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은 일찍 먹고(오후 5시 정도) 잠이 들었더니 지금 일어났습니다.
이 시각 새벽 3시. 배가 고프군요.
저는 이런 시간이 좋습니다. 배가 고프면서 정신이 맑아지는 상태가 이런 새벽 시간입니다.
어느 새 배고픔을 즐기는 경지까지 도달했죠.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하루에 한끼나 두끼를 먹는 生活習慣으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술을 즐기는 오십대에 들어섰는데도 뱃살은 줄어듭니다. 굳이 다이어트 할 필요도 없는 거 같아요. 사실, 전 체질적으로 강제적인 목표를 세우고 하는 것을 싫어 하기도 합니다.
하여간, 뱃살이 줄어드니 좋긴 좋군요.
이런 말하면 욕 먹을까요? 다이어트 tip 하나! 배고픔을 즐겨라!
황무지를 개간해가듯 습관적으로 모니터 화면의 하얀 텍스트를 채워가고 있군요. 꽤 오래된 습관입니다. 새벽에 글쓰기가. 집안 내력인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가 저로 하여금 새벽 글쓰기 습관을 만들었습니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갓 結婚해서 시집 살이(榮親)를 하는데 시어머니(저의 할머니죠)가 새벽부터 일어나 소 여물 주고 돌아다니는 것이 무척 불안해서 이불 속에서 동동 거렸답니다.
할머니 버릇이 아버지 버릇이 되고 그것이 저의 새벽 글쓰기 습관으로 이어졌나 봅니다. 할머니 소 여물주기가 나의 글쓰기로. 글쓰기가 몇 년 전 소설쓰기로 변해서 소설 책 한권 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꽤 많이 팔아 먹고 다시 소설을 쓸려다가 먹고 살기가 바빠 요즘은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소설 쓸려면 주인공과 같이 살아야 하는데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네요. 逆說的이게도 도시에 살 때보다 시골에 살 때가 시간적 여유는 많은데 마음의 여유는 줄어드는 것 같아요. 아마 편하게 사니까 잡생각이 더 나는 모양입니다. 그것은 바로 저가 아직 수양이 덜 되었다는 증거죠.
배 부르고 할 일 없어지니 잡 생각도 나고, 요즘은 별 쓸데없는 생각도 다 하고 삽니다. 사회과학 서적을 눈 대중으로 대충 읽었는데, 요즘은 심각하게 정독을 한답니다. 잡 생각이 발전하여 심각해지니 시골 살이와 아무 상관도 없는 철학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진보신당 게시판에 들락거리면서 정치라는 속물과도 만났습니다.
정치와 철학! 단순하게 이야기 하면 먹고 살기와 생각하기 정도입니다.
먹고 산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俗物的인(솔직한) 것이고,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이성적인(위선적인)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정치는 솔직한 것이고 철학은 위선적인 것이다. 맞나요?
정치는 약하고 못난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것이고, 철학은 잘난 인간들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맞나요?
정치를 철학자가 해야 이상사회가 건설된다고 플라톤이 그랬던가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던가요?
정치가 너무 먹고 사는 문제만을 다루다보니 점점 淺薄해져가는 것 같습니다.
너희들 잘 살게 해 줄테니 닥치고 있어. 내 말만 잘 들으면 너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없어. 이렇게 정치가들은 이야기 하고 싶을 겁니다. 그래서 가끔 말 안듣는 사람들을 가두고 욕설하고 처벌하는 것으로 정당화하죠. 정치는 인간을 틀 속에 가두어 둡니다. 국가라는 테두리. 그 속에 가두어야 政治가 성립을 하거든요. 너 이속에 가만히 있으면 안전해. 내가 보호해 줄게. 그래놓고 정치가는 그 속에 든 인간들을 부려먹죠. 말 안들으며 더 작은 테두리로 가두어 놓으면서. 그 이유는 오로지 잘 먹고 잘 살게 해 준다는 거짓말.
비록 거짓말이 아니었다고 해도 결국에는 거짓말이 되는 겁니다. 정치가가 좋아하는 법으로 이야기 한다면 미필적 고의가 되는 겁니다.
아! 맞습니다. 정치가는 사기꾼은 아니지만, 결국에는 사기꾼이 됩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법, 미필적 고의에 의해서.
철학은 아직도 고귀합니다. 妖艶하기까지 하죠. 신비합니다. 아마, 똥도 안싸고 이슬만 먹고 살 겁니다.
그런데, 그렇던 哲學이 요즘 와서 많이 타락을 했죠. 속물 같은 정치가들과 놀아나기 시작한 겁니다.
정치가들로서는 그들의 천박스러뭄을 감추어 주고 보완 해 줄 수 있는 것이 철학이었죠. 철학이야 말로 먹고 살기에 급급한 속물 같은 정치를 인민들에게 꽤 괜찮은 것으로 속일 수 있는 수단인 겁니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경제라는 겁니다. 사실 가두어 놓고 먹여 살리고, 말 안들으면 처벌하고 하는데 경제라는 것은 하등 쓸데 없는 것인데, 굳이 그것을 갖다 붙힌 것은, 오로지 정치라는 천박한 가치를 교묘하게 위장하는 것에 불과하답니다.
아마, 그 절호의 기회에 자본주의가 탄생한 겁니다. 경제라는 이름으로.
그것이 시장이 되었죠. 그 시장은 이제 정치 마저도 장악을 하는 지경이 되었고, 사회 전체를 아우르게 되었습니다. 철학도 감히 그 앞에서는 기를 펼 수 조차 없죠.
신 새벽, 깊은 시골에서, 아나키스트가 다시 한번 시장의 무시무시함에 두려워합니다.
시장이 지배하는 사회. 그 앞에서는 아나키스트도 벌벌 떨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 支配하지 못하는 것은.
새벽의 가난한 배고픔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