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니 하얀 눈 세상이었습니다. 간밤에 늦게까지 뒤척이며 이 생각 저 고민 했던 게 순간 너무 부질없는 일로 여겨지며 하얀 눈은 오랜만에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마 일요일이라 더 여유 있게 눈 세상이 연출하는 ‘순백의 세계’가 마음에 와 닿았겠지요.
어제 저는 요즘 한창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서울대 안규리 교수를 만나러 인천 국제공항에 갔습니다. 안교수가 27시간동안의 미국방문을 마치고 어제 4시 반쯤 도착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 왠지 제가 그곳으로 가서 안교수를 ‘보호’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그러시겠죠. 웬 보호(?), 경찰들이 어련히 알아서 경호를 해줄 텐 데라고. 아시다시피 안 교수는 몇 달 전부터 황우석 교수와 함께 ‘경찰 보호대상’ 인물이거든요.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진 데는 사연이 있습니다.
어제 아침 신문을 보고 순간적으로 분노의 감정을 삭이기 어려웠답니다.
요새 대한민국은 mbc가 방영한 ‘PD수첩’이라는 프로그램의 여파로 자고나면 거의 모든 매스컴이 황 교수와 이 PD수첩에 관련된 기사를 대서특필하고 있습니다.
그런 탓인지 거의 전국민의 관심도 ‘황교수 사태’에 쏠려 있고, 심지어는 외국 언론들까지 덩달아 난리를 쳐대고 있습니다. 일찍이 이런 일은 없었던 것 같군요.
거의 전국민이 유전자 과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너도 나도 관심을 갖고, 줄기세포가 어쨌느니 성체세포가 저쨌느니 하면서 ‘과학마인드’를 공유하게 된 것은 전무했던 일이지요.
PD수첩이 방영된 바로 다음날 ‘황우석교수와 함께 PD수첩을 시청하고 분노한’ 여의사 구정진박사를 인터뷰해 이 skyview의 블로그에 올렸고, 독자여러분들은 뜨거운 관심을 보내주셨습니다.
구박사는 부군인 장상식 박사와 함께 황우석교수를 도와 이번 연구에 참여중이어서 누구보다도 황 교수의 고뇌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 교수는 ‘장박사와 얘기하면 가슴이 시원해진다’고 종종 말해왔답니다. 구박사는 ‘mbc pd 수첩의 태도는 방송의 횡포’라고 격앙된 감정을 감추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황교수와 안교수가 너무너무 힘들어한다고 전했고, 연구원들도 의욕을 상실한 것도 큰 손실이지만 무엇보다도 국익에 엄청난 손실을 초래한 mbc는 이 사태에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얘기가 잠깐 옆길로 샜는데요, 제가 어제 아침 신문을 보고 분노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PD수첩 팀이 이번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저질적이고 거의 협박범 수준의 취재태도 탓이었습니다.
PD수첩 팀은 황교수 팀의 연구원을 찾아가 ‘다음 주에 황교수가 허위논문 건으로 구속된다, 당신도 구속될 텐데 실토하면 당신은 빼주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세상에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얘깁니까.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일개 pd가 이런 식으로 사람을 위협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봅니다.
순진한 연구원은 그 말에 속아 넘어가 예전에 황교수가 내렸던 지시들을 유추해보면서 ‘그래서 그러셨나’라고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됐고, 그러다보니 pd수첩팀의 ‘유도 심문’에 넘어가게 된 거랍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자마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그동안 이 사태로 안규리 교수가 당했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 싶어 그녀를 ‘위로’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누구보다도 안교수를 잘 안다고 자부하는 저는 그녀를 늘 ‘규리천사’라고 불러왔답니다.
워낙 ‘천사’이다 보니까 세상물정엔 너무 어두웠고, 그러다 보니 늘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그런 친구였답니다. 언젠가 그녀와 함께 시내 백화점에 간 적이 있는데요, 그때 저는 그녀가 일곱 살짜리 어린애처럼 여겨져 ‘오 언제까지나 내가 이 아이를 보호해줘야지’라는 터무니없는 마음마저 가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그녀는 영혼이 순수한 사람입니다. 오늘 아침 세상을 저렇게 환하고 하얗게 빛내주고 있는 저 눈처럼 그녀의 심성은 맑고 고와 상처받기 쉬웠답니다.
제가 이 'skyview의 블로그’에 ‘안규리 교수의 고민’이라는 글도 올렸지만 그녀는 서울의대 제자들에 대한 사랑도 각별하답니다.
얼마 전 여기에 올렸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라는 소설 독후감 기억하시는지요? 거기 등장하는 수학박사의 캐릭터가 안규리교수와 상당히 닮은 것 같습니다.
그만큼 그녀는 요즘 세상에 드문 ‘순수 영혼’의 소유자입니다. 그러니 그런 극심한 횡포를 부리고 있는 mbc pd수첩 팀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겠죠.
사설이 너무 길어졌네요. 이제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안교수가 타고 온 뉴욕발 비행기가 4시 38분에 도착했다고 전광판에 들어왔지만 그녀가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5시 10분쯤 이었습니다.
4시 무렵부터 사진기자들이 속속 자리를 잡기 시작하더군요. 그 기자들을 보면서 ‘오늘 잘못하면 규리를 못 만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스쳤어요.
기자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고 있는 순간 빨간 등산용 파커에 흰색 진바지를 입은 안규리 교수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입국장을 걸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순간 제 가슴이 이상하게 콩당콩당 뛰기 시작했고, 그 순간 어디서 숨어 있다가 나타났는지 수십 명의 기자들이 그녀를 에워싸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는 기자들에게 둘러싸였고, 경찰 경호원이 그녀를 양쪽에서 부축하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는 그 극성쟁이 기자들을 물리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난생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기자들땜에 한 걸음도 옮기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구요, 자칫 무슨 사고라도 날 것만 같은 그런 인간무리들이 이리저리 그녀를 밀고 당기는 통에 급기야 저는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죠.
‘비키세요 비켜, 사람 잡겠네, 비키란 말이에요’라구요. 글 솜씨가 짧아 그때의 위급한 상황을 다 전해드릴 수 없어서 안타깝군요. 아무튼 나중엔 검은 베레모를 쓴 ‘군인 아저씨’들까지 등장해 ‘인간 교통정리’를 했고 간신히 대기 중이던 승용차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상황이 그렇게까지 전개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답니다. 그녀는 경호원들이 거의 밀다 시피해서 승용차 왼쪽 문으로 탔고 저는 엉겁결에 재빨리 오른 쪽 문으로 올라탔습니다.
어디서 그런 민첩함이 튀어나왔는지 제 자신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차에 타고 보니 그녀 옆에 탄 사람과 운전사는 경찰요원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공항을 빠져 나와 한 오 분 정도 달리다가 GS주유소 앞에서 다른 승용차로 바꿔 탔습니다.
경찰요원은 빠지고 그때부터 ‘민간인’끼리의 주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안교수의 제자가 운전하는 승용차에는 이번에 그녀와 함께 미국에 다녀온 한양대 의대 윤현수 교수도 동승했습니다.
문제의 ‘섀튼 박사’ 연구팀에 연구원으로 가있는 3명 중 2명이 윤 교수의 제자여서 그는 제자들과 만났다고 합니다. 무슨 얘기를 나눴냐고 물었더니 윤교수는 ‘ 다 잘 될 거’라면서 자세한 얘기는 3일 후에 밝히겠다고 말했습니다.
안 교수와 윤 교수는 너무 피곤한 탓 인지 기내에서 ‘기내식’을 먹다가 잠이 들었다고 말하면서 함께 웃었습니다. 그만큼 미국일정이 강행군이었다는 말이겠지요.
토요일 저녁이라서 차가 워낙 막히는 바람에 2시간 반 넘게 차 속에 있었고 안교수의 자택이 있는 혜화동에 도착한 시각이 8시 무렵이었습니다.
차 안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서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었는데요, 안교수는 의외로 담담해 했습니다.
제가 여린 그녀의 마음이 다칠까봐 그렇게 걱정했는데 어쩌면 ‘기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로 그녀는 대범한 발언을 했습니다.
안교수의 첫 소감은 ‘언론이 문제야’였습니다. 그녀는 이번 사태가 커진 것에 일조를 한 것은 언론이 우왕좌왕하며 사태를 키웠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우리 모두가 좀 쿨 해져야 할 것 같애’라고도 했습니다.
그녀의 주장은 지금 이 사태는 본말이 전도되어 있는 것 같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줄기세포가 진짜네 가짜네 떠드는 것은 지극히 지엽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정말 중요한 것은 ‘환자들의 생명’이라는 게 그녀의 주장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미국의 권위적인 과학잡지인 사이언스지에서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다음부터는 ‘한국인의 논문’을 아예 실어주지 않을 지도 모르는 점을 가장 크게 염려했습니다.
그녀는 또 ‘국민들의 여론’에 퍽 신경을 곤두세우는 듯 보였습니다. 여론이 어떠냐고 내게 물었습니다. ‘95%는 황박사를 지지하고 격려를 보내는 것 같다’는 말에 안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녀는 여린 사람이거든요. 현재 충청도 어느 사찰에 칩거 중인 것으로 알려진 황박사의 심리 상태는 거의 공황상태인 것 같습니다.
사찰에 가기 전 안규리 교수에게 황교수는 내가 이 모욕을 당해야 하느냐‘며 매우 비통해 했답니다. ‘선문답의 선수’인 안 교수는 그랬답니다. “태어난 자체가 죄이고 모욕인데 뭘 그러시느냐”고.
황교수는 pd수첩 팀의 고압적인 자세에 심한 거부감을 느낀 듯합니다.
어떤 사람인들 거부감을 안 느끼겠습니까? 황교수의 지금 심정이 가히 어떤 경지인지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갈 겁니다.
이렇게 황교수가 최악의 기분으로 거의 ‘붕괴직전’의 심신상태여서 황교수팀의 실질적인 리더는 지금 안교수가 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안교수도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만은 없겠지요. 그녀는 어떤 사태에 대해 일반인들처럼 미주알 고주알 얘기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그냥 한마디씩 툭툭 던지거나 애매한 선문답 식 ‘어록’을 많이 남기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안 교수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만날 수 있는 ‘50대 아줌마 수다꾼’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모습입니다. 우선 그녀는 너무 연구에만 몰두해와 ‘수다떠는’ 노하우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일반인들이 선은 이렇고 후는 이래서 너무 괴롭다거나 화가 난다거나 이런 ‘논리에 입각한’수다는 떨 줄을 모릅니다.
우리 같으면 이렇게 억울한 사태를 당했다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나를 괴롭힌 상대를 원색적으로 비방할 텐데 그녀는 워낙 심성이 착하고 여려서 누구를 그렇게 ‘강도 높게’ 비난할 줄도 모릅니다.
사실 이번에 PD 수첩 팀에게 ‘줄기세포’를 ‘접시 째’로 준 사람도 바로 안교수입니다.
그녀는 PD수첩 팀들이 와서 ‘제보자의 그럴싸한 제보만 믿고, 마구 연구원들에게 신경질 부리며, 고함치면서 이건 사기극이야’라고 소란을 피웠을때 그만 어이가 없어졌을 겁니다.
그녀는 그 당시 상황을 자세히 입에 담진 않지만 지나는 말로 툭툭 던지는 그녀의 말을 종합해 볼 때 pd수첩 팀들이 하도 생난리를 쳐대니까 ‘결과에 확신’을 가진 그녀는 그 줄기세포를 주어버린 겁니다.
그 팀들이 그걸 가져가기 전에도 DNA는 당신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가 추출해주겠다는 제안을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PD 들이 ‘당신들을 어떻게 믿냐고’ 악을 썼다는 거죠.
우리 같으면 ‘당신네가 뭔데 여기와서 이러느냐, ’라고 호통을 쳤겠지만 워낙 ‘천사표’인 그녀는 그만 기가 막혀 그 ‘불한당’들에게 줄기세포를 내준 것이겠죠.
어쨌거나 어제 마침 그녀의 집에 도착했을 때 나온 뉴스에서는 그 PD들이 의뢰한 기관에서 DNA추출에 실패한 것은 시약을 잘못 사용한 탓이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안교수는 ‘저것봐, 저거 하나도 못하면서’라고 혀를 쯧쯧 차는 걸로 고작이었습니다.
아무튼 이번 사태는 서서히 끝이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PD수첩팀들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까요.
침 희한한 것은 이번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인 mbc의 한학수 pd를 안교수가 예전부터 잘 알고 있던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안교수는 ‘치과의사모녀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몰렸던 의사 이도행씨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적이 있습니다. 결국 안교수의 갖은 노력 끝에 무죄를 받을 수 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법의학’증언을 끌어내 그를 결국 무죄판결 받도록 하는데 공을 세운 일이 있습니다.
당시 ‘이도행 사건’을 제작 방영했던 담당 pd가 바로 한씨였고 안교수는 한씨가 재능있는 pd라는 호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안교수가 선뜻 줄기세포를 내준 배경에는 그녀가 그 pd를 믿었고 안교수 자신은 그들이 이렇게 불확실한 결과를 방송에 대대적으로 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는 겁니다.
게다가 안교수는 ‘국익차원’에서도 pd수첩팀이 그런 식으로 방송을 한다는 건 상상을 못했다는 거죠.
결국 한pd는 안교수와의 구면임을 ‘이용’해 이번 줄기세포건을 터뜨린 셈이 된 겁니다.
우리는 공항서부터 운전을 맡은 제자 김재형박사와 함께 안교수의 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텔레비전 뉴스를 시청했습니다. 마침 안교수의 공항 입국장면이 나오더군요.
실물보다 더 초췌한 모습의 그녀를 보니 마음이 찡해졌습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안교수는 다시 시내 모처로 회의를 하러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장거리 비행으로 힘들텐 데도 그녀는 한사코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막 나서려는 차에 모 일간신문의 여기자가 기습적으로 들이닥쳤습니다. 주말 밤, 연락도 없이 나타난 젊은 여기자가 영 안쓰럽게 보였습니다.
안 교수는 여기자가 묻는 말에 아주 간략히 답변하면서 pd수첩 팀이 황교수 연구팀을 얼마나 공포스럽게 괴롭혔는지를 담담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안교수가 회의장소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모처럼 찾아온 여기자는 취재도 제대로 못한 채 우리와 헤어졌습니다.
안교수는 승용차 안에서 ‘젊은 여기자’가 안됐다는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게다가 내가 내리기 전까지 운전을 하고 있는 자신의 제자인 김박사에게 ‘김박사, 고마워’라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해 말했습니다.
듣다 못한 내가 “얘, 자꾸 그러면 운전하시는 분이 오히려 미안하단다”라고 한 마디 거들어야 했습니다.
그만큼 안교수는 여리고 착한 여성입니다. 내가 차에서 내리기 직전 한 마디 툭 물어봤습니다.
“이번 사태 터지고 너무 놀랐지”라고. 그랬더니 그녀의 선문답이 가관이었답니다. “뭘 원래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뭐”라고요. 우리는 모두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밖에는 흰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첫댓글 너무도 착한 영혼의 이름들... 황우석 ...안규리님!!...詩人 같은 맑은 영혼을 지닌자들 사랑합니다...//감히 엠비시 피디같은..똥물과 오염으로 뒤범벅 된 시정잡배들이 섞어져 오다니...!!
일급비밀로 다뤄야할 연구를 하시는 분은 먼저 강한 정신무장부터 시켜야 할것 같습니다