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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교회에서는 the Christmas Eve Candle Service가 오후 5시, 7시 두 차례 있었습니다.
따라서 성가대원는 각자 간단한 먹을 것을 준비하되, 더 일찍 준비하는 Orchestra 단원을 위해 serving할 음식을 더 가져와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잡채를 준비했습니다. 제가 이름하여 'Korean Noodle with Vegetable-JapChe'를 index card에 적고 그 아래 들어간 재료를 soy-bin sauce(간장)까지 다 적었습니다. 낯선 음식에 혹시 앨러지 있는 분들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교회에 도착했을 때 일부는 성전으로 올라가셨지만 거의 모든 Orchestra 단원들은 그 곳에서 핏자나 도우넛, 커피로 간단한 요기 중이었습니다. 카드와 함께 저희 잡채를 내 놓으며, "Actually it will be more testy with garlic." 그러자 짐짓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습니다. "But I didn't put garlic." 어느 분이 장난스럽게 휴-하셨습니다. 한 분 두 분 가져다 드셨습니다. 까짓, 남으면 집에 가지고 가서 먹지,했는데 서너 젓가락 정도만 남기고 다들 드셨습니다. 그리고 5시 예배를 위해 sanctuary로 올라갔습니다. 7시 예배 전 내려와 쉬는데 트럼펫 하시는 분이 "Is it your traditional food?"하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먼저 그 분을 TV에서 뵈었습니다. '저 분을 어디서 뵌 분인데? 아마 비슷한 얼굴이시겠지' 했는데 실제로 교회에서 연주하실 때 보니 바로 그 분이셨습니다. 뉴욕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의 평양 방문, 실황 연주 마지막 장면은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처음부터 굳어있던 그들의 표정 녹아져 '아리랑'을 부를 때 저는 울었습니다. 연주가 다 끝나고 단원들이 모두 퇴장하여 모습이 보이지 않건만 저들은 내내 서서 오래도록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아마 당시 지시받은 각본에 없었던 저들의 자연스러운 그 모습은 김소월 시인의 영변의 약산 진달래 꽃 마냥 고운 그 마음 빛이 되어 내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곳에서의 그 감격을 제가 알기로 그 곳 수석주자이신 그 분도 기억하고 계실것입니다. 올 11월로 기억되는데 저들이 일본을 거쳐 한국, 베트남등지에 순회 여행시 성가대 지휘자이신 그 분의 사모님과 동행하셨는데 한국에서 모든 성가대원에게 e-mail 하시기를 '한국에서 본 수 많은 십자가의 불빛은 참으로 장관이다'하셨습니다. "What are your traditional food for Christmas?"하고 그 분이 계속 물으셨습니다. 전에 어머니께서 빚어 주셨던 모찌떡 얘기를 할까 하다가 간단히 떡국 이야기를 하며 사실 복음이 들어 온지 120여년이 넘기에 특별히 전통적인 음식은 없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리 짧은 기간이 아닌데 제가 생각을 못 해서 그렇지 우리의 전통이 될 크리스마스 음식 문화가 있을 법하다고 봅니다. "I know there are many huge churches in Korea, and many Christians too." 저는 대답했습니다. 모든 한국 교회는 날마다 새벽 기도를 한다고, 가령 명성 교회는 새벽에 50,000명이 나와 기도한다고 말입니다. 그 분은 믿기지 않는듯 "Fifty thousand? Five, zero, zero, zero, zero? "하고 헤아리셨습니다. 이 곳에서 새벽 기도 이야기를 하면 도전을 받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막상 새벽 기도회를 갖는 것에 관해서는 마치 '우리 새벽 1시에 탬버린을 갖고 교회에 나와 찬양하자' 정도의 황당한 제안처럼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겸손하고 진지하고 들으셨습니다. 내친 김에 한국의 수 많은 크리스챤, 그리고 선교 2 위의 나라가 된 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또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수 많은 순교자의 피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들은 Thomas 선교사님과 성경 이야기를 했더니 그러냐시며 인터넷에서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통성기도에 대해 흥미있게 들으셨습니다. "Yes, God works when we open each of our mouths of pray, whether hearts of boldness or calmness. There is a power of God, when we pray together." 성령의 감화 감동하심으로 떨리는 마음을 안고 시간이 되어 올라가며 기도했습니다.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신 분들로 인하여 감사합니다. 저들로 인해 지금 제가 여기 있습니다.' |
사랑하는 주님,
크리스마스 아침이 다가옵니다. 이번 주 말씀을 기억합니다. 누가복음 2장 말씀에 나오는 이들의 크리스마스의 아침을 맞이하기 까지 저들의 일상을 내 삶에 비추어봅니다. 당시 법과 규례를 따르며 무거운 몸, 생각컨대 임신 8개월의 몸으로 한 달 정도 걸리는 짐승의 위협도 있을 법한 저들의 도보 여행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그러나 빈 방이 없어 마굿간에서 산고를 치러 태어나신 아기 예수,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그 분의 최초의 처소는 짐승의 밥 그릇이었습니다. 오 겸손하신 주님의 임재하심이여.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만왕의 왕이시여. Night job으로 밤을 지키며 바깥에서 일하는 목자들, 천한 자들로 당시 인정받지 못하던 자들이 힘써 주어진 자신의 삶을 감당하던 그 밤에 두려워말라, 천사로부터 예수님의 나신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수많은 천사들의 그 놀라운 찬송 소리를 실제 상상해봅니다. Glory to God in the highest, and on earth peace to men on whom his favor rest.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임하는 평화여! 평화의 왕으로 오신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Yes, I am coming soon.' Amen. Come, Lord, Jesus.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덧글 쓰기 엮인글 쓰기 공감 |
모태신앙으로 자라났지만 중고등,대학부 때에는 하나님을 떠났다.
그것이 내 일생 최대의 실수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간간히 하나님께서는 새벽기도 종소리를 듣고 깨어나게 하시어 실제로 대학 시절 어느 날은 그 종소리를 따라 낯선 거리를 나서 교회로 향하던 생각이 난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서야 누가복음 15장에 그 둘째아들처럼 아버지-부르며 그제서야 돌아왔다. 뒷꼍 호두나무 잎들이 투욱 투욱 떨어지던 늦은 가을이었다. 책상다리를 하고 고개를 묻은 채 아버지의 품에 안긴 탕자처럼 말했다.'제가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정말 하나님을 잘 믿고 싶습니다.' 그때 정말 예수를 믿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하나하나 잘 배우고 싶었다. 빨리 주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누군가 내게 성경을 가르쳐 주는 분이 계셨으면 했다. 당시 기독교 방송에서 매일 밤 9시인가 10시에 각 교회 주일 예배 목사님들의 정기적인 설교방송이 있었는데 귀 담아 듣곤 했다. 어느 수요일 소망 교회 곽선희 목사님 설교 중 하나님 앞에 십일조 드림은 물론이거니와 부모님께도 십일조를 드림이 마땅하다고 하시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녀는 반드시 부모님께도 주 안에 순종해야 한다시며 월급 봉투 채 드린 어느 젊은이 이야기를 하셨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첫 월급을 타서 어머니께 드리니 겸손히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더니 그 자리에서 십일조를 따로 떼셨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니므로 지극히 당연하고 거룩한 절차였다. 그렇게 매달 어머니는 기도하고 십일조를 먼저 구별하셨다. 그리고 도리혀 큰 목돈으로 만들어 훗날 모두 다 주셨지만 어머님께 매달 뿌듯한 기쁨을 드린 것은 확실하다. 지금도 어머니의 그 겸손하게 기뻐하시던 모습이 떠오르면 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십일조 드리는 삶은 생의 중심이 되었고 미국에서도 당연히 계속되었다. 이 곳에서 초기에 작은 액수의 주급에서 정확히 10에 1으로 하면 그리 큰 돈은 아니었지만 당시 20불은 우리에게는 거금이었다. 어느 주일 아침,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는다. 가령 십일조 액수가 41불이나 42불 이랬을 것이다. 순간 망설였다. 40불로 20불 짜리 두 장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잔돈이 없으니 그냥 20불 자리 3장으로 60불을 할 것이가,하다가 60불을 했다. 놀라우신 하나님, 말라기에서 십일조를 통해 나를 시험해보라시더니, 그 주간 가령 420불 수입이 정상적이라면 정말 딱 십일조 드린 10배, 600불의 수입을 허락하셨다. 대체로 우리 한국 크리스챤들은 하나님 앞에 드림의 삶이 자연스럽게 생활화되었다고 본다.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따름에 있어 우리 가슴에 흐르는 부모님을 섬기는 따사로운 민족성일까? 그것은 앞으로도 면연히 지켜야 할 강점이다.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내 생각에 이 곳에서 십일조는 option처럼 느껴진다. 신학적으로 십일조를 드림이 마치 오늘날 비늘이 없는 생선에 대한 레위기의 언급처럼 그저 구약의 율법으로 대한다고 하면 내 지나친 표현일까. 요즈음 교회가 문을 닫는다는 가슴 아픈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gym으로, 심지어 bar로 전락되어지는 하나님의 집, 우리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궁핍한 생활에서 부끄럽게도 한달 드린 십일조를 견주어 본다. 그러나 힘이 들어도 십일조는 내 드림에 하나님의 세밀한 가르치심이다. 가령 내가 궁핍하다고 드릴 수 없다면 좀 나아진다고 해도 나는 아직도 궁핍해서 할 수 없어, 혹은 얼마를 드릴 것인가. 바꾸어 내가 점차 큰 돈의 수입이 되어간다하자. 십일조라는 편리한 지침이 없으면 작년 드린 그 액수를 충실히 수년간 같은 액수를 드릴 수 있다. 실제 우리는 그런 습성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씀씀이에 대해서 커지는 만큼 하나님께 대한 드림도 커질 수 있겠는가. 무슨 기준으로 우리의 마음과 사랑을 얼마만큼 물질로 대신 표현하며 드리겠는가. 십일조는 우리를 옭조이는 율법이 아니라 자유롭게하는 편리한 지침이다. 주님, 오늘날에도 생활비 전부를 드리는 심령과 그 손길이 있습니까? 저들을 일일이 기억하사 하늘의 보화로 저들의 삶을 풍족하게 하시어 저들의 마음과 소원대로 더욱 넉넉히 드리고도 남음이 있어 그 사랑의 손길이 널리 이웃에게 확산되게 하소서. 덧글 1개 엮인글 쓰기 공감 |
하나님, 제가요, 몇 주전 들은 설교말씀이 제 마음에 남아 하나님의 위대하고 경이로우심을 기회있을 때 마다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주의 깊게 듣는 이들도 있지만 무관심하거나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어요. 언젠가 그들도 저의 하나님을 향한 이 감격을 반드시 맞이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지난 주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교수님을 만나게 해 주셨지 않아요? 감사해요. 글쎄. 그 분이 대학에서 Environmental Science를 가르치시는 분이라서 얼마나 반가왔는지, 공손한 요청에 Galaxy와 Milky Way에 대한 열띤 그 분의 설명을 듣고 또 한 번 놀랐어요. 지구까지 오는데 일 천년 걸리는 Milky Way의 별빛, 그 어마어마한 거리에서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를 포함한 행성의 궤도- one Solar System 만 있는 줄 알았는데요. 태양도 one of stars이며 또 다른 solar system들이 있다고요. 아, 하나님,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그 어마어마한 공간이란 아예 저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네요.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이 작디 작은 한 planet, 우리의 공간으로, 우리의 시간 속으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사건은 참으로 놀랍다고 했더니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기에 '아,이 분은 유대인이구나, 만일 이 분이 신실한 크리스찬이라면, 이런 강의 시간에 잠깐의 언급으로 수 많은 젊은이들을 예수 믿게 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믿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지, 하나님, 저들도 믿음을 주세요. 구원해 주세요. 저들은 하나님을 믿는다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으니 하나님을 부인함과 같아 어떻게 하면 좋아요? 우리의 연약한 무릎을 세워주시고 강건케 하시어 예루살렘과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힘있게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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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촛불예배와 잡채|작성자 asurren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