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 지키기
최 병 창
물의 얼굴은 앞뒤를 갖지 않는다
그런데도 물은
제 얼굴을 한 번도 바꾸지 않는다
물의 얼굴은 높낮이가 없다
그런데도 물은
중력이 없이도 중차대한 깊이를 지닌다
물의 얼굴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지향한다
흐르지 않으면 사라져야 했고
그러면서도 정상지표를 향하고 있다
떠돌이처럼 물이 물 사이를 건너간다
공감하는 물은 공감하는 만큼 맑아지고
흐르던 빈자리는 독점권이 없어도
영역을 넘나드는
상대적인 주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물은 제 혼자 풀 세팅을 하지 않고도
선명한 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다만 선명했던 자국을 오래오래 기억할 뿐
단 한 번도 떠돌이라고 내쳐진 일도 없으며
가뭄과 홍수라는
동전의 양날도 비켜 가지 않았다
물도 나도 수평을 지켜내야 한다
말해주진 않지만
무엇인가인가를 위해 사라지는
물의 역산법이란 어디에도 없기에
무너지면 그건
돌이키지 못할 엄청난 카오스일 테니까.
< 2017. 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