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14:1-12절 본질에 일치를 비본질에 자유를 그리고 사랑을
1-4절 우상 제물 먹는 문제이다. 아빠는 생각하기에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이 나무를 깍거나 금속으로 주조하거나 한 작품일뿐이다. 그래서 주님을 위하여 먹을수도 있고 안먹을수도있다.
5-6절 어떤 이는 다른 요일보다 주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또 다른 이는 7일을 똑같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상은 주일처럼 나머지 6일도 보내야하는데 ..현실은 어렵다.
6-8절 나는 내것이 아니다. 나는 주님의 것이다. 왜냐면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사셨기 때문이다.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의 방법을 통하여 나를 사셨다. 그러니 성도가 이제는 나를 위하여 살지 않는다. 주을 위하여 산다. 살아도 죽어도 주의 것이니까.
이전엔 나의 이름, 나의 왕국, 나의 나라, 나의 뜻, 나의 욕망을 위하여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의 이름, 주님의 왕국 주님의 나라, 주님의 뜻 주님의 기뻐하심을 위하여 산다. 죽음도 기꺼이 받아드리는 인생이되었다.
이러한 모습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 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인생은 어떻게 하면 나에게 유익할까? 나에게 즐거움이될까? 내가 부자될까? 고민하며 살지
그러나 성도는 어떻게 하면 주님께, 교회에 유익할까? 주님의 기쁨이될까? 잠시맡은 물질,지혜, 건강,명예, 등을 주을위하여 사용할까?를 고민하며 산다.
9-10절 결국엔 모든 이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 그날 어떻게 살았는지 그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드러난다.
비판의 문제는, 너희가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본질은 사도신경의 신앙고백이나 주기도문의 기도 십계명등일거라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시도신경이 본질중에 본질일거라 생각한다.
비본질은 침례와 세례, 예배순서, 복장, 먹거리, 교회피아노위치. 예배당 인테리어 등등이 비본질이다.
본질에서는 일치가 있어야하고, 비본질에서는 자유함이 있어야한다. 이것에 사랑을 더하면 더 좋고. (이것은 어거스틴의 말이다.)
12절 우리 각 사람이 자기의 일을 하나님께 직고한다.
어제는 아빠는, 생전에 아빠를 아들처럼 대해주신 고이숙하 권사님의 기일이어서 추도예배를 인도하고왔다. 권사, 집사된 자녀들이 다 모여 교제하고 예배하니 보기 좋았다. 훗날 너희들도 그리하렴
오늘도 샬롬이다. 내일 주일예배잘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