정신을 상징하는 펜을 쥔 손과 한국 전쟁을 뜻하는 지구의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한국 기자협회는 매년 4월 당시 종군 기자들을 비롯한 언론계 인사들을 초청하여 종군기자 18명 그들의 영령을 추모하고 있다 합니다.
<살신성인탑>
2000년 6월27일 10시47분경 육군 제 1보병사단 수색대대장 이종명 중령과 설동섭 중령은 대대장 임무 인수인계차 DMZ 군사분계선 부근에서 19명의 부대원과 함께 수색작전중 미상의 지뢰폭발로 설중령이 두 다리를 잃게 되고 이 중령과 수색3중대장 박영훈 대위가 파편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중령은 자신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부상자들의 신속한 조치와 부하들의 안전을 고려하여 '너희들은 들어오지마라! 위험하니 내가 들어가겠다.후송헬기를 신속히 요청하라 !'며 다시 설중령을 구하기 위해 혼자서 들어가다가 자신도 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두 다리가 모두 절단된 극한 상황에서도 두 대대장은 더 이상의 부하희생을 막기위해 "위험하니 들어오지마라, 내가 기어 나가겠다" 라고 부하들의 접근을 막았으며 자신들의 피묻은 총과 철모를 끌어안고 기어나오는 초인적인 희생정신을 보여주였습니다.
두 대대장들은 후송되는 동안에도 "부하들은 다친 사람이 없는가?' '부대에 누를 끼쳐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이며 의식을 잃었습니다.
비문을 읽어내려가며 나는 울고 있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져 가면서까지 나 아닌 부하들을 먼저 걱정하는 형이자 선배이자 아버지같은 지휘관들.
이 시대에도 진정한 사랑의 깊이를 나누는 정겨운 지휘관들이 필요로 합니다.
당신들을 진정 사랑합니다.
<육군 첩보부대 제 1지대 전공비>
파주시 파주읍 봉서리 360-1에 위치한 전공비.
1950년 6·25동란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국군이 낙동강까지 후퇴하여 국제 연합군의 지원으로 1950년 9월 28일에 서울을 수복하고 계속 북진을 거듭하여 통일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뜻밖에 중공군의 한국전 개입으로 인하여 1950년12월 하순에는 중공군의 정월 대공세작전으로 아군의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지고 두번째로 1.4후퇴로 인하여 서울이 재차 함락하는 불리한 전세였을때 육군첩보부대 제 1지대는 문산지역에 지대본부를 설치하고 의정부, 동두천지역에는 미제 3사단 파견대를 비롯 6개 파견대로 편성되어 적 후방 깊숙이 침투하여 중공군 제 63군, 제 64군에 대한 주요작전계획을 탐지 보고하여 연합군의 3월 대반격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위험하니 내가 간다" <김정식작사, 최영섭작곡>
긴장속의 최전선 밤낮없이 살피고
떠나는 그 날까지 땀 젖은 전투복
저기는 지뢰지대 위험하니 내가 간다
지휘관의 그 외침 부하위한 사랑이네
고귀한 그 정신 길이길이 받들어
사나이 붉은 가슴 나라 위해 바치리
눈부신 기백은 지축을 흔들었고
불꽃같은 정열로 온 몸을 던졌네
여기는 지뢰지대 위험하니 오지마라
비장한 그 목소리 우리들의 표상이네....
송악산 비둘기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포탄을 가슴에 안고 장렬하게 산화한 열명의 장병, 충용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