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085) - 신앙의 본질
입춘 전후 전국적으로 푸근하고 곳곳에 비가 내린다. 며칠 후면 설 연휴, 모두들 따뜻하고 넉넉한 절기 누리시라.
봄맞이 신호인가, 며칠 전 꿈결에 죽음이 다가오는 절망적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나보다. 거실에 있던 아내가 침실로 다가와 큰 소리로 깨워 일어나니 곧바로 맑은 정신으로 되돌아온다. 아휴, 깜짝 놀랐네!
지난달부터 50년 전 결혼에 즈음하여 아내에게 쓴 편지글을 다시 정리하고 있다. 오늘(2월 7일) 다룬 부분은 신앙의 축복, 그 요지는 이렇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대상을 지니고 있음은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간직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나는 본질적으로 귀신이나 사탄의 능력을 과소평가한다. 그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물질의 공양 또는 주술(呪術)에 의하여 퇴치될 수 있는 정도의 능력밖에 없는 것이라면 이는 우리를 꾐에 빠뜨리거나 시험에 들게 할 수는 있을지언정 구원에 이르는 능력과는 다른 저차원의 존재일 테니. 다른 한 편 나 외에 아무 것도 믿을 것 없다는 자기 과신의 여러 무신론(철학적 무신론, 사변적 무신론, 정치적 광신 등)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만 우주의 생성과 운행, 시간과 공간의 무한한 신비, 생명의 탄생과 죽음의 기원과 한계 등에 관하여 겸허하고 진지하게 대응하여야 할 것임을 되새긴다. 역사가 교훈하는 사실들, 다중이 추장하고 경외하는 여러 사건들, 우리의 영혼을 훈훈하게 해주는 본원적인 따사로움, 헤어나기 힘든 위기에 처하였을 때 나는 절대자인 하나님을 찾는다. 언젠가 생명의 위험이 앞에 놓일 때 어떻게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까 겁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믿는 바가 있다. 하나님이여! 끝까지 지켜주시고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소서.'
십 수 년 전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죽음을 앞두고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신과 죽음에 관하여 천주교 신부에게 질의한 24가지 내용을 접하여 이를 인생은 아름다워 시리즈에서 다룬 적이 있다. 그때 질문을 받은 신부가 지난해 12월 27일에 선종한 정의채 몬시뇰인데 그때 답을 내놓은 이는 수년 전 타계한 차동엽 신부여서 의아하게 여긴 적이 있다.
얼마 전 월간조선 2024년 2월호를 읽다가 정의채 신부가 직접 답을 하지 않은 정황을 알게 되어 오랜 궁금증이 풀렸다. 기사의 내용, ‘평북 정주 출신의 한국 천주교회 정의채(鄭義采) 몬시뇰이 지난 해 12월 27일 선종했다. 한국 가톨릭의 지성이라 불린 정 몬시뇰은 로마 우르바노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명동성당 주임신부, 가톨릭대 총장 등을 역임했다. 올해 사제 서품 70주년이었다. 기자는 월간조선 2019년 4월호를 통해 심층인터뷰를 진행한 일이 있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저에게 신과 죽음에 대한 24가지 질문을 한 뒤 답을 듣지 못한 채 떠나갔다며 정 몬시뇰은 이렇게 회고했다. “이병철 회장은 산전수전, 온갖 경험을 한 사람이거든요. 부자라고 하지만 고생을 많이 했지요. 그런 분은 죽음 앞에서 문제가 다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죽기 전 저를 찾아온 것이에요.”
기자는 월간조선 2020년 1월호를 통해 정 몬시뇰과 다시 만났다. 당시 6.25 체험담을 들었는데 오래 잊히지 않았다. 고인의 말이다.
“저와 같이 말할 수 없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여러 위기에서 살리신 하느님의 자비가 이렇게 큰 것이거늘 다른 사람에게야 얼마나 더 큰 것이겠는가. 저는 그저 무한히 자비하신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라는 외마디기도 외에 지금 달리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정의채 몬시뇰의 생전 모습
정의채 신부가 그 질문의 답을 준비하던 중 이 회장의 병세가 악화되어 직접 답할 기회를 갖지 못한 정황을 뒤늦게 알게 되어 감사하고 후련하다. 더불어 미처 알지 못한 정의채 신부의 범상치 않은 삶의 역정과 선명한 사생관을 접할 수 있음도. 만물이 소생하는 봄, 모든 삶은 오묘하여라.
* 인터넷 등에서 이병철 회장의 24가지 질문과 이에 대한 답, 정의채 신부의 삶을 찾아보면 참고가 될 듯.
그 중 아홉번째 질문( 종교란 무엇인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과 답변(요지)을 소개한다.
먼저 하늘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하늘은 인간이 언젠가는 가야 할 고향처럼 느껴집니다. 하늘에는 인간의 희망이 있고 꿈이 있습니다. 만일 인간에게 하늘이 없다면 이 각박한 지상의 삶을 살아가기가 매우 힘들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늘에는 하늘과 땅을 주재하는 분이 있음을 일반적으로 믿어 왔습니다. 그런 하느님을 삼라만상(森羅萬象)을 창조하고 움직이는 분, 하늘과 땅의 모든 조화를 지배하는 분, 인간의 선과 악을 심판하는 분, 개인의 운명을 좌우하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보잘것없는 존재인데도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큰 은혜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처지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친근하게 더 큰 사랑으로 다가오십니다. 그것이 병들거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심정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