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속
<위령의 날 강론>(2023. 11. 2. 목)
(마태 5,1-12ㄴ)
천국은(하느님 나라는) 우리의 모든 희망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더 바랄 것이 없는 곳’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지옥은 완전한 절망만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연옥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희망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죽은 다음의 세상’을 이렇게 희망과 절망을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살아 있는 동안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희망이 하나도 없고 절망뿐인 인생을 살고 있다면,
그 인생은 곧 지옥입니다.
여러 가지로 많이 힘든 생활을 하고 있더라도, 아직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인생은 연옥과 같은 것이고,
‘더 바랄 것이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그 인생은 천국의 생활과 같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려고 오신 분이고,
우리의 희망 자체이신 분입니다.
지옥과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희망을 가질 수 있고,
그 희망은 또 예수님에 의해서 실현됩니다.
우리 교회는 연옥의 존재를 믿고 있는데, 우리 입장에서
표현하면, “연옥이 있어야 한다.”입니다.
천국으로 직행할 정도로 완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지옥으로 곧장 떨어질 정도로 악한 것도 아닌,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가는, 또는 갈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다음 말씀들을
연옥이 존재한다는 믿음의 근거로 삼을 수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태 10,42).”
<‘물 한 잔을 주는’ 것과 같은 작은 선행이라도 ‘진심으로’
실천했다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곧장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일단 연옥에 가서, 자기가 지은 죄들에 대한 보속을 하는 과정은
거쳐야 할 것입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4).”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를 바라십니다.
인간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모든 죄인들이 회개하고 보속해서 천국으로 들어가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연옥이라는 ‘기회’를
마련해 주셨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사랑이신 분이고, 자비 자체이신 분입니다.
‘연옥’이라는 마지막 기회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자비’이고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7).”
<예수님은 우리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려고 오신 분입니다.
그런데 만일에 예수님을 따라가기 싫다고, 천국으로 들어가기
싫다고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거부해서
못 들어갑니다.
그런 경우 말고, 예수님을 잘 따라가다가 본의 아니게
실수한 사람도 있고, 의지가 약해서 죄에 빠진 사람도 있고,
어떻든 여러 가지 이유로 천국에 들어가기에는
자격이 좀 부족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연옥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주님의 배려입니다.>
원래 연옥 존재의 근거는 마카베오기 하권 12장입니다.
“......그가 전사자들이 부활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면,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쓸모없고 어리석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건하게 잠든 이들에게는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고 내다보았으니, 참으로
거룩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죽은 이들을
위하여 속죄를 한 것은 그들이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2마카 12,44-45).”
우리는 지옥으로 떨어진 영혼들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지옥은 모든 것이 다 끝나버린 곳이고,
그래서 기도해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천국에 있는 성인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지 않는데,
성인들은 이미 모든 것이 다 완성된 상태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우리가 기도해 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있는 성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는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 기도는 그들의 보속을 도와주기 위한 기도이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쉽게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기도입니다.
그래서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는 ‘사랑 실천’이고, 앞에서
말한 ‘물 한 잔을 주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선행 실천입니다.
따라서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는 ‘나를 위한 일’도 됩니다.
우리가 바치는 기도 덕분에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영혼들은, 천국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줄 것입니다.
또 주님께서는 우리가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를 바치는 모습을 다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연옥은 ‘벌’을 받는 곳이 아니라 ‘보속’을 하는 곳이지만,
그 ‘보속’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전해집니다.
연옥의 고통은 주님께서 내리시는 고통이 아니라, 보속하는 사람
자신의 죄책감과 미안함 같은 심정에서 생기는 고통입니다.
주님에게도 미안하고, 사람들에게도 미안하고......
특히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연옥은 자기의 지난 삶에 대한 기억이, 또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기억이 계속 떠올라서 큰 고통을 겪는 곳이라고 합니다.
연옥 영혼들의 그 고통과 보속을 생각하고 묵상하면서
지금의 자신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위령성월을 지내는 올바른 자세입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는
‘나를 위한 일’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